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편견

▲ 김다솜 기자

40대 후반인 이모는 매력적인 비혼주의자다. 나와 엄마도 그렇게 못생기진 않은 것 같은데 이모의 예쁜 얼굴에 샘이 날 때가 많다. 이모는 ‘왕년에’ 더 잘 나갔다. TV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이모 모습은 배우 김혜수가 찍은 맥주 광고를 떠올리게 했다. 이모는 기본 바탕이 있는데다 멋 부리는 걸 좋아해 그 나이에도 여전히 세련돼 보인다. 국내 유명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전문직 여성이니 능력도 뛰어난 것 같다.

하지만 ‘노처녀’란 이름표는 이모의 아름다움과 능력까지 무색하게 만든다. 몇 해 전 이모가 만나던 연하 남자친구를 끝으로 ‘이모부를 만들어 달라'고 내가 조르는 것도 접은 지 오래다. 나를 제쳐 두고도 우리 가족은 이모의 남자에 관심이 많다. 명절만 되면 이 세상 노처녀들이 당하듯 식구들은 이모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교육통계연표를 보면 35~39세 여성의 미혼 비율이 1985년 1.6%, 1995년 3.3%, 2005년 7.6%로 갈수록 늘고 있다. 비혼주의자도 느는 것 같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나 읽는 당신도 노처녀가 될 가능성이 있다.

혼기를 넘긴 여자라는 이유로 ‘저출산을 부추기는 이기적 인간’, ‘부모에게 손주도 안겨주지 못 하는 불효자식’이란 끔찍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출생아는 4만1400명으로 작년 1월보다 6.3% 감소했다. 2006년 1월 4만429명을 기록한 뒤 9년 만에 최저치를 달성했다. 아이를 원치 않을 수 있고 개인 사정에 따라 결혼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사회는 여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까?

사람들 시선 또한 노처녀에게 가혹하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 남녀 6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노처녀·노총각 첫인상 설문조사는 노처녀에 대해 ‘뭔가 모를 문제가 있나’(43.2%), ‘불완전해 보인다’(31.8%)는 답변을 내놓았다. 반면 노총각은 ‘외모와 능력이 된다면 매력적’이란 대답이 62.4%였다.

얼굴 예쁘고 능력 좋은 이모가 ‘못난이’ 취급을 받는 이유는 편견으로 가득 찬 사회 인식에 있다. 모든 것을 여성 탓으로 돌리는 가부장적 생각이 낳은 결과물이다. 물론 독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노처녀에 대한 사회 인식이 나아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처녀들이 타박받는 일을 없애는 것은 결국 우리 몫이다.

“이모가 보기에는 여자의 행복은 남자가 결정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더라. 남자 말고도 행복할 부분은 너무나도 많다 아이가. 오히려 남자가 있어서 여자가 불행할 수도 있는 거 아인가배. 니는 남자한테 목매고 살지 말래이.”

이모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도 남자 없는 여자의 일생을 불행하게만 바라봤다. 어쩌면 이모는 가족 걱정 없이 주말마다 나가는 꽃꽂이 강좌가 즐거울 거고, 오늘 맛있게 끓인 김치찌개를 내일 또 데워 먹어도 타박하는 이가 없어 행복할 수도 있을 텐데……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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