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이성규 <블로터> 미디어랩장
주제 ① 디지털과 저널리즘의 만남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 강사로 초빙된 이성규 기자는 다양한 경력을 가졌다. 기자 생활을 하다 인터넷 언론사를 창업했고 포털사이트 <다음>의 뉴스 기획자로도 일했다. 지금은 블로그 기반 IT뉴스 <블로터>의 미디어랩장으로 있다. ‘디지털’ 세계에 경험이 풍부한 그가 요즘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모바일 시대의 해답은 과거에 있다

“저를 만나면 선배들이 한번씩 물어봅니다. ‘모바일, 모바일’ 하는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냐,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 매번 물어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옛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신문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 이성규 <블로터> 미디어랩장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이문예

이 랩장은 기술은 보통 독점화한 권력이 있을 때 탄생한다며 출판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구텐베르크가 1450년 자신이 만든 금속활자 인쇄기로 성경을 출판하기 이전에는 종교권력자들이 성경을 독점하고 있었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싼 양피지 위에 일일이 필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쇄술 개발 이후 성경은 빠르게 대중에 보급됐다. 라틴어로만 쓰여있던 성경은 각국 언어로 번역됐다.

기술 발달로 저렴한 인쇄기가 보급되자 출판업자가 등장했다. 이들은 폐쇄적인 길드를 형성했고 권력자에게 출판권을 사서 독점했다. 그러나 저자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이 낮아 ‘목장주인이 소를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저자를 대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출판업자의 전횡에 대항해 나온 개념이 저작권이었다. 영국 앤 여왕이 1710년 출판 독점할 권한을 21년으로 제한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저작권이 확립됐다.

지는 오프라인, 뜨는 온라인

과거를 되짚어보면 독점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기술을 낳고 기술이 다시 독점을 낳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현재 상황은 어떨까? 이 랩장은 신문, 방송 등 구미디어가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던 체제가 무너지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유통권력’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예전에 신문시장에 진입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윤전기 가격이 비쌉니다. 리스를 한다 해도 종이값이나 유통망 구축 등에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블로그 기반 뉴스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 세 명만 모아서 관청에 등록하면 됩니다.”

개인이 글을 쓰고 유통할 수 있는 블로깅이나 뉴스메일 같은 디지털 저작틀은 이미 1970년대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엘런 케이 등에 의해 제안됐고 인터넷 초기부터 구비됐다. 게다가 유튜브처럼 영상이나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틀도 개발되면서 미디어 시장의 진입장벽이 사라지고 누구나 뉴스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른바 정보의 과잉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은 신문과 달리 활자에 국한돼 있지 않다. 글자∙그림∙영상이 합쳐져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다. 또 미디어의 생산과 유통이 하나로 합쳐 있다. 기존 신문은 보급소나 가판대 같은 별도 유통망을 가져야 했지만 디지털 미디어에서는 언론사가 온라인에서 독자들에게 직접 뉴스를 제공한다.

