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두산의 중앙대 장악 비판한 ‘기업가의 방문’ 노영수

농성하고 삭발하고 타워크레인에도 올랐다. 손해배상금으로 2천4백만원을 청구당하기도 했다.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 이야기가 아니다. 두산그룹의 중앙대학교 인수 이후 ‘대학의 기업화’에 저항하다 퇴학까지 당하고 11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노영수(31·노동당 동작구당협협의회 사무국장)씨 얘기다. 그는 지난 3월 출판한 책 <기업가의 방문>에서 '해고'까지 당하며 목격한 ‘기업대학’의 민낯을 속속들이 고발했다. 지난 4월 서울 신도림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노씨를 만났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의사결정구조의 수직화입니다. 교수와 직원들이 투표로 총장을 뽑던 직선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를 실시하면서 재단이사장을 중심으로 피라미드식 위계구조가 만들어졌죠. 이전에는 어느 정도 교수사회 내에 주도세력과 견제세력이 공존하며 최소한의 기계적 견제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지명 받은 소수세력이 독재를 하는 시스템이 됐습니다.”

노씨는 2003년 입학 후 2014년 2월 졸업할 때까지 두산 인수(2009년) 이전의 중앙대와 이후의 중앙대를 각각 5년가량 경험했다. 그가 군복무와 등록금 마련을 위한 휴학 등을 거쳐 복학한 후 중앙대에서는 정부 비판에 앞장섰던 진중권 독문학과 겸임교수의 재임용탈락과 일방적인 학과통폐합 등 두산의 ‘칼질’이 본격화했다. 그는 진 교수 해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총장실이 있는 본관 앞에 시멘트로 벽을 쌓고 농성을 주도했으며 학교 정문 앞 건설공사장의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고 외쳤다. 이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두산 직원을 동원한 사찰과 손해배상청구, 그리고 퇴학처분이었다.

▲ 두산그룹의 중앙대학교 인수 이후 ‘대학의 기업화’에 저항하다 퇴학까지 당하고 11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노영수씨의 모습. ⓒ 김동은

노씨는 이에 저항해 2010년 6월 전북 익산에서 출발, 경남 창원의 두산중공업까지 55킬로미터(km)를 걷는 13박 14일의 ‘삼보일배 대장정’을 떠났고, 퇴학처분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법원에서 퇴학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지만 학교 측은 다시 1년2개월의 유기정학처분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하기까지 그의 대학생활은 투쟁과 징계, 저항으로 점철됐다.

공론장 사라지고 취업양성소로 전락한 대학

두산중공업 회장인 박용성 재단이사장은 대학의 민주주의를 비효율적이고 무능력한 제도로 폄하하며 기업식 경영구조를 대학에 이식했다고 노씨는 주장했다. 중앙대생들은 2009년부터 회사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회계와 사회’를 필수교양으로 듣게 됐고, 취업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학과들은 일방적으로 통폐합됐다. 2010년 단행된 학제 구조조정에서 18개 단과대와 77개 학과가 11개 단과대 및 49개 학과로 재편됐는데,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인문학관련 학과들이 무더기 통폐합됐다. 독어독문과, 불어불문과, 러시아문학과는 유럽문화학부로, 일본어문학과 및 중국어문학과, 민속학과는 아시아문화학부로 통합됐다. 이어 2014학년도에는 비교민속학과, 아동복지학과, 가족복지학과, 청소년학과 등 4개 학과가 폐지됐다. 전공선택 비율이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사회복지학부는 80명에서 50명으로 정원이 축소된 반면 경영학부는 355명에서 454명, 경제학부는 100명에서 130명으로 정원이 늘었다.

‘기업대학’으로의 변신은 캠퍼스의 외형도 바꿨다. 학생들이 모이던 광장이 공사장으로 바뀌고 새로운 대학건물에는 고액의 상가임대료를 부담하는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입점했다. 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경영대학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대학에 공론장이 사라진 것도 문제입니다. 모든 페널티는 종신형이고요.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인 '중앙인'에서 학교를 비판하는 글을 적으면 아이디가 박탈됩니다. 제명됐다는 통보도 없이 영구적으로 삭제돼요. 저는 이제 영원히 아이디를 받을 수 없게 됐어요. 졸업한 동문, 심지어 두산 베어스 응원단장도 아이디를 받는데..."

대학 당국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학생들, 학과 구조조정에 항의한 학생들은 장학금혜택에서 제외되거나 학생회 임원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한번 징계를 받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노씨의 주장이다.

"(징계당한 학생들의) 피선거권 박탈도 벌써 4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어요. 박용성 이사장은 (비리혐의로) 최종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대통령 사면을 받는데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학생들은 얼마나 패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이기에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주 기본적인 배려도 받지 못하는 걸까요.”

박용성 이사장은 지난 2006년 수백억원대의 회사자금 횡령과 수천억원대의 분식회계에 관여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유죄가 인정됐으나 집행유예를 받았고 이듬해 특별사면된 일이 있다. 

▲ 중앙대학교 본관 건물 뒤편으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여주는 크레인이 언듯 보인다. ⓒ 김동은

학문 균형 깨지고 효율추구만 남아

대학의 기업화가 중앙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균관대(삼성), 인하대(한진), 포항공대(포스코), 울산대(현대)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학이 여럿 있는데, 중앙대에서 가장 갈등이 두드러진 편이다. 노씨는 박 이사장이 ‘대학기업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대학구성원을 기업식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유난히 마찰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경영대, 의대, 공대가 기술 변화를 주도할 때, 다른 한편에는 그 변화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을 지적해주는 학문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지금은 그런 균형이 완전히 깨져버렸어요. 대학은 신자유주의의 일그러진 모습을 바로잡고 교정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곳이 돼야하는데, 두산 재단에게 중앙대는 이윤 창출을 위한 경영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두산 재단이 주도한 변화에 대해 노씨처럼 저항한 학생들도 있지만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대부분은 소극적으로 수용하거나 동조하는 분위기로 흘렀다고 한다. 재단측이 학교발전의 논리와 취업난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솔깃해 할 의제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마법으로 끌고 간 것이죠. 대학종합평가에서 몇 위를 했으며, 모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우리 집단이 더 유리한 경쟁의 위치에 갈 수 있다는 식으로 대학사회를 선동했습니다.”

그는 취업률로 학교의 서열을 나누며 효율성의 논리로 학교를 끌고 가는 ‘파시즘’의 마법이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면서 ‘불안한 20대’를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대학생 대변할 청년 정치인 절실

그는 대학생들이 자기계발의 논리에 허우적대면서도 절실하게 목소리를 냈던 사례로 2011년 반값등록금 시위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들이 실질적인 변화나 장기적 개혁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대학생들을 제대로 대변할 청년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정치인의 피선거권이 지금(국회의원의 경우 25세)보다 더 낮아지고 당사자가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1년간의 대학생활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요? 크게 잃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흑역사’를 본 것이 가슴 아프지만,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으로서 더 큰 공부를 했다고 생각해요. 대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가치관을 세웠고, 그 일그러진 시스템에 나를 맞추지 않을 수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