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2018 평창 스키경기 위해 수백년 삼림 싹둑

“스키장건설 반대하는 외부 환경단체는 물러가라!(정선군번영회)” 

“도민 몰아내는 강원도는 각성하라!(북평새마을부녀회)” 

골짜기 곳곳에 기암절벽과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 그러나 2018년 평창올림픽 활강스키장 건설 문제로 논란이 벌어지면서 요란한 현수막들이 한적한 산골의 평화를 깨뜨리고 있었다.    

가리왕산 자락 아래 북평면 숙암리의 40여 가구는 스키장 건설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한다. 집이나 땅이 있었던 가구들은 개별보상을 받았지만, 세들어 살던 주민들은 이렇다 할 대책도 없이 내몰리게 됐다. 숙암리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세입자 고춘랑(77)씨는 “한 순간에 살 곳을 잃었지만 보상 받은 돈은 1000만원 뿐”이라며 “이 돈 가지고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지난달 27일 <단비뉴스> 취재팀이 찾은 가리왕산의 공기는 늦가을 날씨보다 훨씬 싸늘했다.  

생태복원 고민 없이 마구잡이 벌목

해발 1561미터(m)인 가리왕산은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산이다. 지난 1992년에는 조선 영조(1724∼1776)때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전국 유일의 ‘산삼봉표’가 발견돼, 이곳에서 나는 산삼의 품질이 좋아 임금 진상품으로 쓰였음을 알려주었다. 환경전문가들은 이 지역에서 좋은 산삼을 구하기 위해 민간 출입이 통제됐고, 이 때문에 500년 이상 자연상태가 잘 보존돼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난 2008년 산림청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지난 2012년 정부가 가리왕산 일대를 평창올림픽 알파인활강경기 부지로 선정하면서 발생했다. 산림청은 2013년 가리왕산의 보호구역 일부를 해제했고, 지난달 17일에는 시공사가 본격적인 벌목작업을 시작했다. 녹색연합, 우이령사람들,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시민단체들이 반발하며 공사 중단을 요구했지만, 강원도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이미 (당국간) 협의가 끝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 환경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벌목된 가리왕산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 이문예

녹색연합은 활강경기장이 들어설 경우 가리왕산 전체면적 183만7291제곱미터(㎡), 약 55만5780평 가운데 약 68만㎡ (20만5700평)의 산림지대가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반 축구장 면적의 95배나 되는 규모다. 원주지방환경청은 ‘가리왕산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주목, 왕사스레나무, 개벗지나무 등 이 지역에서 잘려나가는 나무가 5만 8000여 그루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비영리민간자연보존단체인 우이령사람들은 벌목될 나무가 12만 그루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산지관리법은 산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복원대책을 사전에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강원도 올림픽추진본부는 지난 8월 제대로 된 생태복원방안 없이 가리왕산 일대에서 벌목을 하다 적발돼 공사를 중단당하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강원도 10개 환경단체가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강원도 올림픽추진본부 관계자 등 1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녹색연합의 임태영 활동가는 “(시공사가) 공사를 서두르다보니 슬로프 건설지역 바깥의 나무까지 베어 버렸다”며 “산림을 벌목할 때는 식생전문가가 현장에 상주하면서 희귀식물, 천연기념물 등 보호종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며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원석 강원도청 생태환경담당 주무관은 “(공사당시) 생태복원계획이 있었고 단지 식생전문가가 상주하지 않았다는 문제로 벌목이 중단됐던 것”이라며 “지금은 식생전문가도 상주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환경단체 "국제규정 예외 있어 기존 스키장 활용 가능"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지난 9월 한 달 동안 ‘아름드으리’(13~14일), ‘옮겨심으리’(20~21일), ‘지켜주으리’(27~28일) 등 세 번의 가리왕산 지키기 주말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단비뉴스>가 찾아간 지난달 27일에는 ‘가리왕산지키기 숲문화제’가 열렸다. 환경단체 활동가들뿐 아니라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과 70대 노부부까지 다채로운 연령대의 시민 80여명이 참가했다. 약 세 시간여를 걸어 올라가 벌목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날카로운 전기톱에 밑동이 잘린 고목 앞에서 산신제를 올리고 ‘STOP(스톱)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이라고 적힌 노란 피켓 등을 들고 벌목 중단을 외쳤다. 

