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정준희 중앙대 교수
주제 ① 창의성: 천재적 개인 vs 집단의 혁신

“꾸불꾸불한 미로에 놓인 쥐는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대부분 쥐는 막다른 골목 앞에서 헤매지만 결국은 출구를 찾아냅니다. 학습능력이 있기 때문이죠. 반면 천재적인 쥐는 미로를 뚫고 지나가 버립니다. 출구를 만드는 것이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창의성’을 주제로 강의를 시작한 정준희 중앙대 교수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사회에 창의성 관련 이야기는 굉장히 많지만 실제로 창의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그는 말한다.

▲  '창의성'에 대한 논의는 '천재에게만 한정된 특질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 정준희

창의성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사람들이 창의성을 이야기할 때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 교수는 지적한다. 사람들이 세 가지 전제를 바탕에 깔고 창의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창의성이 천재적 개인으로부터 발현된다’는 인식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한 ‘한 명의 천재가 수만 명의 범재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이런 생각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천재적 개인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천재적 개인이 사회적 배경과 구성원들의 조력을 무시한 채 구원자처럼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 건 문제가 있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소위 ‘애플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애플이 천지창조를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애플은 기존에 있는 것을 조합해 새로운 질서를 만든 것뿐입니다. 애플의 창의성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이미 개발되어있는 것을 시장에서 작동 가능하게 만든 거죠.”

▲ 우리가 말하는 새로운 상품 등은 치밀한 노력과 조직화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사진제공: www.imcreator.com)

애플에서 새로 출시한 ‘아이워치’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그것은 천재적인 개인 ‘애플’만의 성공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과거에 수없이 시도됐지만 헛발질로 끝나버렸던 조직적 노력이 오늘날 애플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창의성은 오랜 기간 집단적 누적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새로운 상품 등은 치밀한 노력과 조직화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특히 자본을 투입해 창의성을 조직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개인 수준의 천재성이 집단 수준의 천재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두 번째는 우연한 기회에 창의성이 ‘펑’하고 튀어나온다는 인식이다. 일종의 일탈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창의성은 시대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다. 맥락이 없는 것은 새롭지만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어떤 기준으로 ‘새로움’을 평가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새로움’에 대한 기준이 시대마다 달랐다.

“피카소 그림 아시죠? 당시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창의성을 느꼈을까요? 그들은 창의성 대신 충격과 공포를 느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오늘날 피카소는 입체파로서 강렬한 화풍을 지녔다고 말하죠. 사회가 피카소 그림을 창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죠. 최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방(짤림방지)’ 그림이 창의적이라고 인정받기도 하는데, 이 또한 우리가 짤방을 보고 공감하는 맥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마지막은 ‘창의성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온다’는 인식이다. 이는 천재는 구속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창의성은 일정한 제약이 없으면 발현되지 못한다고 정 교수는 말한다. 천재 조각가에게 만들고 싶은 조각상을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완성된 조각품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조각가는 계속해서 부족함을 느끼고 완성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의 많은 예술작품들이 마감이라는 제약이 있었기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제약이라는 요소가 반드시 창의성과 모순된 특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몽사몽 할 때 글이 잘 써진다

그렇다면 창의적 사고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정 교수는 이에 앞서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를 언급했다. 수렴적 사고는 문제에 집중적으로 달라붙어 공식에 따라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고방식이다. 보통 시험을 잘 보고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아이들이 대체로 수렴적 사고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확산적 사고는 무작위적이고, 무의식에서 해결방법을 찾는 사고 양식이다. 확산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문제를 풀면서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나의 구멍을 파지 않고 여러 개 구멍을 동시에 파기도 한다. 브레인스토밍처럼 의제 없이 잡담을 하다가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수렴적 사고를 중시했던 근대 ‘이성주의’ 관점에서는 이 같은 확산적 사고를 광기에 가깝거나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로 바라보았다. 이 때문에 확산적 사고를 가진 이들은 ‘정신 없는 애’로 평가받아왔다.

▲ 창의성은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의 경계에서 발현된다고 한다. ⓒ 정준희

정 교수는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의 경계에서 창의성이 발현된다고 말한다.

