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김지석 주한영국대사관 기후변화 담당관

"영화 '겨울왕국'은 기후변화 이야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왕국이 갑자기 얼어붙으니 식량문제가 발생하고 얼음장사는 일자리를 잃어버렸죠. 기후변화가 우리 삶을 어떤 식으로 흔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겁니다."

'겨울왕국'에서 주인공 엘사는 자신이 가진 얼음마법을 통제하지 못해 나라 전체를 겨울로 몰아넣는다. 영화에서 묘사하진 않았지만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왕국은 기본적인 농산물조차 확보하지 못해 식량난을 겪었을 수도 있다. 식량난이 물가폭등과 실업, 치안악화 등으로 이어지면 왕국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 가계부 적시는 기후변화

"기후변화가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어요. 환경문제에 관심 갖는 소수의 행동으로는 어림없습니다. 기업이나 경제에 민감한 이들이 변해야 합니다."
 
김지석(39) 주한영국대사관 선임기후변화에너지담당관은 기후변화가 우리 문명을 파괴할 만큼 큰 위협이지만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행동이 잘 변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온실가스가 지구의 온도를 높여 기후를 교란시키는 현상은 역사적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개인이 눈으로 확인하거나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 지난 4월 김지석 씨가 출간한 <기후불황>. ⓒ 센츄리원

그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기후변화와 경제 불황의 인과관계를 보여주기로 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기후변화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주한영국대사관에서 담당업무를 맡고 있는 지금까지 그는 이 문제를 자신이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여겼다. 지난 4월 출간한 <기후불황>은 미국 브라운대에서 경제학과 환경학을 복수 전공했고, 예일대 대학원에서 환경경영학을 공부한 그가 내놓은 기후위기 분석서이자 생존전략집이다.

"요즘 날이 왜 이렇게 덥지?', '요즘 물건 값이 왜 이렇게 비싸지?' 이런 소리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이건 다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그럼 '모든 문제가 기후변화 때문이냐'고 물어요. 그럼 제 대답은 '그렇다'예요. 기후변화는 대놓고 우리를 괴롭히지 않아요. 기후변화의 영향은 모든 물건 값에 조금씩 녹아들어 가격을 끌어올리는 겁니다. 미국에 가뭄이 들면 사료 값이 올라 닭이 줄고 결국 계란 가격까지 올라가는 식이죠."

미국 대평원에 가뭄이 들어 옥수수 작황이 좋지 않으면 국내 축산품 가격이 요동친다. 작년 봄 국내 닭사육 농가들은 사료 값을 감당하지 못해 달걀용 닭 5백만 마리를 식육용으로 팔았다. 닭이 줄어드니 달걀 공급도 줄었다. 우리나라 가축사료는 전적으로 미국산 옥수수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상기후로 미국이 옥수수 농사를 망치면 우리나라의 달걀가격이 뛰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2월 폭설로 무너진 울산 세진글라스 공장이나 경주 마우나리조트도 표면은 안전사고였지만 본질은 기후변화입니다. 눈이 많이 오지 않던 지역에 적설하중을 초과해 폭설이 내리니 참사가 발생한 거죠. 기후변화는 이렇게 계란 값에 조금, 보험료에 조금, 여기저기 묻어서 조용히 우리 삶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겁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먹거리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이상기후로 인명피해나 설비피해가 늘어나면 보험회사들은 보장범위를 줄이고 보험금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죽거나 다쳐 일을 못하고 각종 설비피해로 공장 등이 가동하지 않는다면 실업문제가 확대될 수도 있다.

단기성장을 위해 미래를 팔아서야

"청해진해운은 좀 위험하지만 수익을 위해 세월호에 짐을 더 실었죠. 설마 사고가 나겠냐는 안일한 생각이었는데 결국 사고가 났어요. 기후변화 문제도 같습니다. 장기공동생존을 전제로 성장해야 하는데 지금 우린 후손들을 생각하지 않고 단기성장 만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지금 상태로는 이산화탄소가 끝없이 늘어나고 인류는 멸종할 겁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반드시 올 겁니다."

국가온실가스정보센터의 2013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9.8%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가속도다. 김 담당관은 얼마나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물건을 만들기 위해 온실가스를 발생시키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주력 생산품은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거나(자동차·선박) 간접적으로 배출해(TV·냉장고·에어컨 등)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제품들이다.

