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주제 ① 생각의 좌표

“글쎄요, 이런 대화가 다른 나라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자동차하고 자동차가 부딪쳐 접촉사고를 일으켰는데 나이를 묻는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당신 몇 살이야?’ 상대방에게 나이를 묻는 이것이 바로 논리로 안 되면 인신을 공격하는 모습이죠.”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이 생각을 주제로 강연하고있다. ⓒ 박병일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장면이다. 로마 정치가 키케로(Cicero)가 반어법으로 쓴 ‘논리로 안 되면 인신을 공격하라’는 말을 한국인들이 실천이라도 하는 걸까? 자기 생각과 다르면 왜 다른지 논리를 펴는 게 아니라 인신공격을 하는 모습은 교통사고 현장뿐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흔히 보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과 격월간 잡지 <말과 활> 발행인인 홍세화 씨는 그 이유를 철학자들의 생각과 경험담을 섞어 재미있게 풀어갔다.

‘회의한다’가 ‘고집한다’로 돼버린 사회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명제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끊임없는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홍 이사장은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는 실상 ‘나는 회의한다’ 또는 ‘나는 의문을 품는다’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생각 자체에는 성질이 있다, 고집이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했습니다. 생각의 성질이 고집이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을 다 고집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부모님도, 저도 다 고집합니다. 생각 자체가 갖고 있는 성질이 그와 같은데 한국에서는 내가 갖게 될 생각 자체에 대해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조차 묻지 않으니까 회의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나는 회의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가 ‘나는 고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가 돼버립니다.”

한국인은 생각의 문을 열지 않는다. 각자가 ‘회의하고 있다’면 그 문을 열고 있다는 뜻이지만, ‘고집하고 있다’면 문을 닫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 ‘설득 불가능성’이다.

“친구나 부모 관계 속에서 생각이 다른 분을 설득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거의 불가능합니다. 해도 안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니까 설득을 거의 다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 현실입니다. 사회 운동에서도 설득을 해도 안 되니까 각자 생각의 문을 닫고 스스로 학습도 잘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가정에서 어떻게 성장하는가?

생각은 삶의 방향을 규정하는 소중한 건데도 한국인은 왜 사회화 과정에서 생각을 묻지 않게 됐을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은 내가 선택한 것일까? 홍 이사장은 한국에서 사회화 과정을 겪은 우리는 선택한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규정하는 내 생각 대부분이 사회의 산물일 뿐이라고 본다. 내 것이 거기에 얼마만큼 있는지, 질문 자체가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꽤 진보적인 프랑스 아동학자가 쓴 육아법 책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아이가 말하기 시작하는 13개월부터 36개월까지 얘기한 것을 다 녹음했어요. 그걸 다 통계를 냈는데 제일 많이 말한 단어는 당연히 ‘엄마’죠. 그런데 둘째로 많이 말한 단어는 ‘아빠’가 아니라 ‘왜’였습니다. 엄마라고 부르고 물어보는 것이죠.”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자. 아이는 막 생각을 시작했고 세상이 온통 궁금하다.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니 두려운 것도 많다. 밤이 오는 것도 두렵다. 깜깜해지니까. 그래서 엄마에게 질문을 던진다. “엄마 밤은 왜 올까? 안 오면 좋겠는데.” 아이는 비가 오거나 날이 춥거나 그러면 또 묻는다. “왜 비가 올까? 왜 날이 이렇게 추울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마는 이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다.

유럽에서 ‘왜’가 두 번째로 나왔다는 것은 유럽의 엄마와 아빠가 아이가 던지는 ‘왜’라는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을 해주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답을 들은 아이가 또 다른 ‘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는 사회가 아니다. 홍 이사장은 ‘빨리빨리’ 문화, 가부장적 문화, 아이를 소유물로 바라보는 관점이 결합해서 나타난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왜’라는 질문에 대답해줬다가는 또 다른 ‘왜’가 나오고 결국 ‘이것을 어떻게 견딜 것이냐’ 해서 모두 약속이나 하듯 우리 문화로 자리 잡힌 것이다.

“그래서 ‘크면 다 알아, 나도 몰라, 몰라도 돼’ 이런 식으로 답변을 하죠. ‘크면 다 알아’ 이게 참 생각 없이 사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아이의 자리에서 보면 엄마는 이미 다 컸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낳았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크면 다 알아’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알고 있는데 대답은 안 해준다는 의미가 됩니다. ‘나도 몰라’ 그랬는데 아이가 또 질문하면 바빠 죽겠는데 쓸데없는 질문한다고 ‘시끄러’ 하면서 야단을 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대부분 생각한다는 이유로 혼나는 존재였죠. 가장 가까운 엄마와 아빠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외려 야단맞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왜’라는 질문은 스스로 접는다. 부모로부터 거부당한 ‘왜’라는 질문을 학교나 군대에서 받아줄까? ‘왜’라는 질문이 죽은 사회는 논리 추구가 죽은 사회이고 합리성 추구가 죽은 사회다. 토론 문화가 바로 설 수 없다.

