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그린홈 ② 경북 고령의 저에너지하우스

꽃샘추위에 옷깃을 여며야 했던 지난 3월 9일 오후.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의 한 단독주택 대문을 열고 하얀 자갈이 깔린 정원을 지나 흰색 건물 현관에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1,2층 합쳐 연면적 33평(108㎡)인 이 집은 전혀 난방을 하지 않은 상태라는데도 실내 온도가 섭씨 25도를 웃돌았다. 바깥은 9~10도였다. 집주인 김경용(38)씨는 “높은 단열성과 기밀성(공기 등 기체가 통하지 않는 성질)을 갖춘 덕에 자주 난방을 하지 않아도 이 정도 온도는 늘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김씨 가족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인근의 빌라와 아파트에 살 때 위층의 잦은 부부싸움으로 층간소음에 시달렸다고 한다. 또 아래층 눈치를 보느라 두 딸은 발뒤꿈치를 늘 들고 다녀야 했다. 지난해 2월 무렵 단독주택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김씨는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다 '저에너지하우스(패시브하우스)'라는 게 있음을 알게 됐다. 냉난방 등 생활유지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집인데, 이런 집을 지으면 유지비가 비싼 단독주택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 4월에 땅을 구하고 7월부터 집을 짓기 시작, 약 석 달만인 10월에 완공했다. 입주 9개월째인 현재 김씨네 가족은 모두 새집에 대만족이라고 한다.

월 30만원 이상 들던 난방비 15만원 아래로

 

▲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에 위치한 '저에너지 하우스'의 전경 ⓒ 로이하우스 제공

이 집은 패시브하우스의 기본요건을 충실히 따랐다.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남향 설계를 하고 큰 창을 낸 것, 건물 전체가 고단열·고기밀이 될 수 있도록 단열재를 확실히 쓴 것, 그리고 폐열회수장치를 통해 환기가 효율적으로 되도록 만든 것 등이다. 덕분에 한겨울에도 채광과 단열이 잘 돼 보일러를 오래 가동할 필요가 없다.

"손님들이 처음 집에 오면 '우와 예쁘다' 하다가 똑같이 '아~ 덥다' 하면서 옷을 벗으세요. 처음에 입주해서는 멋모르고 보일러를 틀었다가 큰 아이가 땀띠로 고생한 적도 있답니다. 그만큼 보온성 하나는 최고예요."

액화석유가스(LPG)보일러를 쓰는 이 집의 겨울 난방비는 월 12만~15만원 정도로, 전에 살던 비슷한 규모의 집이 월 30만원 이상이었던 데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김씨의 아내 조수영(37)씨는 “이전에 살던 집은 (돈을 아끼느라) 거실과 큰방에만 난방을 해도 월 30만원 이상이 나왔는데, 지금은 훨씬 적은 돈을 쓰고도 더 따뜻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이 집의 벽체는 두께가 270센티미터(cm)로 일반적인 주택 벽두께(80~100cm)의 3배에 가깝다. 162cm 두께의 단열재 SIP(구조단열패널)에 외부마감재와 석고보드가 겹쳐있다. SIP로 지은 집은 일반목조주택에 비해 에너지효율이 50~60% 더 좋고 기밀성은 15배나 높아 외부의 먼지나 벌레의 침입을 차단하고 곰팡이 서식도 억제한다. 시간이 지나도 처짐과 변형이 없어 단열성능이 영구적이라는 장점도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패시브하우스의 필수요소 중 하나인 폐열회수환기장치는 집안의 열손실을 줄일 뿐 아니라 내부의 오염된 공기를 밖으로 빼고 바깥의 맑은 공기를 집안에 순환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집의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평소 700-800피피엠(ppm) 수준이라고 한다. <단비뉴스> 기자 2명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이 농도가 1200ppm까지 올라갔는데, 환기장치를 돌리자 금세 적정기준이라는 1000ppm으로 떨어졌다.

