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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기사승인 2015.02.16  21: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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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교양특강]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주제 ① 세월호를 통해 본 한국현대사 I

“대한민국 헌법에는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권력은 정말 국민한테 있나요? 청와대, 재벌, 국정원한테 있나요? 아니면 언론에 있나요?”

현대사를 전공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헌법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한 교수는 “세월호 사건을 보고 느낀 게 많아 요즘 팔자에도 없는 헌법 강의를 하러 다닌다”고 했다. 

"우리 헌법 제34조 6항까지 가면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이 국가는 어디 갔죠?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이 국가도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자식만 잃은 게 아니라 국가도 잃었습니다."

   
▲ 한홍구 교수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들췄다. ⓒ 박진우

추락하는 언론 속에도 올라가는 매체가 있었다

한 교수는 한국사회 올해의 단어로 ‘기레기(기자+쓰레기)’를 꼽았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더욱 참담하게 만든 한 축을 ‘언론’이라고 보았다.  

“세월호 참사 때 ’학생 전원 구조’는 한국언론 최악의 오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보가 이렇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거 보고 다 손 놓고 있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슬픈 어버이날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청와대가 아닌 KBS로 먼저 갔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사실확인과 검증이 배제된 속보경쟁 속에서 언론은 심각한 오보를 양산하며 스스로 신뢰를 추락시켰다. 그 중심에 공영방송 KBS가 있었다.   

“이 강의실에 장차 ‘기레기’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기레기’로 전락할 사람은 여기 꽤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한국에 지금 기레기가 많나요, 언론인이 많나요? 언론 지망생들은 이 사실을 굉장히 뼈 아프게 새겨야 합니다.” 

한 교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 <고발뉴스>와 JTBC가 특종을 가장 많이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특히 JTBC는 손석희 ‘뉴스9’ 앵커의 진행 덕에 인지도가 원래 좀 높았지만, 이상호 MBC 해직기자의 <고발뉴스>는 세월호 유가족 대부분이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상호 기자는 생방송 중 ‘사상 최대 규모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한 연합뉴스 기자에게 욕설을 퍼부어 논란이 됐다. 그런데도 <고발뉴스>가 특종을 많이 한 까닭은 KBS와 MBC를 비롯한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들을 유가족들이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이 처음부터 잘 모르는 이상호 기자에게 자기들 이야기를 했을까요? 아닙니다. 큰 방송사에 이야기해도 아예 안 나오니까, 나와도 이상하게 나오니까 이상호 기자나 JTBC에게 이야기한 겁니다. 이상호 기자는 생방송 중에 욕을 하는 ‘몰상식한 짓’까지 했는데, 오히려 고발뉴스 후원자가 대폭 늘었어요.” 

   
▲ 이상호 기자는 생방송 중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는 기사를 낸 연합뉴스 기자를 향해 욕설을 퍼부어 논란이 됐다. 당국의 미흡한 구조작업에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가 치솟는 상황에서 고발뉴스 후원자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팩트TV 화면 갈무리

‘쪽팔림’이 세상을 바꾼다

한 교수는 오보를 양산하며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안겨준 언론을 질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론을 향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그는 과거 정권의 보도 탄압에 저항했던 언론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때 진정성 있는 방송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은 JTBC 보도부문 손석희 사장은 젊은 시절 MBC에 있을 때도 눈에 띄었다고 한다.

“손석희는 회사에서 팍팍 밀어주는 당대 최고 꽃미남 아나운서였습니다. 그로서는 뉴스를 진행하며 온 국민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 부러울 게 없는 시절이었죠. 그런데 잘나가는 그가 뭐가 그렇게 불만이어서 단결투쟁을 하고, 뭐가 부족해서 수갑을 차고 구치소 생활을 했을까요?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쪽팔려서 그랬지 않을까요?”

한 교수는 세상을 바꾸는 동력 중 하나가 ‘쪽팔림’이라고 했다. 부조리함을 견디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나선 행동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1988년 8월 MBC노조는 정부의 방송관련법 개악에 맞서 가슴에 ‘공정방송’ 리본을 달고 방송을 하기로 했다. 당시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던 손석희는 방송 시작 직전까지 갈등하다 리본을 양복 깃이 아니라 양복 안쪽 와이셔츠에 달았다. 손 앵커는 이때 일을 자신이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 행동’이라고 2006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아홉시 ‘땡’치면 전두환 대통령 이야기부터 한다고 메인뉴스를 ‘땡전뉴스’라고 불렀습니다. 영부인이 어딜 방문했다는 소식일 때도 있었죠. 대통령에 관한 보도가 다 끝나면 그때부터 ‘덜 중요한’ 사건사고가 보도됩니다. 여러분이 앵커라면 국민들의 사망 소식을 네다섯 번째로 보도하는 걸 참을 수 있나요?”

세월호의 과거형과 미래형

한 교수는 세월호 참사가 60년 전 한강다리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발발 후 이틀 만에 서울을 빠져나가고, 시민들에게는 안심하고 생업에 집중하라는 라디오 방송을 내보냈다. 그 후 북한군을 막기 위해 한강다리를 폭파했다. 15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부터 한국정부의 책임 회피 역사가 시작됐다.