▲ 환경단체에서는 '숲문화제' 등을 통해 벌목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녹색연합

이 같은 시민들의 요구에 강원도와 올림픽조직위측은 "환경문제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애초 남녀 활강코스를 분리해 ‘와이(Y)’자 형태로 슬로프를 만들 계획이었지만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스키연맹(FIS)과 협의해서 남녀 코스를 통합하는 ‘아이(I)’자 형태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기존 계획보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및 수목의 30% 이상을 원형보존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지금이라도 벌목을 중단하고 활강코스를 용평 등 다른 스키장에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스키규정이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방식에 따라 표고차(경기 시작지점부터 도착지점까지의 수직높이)가 350~400m인 코스에서 2번 경기를 한 후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특별한 경우 표고차 750m에서 경기를 진행할 수 있다는 규정을 활용해 용평리조트(702m)에 50m 높이의 가건물을 설치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활강스키 국제 규정은 표고차 800m 이상”이라며 “가리왕산 말고는 이 규격을 맞출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의 국제규정은 표고차 800~1000m를 요구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올림픽 주최측이 경기 이후 가리왕산의 보전·복원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성토하고 있다. 환경부는 강원도에 ‘보전·복원 계획을 제대로 제시하라’고 요구했으나 강원도는 ‘자연천이’, 즉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식물군집이 자라나는 방식을 통한 복원을 추진하겠다는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환경단체들은 활강스키장처럼 여러 시설물을 매립하고 땅을 다지는 작업을 해 토양생태계가 파괴된 지역에는 자연천이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원도청 최 주무관은 “2017년 말까지 복원계획을 확정하는 것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아직도 생태복원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있다”며 “이번 달에 전문가, 시공사, 환경단체 등으로 구성된 ‘생태복원자문단’을 구성했는데 좋은 의견이 모아지면 최대한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 벌목이 진행중인 가리왕산. ⓒ 이문예

희귀식물 70% 고사한 덕유산 전철 따를까 걱정

가리왕산과 비슷한 논란은 지난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활강경기장 조성작업이 추진된 전북 무주의 덕유산에서도 있었다. 당시 덕유산의 향적봉 일대도 산림청 지정 유전자원보호구역이었으나 정부는 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키장 건설을 강행했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향적봉 주변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태계가 훼손된 상태로 남아있다고 비판했다. 덕유산에서 볼 수 있던 주목, 구상나무 등의 희귀식물들은 70% 이상 고사했고, 원시림이 사라진 곳에 개망초, 달맞이꽃 등 1~2년생 외래종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천(61) 우이령사람들대표는 “가리왕산도 덕유산처럼 복원이 힘들다”며 “생태 복원은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리왕산은 풍혈지대(연간 10~15℃를 유지해 희귀종이 서식하는 지대)로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주목이 초년생부터 고목까지 분포하는 곳”이라며 “생태보존가치로 따지면 한국에서 손꼽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어 “나무를 베었지만 아직 토양 생태계는 살아있으니 지금 공사를 중단해도 늦지 않다”며 “가리왕산 스키장은 세계 일류 선수들에 맞춘 경기장이라 워낙 경사가 급해 올림픽이 끝난 후 일반인 스키어들이 활용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스포츠가 환경강탈 면허증인가"

가리왕산에서 벌목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평창에서는 지난 달 29일부터 지난 17일까지 ‘제 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194개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참여한 이 대회는 ‘인간과 생물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지구촌 생물올림픽’이라는 구호 아래 환경보호노력을 다짐하는 행사였다. 

▲ 빨간테두리를 보면 평창올림픽이 '환경올림픽'이라는 목표도 내걸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 평창올림픽조직위 홈페이지 갈무리

조직위는 이에 앞서 평창동계올림픽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대회를 ‘문화올림픽’, ‘평화올림픽’, ‘경제올림픽’과 함께 ‘환경올림픽’으로 치를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스포츠평론가인 정희준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는 “스포츠가 환경을 잡아먹는다면 그것은 스포츠를 빌미로 한 개발에 불과하다”며 “가리왕산 스키경기장은 일종의 ‘환경강탈면허증’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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