“논문 같은 글을 쓰다 보면 잠결에 쓰는 경우가 있어요. 때로는 꿈에서 글을 쓰기도 하죠. 이때 막혔던 부분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 듭니다. 굉장히 잘 써지는 거예요. 예술가들이 대마를 피우는 이유가 의식의 경계에서 작업이 잘 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가수들은 음표가 눈에 보이고 음악의 결이 읽히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고 하죠.”

관건은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사고의 중간, 확산적이거나 수렴적 사고의 중간 경계면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이다. 정 교수는 최근 창의적 사고를 논하는 접근법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창의성을 찾는 방식이다. 혼돈/질서, 불확실/확실, 비합리성/합리성, 개인/집단 등 모순적인 요소를 배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이질적인 것의 경계에서 창의적인 것을 창조해낸다.

이처럼 유사한 것을 연상(association)하는 과정보다 더 발전된 개념으로 서로 다른 것 연결하는 방식을 두고 과학사학자 쾨슬러는 ‘이연현상(bisociation)’이라 상정했다. 남들은 불협화음이라고 보는 것에 새로운 창의성의 근거가 있다고 본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선 ‘창조경제’ 불가능”

“창의성을 ‘상이한 사고양식의 복잡한 결합’이라고 한다면 이제 그 작업이 이뤄지는 시스템 혹은 공간까지 확장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의성을 경영의 일부로 끌어들이거나 ‘창조경제’처럼 정책화하는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죠.”

정 교수는 창의성을 산업에 적용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피카소가 어떻게 창의적 인물이 됐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피카소는 스페인이란 공간에서 창의적일 수 있었는지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정보기술(IT)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왜 창의적 인력이 나오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특정한 시간대·지역·문화적 배경 등과 같은 시스템이 집합적 창의성을 길러내는 힘이 됐다고 분석했다. 서양에서는 대학도시와 연결한 클러스터(산업집적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창의성을 만드는 환경이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단순히 분당 정자동, 판교 같은 곳에 클러스터를 꾸린다 해도 주변 산업 환경이나 인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며 “네트워크를 통해 창의성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해 10월 대기업이 각 지역 창업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창조경제 혁신센터가 대전에서 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벤처 성공신화가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정 교수는 이어 “박근혜 정권 내에는 창조경제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가 완성되려면 적어도 10~15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정권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는 데 문제가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창의성이 오랜 기간 집단적 누적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즉 뭔가를 ‘뚝딱’ 만들려 하기보다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고,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2~3년 뒤 어디서 돈을 벌어올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20년 뒤를 바라보고 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영국은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을 오랜 기간 지속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오늘날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은 창작물을 낳은 것입니다.”

미래세대 창의성 위해 노동조건∙제도 개선해야

우리에게도 창의적인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준희 교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한국사회가 가장 창의적이었다고 봤다. 미국 음악을 벗어 던지고 대중음악이 싹트기 시작했고, 한국 특유의 정서를 가진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지금 한류 열풍은 그것들의 변주라고 그는 말했다. 그 당시 우리사회 전반에 나타난 창의성은 독재에 저항하는 자유에 대한 열망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억눌렸던 시대적 감성이 맞물려 폭발하면서 나타났다.

▲ 정 교수는 새로운 세대의 창의성을 위해 '창의 노동자'에 대한 시선은 물론 노동조건과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배상철

그렇다면 앞으로 새로운 세대가 다른 종류의 창의성을 만들어 내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정 교수는 기업이 창조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노동하는 ‘창의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경영자들은 성공한 창의 노동자에게만 큰 보상을 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들의 노동에 걸맞은 보상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천재적 개인에게만 의존하는 것으로 창의성이 나오는 환경이나 조직, 관계 등을 무시한 것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 기업은 창의적 노동자의 개인적인 열정·자부심·몰입 등을 살리면서 이것이 조직적 공간과 적절히 만나 더 큰 창의성을 이루도록 적절한 보상으로 외적 동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조직의 조건과 제도와 분위기 등을 개선하는 데도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배우 김수현을 예로 들면서 미래 세대의 창의성도 기대하며 강의를 마쳤다.

“김수현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찍고 나서 유명해지니 중국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자신이 한국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빚어진 현상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죠. 대부분 한류 스타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문화적 맥락이 중요한 이유죠. 여러분도 지금 네트워크 속에서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라요. 여러분 세대가 만드는 다른 종류의 창의성을 기대하겠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홍세화 정준희 정혜윤 이성규 한홍구 이창식 이주헌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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