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황윤정 기자

▲ 황윤정 기자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존 F 케네디 사망 50주년을 앞두고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했다. 지난 50년간 미국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케네디 평가를 추적한 보도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관련해 사망 5년 뒤인 1968년 교과서는 케네디의 강인함과 자제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1998년에는 핵전쟁 위기를 부추긴 케네디를 영웅 취급한 것이 성급했다고 수정했고, 한 발 더 나아가 2009년 교과서는 미국 코앞에 공산 정부 쿠바를 유지시키고 소련의 장기 군비 확장을 자극한 굴욕적 사건으로 격하했다. 한 때 미국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케네디에 대한 역사 서술이 후대에 갈수록 비판적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엔 알 수 없었던 사건의 장기적 영향까지 기술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다.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인 교학사 교과서는 우리 사회가 일궈 온 역사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모두 무시하고 있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 일제와 해방 전후 외세의 개입, 개발독재를 재해석 한 것이 그 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의 비극적 역사가 ‘비극이 아니었다’는 관점이다. 한국현대사학회는 이를 ‘긍정사관’이라고 하지만, 기존 역사 교과서를 ‘부정사관’에 입각한 것으로 규정, 자학사관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정치적 수사다. 역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자학이 아닌 ‘자성’이다. 교과서에 일제 식민지 시대와 독립운동, 독재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 등의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는 국가의 자주성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교육하는 과정이다. 미래 세대 역사 교육의 지침이 되는 교과서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그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기술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장기적인 파급효과가 드러나면서 명과 암이 뚜렷해진다. 교과서는 뒤늦게 밝혀지는 후대의 평가마저 적극 받아들여 미래 인재들을 교육하고, 정책과 제도의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도구로 사용돼야 한다. 

역사 교과서가 비판적 평가에 자유롭기 위해 도입된 체제가 검인정 체제다. 그런데 현 박근혜 정부는 도입 10년이 경과하면서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검인정 체제를 흔들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꾀하고 있다. 국정으로 바뀔 경우, 과거 국정체제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교과서가 정권 홍보의 수단이 되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자기 입맛에 맞게 내용을 교체할 우려가 크다. 또한 획일적인 역사 교육은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현재의 추세와도 맞지 않으며, 학생들의 비판적 시각도 위축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정부는 역사를 통해 준엄한 평가를 받아야 할 주체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정부는 학계의 논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현재의 검인정 체제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제시하도록 권고하는 방향도 있다. 교과서 채택은 학교의 자율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 교육 자치에 부합한다. 

존 F 케네디는 미국인에게 미국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모험가이자,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도 역사의 평가 앞에서는 결점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 대한 과장된 수사와 포장이 벗겨질수록 후대의 역사인식은 더욱 명확해진다. 교과서는 그 포장을 벗겨내는 작업이 되어야 하며, 비판적일수록 바람직하다. 이번 교과서 검정 논란 과정에서 교과서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역사 교과서가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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