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바람 밝은 달, 그곳에 산다] ⑧ 이오덕 학교 이정우 교장

아이들이 불행한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을 꿈꾸는 곳이 있다. 지난 8월 22일 찾아간 충북 충주시 신니면의 이오덕 학교. 비인가 대안학교인 이곳의 이정우(68) 교장은 경쟁위주의 기존 교육을 성토하면서 둥글게 만 신문지를 탁자에 내리쳤다.

▲ 고 이오덕 선생의 집무실이던 돌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이 이오덕 학교의 이정우 교장, 중간에 앉은 여학생이 최고 학년인 고1 조유나 양이다. ⓒ 유순상

“대한민국이 교육에 관심이라도 있나요? 하루에도 아이들이 몇 명 씩 죽는 줄 아세요? 또 우리학교가 대안학교라고요? 아니죠,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진짜 학교죠.”

이 교장은 고 이오덕(1925~2003) 선생의 3남 중 맏아들이다. 이오덕 선생은 <별들의 합창>(1966)과 <거꾸로 사는 재미>(1983) 등 수십 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펴낸 아동문학가이자 <우리문장 쓰기>(1992) 등을 통해 우리글 바로쓰기 운동에 앞장 선 언어학자다. 2003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 학교가 있는 신니면 무너미 마을에서 지내며 어린이문학을 연구했다. 이교장은 선친의 말년을 보살피다 학교 일을 이어받았다.

“젊은 시절 저는 충북과 경북을 오가며 경운기 도매업과 가구 장사를 해 큰돈을 벌었어요. 그 뒤 여러 사업들을 실패하면서 충주에 내려와 살고 있었죠. 그러다 아버지가 99년도쯤 제가 있는 이곳으로 내려오셨어요. 아버지가 병환이 깊어 제가 업고 다녔는데 마른 장작처럼 가벼웠죠.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학교일을 도왔습니다.”

이 학교는 이오덕 선생이 이끌던 사단법인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시작됐다. 연구회는 1983년 경기도 과천에서 현직 교사 47명이 방과 후에 모여 글쓰기 연구를 하던 모임이다. 이오덕 선생은 학교를 퇴직한 뒤 무너미 마을로 이사와 글쓰기 연수원을 짓고, 이를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를 꾸리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2000년 학교정관을 만들었는데 뜻밖에 암 선고를 받고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교장은 선친의 뜻을 이어 2003년 학생 30명으로 학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원 11명에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은 입학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개교 당시엔 고학년도 받았지만 제도 교육에 물들어 새로운 방식의 교육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초등학교 때 들어온 고1 여학생과 5살짜리 아이 등 9명이 학교를 다닌다.

▲ 이오덕 학교의 도서관이다. 이오덕 선생과 아동문학가 고 권정생(1937-2007)의 소장도서 수천 권이 사면으로 가득차 있다. ⓒ 유순상

“일을 해야 사람다운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오덕 학교는 전 교육과정을 ‘모둠교육’이라 부른다. 모둠은 ‘작은 공동체’로 풀이할 수 있는데, 우리말 쓰기를 중시했던 이오덕 선생이 즐겨 쓰던 말이다. 아이들은 주 5일 공부를 하고 주말이면 서울과 대전 등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입시경쟁위주의 교육방식에 회의를 느낀 부모들이 대안을 찾다 이오덕 학교의 문을 두드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거나 학업에 적응하지 못해 이곳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공동체 생활, 즉 모둠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함께 나아가야 할 목표에 동의를 해야 입학자격을 얻는다.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을 쓰면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 찾기, 일하고 공부하고 노는 것이 하나가 되는 삶을 즐기기, 이름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는 데서 기쁨을 느끼기 등이 그 목표다.

수업은 학년을 나누지 않고 한데 모여서 한다. 학년이 올라가면 따라서 발전이 있다는 환상을 깨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나이 많은 학생이 어린 학생의 선생이 되기도 하고, 어린아이의 기발한 생각이 나이 많은 학생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가르쳐 기른다’는 교육(敎育)의 의미를 넘어 아이들끼리 ‘서로의 앎을 나누는’ 교육(交育)이라는 설명이다.

