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촛불’

▲ 이문예 기자

여성을 뜻하는 ‘woman’은 ‘wolf(늑대)’의 옛말 ‘woe’에서 나왔다고 한다. 늑대는 흔히 남성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에 남성적 단어가 결합된 건 여성성의 바탕에 무의식적인 남성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융은 이를 ‘아니무스’(animus)라 불렀다. 아니무스는 자연스러운 ‘야성적 자아’인데 근대화와 가부장제 아래서 억눌리며 ‘어머니’ ‘성모’ ‘천사’와 같은 인위적 이미지를 덧썼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은 본성에 충실하다. 아니무스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시장에서는 콩나물값 몇 백원을 깎으며 알뜰하게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며 아르바이트까지 억척스레 한다. 수줍어 몸을 배배 꼬던 소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때로는 남자를 초월하는 남성성을 보인다. 나는 우리네 ‘아줌마’의 특성으로 굳어진 이런 모습들이 불편하다. 사회제도와 형식 속에 억눌렸던 아니무스의 해방이 반갑지만, 부드러운 여성성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각박한 현실이 아줌마의 남성성을 자극한 것 같아서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카트>에 쏠린 시선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카트>는 대형마트 비정규직 직원들이 갑작스러운 부당해고에 맞서 노조활동을 벌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개봉 10일만에 60만 관객을 돌파한 저력은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바탕으로 한 실화라는 이유도 있지만, 대형마트 비정규직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줌마, 곧 우리 어머니들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여성성을 버리고 강인한 남성성을 드러내야만 하는 각박한 현실이 내 가족의 삶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한 달쯤 앞둔 날 갑자기 해고통보를 받는데 우리네 현실에서도 너무나 흔한 일 아닌가? 그들도 자식에게는 ‘열심히 공부하면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해왔으리라.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죽은 아이들도 대부분 그렇게 키워온 아이들일 것이다. 한국사회의 현실은 노조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아줌마도 촛불을 들고 차가운 거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 지난 17일 서울 중구 시청 앞 광장은 4.16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려는 4160개의 촛불로 가득 메워졌다. ⓒ YTN 뉴스 화면 갈무리

촛불은 여성성의 화신이지만 남성성도 지니고 있다. 실바람에도 꺼질 듯 나약하지만, 여러 개 모이면 권력에 도전할 만큼 강력한 남성성을 드러낸다. 촛불의 아니무스적 측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줌마의 아니무스가 그러하듯 촛불의 아니무스도 발현되는 것을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시민들이 툭하면 광장에 나와 촛불을 밝히는 건 그만큼 우리 현실이 암담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상처받고 억압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별다른 저항 수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시민들은 촛불 4160개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었다.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한 이 추모 행사를 주최측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라고 명명했다. 현실이 잔혹할수록 광장의 밤이 촛불로 아름다워지는 건 ‘절망의 역설’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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