“이전에 살던 빌라에서는 정말 곰팡이에 시달렸어요. 둘째 아이를 그 집에서 낳았는데 아이의 기관지가 나빠 생후 6개월 동안 폐기능을 강화하는 부착제를 가슴에 붙이고 살아야 했죠. 하지만 이 집으로 이사 온 후에는 아이의 폐기능이 좋아졌어요. 감기에 걸리는 횟수도 줄고 아이들 피부의 건선도 많이 나았고요.”

자체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 사용량 80~90% 충당

김씨는 채광과 단열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 2월 초 집 옥상에 3킬로와트(kW) 용량의 태양광발전설비를 가설했다. 당시 날씨가 굉장히 좋지 않았는데도 2월 한달간 200킬로와트시(kWh)의 전력을 생산했다. 이어 3월엔 300kWh, 4·5·6월엔 평균 400kWh를 생산했다. 이 정도면 매달 전력사용량의 80~90%를 충당할 수 있다. 김씨 집은 태양광 설치 전 월 10~12만원 정도 전기요금을 냈는데 요즘은 월 1~2만원으로 줄었다.

 

▲ 저에너지하우스는 단열효과가 탁월해 난방비를 효과적으로 줄인다. 이 집은 남향으로 집터를 잡은 뒤 남쪽 창을 크게 내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인다. ⓒ 로이하우스 제공

김씨와 같은 성공사례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땅값이 비교적 싼 지방에 거주하는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저에너지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씨의 집을 지은 시공사 로이하우스의 곽재혁 차장은 “인터넷 정보접근이 쉬운 사람들은 건축물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는데 필요한 자료를 찾을 수 있지만, 중장년층은 이런 개념을 아예 모른다”며 “저에너지하우스에 대한 홍보를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경우 기존 단독주택 건설비용의 10% 정도를 더 부담하는 수준으로 저에너지하우스를 지을 수 있다고 곽 차장은 덧붙였다.

조수영씨는 "(처음 집을 짓기로 했을 때) 프로방스 풍의 예쁜 집을 원했고 패시브하우스는 별로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웃 중 한 분이 50평형 주택에서 난방비로 70만원을 내면서도 추운 날 옷을 껴입고 생활하는 걸 본 뒤에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일 등 건축물 에너지효율화 위해 보조금 적극 지원

김씨의 집은 철저한 단열로 난방의 필요성을 최대한 줄이고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기수요를 충당하는 ‘저에너지하우스’다. 이보다 에너지 기준이 더 엄격한 것은 ‘제로에너지하우스’라고 하는데 탄소배출 효과가 제로(0)인 에너지 자립주택을 의미한다.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일부 선진국들은 제로에너지하우스 보급 확대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독일은 오는 2015년부터 모든 신규주택이 제로에너지하우스의 요건을 갖추도록 의무화했다. 독일은 이에 앞서 패시브하우스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에너지효율화를 목적으로 주택을 개보수하는 경우 소유주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 독일에서는 집을 매매하기 전 에너지상담사로부터 에너지효율검사를 받아야 한다. 독일에서는 에너지효율이 집값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한다. ⓒ SBS 특집 다큐멘터리 ‘집이 진화한다’ 캡쳐화면

영국도 2016년부터 모든 신규주택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제로를 의무화하고 2019년부터는 모든 상업용 건물까지 이를 확대하기로 했다. 캐나다는 기존주택의 에너지 성능을 개선하거나 에너지 효율적 주택을 구매할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미국은 2020년부터 주거용, 2025년부터는 비주거용 건축물에 대해 제로에너지를 의무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건물에 대해 주별로 보조금을 지금하거나 세금을 감면해주는 형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8년 ‘녹색기술 및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발표하고 2025년까지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의무화한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또 지난 3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건축물 에너지 성능개선 방안’에 따르면 신축건물의 경우 2017년부터 2009년 대비 냉난방에너지를 90% 절감하는 주택설계를 보편화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이 주택 및 상업용건물의 단열과 신재생에너지발전 투자를 앞 다퉈 지원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건물주들이 에너지효율화와 신재생에너지 활용에 앞장설 수 있게 보다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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