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계희수 기자

▲ 계희수 기자

1970년대 이른바 ‘유신시대’에는 ‘막걸리 반공법'이라는 게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에서 대통령을 욕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얘기였다. 때로는 생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감옥살이를 시키기도 했다고 하니,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끔찍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우리 옛말에 ’없는 데선 나랏님도 욕한다‘고 하는데, 대통령도 잘못한다 싶으면 비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가까운 사람끼리 흉금을 털어놓는 게 술자리인데 말이다.

하지만 욕먹는 당사자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특히 유신으로부터 수십 년 세월이 지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대통령은 ‘잘못하면 국민들에게 욕도 먹는 게 지도자의 자리’라는 개념이 부족한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며 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한 세간의 갖가지 억측과 비난을 겨냥한 듯했다. 대통령의 한 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사이버 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을 위한 유관부처 실무회의'가 열렸고 검찰은 전담수사팀 가동을 발표했다. 인터넷 게시판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글에 대해 선제적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유신시대 서민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권력자를 비판했다면 지금은 인터넷 게시판이 그런 구실을 하는 셈인데, 이제 온라인 기사에 댓글 하나 달면서도 눈치를 심하게 봐야할 형편이다.

▲ 지난달 검찰의 사이버 검열 강화 방침 발표 뒤 독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의 한국 이용자가 급증하는 '사이버 망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JTBC 화면 갈무리

사실 박근혜 정부 들어 우리나라의 정치적 자유 수준이 후퇴했다는 것은 국제적 평가를 통해서도 이미 ‘인증’이 됐다. 민주주의에 대한 권위 있는 평가기관인 미국의 프리덤하우스는 매해 각국의 선거과정과 정치적 다원주의, 표현과 사상의 자유 등을 평가해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 두 부문으로 등급을 매긴다. 군사독재 시절 우리나라는 두 부문 다 최하 7등급에서 하나 위인 6등급이었고, ‘문민정부’로 불린 김영삼 정권 때는 모두 2등급으로 올라갔다. 이후 노무현 정부 들어 정치적 권리는 1등급까지 올랐지만 국가보안법 등의 문제로 시민의 자유는 2등급에 머물렀다. 그런데 프리덤하우스는 올해 우리나라의 정치적 권리 수준을 다시 2등급으로 낮췄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파동 등을 겪으며 한국의 정치적 권리 수준이 후퇴했다는 평가였다.

‘댓글공작’ 등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정보기관, 인터넷 게시판을 실시간 감시하는 수사기관을 둔 국민들에게 또 하나 충격을 준 사건이 모바일메신저인 카카오톡 압수수색이다. 세월호집회 때문에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수사를 받던 노동당 정진우 부대표의 카카오톡을 검경이 압수수색해 그와 연결된 3000여명의 대화를 들여다봤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유괴나 테러처럼 촉각을 다투며 범죄자를 쫓는 일도 아닌데, 개인 사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자료를 검경이 손쉽게 들여다봤다는 사실에 이용자들은 경악했다. 그 결과가 서버를 독일에 두고 있어 ‘털릴 위험’이 없다는 텔레그램 등 외국계 메신저로 수백만 명이 ‘사이버 망명’을 떠나는 사태였다.

▲ 지난달 검찰의 사이버 검열 강화 방침 발표 뒤 '사이버 망명' 현상으로 인해 독일 메신저 텔레그램이 카카오톡을 제치고 모바일 메신저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다. ⓒ YTN 화면 갈무리

우리 헌법은 사생활 침해 금지(제17조), 통신의 비밀 침해 금지(제18조), 표현의 자유 보장(제21조) 등을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평범한 젊은이들이 인터넷에 정치적 의견을 올리거나 메신저로 정부를 비판하는 대화를 나누려다가 ‘혹시 문제가 된다면...’하고 움츠러드는 현실은 헌법이 지키려는 민주사회와 거리가 멀다. 사이버망명을 떠나는 것도 모자라 ‘소맥(소주와 맥주) 반공법이 나오는 것 아니냐’며 술자리 토론도 삼가는 세태는 참 서글프다. 개인의 통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사찰되지 않고, 압수수색 등은 법이 정한 중대범죄에 대해서만 투명한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는 것을 국민이 믿을 수 있게, 정부가 하루빨리 ‘헌법존중’의 자세로 돌아서야 한다. 박 대통령이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 등급을 아버지의 군사독재 시절로 돌려놓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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