▲ 독자들이 전통적 미디어를 벗어나 다양한 경로로 뉴스를 접하면서 새로운 미디어 유통체계가 구축되고 있다. ⓒ 이성규

독자들이 뉴스를 접하는 경로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성규 랩장이 청중에게 ‘신문사 웹을 설치하신 분이 있냐’는 질문에 손을 든 이는 몇 사람뿐이었다. 대부분이 포털사이트나 SNS를 통해 뉴스를 보기 때문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30세 이하 세대는 뉴스를 TV가 아닌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 온라인에서 ‘유통권력’은 사라지고 구글 같은 새로운 독점기업이 생기고 있다. 구글은 모바일 업체(모토롤라)나 온라인 광고업체 등을 인수하면서 온라인상에서 미디어 유통을 독점하고 있다. 구글 같은 포털 사이트는 사용자의 연령이나 취향을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매스 타깃팅(Mass Targeting) 기술을 사용해 기존 미디어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많은 네트워크가 물려 있는 연결점(node)에 더 많은 사용자가 몰린다는 멱함수 법칙에 의해 독점이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오랜 역사를 가진 신문사은 몰락하고 있다. 2013년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을 때 지불한 가격은 2억5천만 달러였다. 같은 해 야후가 글이나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인 텀블러를 인수한 가격인 11억 달러의 4분의 1도 안 된다. 오프라인 매체가 얼마나 저평가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미디어도 여러 생존전략을 세우고 있다. 많은 뉴스페이지에 짧은 유튜브 영상을 같이 넣으며 매체간 경계 허물기에 나서고 있다. 장문의 심층보도기사를 유료로 제공하는 방법도 있고 이와 반대로 잘 읽히는 말랑말랑한 기사를 많이 제공해 광고 수입을 늘리는 시도도 있다.

속보 전쟁의 승자, 로봇 기자

미국 시간으로 지난해 11월6일 오전 1시31분, <LA타임스> 홈페이지에는 지도 이미지 한 컷과 함께 ‘지진: 레이크뷰(미국 오리건주 레이크카운티에 있는 도시)에 규모 3.8 지진 발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첫 번째 기사가 실린 지 3시간만인 오전 4시 30분에는 또 다시 ‘지진: 레이크뷰에 규모 3.6 지진 발생’이라는 제목을 단 동일한 형식의 기사가 올라왔다. 두 번째 기사는 지진이 일어난 지 단 15분 만에 작성된 기사였다. 이 두 기사를 쓴 기자는 ‘퀘이크봇(Quakebot)’이다. 

▲ 11월 6일 <LA타임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진 보도 기사. 퀘이크봇은 진도 3.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기사를 완성하는 로봇이다. ⓒ <LA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퀘이크봇은 <LA타임스>에서 지진 기사를 담당하는 로봇을 말한다. 요즘 이렇게 로봇을 활용해 기사를 작성하는 ‘로봇저널리즘’(Robot journalism)을 적용하는 언론사가 늘고 있다. ‘로봇저널리즘’은 물리적 로봇이 기사를 쓴다는 의미가 아니라, 알고리즘, 곧 일련의 절차들을 거친 뒤 뉴스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기사를 쓰는 ‘알고리즘 저널리즘’(algorithm journalism)을 말한다. 기자가 직접 기사를 쓰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기본 정보들을 분석해 기사를 작성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LA타임스>는 지난해 3월 LA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을 가장 빠르게 속보로 내보내 주목을 받았다. 이때도 퀘이크봇이 기사를 작성했는데, 사람이 한 일이라고는 퀘이크봇이 작성한 기사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출판(publishing)’ 버튼을 누른 것이 다였다. 지진이 발생했다는 정보를 전달받아 기사화하기까지 단 8분이 소요됐다. <LA타임스> 외에도 영국의 국제통신사 <로이터>(Reuters),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 등도 로봇저널리즘을 활용한 기사를 출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로봇저널리즘을 활용하는 언론사가 한 군데도 없다.

지난 6월 미 컬럼비아 저널리즘스쿨 토우센터의 닉 디아카풀로스 연구원은 특허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던 로봇저널리즘의 핵심 알고리즘을 분석해 그 작동과정을 공개했다. 닉은 로봇이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을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눴다.

가장 먼저 로봇은 기사의 바탕이 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두 번째 단계로 데이터에서 뉴스거리가 될 만한 ‘가치’있는 부분들을 추출한다. 이때 가치는 인간이 미리 설정해 둔 기준에 따른다. 기사는 로봇이 작성하지만 기본적인 틀은 인간이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어떤 각도로 기사를 작성할지 관점을 확정짓는다. 관점에 따라 선택되는 단어들도 달라진다. 긍정적 내용의 기사에는 긍정적 단어를, 부정적 내용의 기사에는 부정적 단어를 사용하도록 미리 분류해두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한다.