한국 청소년은 인문사회과학을 어떻게 만나는가?

현재 한국 청소년이 공부하는 학문은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두 가지다. 인문사회과학은 물음의 학문, 정답을 갖고 있지 않은 학문이라고 홍 이사장은 말한다. 사유를 요구하고 사유에 대한 논리 그리고 총체적인 인식능력과 감수성을 요구하는 학문이다.

“인간과 사회에 관한 물음 중 하나인 사형제도에 정답이 있습니까? 대체복무제는 해야 합니까, 하면 안 됩니까? 국민조세부담률은 몇 %가 정답인가요? 인간과 사회에 관한 다양한 물음들은 다 사회구성원 각자의 처지와 그 사람의 이상에 따라 사유가 있고 논리가 있습니다. 정답을 갖고 있지 않죠. 학생들에게 사유하도록 하고 논리와 인식능력, 감수성을 갖추고 평가하려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입시 위주 우리 교육에서 이뤄지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암기다. 그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공부시간은 어느 나라에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지만 사회문화적 소양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 딸들이 프랑스에서 겪은 글쓰기 수업과 우리 사회를 비교했다.

“아이가 중3 때 ‘사형제도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글쓰기를 했어요. 그런데 7~8년 전쯤에 당시 KBS 공채 상식문제에 사형제도에 대해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다음 나라 중에서 사형제도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나라는 어느 나라입니까’ 하고 보기를 주는 거예요.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을 묻는 게 아니라 사형제도에 얽혀있는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 묻는 게 현실입니다.”

그가 볼 때 인문사회과학은 책 많이 읽고, 경험 많은 학생에게 유리한 학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것마저도 암기 잘하는 학생에게 유리하다.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 보는 눈을 얼마나 떴는지가 평가기준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글쓰기로 사유와 논리를 물어야 하는 학문을 마치 정답이 있는 것으로 암기하는 건 인문사회 학문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치명적으로 암기는 1차원적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어로 통섭이라 하죠? 암기는 통섭이 되지 않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려요. 거기에 비해 사유세계는 통섭이 되는 거죠. 프랑스 아이들은 초중고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회시간, 역사시간에 자기 사유세계를 끊임없이 구축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통섭되면서 철학시간에 그런 문제와 씨름할 수 있습니다.”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하지만 학교에서 잘 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나로부터 주어진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라면 암기는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내용을 입력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사회가 왜 비주체적이면서 보수성을 강력하게 갖게 되는지 말해주는 배경이라고 홍 이사장은 지적했다.

개인은 계급적 처지, 남자·여자, 성소수자 등 다양하다. 각자 자리에서 인문사회과학에 대해 제기되는 질문을 사유하는 과정이 글쓰기라면 암기는 각자의 정체성을 완전히 소거해 버린다. 내가 없는 인문사회과학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계급성과 정체성 그리고 내가 완전히 소거된 이 현실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그는 과거 일본강점기 시절 정착한 근대식 학교의 역사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주입식 암기교육’은 식민지 시대 교육방식

▲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의 모습. ⓒ 대구시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교에서 모두 똑같은 내용을 배우고 외운다. 사고능력, 창조성이 결여된 학생들을 걱정하면서도 획일화한 학생을 키워내는 제도교육은 변하지 않는다. 인문사회과학 과목마저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맞는 정체성, 사유세계를 포기하게 만드는 교육은 누구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는데 금년이 갑오개혁 120주년입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관립소학교가 세워졌고 6년 뒤 1900년에 관립중학교가 세워졌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합방으로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 다음 1948년 민주공화국을 세웠지만 사실상 일제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고 분단과 전쟁 상황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 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군국주의 시절, 식민지국 사람이 주체적인 생각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요? 식민지 백성에게 자기 생각을 갖도록 한다? 어림없는 얘기죠.”

그는 두 번째 이유로 ‘대학서열화’ 문제를 지적했다. 학생들은 시험에서 받은 등급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결정된다. 자신이 받은 성적에 따라 줄 세워진 학교의 등급에 맞춰 지원하게 된다. 대학서열화는 인문사회과학처럼 점수를 매길 수 없는 과목들마저 등급을 나누도록 한다. 애당초 서열을 매길 수 없는 역사를 보는 눈, 사회를 보는 안목 등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정답이 없는 학문에 정답을 요구하는 꼴이다. 그는 “‘주입식 암기교육’이란 말은 엽기적인 말이며, 이것을 엽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더 엽기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 하는 나라

마르크스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그 지배계급의 이념’이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우리는 정체성·계급성을 잊은 채 학교교육에 몰두하고 있으며, 학교교육은 지배세력의 주관적 관점이 객관적 내용인 것처럼 포장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회 ‘계급배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주입식 암기교육은 인문사회과학을 ‘내’가 없는 학문으로 만들었다. 가정과 학교, 어디에서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실종돼 버렸고 ‘경제적 처지에 맞는 사유’ 또한 길을 잃었다.

