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연수 참가기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정부는 오로지 증산을 목표로 농부들에게 비료와 농약을 많이 사용할 것을 적극 권장했다. 이런 관행(慣行)농법의 폐해에서 벗어나고자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유기농‧친환경 농업의 방법을 찾아왔다. 답은 간단하게도 관행농법을 시행하기 전, 상생을 고민했던 선조들의 지혜에 있었다. 대산농촌재단(이사장 오교철)이 지원하는 농업전문언론인양성 장학생 4명(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이 농업리더 장학생 7명과 함께, 우리 농업을 살리려 애쓰는 농업 혁신의 현장을 지난 3일부터 2박3일간 둘러보고, 추가 취재한 뒤 동계 연수 참가기를 썼다. (편집자)

지역의 미래를 여는 지역순환형 친환경농업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농가에 불어 닥친 한파는 매서웠다. 유기농·친환경은 그렇게 흐트러진 현실에 맞는 새로운 농업구조를 찾기 위한 농민들의 움직임에서 본격화했다. 첫날 연수단은 충남 아산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을 찾았다. 농촌에 봄기운을 불어넣고자 농민들이 주도적으로 길러낸 조직이다. 지역순환형 친환경농업 모델의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최종복(53) 상무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이어서 더 큰 순환을 이루고자 가공과 유통을 전담할 축으로 푸른들영농조합을 만들었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 푸른들영농조합 최종복 상무가 아산 지역순환형 농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우리가 찾은 지속가능한 농촌의 미래는 다름 아닌 과거 조상들의 지혜에 있었습니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해오던 방식에서 진짜 유기농을 발견했던 것이죠. 그 시절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집집이 소가 있어 배설물을 퇴비로 이용할 수 있었고, 볏짚이나 쌀겨, 콩비지 같은 부산물은 다시 소가 먹었어요. 새롭게 유입되는 자원은 없지만 동시에 버릴 것도 없었답니다. 자연스레 자원의 순환이 이루어졌지요. 우리는 그러한 크고 작은 선순환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아산시 친환경 지역농업의 중추적 생산조직인 한살림 아산시 생산자연합회가 창립된 것은 1996년이다. 2000년 1월 21일 지역농업 선포와 함께 생산자연합회의 유통∙가공 조직으로서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이 설립됐다. 15년이 지난 지금, 조합원 350명에 연매출 약 300억원에 이르는 조직으로 우뚝 성장했다. 자회사로 유기농 사료를 공급하는 푸른들축산과 육가공을 담당하는 늘푸른식품을 두고 있고 두유와 두부를 생산하는 가공공장을 직영한다.

이 영농조합의 성공은 생산, 가공·유통 그리고 소비 조직이 이어지는 순환 구조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 그 덕분에 계획생산이 가능해졌고, 마침내 농민들은 친환경농산물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농가는 볏짚을, 식가공 공장은 콩깍지와 콩비지를 그리고 미곡종합처리장은 쌀겨 같은 부산물을 사료공장에 제공한다. 사료공장은 이런 부산물과 ‘바이오 미네랄 워터’를 이용해서 친환경 발효사료를 생산하고 지역 유기축산농가에 제공한다. 해당 유기축산농가의 소들은 친환경 사료를 먹고 자라며 배설물은 다시 농가에 유기질 퇴비로 제공된다. 농가와 가공공장의 생산품 대부분은 한살림과 친환경급식을 통해 지역 내에서 소비된다.

▲ '청춘, 상생·상상·다양성'을 주제로 한 대산농촌재단 동계 연수에서 장학생과 재단 직원들이 푸른들영농조합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아산제터먹이 이호열(59) 대표는 유기농은 개인이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자가 지켜야 할 가치는 ‘상생’이고 그래야 지속가능한 미래도 있다”며 “조합원과 실무자 사이의 강한 결속력, 소비자와의 연대를 강조했다. 푸른들영농조합은 사업 수익금의 일부를 꾸준히 적립해 후계인력양성을 위한 장학사업, 농가소득지원사업, 은퇴농민 요양사업 준비 등으로 환원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미곡종합처리장에 왕겨연소로(爐)를 도입해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로열티 주는 농업에서 받는 농업으로 바뀐 딸기 재배

“국산 딸기 품종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일본 품종인 ‘아키히메’를 재배하면서 매년 27억 원씩 일본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했을 겁니다. 지금은 국산 딸기 종자인 ‘설향’이 자리 잡아 시장의 75%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니 국민딸기가 된 셈이죠.”

▲ 김태일 논산딸기시험장 장장이 설익은 딸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함규원

다음날 연수단은 국산 딸기 종자 개발의 일등공신인 충남농업기술원 논산딸기시험장 김태일(56) 장장을 만나기 위해 충남 논산을 찾았다. 김 장장은 품종 개발에 착수한 지 7년 만인 2002년 ‘매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만향’, ‘설향’, ‘금향’ 등 4종을 개발했다. 내수용인 설향은 국내 딸기농사 점유율 75% 이상을 차지해 국민딸기로 자리 잡았다. 설향은 질병에 강해 친환경 재배가 가능하고 수량도 일본 품종에 견주어 35%가량 많다. 수출용으로 개발된 매향은 일본 종자보다 당도가 높고 수량이 많으며 쉽게 무르지 않는다.

