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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왜 우리를 추억 속으로 데려갈까

기사승인 2015.01.29  0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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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교양특강] 정혜윤 CBS PD
주제 ② 책, 그리고 라디오 II

“재즈는 즉흥이 돼서 굉장히 좋아해요. 그리고 음... 정말 좋아하는 거는, 왜 좋아하는지 잘 설명할 수 없는 거 같아요.”

강연은 대개 강사가 준비해온 주제 강의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고, 강연 말미에 몇 개 질문과 답변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혜윤 CBS 라디오 PD는 주제 강의를 30분도 안 돼 끝내버리더니 나머지 시간을 질의응답으로 이끌었다. 말 그대로 ‘즉흥 강연’인 셈이다. 

‘즉흥 강연’을 하는 이유

처음에는 ‘명색이 특강인데 PD라는 사람이 준비도 안 해온 건가’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지난 5월에 쓴 책 <마술라디오>의 프롤로그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이유를 짐작해볼 수는 있을 듯하다. 

   
▲ 2014년 5월에 출간한 정혜윤 PD의 마술라디오. 책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반인들이 들려주는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기록돼 있다. ⓒ 교보문고

“정 피디님, 프롤로그가 본문보다 길면 어떡해요?”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실험 정신이죠. 일종의 형식파괴예요.” (마술라디오, 9쪽)

그가 쓴 책 역시 보통 출판사의 책 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마술라디오>의 프롤로그는 본문의 한 장(章)보다 더 길다. 질의응답 위주의 강연은 자신의 책에서 말한 ‘실험정신’이 책 밖의 강연으로 나온 것이기도 했다. 정 PD는 책에 적힌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사람이다.

죽기살기로 책 읽기를 결심하다

“책은 제게 나침반이에요. 왜냐면, 저는 책에서 배운 대로 살고 싶거든요. 책을 안 읽었으면 모를까. 읽었는데, 그렇게 살면 안 되지.”

그는 요즘 <한겨레>에 독서칼럼 ‘새벽 세시의 책 읽기’를 연재한다. 독자들은 ‘진짜 새벽 세시에 책을 읽으시나요’라며 묻는다고 한다. 그가 설명한 새벽 세시는 조금 특별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그를 책 읽기로 인도한 사람이었다. 38살에 은퇴한 뒤 책으로 가득 찬 탑 안에 은거한 철학자를 동경했던 것이다. 정 PD는 이런 이유로 책 읽는 시간을 몽테뉴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단다. 은퇴한 몽테뉴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만 하는 시간, 그 시간이 새벽 세시란다. 

정 PD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닌 생존이었다. PD가 된 뒤 ‘내가 아는 게 너무 없구나’라고 자책하며 자신감이 없어서 책 읽기에 몰두했다. 운전 중 책을 읽으려다 아찔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배움을 얻는다. 가령 필립 로스의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에서 전통과 현실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는 식이다. 이 소설은 1960년대 미국에서 전통과 사회의 구속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유태인 이야기다.

독서는 이처럼 보고 싶은 모습, 살고자 하는 모습들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면 색다른 재미가 있단다. 그들은 책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 속에서 톨스토이를 만나고, 헤르만 헤세와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기자를 꿈꿨던 라디오PD 정혜윤

정 PD는 ‘언론고시생’ 시절에 기자를 꿈꿨다. 과거로 돌아가 기자와 PD 중 어떤 선택을 하겠냐는 질문에 조금 망설이는 듯했다. 좀처럼 낭만적인 상상은 하지 않는다는 그가 조심스레 답했다.

“저는 당연히 신문사로 갔죠.”