교사는 5명으로 생활과 나물, 바둑과 중국어, 일·놀이 등을 가르친다. 아이들이 ‘할배’라고 부르는 이 교장은 학교에서 으뜸으로 치는 일·놀이 수업을 맡고 있다. 생전에 이오덕 선생이 “아이들은 일을 통해 삶에 필요한 것을 얻고 자연과 사회의 참모습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친 데 따른 것이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가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새벽 5시 풀베기와 짐승 돌보기로 하루를 시작해 오후 6시면 저녁 설거지와 학교 청소로 일과를 마무리한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이 교장은 아이들에게 풀 깎는 예초기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 쉬는 시간,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까까머리를 하고 있다. ⓒ 유순상

“아이들에게 일과 놀이는 하나예요. 엄마가 빨래를 하면 아이들은 손수건을 물에 담가 빨고 싶어 하죠. 본래 일은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죠. 일·놀이 시간에 아이가 밭에서 일하기 싫어하면 친구들을 위해 노래라도 불러야 해요. 땡볕에서요. 대신 일이 지나치면 안 되니까 아이들이 일에 지쳐있거나 지겨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만 두도록 하죠.”

먹을거리도 함께 장만한다. 각자 이름으로 된 텃밭에서 오이와 토마토, 감자 등을 기른다. 과수원에서 사과와 배를 재배하고 들판에서 젖소와 오리를 키운다. 되도록 옛 방식대로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운다. 밥을 먹기 전에는 꼭 시를 읽거나 노래를 부른다. <오적>을 쓴 김지하 시인의 시 ‘밥이 곧 하늘입니다’를 낭독하거나 생명운동가 장일순(1928~1994) 선생이 만든 ‘밥은 하늘입니다’라는 노래를 부른다.

“여기서는 인스턴트 음식을 못 먹게 합니다. 건강에 나쁠 뿐더러 아이들 자신이 기른 것을 먹어야 풀과 나무를 소중히 할 줄 알거든요. 사람은 자연과 어울려야 착해지고 사람다워지니까요.”

수학과 지리 등 주요 수업도 국정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고 생활의 연장선에서 가르친다.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생활공간이 넓어지는 것처럼 공부도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넓혀나가는 방식이라고 한다. 수학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서둘러 곱셈을 가르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더하기를 반복하도록 내버려 둔다. 정답도 가르쳐주지 않고 수학식을 제대로 했는지 위주로 본다. 지리나 사회시간은 먼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부터 배워나간다. 역사의 흔적이 있는 유적지를 직접 찾아다니고 현장을 느끼도록 한다.

“우리에게 수학은 산 정상까지 몇 걸음에, 몇 분 안에 갈 수 있느냐를 맞추는 겁니다. 삶에 필요한 셈을 가르치는 거죠. 우리는 몸으로 생각할 수 있는 아이를 키웁니다.”

악보 없는 음악 시간, 물감 없는 미술 시간

이 교장은 아이들이 자살하는 이유를 ‘표현 욕구를 억제하는 교육’에서 찾는다. 그래서 이오덕 학교는 아이들의 본성과 감정을 깨우는 데 집중한다. 음악과 그림 그리기를 가르치는 방법도 독특하다. 각 건물마다 악기가 있지만 악보를 두지 않는다. 주입식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악기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미술 시간에도 색칠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사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기교가 아닌 관찰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 

