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충남 천수만 하구연안생태복원사업 타당성 조사

“원래 여기에 물풀도 자라고 돌에 이끼도 끼고 그래야 하는데, 둑이 생기고 다 사라졌어요. 물고기나 산호초 하나 살 수 없게 됐죠.” 

충남 서산시 창리에서 20년 이상 어업을 했다는 배영금(48)씨는 지난해 11월 19일 길게 뻗은 방조제 앞에서 바닷가를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대에 이 부근 천수만 일대에 대형 방조제가 설치된 후 풍성하던 어족자원이 사라져 ‘물고기 씨가 말랐다’고 할 정도라는 것이다. 

▲ 배영금씨는 "방조제가 해수흐름을 막아 천수만의 어족자원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 조수진

279개 방조제로 막힌 서해안 물길 다시 트기 

충청남도는 민선 6기 도정이 시작된 2014년부터 이렇게 본래의 생태를 잃은 서해안 일대를 대상으로 ‘연안과 하구둑 주변 생태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인위적인 간척으로 막아놓은 제방 일부를 터서 물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어서 ‘역간척’이라고도 부른다.  

충남도청의 강현직 지속가능발전담당주무관은 “수질악화로 담수호의 기능을 상실해 농업용수로도 활용되지 못하는 곳을 우선사업 검토지역으로 선정하고 생태복원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홍보(홍성보령)지구, 서산지구 두 곳 중 하나를 시범사업지구로 선정해 단계적 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권오면 지속가능발전담당주무관은 “오는 2~3월중 연구용역입찰을 통해 타당성평가, 환경영향평가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충남에는 크고 작은 방조제가 279개나 있다. 충남에서 서해안으로 흘러가는 하구의 91%가 방조제로 막혀있는 것이다. 원래 수심이 얕고 갯벌이 넓게 펼쳐진 지대였는데 하천을 막아 간척지로 만들었다. 그 중 간척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 서산 에이비(AB) 지구다. 이곳에 만든 육지와 담수호의 총 면적은 1만132헥타아르(ha)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가 넘는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은 땅을 얻은 대신 어업을 잃었다. 방조제가 설치되기 직전인 1986년 천수만 일대 어획량은 연간 1만2150톤(t)이었지만 3년 후엔 4750t으로 약 6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오염으로 해양생태계가 파괴된 탓이었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서산 AB지구가 들어선 천수만은 원래 수초가 많고 조류가 약해 도미·민어·조기·꽃게·대하 등의 산란지가 되면서 풍부한 수산물을 자랑하던 지역이었다. 과거에는 바닷가였지만 지금은 육지가 된 서산시 봉락리에서 수십 년 동안 식품잡화점을 운영해온 박관희(70)씨는 “서산에 산란지가 많았는데 간척하고 나서 다 없어졌다”며 “어업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고 말했다. 인근 남당항에서 요즘도 대하축제가 열리지만 축제에 쓰이는 새우 물량은 거의 다른 지역에서 실어온다고 한다.  

간척으로 농지가 늘었지만 기대했던 벼 수확량은 예상보다 저조했다. 박종길(50·서산시 봉창리)씨는 “(간척사업) 이전에 굴양식을 했던 어머니가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는데 아직까지 (땅에서) 소금기가 안 빠져 벼가 여물지 않는다”며 “한가마니 넣어 한말 걷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확량이 적다”고 말했다. 농지가 생긴다는 말에 간척사업에 동의했던 주민들이 막상 수십년씩 해오던 고기잡이를 버리고 농사에 익숙해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갯벌을 간척하면 소금기를 빼는 탈염과정만 10년 이상이 걸리고 탈염이 되더라도 정상적인 농산물을 생산하기까지는 십수년이 더 걸린다. 그래서 박씨 가족처럼 20년 이상 농사를 짓고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한숨 쉬는 주민이 적지 않다고 한다.  