그런 다음 확정된 시각에 맞게 주제와 관련된 세부 데이터들을 연결해 기사의 질을 높이고 마지막에 자연어로 기사를 제작해 자연스럽게 문장을 다듬는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하나의 완전한 기사가 생산되는 것이다. 로봇은 주로 스포츠∙주식∙지진처럼 정형화한 데이터가 많이 축적된 분야의 기사를 담당한다.

▲ <포브스>의 <뉴욕타임스> 기업실적 예상 관련 기사. <포브스> 홈페이지에서 '내러티브 사이언스'라는 바이라인을 단 기사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로봇이 작성한 기사라는 표시다. ⓒ <포브스> 홈페이지 갈무리

디지털 시대 기자의 생존전략

“생각보다 기자와 로봇이 쓴 기사에 차이가 별로 없어요. 오히려 로봇이 데이터들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기사를 작성하기 때문에 기자가 쓴 것보다 더 논리적이고 신뢰할 수 있죠. 언론의 성격에 더 잘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어요.”

로봇저널리즘이 확산되면 로봇이 기자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이성규 랩장은 두 논문을 제시했다.

하나는 2014년 3월 스웨덴 클러월 교수가 대학생 46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논문으로, 기사작성자를 밝히지 않는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을 이용해 사람과 로봇이 작성한 기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로봇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작성한 기사에 대해 ‘지루하다’고 평가한 반면 사람이 작성한 기사에 대해서는 ‘읽는 재미가 있다’고 평가한 부분이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로봇이 인간의 재미를 충족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밖의 평가에서는 두 기사를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보가 풍부하다’, ‘신뢰할 수 있다’, ‘객관적이다’ 같이 기사가 갖춰야 할 기본항목에서 로봇이 작성한 기사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 클러월 교수의 실험은 '로봇이 쓴 기사는 질적인 면에서 인간이 쓴 기사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깬다. ⓒ 이성규

다른 하나는 네덜란드 틸버그 대학의 힐레 반 데 카 교수와 에미엘 크라머 교수가 공동 저술한 논문으로, 로봇이 작성한 4건의 기사를 2건은 로봇이, 2건은 기자가 작성한 것처럼 조작한 뒤 뉴스 소비자와 기자 집단에게 각각 평가를 맡겨 신뢰도와 전문성에 대한 인식 정도를 알아보고자 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기자 집단은 두 기사의 전문성에 있어서는 비슷하게 평가했지만 신뢰도에 있어서는 기자가 썼다고 인식한 기사를 더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뉴스 소비자들은 두 기사에 별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논문을 집필한 두 교수는 “로봇이 작성한 뉴스에 대해 뉴스 소비자의 인식에 큰 차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로봇저널리즘의 적용 범위는 날로 확장되고 있다. 지금은 정형 데이터(숫자 데이터처럼 구조가 일정한 규격이나 형태를 가진 데이터)를 이용한 가공만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비정형 데이터에 대한 가공도 현실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로봇저널리즘의 확장은 기자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뉴스 소비자가 로봇과 기자가 작성한 기사 간에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상 이런 현상은 날로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으로 기사를 생산하는 알고리즘을 상업화한 ‘내러티브 사이언스(Narrative Science)’의 최고기술책임자(CTO) 크리스 해먼드는 “5년 내에 로봇이 쓴 기사가 퓰리처상을 탈 것이며 15년 뒤에는 전체기사의 90% 이상을 로봇이 작성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로봇저널리즘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로봇은 현장기사를 작성하지 못하고 뉴스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또 데이터화하지 못한 것은 뉴스화하지 못한다. 지진처럼 즉각적으로 데이터가 주어지는 것은 기사화가 가능하지만 분석이나 예측 기사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과연 로봇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자들은 이제 로봇과 생존경쟁을 하며 차별화한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더 고심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하게 됐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홍세화 정준희 정혜윤 이성규 한홍구 이창식 이주헌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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