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배에선 유사시에 선장이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세월호는 선장이 1년짜리 계약직, 가까이서 보조를 돕는 조타수도 6개월 계약직이었어요. 그렇게 되면 자기 배에 대한 애착이 생길 수가 없어요. 6개월 뒤에 일할지가 불분명하면 업무에서도 서로 손발이 맞을 수가 없는 거죠. 서로 이름도 몰랐으니까."

▲ 하종강 교수는 그저 노동자 곁에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 김선기

쌍용차, 재능교육, 콜트콜텍 등 노동자들이 절규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손길을 내밀어 온 ‘40년 노동전문가’ 하종강(60)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이면에 위험 수위에 이를 만큼 늘어난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26일 서울 항동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만난 하 교수는 “비정규직은 기업이 인건비를 줄이는 것 외에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주는 게 전혀 없는 제도”라고 못 박았다.

그는 기업의 이익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회를 이토록 위험하게 만든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양산은 안전문제와 더불어 중산층 붕괴, 사회양극화 심화, 인간 존엄성의 훼손, 생명권의 침해 등 광범위하고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대중이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동안 당사자들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기업 중심 '경제염려증'이 노동 소외 방치

“현대자동차에서 분신했던 노동자가 계세요. 이 사람이 자기가 분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똑같은 자동차에 왼쪽은 정규직이 조립하고 오른쪽은 비정규직이 조립하고 그랬다. 업무내용도 같고 사용하는 도구도 모두 같은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 억울해서 분신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북미나 유럽 국가들보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하 교수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97, 98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고, 현재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인 900만 명가량에 이른다. 이 정도로 높은 비정규직 비율은 전 세계에 유일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너무 어렵다고 외쳐대는 바람에 모든 국가정책이 ‘기업비용절감’에 맞춰졌어요. 정책이 맞춰진다는 것은 가치관이 그렇게 변한다는 것인데,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인륜과 도덕 위에 군림하게 되는 겁니다.”

하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기업’과 ‘노동’에 대한 국민 정서는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소비가 위축돼 경제가 어렵다’며 대통령이 경기부양을 위해 직접 나서기도 했는데, 실제로 소비가 부진한 근본적 이유는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 비정규직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많은 노동자가 임금으로 주거비, 식비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비를 하기도 어려우니 경제 전반적으로 수요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 교수는 기자에게 “지금까지 한국경제가 위기가 아닌 적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질문한 뒤 항상 경제가 위기라는 생각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상태, 즉 ‘경제염려증’ 때문에 기업들이 이익을 위해 인건비를 줄여도 사회적 저항감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법 앞에 평등’이라는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도 중대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판결문에 아예 쓰여 있어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염려되어 가벼운 처벌을 한다’고. 그런데 국민이 이걸 용납해요. 아니 몇십만 원 떼먹은 중국집 배달부는 실형 선고하고, 몇천억 횡령한 재벌 회장은 왜 봐주는 거냐고 아무도 따지지 않아요. 경제에 미칠 영향이 염려돼서 이런 판결을 한다는 법원의 설명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거죠.”

독일에선 초등학생도 노사협상 실습

노동이 천대받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동운동을 대변할 정치세력은 제각각 파편화됐고, 지지율도 한자릿수를 밑돈다. 또 민주노총 등 노조에 대한 국민 정서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혐오감이 만연해 있다는 게 하 교수의 진단이다. 실제 노동운동세력은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데도 국민들은 여전히 노동운동하면 ‘과격한 것’으로 생각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교육과 상담이 강화돼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독일은 초등학교에서 직접 모의 노사교섭 실습을 해보면서 노동교육을 받아요. 학생들이 자라서 노동자나 경영자가 될 테니까, 그 역할을 번갈아 맡아보죠.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경영자가 될 줄 알고 자라거든요. 독일은 그렇지 않아요. 독일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노동조합 간부 역할이 훨씬 인기가 많기도 해요. 실습에선 똑같은 모의 노사교섭을 수차례 반복해요. 실제 노사교섭에서 협상이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잘 없기 때문이죠.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독일이 얼마나 자세히 가르치느냐면, 대자보, 인쇄물 쓰기, 서명운동 전개방법, 언론과 인터뷰하는 요령을 다 배워요. 반면에 한국은 노동조합 간부가 돼도 어디 가서 그걸 배울 데가 별로 없어요.”

국내 초중고 사회과목 교과서 63권을 모두 분석해본 결과 기존 교과서들은 노동문제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거나 노동을 매우 부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고 하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보고 있었다.

“굉장히 느리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어요.”

▲ 하 교수는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에 있다고 말했다. ⓒ 김선기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초등 3~4학년용과 5~6학년용, 중학교용, 고등학교용으로 총 4종 개발한 것에 하 교수는 주목했다. 이 교재는 국어, 수학, 사회 등 정규교과과정과 연계해 토론 등 학생참여 방식의 수업을 진행하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교과서는 인권, 노동, 평등, 다양성, 환경, 민주주의, 미디어 등의 주제를 다룬다. 특히 고등학교용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총파업 문제 등 노동과 관련한 사회이슈를 학생들이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정부의 강력한 기업규제와 노조 조직력 강화 필요

하 교수는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려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나아가 비정규직 자체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차별금지를 제도화하는 나라들일수록 경제성장도 안정적으로 이룬다며 스웨덴을 예로 들었다.

“스웨덴의 경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국가단위로 적용했는데, 이는 회사가 달라도 (같은 일을 한다면) 임금이 같아야 한다는 원칙이에요. 가령 몇만 명이 근무하는 ‘볼보’의 선반공이나 동네 작은 회사의 선반공이 경력과 업무수행능력이 같다면 임금이 같은 거죠.”

한국에도 이런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고 있는 직종이 있다. 공무원과 교사가 그렇다. 예를 들어 강남 8학군 학교 교사나 폐교 직전인 시골학교 교사가 호봉이 같으면 임금이 같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들이 경기침체에 허덕일 때, 이런 제도로 노동안정성을 높인 스웨덴은 연평균 4%대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 교수는 설명했다. 노동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된 셈이다.

이런 변화가 우리나라에서 가능해지려면 개혁적인 정부가 집권해서 강력한 기업 규제개혁을 주도해야 하며, 노동조합의 조직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노동조합이 조직률을 높이는 방식 등으로 사용자와 협상할 힘을 키워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갖는 게 당장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문제가 해결돼야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함께 해결된다고 봅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면 교육문제도 해결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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