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니] 드라마 '나쁜 녀석들' 리뷰

‘나쁜 놈’을 잡기 위한 ‘나쁜 짓’은 허용될까? 된다면 어디까지일까? 당신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위협을 느낀 당신은 도둑을 폭행했다. 도둑은 식물인간이 됐다. 당신의 행위는 정당했을까. 답하기 어렵다. 사법부는 이 질문에 ‘정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지난 3월 8일 오전 3시쯤 강원도 원주시에 사는 최모(21)씨는 자신의 집을 뒤지던 도둑 김모(55)씨를 발견하고 폭행했다. 김씨는 식물인간이 됐다. 법원은 최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어섰다며 그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정당방위는 방어 목적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4.10.31.) 

복수의 필요성

복수는 원한관계를 풀어내는 행위다. 무협소설에서는 목숨을 앗음으로, 현대 영화나 드라마는 상대를 나락으로 떨어뜨림으로써 복수한다. 현대사회에서 복수는 사법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복수를 ‘죄를 지으면 응당 치러야 할 대가’라고 넓게 규정하면, 복수는 형벌이자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사회적 도구가 된다. 사법제도를 통한 ‘사회적 복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으면, 세상은 불만으로 가득 차고 사람들은 ‘사적 복수’를 꿈꾼다. 

▲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주인공들은 사회를 대신해 흉악범들에게 '공적 복수'를 실행한다. ⓒ OCN <나쁜 녀석들> 공식 누리집

케이블 채널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은 사회적 복수의 필요성을 말하는 드라마다. 감옥에 있던 조직 폭력배 박웅철(마동석 분), 연쇄 살인범 이정문(박해진 분), 청부살인업자 정태수(조동혁 분)는 감형을 조건으로 특별수사대가 돼 범죄자를 잡는다. 이들은 범죄로 피해를 당한 피해자와 사회를 대신해 악당들에게 복수한다. <나쁜 녀석들>은 보통의 범죄드라마와 달리 선악 구도가 뚜렷하지 않다. 나쁜 사람과 더 나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세상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누가 더 나쁘냐’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쁜 행위를 처벌하는 ‘복수’가 제대로 이뤄지느냐다. <나쁜 녀석들>을 보는 시청자들은 흉악범을 잡는 ‘나쁜 녀석들’을 응원한다. 이들이 흉악범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공권력에 의한 ‘공적 복수’가 충분하지 않아서다. 이들은 경찰이 놓친 범죄자를 반드시 잡고야 만다. <나쁜 녀석들>은 ‘죄를 지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 대가를 치르는 행위인 복수는 어떤 형태로든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복수의 한계

<나쁜 녀석들>에서 복수는 불법적으로 이뤄진다. 애초에 수감자를 풀어주고 범죄자를 잡게 하는 것은 불법을 넘어 초법적 파행이다. 이들의 행동은 통제되지도 않는다. 1화 ‘미친개들’에서 이정문은 자신의 옛 여자 친구를 찾아가 목을 조르고, 2화 ‘무법자’에서 정태수는 경찰을 폭행하고 도망친다. 현실에서 드라마와 같이 수감자를 풀어주는 건 아무리 흉악범을 잡기 위해서라도 불가능하다. 이들이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위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야기해선 안된다.

▲ 또 다른 복수를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 '공적 복수'에는 한계가 필요하다. ⓒ OCN 화면 갈무리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50년경 만들어졌다. 이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同害) 복수법으로 유명하다. 정희진 여성학자는 한 칼럼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이 ‘복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한겨레> 14.10.11) <나쁜 녀석들>에도 복수의 한계는 존재한다. 3화에서 특별수사대를 관리하는 오구탁(김상중 역) 반장은 납치・장기매매범을 총으로 죽이려다 피해자가 살아있는 걸 알고 죽이지 않는다. 박웅철, 이정문, 정태수도 검거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 범죄자를 때리긴 해도 절대 죽이진 않는다. 

정의로운 복수

현대 사회는 성폭행범을 성폭행하지 않고, 살인범을 죽이지 않는다. 사법제도가 정한 복수의 한계는 동일한 육체적 보복이 아닌 형량과 물적 배상이다. 사법제도가 정한 기준과 집행에 대해선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이 ‘정의롭다’고 느껴야 사적 복수를 막을 수 있다. 복수가 도덕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칸트는 도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며 도덕적 행동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처지보다 내 이익과 처지를 앞세우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저) 칸트에 따르면 인간을 ‘복수의 수단’으로 삼거나 다수의 행복을 위해 살인자를 죽이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

▲ '공적 복수'가 정의롭기 위해선, 자신의 이익이 아닌 '순전히 의무감에서' 타인을 돕는 도덕적 행동이어야 한다. ⓒ OCN 화면 갈무리

법은 정의실현의 완전한 도구가 될 수 없다. 합법이 반드시 정의는 아니다. <나쁜 녀석들>에서 이뤄지는 복수는 비록 불법적인 요소가 있긴 해도 정의에 가깝다. 5화 ‘살인의 이유’에서 정태수는 범죄자를 잡은 대가인 감형을 이정문에게 양보하고, 박웅철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범죄자를 잡는 데 몰두한다. 이들의 복수는 칸트가 말한 자신의 이익이 아닌 ‘순전히 의무감에서’ 타인을 돕는 도덕적 행동이다. 

복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회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복수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사법부는 2009년 여덟 살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에게 징역 12년 형을, 올해 여덟 살 난 의붓딸을 구타해 숨지게 한 계모 임모(36)씨에게 10년 형을 선고했다. 죄에 비해 처벌이 너그럽다. 정치, 경제적 사안에 대한 복수도 마찬가지다.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탄압 및 비자금 은닉사건으로 중형을 받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수감된 지 약 2년 만에 사면 복권됐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가 삼남매는 불법적으로 헐값 인수한 삼성SDS 주식상장을 통해 4조가 넘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었다. 공적 복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자는 사적 복수를 꿈꾼다.

1화에서 남구현(강신일 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형사였던 사위가 연쇄 살인범에게 죽자 오구탁에게 특별수사대 창설을 제안한다. 남구현의 “착한 놈을 패면 폭력이지만, 나쁜 놈을 패면 그게 정의인기라”는 대사는 정의실현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대변한다.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사건은 낯설지 않다. 2화의 연쇄 살인범을 보면 2003년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이 떠오르고, 3화 ‘인간시장’을 보면 2012년 수원에서 일어났던 오원춘 토막살인사건이 생각난다. 오원춘 사건 당시 사람들은 경찰의 부실한 초기대응에 분노를 느꼈다. <나쁜 녀석들> 주인공들이 흉악범을 때려잡는 장면에서 시청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현실의 복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위로받는다.

▲ <나쁜 녀석들>은 정의실현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대변하는 드라마다. ⓒ OCN 화면 갈무리

9화 ‘열대야’에서 오구탁은 “세상이 미쳐서 사람이 미쳐가는 건지, 사람이 미치니까 세상이 미쳐 보이는 건지. 세상은 변하는데 나만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 더욱더 미치겠고”라며 흉악범죄가 늘어가는 현실을 개탄한다. <나쁜 녀석들>은 사회정의와 사람에 대한 역설적 판타지다. 복수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다. 사회적 복수가 제 기능을 다 해야 세상의 광기를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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