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전기차와 스마트그리드 ① 시승기

“지금 시동 걸린 거 맞나요?”

자동차 핸들 오른쪽 아래의 동그란 ‘스타트’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런 소리도, 진동도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건가 싶어 조수석에 앉은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 직원 강지웅(27)씨를 쳐다봤다. 강씨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미 시동이 걸린 거예요. 전기자동차는 타 연료 자동차에 비해 소음이나 진동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해 10월 4일 제주시 영평동 제주도첨단과학단지 내 전기자동차서비스를 방문한 <단비뉴스> 취재팀은 직원의 안내로 전기차를 직접 운전해 볼 수 있었다. 이 업체는 지난 2012년부터 제주도 내 전기자동차 기반시설을 운영·관리하고 있다. 

진동·소음 없지만 트렁크 작은 건 단점

가속페달을 밟자 르노삼성의 에스엠쓰리(SM3) 전기차 모델인 SM3제로에미션(ZE; Zero Emission)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발유(가솔린)나 액화석유가스(LPG)를 쓰는 일반 자동차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주행 중의 소음과 진동도 거의 없었다. 페달을 세게 밟을 때 ‘위잉~’ 하는 모터소리도 들릴 듯 말 듯했다. 마치 ‘음소거’ 상태에서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 같은 낯선 경험이었다. 

▲ 제주시 영평동 제주도 첨단과학단지에서 조수진 기자가 직접 전기차를 운전해보고 있다. ⓒ 이성제

현재 국내에 나와 있는 전기차는 최고 속도가 시속 130~140킬로미터(km)로, 휘발유를 쓰는 같은 차종보다 40km가량 느리다. 모터의 최고 출력도 SM3 모델 기준 95마력으로 휘발유 차량에 비해 20마력 가량 떨어진다. 하지만 변속과정에서의 출렁거림 등이 없어서 평지에서는 일반 자동차보다 빠르게 치고나간다. 취재팀은 약 10분간 한라산 중산간 일대에서 시운전을 했는데, 경사를 오를 때도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전반적인 성능은 아직 일반자동차에 못 미친다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쓰기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전기자동차는 열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는 내연기관인 ‘엔진’이 없다. 또 휘발유 등 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없으므로 배기관도 없다. 기름을 넣는 주유구 대신 비슷한 생김새의 충전구가 운전석 문 근처에 달려있다. 다만 자동차 배터리(축전지)가 차체 뒤쪽에 있기 때문에 일반자동차에 비해 트렁크가 작다는 게 흠이다. 실제로 시승한 차의 트렁크를 열어보니 골프채를 넣은 가방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강씨는 “제주도 골프 여행객들이 택시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전기차를 모는) 택시 운전자들은 작은 트렁크에 불만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전기 쓰면 탄소감축 극대화

전기차에 아직 이런저런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보급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무엇보다 휘발유 등 화석연료를 쓰는 차량과 달리 운행 중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환경부가 작성한 ‘2013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1년 기준 연간 6억9770만톤(t)으로 미국, 러시아, 일본, 독일, 캐나다에 이어 6위다.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에 포함되지 않는 중국과 인도를 포함하면 8위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 13~15위권인 우리의 경제규모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이 매우 많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연간 배출되는 탄소의 16.2%(2009년 기준)가 수송 분야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면 온실가스 감축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2011년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총배출량 순위는 6위다. ⓒ UNFCCC CRF, 2013년 제출

그러나 지금처럼 국내 전력생산의 70% 가량을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전기차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탄소 감축 효과가 제한된다.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고종민 연구사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전력생산과정을 감안할 때 운행 중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도 전체적으로는 휘발유 차량의 60~70% 정도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따라서 앞으로 태양광, 풍력,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이 전력으로 자동차를 운행하는 시스템을 갖출 때 탄소감축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경우 전기자동차의 배터리가 아직 공급안정성이 부족한 신재생에너지전력을 효과적으로 저장하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2020년까지 100만대 보급 목표, 충전시설 확대해야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국산 전기차는 한국지엠(GM)의 쉐보레스파크이브이(EV), 르노삼성자동차의 에스엠3제로에미션(SM3 Z.E.) 기아자동차에서 레이이브이(EV), 쏘울이브이(EV) 등 4종이다. EV는 전기자동차(Electronic Vehicle)의 영어 약자다. 스파크EV가 4000만원, SM3 Z.E.가 4200만원, 레이EV가 3500만원, 쏘울EV가 4200만원에 판매되는데, 동급의 휘발유 차량에 비해 2000만원 가량 비싸다. 그러나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보조금 지원으로 동급의 일반자동차와 비슷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제주도의 경우 전기차를 구매하는 기관이나 개인에게 환경부 지원금 1500만원, 도 지원금 800만원 등 2300만원을 보태준다. 

▲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국산 전기차 4종. 한국 GM의 쉐보레 ‘스파크 EV', 르노삼성자동차의 SM3 Z.E. 그리고 기아자동차의 ’쏘울 EV, ’레이 EV‘ (맨 위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한국지엠, 르노삼성, 기아차

하지만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보조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충전시설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는 총 180여 곳이고, 충전기 기준으로는 2000여 개에 그친다. 그나마 대부분이 서울과 제주도에 몰려있다. 사실 가장 확실한 충전방법은 전기차를 소유한 각 가정에 설비를 갖추는 일이다. 현재 220볼트(V) 충전이 가능하지만 주택용 전력요금 누진제에 따른 ‘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충전설비를 갖춰야 한다. 

개인이 집에 충전설비를 갖추려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전기공사이고, 다른 하나는 충전기(완속)를 사는 일이다. 전기공사를 하는 이유는 누진제가 없는 ‘전기자동차 충전전력요금’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공사를 해서 전력선을 집으로 끌어온 뒤 계량기를 따로 달아야 한다. 전력선을 끌어올 때 일종의 가입비인 ‘표준시설 부담금’을 한전에 내야 하는데 공중에서 선을 끌어오면 22만원, 지중에서 끌어오면 53만원이다. 충전기는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데 완속충전기 한 대당 400만~500만원이다. 충전기 구입비와 전기공사 비용, 표준시설 부담금 등을 모두 합하면 700만∼800만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지자체 공모로 전기차를 구입하는 사람에게 1000대 범위 안에서 완속충전기 설치비용 70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다.  

한전의 전기차 충전전력요금은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고 계절별/시간별로 요금이 달라진다. 전기차 요금제의 기본료는 계약전력 7킬로와트(㎾)에 월 1만6730원이다.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기아차 레이 휘발유차량의 운행비용은 10킬로미터(km)당 1481원(리터당 2000원 기준)인 반면 전기차 ‘레이EV’는 83원(봄가을 중간부하시간대 충전기준)에 불과하다. 전기차의 에너지비용이 휘발유차의 5.6%에 불과한 셈이다. 다만 충전방식과 시간대에 따라 전기료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업계에서는 대체로 전기차 운행비용을 휘발유 차량의 10% 정도로 보고 있다. 

전기차는 지난 2011년 본격적으로 국내에 선보이기 시작, 이후 매년 700~800대 가량이 팔리면서 2013년말 현재 1871대가 보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력 자립’과 ‘탄소배출 제로(0)’를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가 전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아직 전체 자동차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지만 정부와 관련업계는 2020년까지 전기차 100만대 보급과 글로벌 시장 점유율 10% 달성을 목표로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면서도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같은 핵재난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와 원전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햇빛, 바람, 지열 등 ‘토종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이미 원전 비중을 넘어섰다. <단비뉴스>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국내의 현장들을 찾아 실태를 점검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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