PD일을 계속 하다 보니, 라디오가 어느 순간 공허하고 덧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전파를 통해 청취자에게 가서 닿지만, 찰나의 교감 뒤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반면 신문사에서 기자로 산다는 건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기자를 꿈꾸던 그때 무엇을 남기려고 했는지 지금도 모르지만 그런 지금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기사로 흔적을 남기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게 하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관점이라고 치면 하나는 밀란 쿤데라의 관점인 거예요. 사실 저는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자신이 너무 모르기 때문에 잘 알려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정혜윤 PD. 그에게 책은 항상 그 '길'을 알려주는 방향키이다. ⓒ 김봉기

그는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가령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고기+빵+포도주+물’이다. 카잔차키스는 인간을 ‘물질이 하나 둘 모이고 영혼이 깃들어 만들어지는 존재’로 바라본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은 그 물질의 조합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한국+커피+김치찌개+단풍’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무덤 속 인간의 몸을 이어 붙였지만 인간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인간의 여러 부분을 모아 만들었다. 우리 인간은 부모와 조상들의 유전자를 이어 붙인 존재다. 프랑켄슈타인이 독립된 인간일 수 없듯 나는 오롯이 ‘나’일 수 없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부모의 병환과 시대상황 등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 PD는 이를 ‘모든 인간은 실존의 덫에 걸려 있다’는 밀란 쿤데라의 관점으로 소개했다.

정 PD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되어 라디오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에 놀라움과 감동을 겪는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실존에서 빠져 나오려 애쓰는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라디오가 살아남는 법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써도 그의 본업은 라디오PD다. 당연히 라디오를 빼놓고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당일자 종이신문 보기‘라 말했다. 모바일이나 온라인으로 신문을 보지 않고, 지면으로 보는 이유는 딱 하나, “편집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PD는 라디오나 TV를 구성하는데, 다양한 이야기를 어떻게 놓고 어떤 맥락을 잡는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게 PD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드는지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PD는 다 똑같은 PD예요. ‘어떤’ 방송을 하느냐가 중요하죠. 어느 매체, 어떤 방송국 소속이 ‘나’를 만들지 않아요. 내가 PD라는 게 ‘나’를 만들어요. PD로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지가 중요해요.”

라디오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시사’와 ‘음악’ 프로그램이다. ‘시사’는 언제 어디서나 중요하다. 하지만 라디오가 수많은 매체들 속에서 아직 살아남은 이유는 어쩌면, ‘음악’ 덕분일지 모른다. 정 PD는 “그만큼 음악이 현대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매우 커졌기 때문”이라 말한다.

“언제 한번 10년 전쯤에 거짓말을 심하게 한 적이 있어요. 내 인생 최대 거짓말인데, 제가 술집에서 술에 취해서, 모든 ‘소설’을 동원해서 일생일대의 거짓말을 한 거예요. 고등학교 때 남자에게 버림받고, 북극으로 모험을 가기로 결심한 것까지... 거짓말을 하던 그때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가 흘러 나왔어요.”

   
▲ 루이 암스트롱의 다양한 즉흥연주 기법은 재즈 음악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재즈의 화려한 즉흥연주는 암스트롱의 등장이후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flickr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들었던 과거의 특정 시기를 회상하기도 한다. 음악은 사람들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전원 버튼’인 셈이다. 음악이 추억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얼까? 정 PD는 “한 곡의 음악을 감상하려면, 그 만큼의 시간, 즉 리얼타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분 짜리 노래를 들으려면 3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짧은 영상조차 클릭-클릭으로 건너뛰며 보는 시대다. 그런데 그렇게 건너뛰는 순간, 경험은 전혀 쌓이지 않는다. 달리 말해 영상을 포함한 대부분 콘텐츠가 ‘나’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현상이 사회 전반에 나타나면 ‘경험을 상실한 시대’가 된다. 모든 것을 빨리 해결하려는 ‘시대’에서 유일하게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음악인 셈이다. 음악은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라디오가, 음악이 흐르는 라디오가 아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홍세화 정준희 정혜윤 이성규 한홍구 이창식 이주헌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김선기 김봉기 기자 goodgire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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