[단비발언대] 박고은 기자

▲ 박고은 기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생태계에도 재난이 시작됐다. DDT가 개발되면서부터다. 뮐러가 살충제로 개발한 DDT는 말라리아모기를 비롯한 해충을 죽이는 데 놀라운 효과를 냈다. 그런데 이 기적의 살충제가 자연을 파괴할 뿐 아니라 먹이 사슬을 통해 인체에까지 축적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DDT 사용은 보다 쉬운 방법으로 대량의 곡물을 생산할 수 있게 해 편리함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태계를 오염시켜 식량 안보, 나아가 인간 안보를 초래한다는 함정이 있다. 당장은 이익창출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류에 더 큰 손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욕망이 인간을 위협하는 단적인 예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은 근대화·정보화가 우리 사회를 위험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작금의 근대화를 이루기까지에는 이익창출이라는 인간의 욕망이 작용했다. 문제는 욕망이 우리 사회에 개인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고착될수록 우리는 타인의 불행은 외면하게 되고, 개인의 이해관계를 가치의 우선순위에 두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경제논리의 부작용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경제논리 앞에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안전 문제는 뒷전이 됐다. 비용이 더 든다는 이유에서다. 민관이 유착해 서로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며 과적 운행을 당연시했다. 꼭 필요한 규제도 성장을 저해하는 ‘악의 축’으로 묶어 선령 제한 등의 규제를 완화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 이후에도 이런 인식은 지속되고 있다.

안전보다 경제논리를 우선시하는 것에는 큰 함정이 있다. 먼저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수습하는데 더 큰 비용이 든다. 4년 전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다. 사고 이후 일본 방사능 공포로 수산 식품 교역, 관광 사업 등이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스리마일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35년이 지났지만, 폐로가 불가능해 가동하지 않는 원전을 유지하는 데에만 연간 2백만 달러를 쓰고 있다. 사회 갈등 비용도 만만치 않다. 세월호 인양부터 송전탑 건설, 원전 부지 선정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경제논리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초래한다.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는 0.71로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도 있었다.

▲ 인간의 욕망은 위험사회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 ⓒ pixabay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이윤 추구의 욕망을 제어해왔던 것은 늘 정치의 몫이었다. 적은 임금으로 고용이 가능했던 14세 미만 아동의 노동을 금지한 것도, 장시간 작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의 욕망을 제어했던 법정 노동 시간 설정도 모두 정치가 발휘한 힘이었다. 경제라는 제로섬 게임에서 각 주체들을 조율하고 최선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정부 및 입법 기관이 먼저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함정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당장의 이익 창출을 위해서라면 안전은 경시해도 된다는 사회 풍조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규제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및 국회는 ‘악의 축’으로 같이 묶여 있는 규제를 ‘없애야 하는 규제’와 ‘없어서는 안 되는 규제’로 구분해야 한다. 국민의 일상을 불편하게 하고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는 없애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안전과 결부되어 있다면 ‘없어서는 안 되는 규제’로 보고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국민 안전이 법규의 제·개정 기준에서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효율을 따져 봐야 할 때다. 욕망이 인간을 위협하는 위험사회가 도래한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욕망을 제어할 정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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