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동성애’

▲ 조창훈 기자
샤넬의 카를 라거펠트, 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콥스, 구치의 톰 포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패션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게이라는 것이다. 게이들이 패션계에 몰려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스콰이어> 심정희 패션 디렉터의 말을 들어보면, 게이 디자이너는 ‘여자가 보지 못하는 여자의 아름다움’과 ‘남자가 보지 못하는 여자의 아름다움’ 모두를 포착하기 때문이란다. 이들이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시선은 ‘스트레이트(이성애자)’들이 봤을 땐 신선한 자극이고, 그 자극을 패션계가 목말라한다는 것이 이유다.

이 신선함이 뜻하는 건 ‘낯섦’이다. 익숙하지 않다는 뜻. 중립적인 개념이지만 단어 사용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신선함과 새로움이 낯섦의 긍정적인 해석이라면 불편함과 위험함은 부정적인 해석이다. 보통 사람들 시점에서, 낯섦이 가까이 오면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형성한 가치관과 감각이 한 순간에 뒤집히는데 꺼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또 낯섦이 나의 중요한 가치를 흔든다고 생각할 때는 ‘위험하다’고 느끼게 된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청계천에서 열린 김조광수-김승환 동성애 커플의 ‘낯선’ 결혼식이 그랬다. 한 중년 남성은 오물을 뿌렸고, 한 노인은 ‘청계천 더럽히는 동성결혼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동성애를 위험하다고 보는 시선은 ‘동성애 반대’, 나아가 ‘호모포비아(homophobia)’로 이어진다. 몇몇 국가에서는 동성애가 주요 정치 이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동성애 인정’이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동성애라는 개인의 자유로 보이는 사소한 사안이 나라를 가르는 거대한 파열음이 되는 이유는 동성애가 남녀간 결혼에 의한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남남, 여녀의 사랑을 허용하면 혈족 중심 부모자식 관계가 흔들리게 된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 전통적인 가족에 대해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한,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아직 정치 이슈로 떠오르지 않는다. 전통적 가족제도가 완강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탓이다. 서구 사회처럼 동성애자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면 가족제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가 표출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인들에게조차 커밍아웃이 어렵다. 동성애자들은 음지에 몰려있다. 이 때문에 동성애를 위협적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그만큼 적은 듯하다. 대중문화에서는 동성애 코드를 접할 수 있지만 소비주의 형태를 띤 ‘TV 속 판타지’로 존재하기에, 가까이 다가왔다 말하기 이르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 과거 여성과 흑인의 사회 진출이 그랬듯, 동성애 역시 머지않은 시기에 허가증을 발급받을 것이다. 동성애 논쟁은 과도기가 낳은 상처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다가올 동성애 논쟁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에 달렸다. 한국은 가치관과 규범이 사회 변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문화지체 현상이 심하다. 사생활보호, 여성, 장애 등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각종 이슈들은 외국 문화 직수입의 결과지 토론과 논쟁으로 획득한 산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동성애 논쟁이 장차 그 어떤 나라보다 강한 사회적 논쟁과 상처를 낳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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