국내 딸기 시장은 2005년 설향이 개발되기 전까지 일본산인 아키히메가 90% 이상을 차지했다. 흔히 아는 ‘다라이 딸기’가 아키히메다. 당도는 높지만 쉽게 물러 유통과정에서 딸기가 훼손될 수 있다. ‘다라이 딸기’는 손상을 막기 위해 바구니에 담아 바로 팔아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02년 우리나라는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에 가입하면서 종자 로열티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에 매년 로열티 30억원을 내야 하게 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딸기 수입제한까지 걸었다. 우리 농민들은 일본산을 재배해 로열티를 내면서도 수출까지 막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국내 딸기 농업은 2005년 충남도 농업기술원 논산딸기험장에서 ‘설향’을 개발하면서 로열티와 수출 문제 등을 덜게 됐다.

“중국 FTA시장 개방으로 걱정이 많습니다. 중국 딸기 값이 우리 것 1/10 수준입니다. 중국 백화점에 가보니 한쪽 코너에 일본산 딸기가 한국 내에서 파는 딸기 값과 같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사 먹을까요? 아기 엄마들이 가장 먼저 찾습니다. 중국 농산물을 믿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일본산을 찾는 것이지요. 거꾸로 고급화 전략을 이용해 홍보하면 우리 딸기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 수출용으로 개발한 '매향' 품종은 일본 종자보다 당도가 높고 쉽게 무르지 않는 장점이 있다. ⓒ 논산딸기시험장

농촌진흥청이 발간한 ‘2013 생산성논집’에 따르면 딸기 종자 개발로 현재까지 5000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었고 향후 10년간 6조4천억원의 효과가 생길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과 비교해 딸기 생산액은 85% 증가했으며 농가소득은 75% 증가했다. 논산딸기시험장에서 개발한 딸기 종자들은 러시아‧중국 등과 종묘 수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또한, 국외 품종보호출원으로 등록돼 로열티를 받고 있다. 10년간의 노력 끝에 딸기는 로열티를 주는 품종에서 받는 품종으로 바뀐 것이다.

시민이 지원하는 농촌생활, 꾸러미

오후에는 꾸러미 사업을 하는 청양군 대치면 상갑리 마을을 방문했다. 인가가 드문 길을 2km 남짓 달리면 칠갑산 지천의 발원지인 상갑리 마을에 다다른다. 나눔영농조합 박영숙(59) 대표는 1996년부터 이곳 상갑리 마을에 정착해 귀농 20년 차에 접어들었다. 2010년부터 ‘시골 맛 보따리’라는 이름으로 꾸러미 사업을 시작해, 현재 8가구가 박 대표와 함께 생산자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꾸러미 사업을 지켜가는 데는 시민들의 지원이 바탕이 되었다.

“꾸러미란 농업 정책이나 운동 쪽으로 보자면 시민지원농업이라 불러요. 소비자들은 저희가 생산하는 생산물을 믿고 회비를 보내 농촌을 지켜달라고 합니다. 저희는 신선하고 바르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회원들에게 바로 전달하는 회원제 직거래죠. 서로 도와주는 거예요.”

박영숙 대표의 농장은 8동의 하우스에서 매년 약 40여 종의 작물을 수확한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한 하우스만 건사하고 있는데, 작물은 상추, 잎브로콜리, 치커리, 근대, 완두콩까지 다양하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고수하는 이유는 시골 맛 보따리 회원들에게 철마다 다양한 작물들을 보내주기 위해서다.

이러한 작물들은 1991년에 폐교된 상갑분교에서 포장작업을 해서 도시 소비자 회원들에게 보내진다. 봄과 가을에는 종이 상자, 여름과 겨울에는 스티로폼 상자에 제철 농산물, 제철 과일과 가공식품까지 8~10가지 품목과 소식지를 넣은 꾸러미를 보낸다. 평촌 요구르트나 청양 구기자 한과, 직접 만든 약식 등 바로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을 꼭 섞어 보내는 것은 아이들을 키워본 엄마로서 감수성을 발휘한 결과이다. 그는 이러한 꾸러미 사업이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시스템이 아니라, 소비자와 생산자들의 신뢰와 유대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 나눔협동조합 박영숙 대표가 청양군 상갑리 자택 앞에서 시민지원농업을 설명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지금 회원은 100여 명 정도인데, 꾸러미를 보내려 송장을 붙이면 한 사람 한 사람 어떤 분인지 생각이 나요. 회원들과 이런 관계를 맺은 게 뿌듯하죠. 꾸러미는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가 접할 수 있는 강력한 기회입니다. 생협을 통해 친환경농업이 확대될 기반이 마련되었지만, 옛날처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게 사실이거든요. 꾸러미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밀접하게 교류하고 마음을 전달하는 새로운 농사와 유통의 방법입니다.”