“표현 공부는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음질만 익히면 대중가요도 악보를 안 보고 칠 수 있죠. 작곡가가 되기 위해서라면 악보를 연구해야지요. 그게 아니라면 예술 작품을 듣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초등 4, 5학년부터는 전문교육을 시작한다. 이 교장은 “그때가 아이들의 뇌가 가장 발달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전문교육이라고 해서 따로 전문적인 강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책을 권하는 식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사회과학 책을, 어떤 아이에게는 인문학 책을 권한다. 많은 부분을 스스로 공부하도록 맡긴다. 학교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조유나(17) 양은 지난 1월 중국의 사상가 루쉰(1881~1936)과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1925~1965), 그리고 러시아 문학가 막심 고리키(1868~1936)의 사상을 담은 <19세기 동서양 유럽 개혁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한 학기가 끝날 때면 공부한 것들을 모아 문집을 만든다. 문집 이름은 ‘삶, 문학, 교육’인데 공부한 것을 글로 쓰거나 만화로 그리고 삽화를 채워 넣는다.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정직하게 쓰는 게 핵심이다. 삶이 말이 되고 말이 다시 글이 돼야 생명이 담긴 글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을 넘어서면 생각하는 글을 써요. 그때부터는 제 갈 길이 보이죠. 그러면 저 아이는 사회과학 쪽 책을 줘야겠다. 저 아이는 인문학이 어울리겠다, 생각이 들죠. 한 아이는 우리나라 것을 다른 나라에 알리는 일이 좋겠다 싶어 러시아나 일본 쪽으로 유학 가는 방법을 찾아주고 있어요.”

▲ 학교에 세워진 이오덕 선생의 시 <새와 산>이 적힌 비석이다. 맞은 편에는 권정생 선생의 시비 <밭 한 퇘기>가 마주하고 있다. ⓒ 유순상

아이들은 19살이 되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대학을 가기위해 검정고시를 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살아갈 건지 선택해야 한다. 이오덕 학교 아이들은 그 때문에 매년 4월 일본으로 창업(創業)여행을 떠난다. 가게를 차리는 창업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열어본다는 의미다. 지난해와 올해는 도쿄에 있는 대안학교인 슈레 중고등학교를 다녀왔다. 재학생들과는 또래의 고민을 나눴고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졸업생들에게서는 체험담을 들었다.

“아이들이 20가지 이상의 직업을 체험하면 제 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의무적으로 체험할 필요가 있죠. 우리는 거기다 창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대안학교 아이들과 졸업생을 만나 자기의 미래를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거죠.”

이름 없이, 정직하고 가난하게

2011년 11월 이 교장은 아이들 11명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가 보수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어느 언론사 인터넷 판은 “초등생이 뭘 안다고… 서울 데려가 ‘MB 심판’ 외치게 한 어른들”이라는 제목을 뽑아 학교를 비판했다. 일부 네티즌은 “불법 반정부 혁명 전사를 육성하는 것이 대안학교냐”며 비난했다. 이 교장은 올해도 아이들을 데리고 세월호 집회를 다녀왔다. 대신 최대한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오갔다.

“아이들에게 잘못된 명령에 따르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선생님의 명령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사회가 거짓으로 가는데 모른 척하면 거짓을 가르치는 거죠. 그러면 아이들도 병들게 마련이죠. 만일 학교 선생이 아이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선생이 아이에게 ‘작은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도록 하죠. 당연한 겁니다.”

이 교장은 초창기에 이 학교를 정식으로 등록하려고 했지만 교육당국이 ‘이오덕’을 이름에서 빼라고 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현재 학교는 이정우 교장의 개인 명의로 돼있다. 아이 한 명당 매달 50만원의 학비를 받지만  난방비와 식비 등 살림 꾸리는 비용이 버거운데다 일반학교가 받는 면세 혜택이 없어 경제적 어려움이 없지 않다.

일반 학교에서 흔히 강조하는 최고, 선진, 일류 등의 구호 대신 이오덕 학교는 ‘이름 없이’, ‘정직하고’, ‘가난하게’를 앞세운다. 대학도 다니지 않았고 정식 교사로 일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권한 책을 읽고 성찰하며 교육자의 길을 배웠다는 그는 “올바른 교육을 위해 타락한 선배들과 싸우고 학부모들과 싸우고 자기 자신과 싸워야한다”는 가르침을 늘 되새긴다고 말했다.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서 생태공동체를 꾸리거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맑은 바람 밝은 달,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충청북도에는 유독 사연 많고 소신 있는 예술인과 공동체운동가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다. <단비뉴스>는 이렇게 충북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문화인과 활동가들을 찾아 나섰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인 CJB청주방송 황상호 기자가 글을 쓰고 서양화가 유순상 씨가 사진기와 붓을 들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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