▲ <기후불황>을 출간한 김지석 주한영국대사관 선임 기후변화에너지담당관. ⓒ 김선기

그는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전기로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국가경제를 유지해간다면 국가경쟁력이나 이미지 하락은 물론 기후불황을 앞당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해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력공급비용 절감과 중단기 수급안정을 이유로 석탄화력발전량을 늘리고 가스화력발전소를 증설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원전 역시 올해 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발전설비용량을 2012년 20.7기가와트(GW)에서 2035년 43GW로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밝혀 기존의 증핵기조를 유지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비윤리적입니다. 아동노동처럼 애들 잡는 기계예요. 세계은행도 석탄화력발전소는 못 짓게 하는데, 우리 정부는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석탄발전소와 가스발전소 신규건설을 허가해줬어요. 발전회사는 단기이익을 얻고, 기업은 전기를 싼 값에 써서 좋겠죠. 그런데 이게 정말로 싼 걸까요?"

이 계획대로 하면 대규모 정전사태나 전력가격 상승을 당분간 억제할 수 있지만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대기오염 물질을 고려하면 절대 싼 방법이 아니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그는 주장했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대기오염 물질을 발암물질로 공식 인정했으며 2012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사망자 8명 중 1명인 700만 명이 폐질환 등 대기오염과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공공보건대학원도 대기오염으로 발생하는 천식환자나 폐기물로 인한 중금속 오염문제 등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석탄발전의 실제단가가 현재가격보다 4배 정도 비싸다고 밝힌 일이 있다.

"원전을 새로 짓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런데 당장 원전을 폐쇄하면 그 빈자리를 석탄발전이 메울 겁니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기존 원전의 안전관리를 최대로 하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하겠습니다. 원자력 발전은 절대 싸지 않습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입장을 물었을 때 그는 신중했다. 원전사고가 가져올 위험성은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확인했지만 당장 원전을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원전을 폐쇄할 경우 원전이 맡고 있는 기저부하발전(24시간 가동하는 발전)을 감당할 수 있는 건 현재로선 석탄밖에 없다. 원전의 위험은 잠재적인 반면 석탄은 태울 때 발생하는 대기오염 물질이 건강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우리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있다. 그는 원전이 관리비용과 폐쇄비용을 고려하면 절대 싸지 않은 만큼 기존 원전시설은 철저하게 매뉴얼대로 관리하되 태양에너지와 풍력 등으로 적극적인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2013년 12월 이후 전기요금이 눈에 띄게 줄었다. ⓒ 김지석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1차 에너지소비량 중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러있다. 전력의 1/3은 원자력발전으로, 2/3는 화석연료를 태워 만드는 상황이어서 온실가스 배출이 없거나 적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발전 확대가 시급하다. 김 담당관은 지난해 12월 충남 공주시에 있는 누나 집 옥상에 3킬로와트(kW)급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다. 발전량이 많고 소비량은 적은 봄과 가을에는 잉여전력량계에 사용하지 않은 전기가 적립된다. 이렇게 적립된 전기는 소비량이 많은 여름이나 겨울에 차감되는데 아껴 쓰면 매달 전기료를 1만 원선에서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실천들이 확산되기를 기대했다. 

기업들 온실가스 감축 유도할 강력한 정책 필요

“양질의 해외자료가 언어의 장벽에 막혀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 아쉬워요. 앞으로 관련 웹사이트를 만들어 유튜브나 해외 최신자료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할 겁니다. 통·번역이나 인포그래픽이 가능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전 세계에서 하루에 9백만 톤(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그만큼 기후변화는 심각해지고 있다. 하루하루가 급하고 1초1초가 아깝다는 그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전기 불을 켜놓고 한가롭게 지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행동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기후변화의 실상을 알리는 웹사이트를 만들 계획이다. 또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재활용 같은 소소한 노력으로 벌충하는 대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자고 대중을 설득할 생각이다. 해외여행을 무조건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행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행동하자는 것이다.

“이제 결단을 내릴 시간입니다. 무책임하게 세계여행을 다니며 ‘지구호’를 침몰로 이끌 건지 아니면 지금 약간 불편해도 본인의 노후와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건지 말이죠.”

2012년 그의 둘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가을을 하루라도 더 늘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을 ‘장기공동생존주의자’라고 말하는 그는 “진정 가족과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 문제를 놓치지 말라”고 주문한다. 저명한 과학자들의 일관된 주장과 근거자료는 현재의 지구온난화 추세가 굉장한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법 제정 등을 통해 온난화 대응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강력한 규제를 통해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연구개발과 투자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영국의 경우 자국 내에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온실가스배출국 대사관에 기후변화에너지팀을 만들고 배출감축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며 그는 힘주어 말했다.

"우리 모두는 '지구호'의 선원들입니다. 기후변화를 막아서 아이들도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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