박 대표의 꿈은 ‘돌아오는 농촌’이 아닌 ‘떠나지 않는 농촌’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 지속가능한 농촌은 “국민들이 우리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우리 스스로 소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농촌을 사랑하고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농사 기반 없는 귀농인을 위한 교육농장

충남 홍성 장곡면 도산2구에는 지역과 함께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젊은협업농장’이 있다. 약 4600㎡(1400평) 규모 비닐하우스에 셀러리, 양배추, 트레비소, 오크린 상추, 레드 치커리 등 쌈채소 20여 종을 기른다. 농약과 화학비료 대신 퇴비와 유기농 자재를 사용한 건강한 먹거리를 연중 생산한다. 조대성(39) 대표는 가족 농사 기반이 없는 젊은 귀농자들이 시골생활에 적응하고 농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을 한다. 현재 젊은이 9명이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 젊은협업농장 조대성 대표는 지역과 협력해 새로운 농촌문화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 대산농촌재단

“20대, 30대 이런 젊은 친구들은 부모님이 농사를 안 짓고 돈도 없으면 농사를 시작하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농사하고 싶어서 풀무학교전공부에 입학해 교육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농업기반을 형성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게 협업농장입니다.”

풀무학교전공부 교사이던 정민철(48)씨의 제안으로 제자 조 대표와 유성환(28)씨와 의기투합해 ‘세 남자의 쌈채소’라는 이름으로 2012년 협동농장을 시작했다. 도산2구 임응철(66) 이장에게 약 660㎡ 하우스 한 동을 빌린 소박한 첫걸음이었다. 2013년 5월에 ‘젊은협업농장’을 협동조합 형태로 창립해 현재 30여 명 조합원과 함께한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조합원들이 함께 운영하며, 1년 이상 일한 사람이면 누구나 동등하게 수익금을 나눠 받는다.

문화는 마을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우리가 보통 농촌에 사람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근데 장곡에도 3500명이 살아요. 그리고 각종 기관, 단체가 30개 넘어요. 이장, 부녀회장, 의용소방대, 자율방범대 등등. 단체장 회의하면 사오십 명씩 오거든요. 젊은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것만큼이나 기존의 마을 분들과 연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조 대표는 귀농인 간 협업도 중요하지만, 마을에 원래 있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연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기농의 메카’이자 ‘귀농 1번지’로 유명한 홍성이지만 전체 인구에서 귀농인의 비중은 10% 정도다. “지역을 존중하고 지역과 교류하며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본격농사대담, 농촌이 답이다, 치명적 농촌방송, '조대성의 farm므파탈' ⓒ 젊은협업농장

조 대표가 농사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이유도 면이나 마을 단위에서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본격농사대담, 농촌이 답이다, 치명적 농촌방송’이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한 ‘조대성의 farm므파탈’은 세 차례 시험방송을 거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방송에 들어간다. 스튜디오 대신 마을회관, 이장님 논 앞, 비닐하우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동네에서 떠도는 이런저런 ‘썰’을 검증하고, 농사기법을 고민하는 등 농부가 만드는, 농부를 위한 방송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품게 하는 원천은 문화다. “무언가 자랑스러운 게 있으면 지역을 떠나지 않을 것”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골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문화 욕구가 지역 내에서 충족돼야 마을 공동체도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에서 잉여로 취급되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재능기부를 하거나 자기 직업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조 대표가 합창단을 꾸린 것, 독립영화를 만들었던 한 귀농인은 마을 할머니를 위한 단편영화를 제작한 것이 그 사례다. 동네 가수를 길러내는 농촌전문 예능 기획사 설립 등 아직 실현하지 못한 아이디어도 많다.

“10년, 20년 뒤면 농촌 인구 대부분은 귀농자로 대체될 겁니다. 공동체주의적 문화를 이어가되 새로 유입된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게 절실하죠. 저는 홍성 장곡면에서 지역과 협력해서 새로운 농촌 문화를 만들어 가는 하나의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이런 얘기들이 이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낙관하는 사람이에요.”

▲ 젊은협업농장 쌈채소 하우스에서 조대성 대표와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상생을 위한 재밌는 상상

도시의 ‘잉여인간’은 농촌의 ‘인재’가 됐고, 구닥다리 방식으로 취급받던 전통농법은 유기농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 살기 위한 농촌의 고민은 재밌는 상상력으로 발현되고 있다. 상생을 위한 고민은 과거 선조들의 품앗이, 두레 등 농촌에서 시작해 고령화, 인구 공동화, 다문화 등 다시 농촌으로 돌아왔다. 연수단은 농촌과 함께, 농촌에서 어우러져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을 만났다. ‘사람이 떠나지 않는 농촌’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서 작으나마 소중한 희망을 느낀 이유는 결국 농촌 문제가 지금의 한국 사회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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