“철학의 고전명제에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서 그에 맞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노동자는 노동자의 의식을, 농민은 농민의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계급에 맞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가진 사람은 계급에 맞는 의식이 있지만 노동자와 농민은 지배계급이 입력한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지배세력의 논리가 입력된 것인데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이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의식을 갖고 있을까? 민주공화국을 뜻하는 ‘Republic’의 어원은 ‘공적인 일’을 뜻하는 ‘Respublica’에서 유래됐다. 로마 공화정 시절부터 쓰인 말이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수도교’를 볼 수 있는데 로마 공화정을 상징하는 유물로 남아있다. 당시 로마 공화정은 각 가정에 물을 공급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삼았기 때문이다.

수도교의 물길은 세 군데로 나뉜다. 공중수도, 공중목욕탕, 귀족용이다. 가끔 가뭄이 들어 물의 양을 조절해야 할 때가 오면 로마 공화정은 귀족용 물길부터 끊었다. 당시 로마인이 공유한 공공성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같은 민주공화국인 우리 사회는 어떤 공공성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공공성의 가치 자체가 죽어있는 사회죠. 여기에 신자유주의까지 덮쳤습니다. (복지제도가 잘 정비된) 다른 나라 같으면 국가가 공익을 위해 복지, 의료, 교육의 공공성을 관장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시장성만 강조합니다. 공공성도 자리 잡지 않은 곳에 시장성만 받아들였으니 이중의 질곡에 빠진 겁니다. 신자유주의 구호 아시죠?”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 이것이 바로 한국 지배세력의 관점과 같다고 그는 비판했다. KTX 매각, 의료사유화 등 낮은 수준의 공공성마저 사유화하려는 것은 우리사회 20:80 법칙을 견고하게 만들어 80의 사람들은 더욱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든다. 그럼 80의 사람들이 지배세력의 부당한 결정에 정치적 반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의 힘을 발휘해 20:80에서 30:70의 사회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아이 한 명을 키워 대학까지 보내는 데 2억7천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진보정당에서 무상교육을 얘기하면 귀가 번쩍 뜨이는 정도가 아니라 벌떡 일어나 달려가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사람들 빨갱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흥미로운 통계가 있습니다. (한국리서치의 선거 후 조사에 따르면) 2012년 4월 총선 이후 소득을 100만 원씩 끊어 지지정당을 조사했는데 100만원 이하, 100~200만원 구간은 새누리당, 200~500구간은 새누리당이 차지하지 못했고 500만원 이상 고소득층 구간은 당연히 새누리당이 우세했습니다”

왜 저소득 구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해주지 않는 새누리당을 지지했을까? 상위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철저한 정치적 이해에 따라 투표한다. 그러나 80의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경우,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경우, 정치혐오로 이어진 경우 등으로 다양하게 나눠진다. 정치에 관심이 있어도 지역문제나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로 분열하게 된다. <더블린의 사람들>이란 책을 보면 지금은 80의 위치에 있지만 나중에 20에 포함되고 싶은 욕망으로 나중에 부자가 될 거라 예상하며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의식과 욕망으로 20과 80이 병존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해결방안은 주체성을 찾는 것에서부터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이 홍세화 이사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 박병일

사람이 자기 의식세계를 주체적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형성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독서, 열린 토론, 여행, 성찰, 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홍 이사장은 말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 중 책을 남긴 사람의 생각을 주체적으로 참고하는 행위가 독서입니다. 모든 책은 그냥 서재에 가만히 꽂혀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책을 펼쳐서 읽는 주체지요. 나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방법 4가지 경로의 키워드는 '나'입니다. 내가 책을 읽고 내가 동시대 사람들과 토론하며,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여행과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성찰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주체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몸이 있는 곳인 '몸자리'에서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획일화한 교육환경 속에서, 자본에 휘둘리는 노동권 앞에서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내 몸이 있는 가정, 학교, 일자리에서 지배세력의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내 처지에 맞는 생각을 하라고 홍 이사장은 조언했다.

그의 고민은 ‘한국의 경우 왜 이렇게 설득하기 어려운지, 왜 자기 처지를 배반하는 의식과 반응을 보이는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어떻게 자신의 사유세계를 형성한 것일까?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사회에서 자라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지금 각자 몸자리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미래 아이들은 주체성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이념에 순응하는 아이로 자랄지 모른다.

“우리가 책을 읽지 않고, 내 ‘몸자리’에서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한다면 지배세력이 친 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학기 <저널리즘특강>은 홍세화 정준희 정혜윤 이성규 한홍구 이창식 이주헌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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