농업용수로 쓰는 호수의 오염도 심각하다. 박씨는 “(농업)용수로 쓰라고 담수호를 만들었는데 지금 그 물은 오염이 심해서 공업용수로도 못 쓴다”고 말했다. 간척 후 만들어진 인공호수에는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부영양화(미생물번식)가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주변의 논과 축사에서 화학비료, 가축분뇨 등이 그대로 흘러들어가 호수의 오염을 심화시켰다.

▲ 녹조가 짙게 끼여있는 간월호의 모습. 간척사업이후 오염이 심해져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다. ⓒ 김선기

주민들 필요성 공감하지만 보상문제 등으로 이견도 

이 같은 간척사업의 폐해에 대해 주민들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충남도가 추진 중인 역간척사업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토지보상 등 주민들 생계와 직결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박관희씨는 “(간척사업 당시) 보상차원으로 땅을 분할해서 주민들에게 다 나눠줬는데, 어느 땅이 됐든 그걸 다시 뒤엎는다고 하면 땅주인이 가만히 있겠나”라고 말했다. 박종길씨도 “예전에 어업하다 농사짓는 주민 대부분이 지금 고령이라 다시 어업을 하라고 하면 그분들에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충남 홍성군청의 조기현 홍보담당계장은 “지역별로 주민들의 의견이 나뉘기 때문에 보상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모든 주민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해안 근처에서 양식업을 하는 주민들은 방조제를 허물 경우 그간 쌓인 오염퇴적물이 바다로 밀려들어 피해를 입을까봐 역간척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 다수가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지역이 사업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역간척사업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라고 말한다. 민간기관인 한국연안환경생태연구소 유재원 소장은 “그냥 물길 하나 터주는 것도 역간척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며 “너무 큰 규모로 시작하는 것보다 작은 수로를 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긍정적 효과를 얻은 후 서서히 규모를 키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추진하면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의외로 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소장은 간척지에서 얻는 농작물 수확보다 갯벌에서 얻는 수익이 더 크다는 장점 외에 역간척의 경제사회적 이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지금 정부에서 이산화탄소 포집과 저장기술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데 갯벌이 그런 기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갯벌에선 탄소를 축적한 죽은 식물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입니다. 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이런 기능은 산소가 적은 갯벌이나 습지환경에서만 나타납니다.”

지구온난화가 환경과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 정부 역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는데, 갯벌을 잘 활용하면 탄소배출감축에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 소장은 “조금만 더 연구를 해보면 우리를 둘러싼 자연 속에는 지구 온도를 낮출 수 있는 ‘값비싼’ 설비투자를 대신할 장치가 무궁무진하게 숨어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갯벌 되살리면 연간 수조원의 경제적 가치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2013년 해양생태계 기본조사’에 따르면 국내 갯벌의 단위면적(1㎢)당 연간 가치는 약 63억원이다. 충남의 갯벌 면적인 약 3만5500ha에 적용하면 연간 총 경제적 가치는 2조2천억원을 넘는다. 여기에는 갯벌에서 나는 수산물 채집 등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물론 철새와 어류 등 생물의 서식지 제공, 오염된 하천을 걸러주는 수질정화, 태풍·홍수와 같은 재해를 예방하는 기능 등이 포함된다.

충남에 앞서 국내에서 갯벌을 되살린 예로는 경기도 안산·시흥·화성시에 걸쳐있는 시화호를 들 수 있다. 1994년에 방조제를 건설한 후 ‘죽음의 호수’로 변했던 시화호는 2000년 이후 바다를 가로막은 물길을 다시 트는 공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사라졌던 갯벌이 다시 생겨났고 수질을 포함한 생태계도 상당히 복원됐다. 

▲ 시화호에 위치한 조력발전소 전경. ⓒ 한국 수자원 공사 제공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선진국들은 자연보존에 대한 높은 국민의식과 정부의 지속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갯벌을 ‘있는 그대로’ 지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76년 갯벌의 중요성을 국가차원에서 선언하고, 북해연안의 모든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정부와 지자체, 주민들이 자연 상태의 갯벌을 유지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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