“이준석 선장이 안산에 와서 유가족들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하면 어떨까요? 우리 역사에서 실제 그런 일이 발생했어요. 한국전쟁 당시 다리 끊고 도망 간 이승만이 피난 못 간 사람들을 죽였죠.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사과를 안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했어요. 우리가 새빠지게 민주화 운동해서 대통령한테 사과 받아내는 데까지 발전했는데, 딱 거기서 한 발짝도 못나갔어요.” 

한 교수는 역사적으로 세월호가 꾸준히 존재했다고 말한다. 삼풍백화점, 태안 기름 유출 사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 등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사회에 꾸준히 대재앙의 경고음이 울렸다는 것이다. 언제나 대책은 나왔지만 반영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한국사회는 수많은 세월호의 과거를 마주했지만 그때뿐이었고, 항상 반성하지 못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앞으로 한국사회에 닥칠 또 다른 대재앙의 징조가 아닐까 걱정했다. 이미 설계수명을 다한 국내 핵발전소 중 하나라도 터지면 세월호 참사 이상의 재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 한 교수는 낙후된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고리원전이 세월호의 미래형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에 다른 사고는 다 났는데 아직 한 번도 안 난 사고가 바로 원전입니다. 고리 핵발전소 반경 30Km 내에 340만 인구가 살고 있어요. 원자력 사고는 대피도 불가능해 위험이 큰데도 정부는 설계수명이 끝난 고리원전의 부품만 교체하며 괜찮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고리원전이 터지면 최대 85만 인구가 사망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말하며 한국 사회의 무사안일주의를 문제 삼았다. 고리원전이 세월호 참사의 미래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이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고 외치는데, 잊지 않는 방법은 다른 사고가 안 나는 거예요. 세월호가 최악의 재난사고로 남으려면 우리 머리에 오래 남아 기억되어야 해요. 고리원전이 터지면 세월호 사건을 누가 기억하겠어요?”

친일 반역자들이 현충원에 있는 현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친일파 청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반민특위가 무너졌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처단돼야 마땅한 노덕술과 김창룡 같은 친일 민족반역자들이 활개쳤다. 독립투사들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 김창룡은 이승만에게 훈장까지 받았다. 한 교수는 당시 바로잡지 못한 역사가 한국사회의 발목을 여전히 붙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창룡의 묘가 김구 선생의 모친 곽낙원 여사의 묘와 현충원 안에 함께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여러분, 안 의사가 누구죠? 안중근 일까요? 아니면 안두희 일까요? 당연히 안중근이 의사로 생각하겠지만 당시 안두희가 ‘의사’로 통하기도 했어요. 놀라운 건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거죠.” 

김근태를 고문한 이근안은 아직도 자기 자신을 애국자라 말한다. 있지도 않은 간첩을 많이 만들어 낸 공안검사 김기춘은 현 정권의 실세다. 또한 80년대 최악의 고문사건인 학림사건 재판관 황우여는 현 정부 교육부장관이다. 한 교수는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때문에 한국에서는 지탄받아야 할 인물들이 계속해서 기득권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친일∙공안 시대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공안세력이 옷을 군복에서 정장으로 갈아입은 것밖에 변화한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한 교수는 “대한민국 선장이 다 이승만 대통령, 이준석 선장처럼 제일 먼저 도망쳤다면 대한민국호는 벌써 가라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희망은 남아있다는 의미다. 한 교수는 선원이 맨 마지막이라며 끝까지 남아 단원고 아이들을 구한 박지영 승무원부터 자신의 첫 제자들을 침몰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최혜정 교사까지 사고 당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엿보았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 구명조끼가 부족하자 자기 것을 양보한 아이가 있어요. 대한민국의 어떤 세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요만큼이라도 양보한 적이 어디 있어요? 다섯 살 아이를 먼저 구하려는 단원고 학생들, 학생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선생님들. 이게 우리나라의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역사는 두 번 되풀이 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웃음거리로.’ 한 교수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며 역사의 희망과 비극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가 쭉 발전했다면 ‘레미제라블’도 없었을 거라며 우리의 역사를 너무 비관적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고 했다. 

   
▲ 한 교수는 강의 말미에 경산 코발트 광산에 싹튼 잎을 보여주며 '희망'을 말했다. ⓒ 박진우

강의를 마치면서 한 교수는 경산 코발트광산의 민간인 학살 유골에 싹튼 잎 사진을 보여줬다. 한국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온 게 유골에 잎이 싹 튼 것과 비슷하게 믿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0:0이나 50:50에서 출발하지 않았고 100:0에서 출발한 싸움이다. 지난한 역사 속에서 4.19혁명, 5.18광주민주화투쟁, 6월항쟁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 한 발짝씩 진보해왔다. 한 교수는 역사는 기록을 넘어 만들고 살아가는 것이라며 현 젊은 세대에게 책임감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49:51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보기 드문 시대에 역사를 기록할 책임있는 언론인이 될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 장구한 대한민국 역사에 긴 챕터를 닫고 새로운 역사를 여는 지금이 우리의 몸으로 마침표를 찍고 새 역사를 써야 할 때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홍세화 정준희 정혜윤 이성규 한홍구 이창식 이주헌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계희수 박진우 기자 ngfri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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