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저출산'

▲ 남건우 기자

노애에게,

삐육삐육. 안녕, 노애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나? 이번에 결혼했단 소식은 들었다. 가시나. 내가 아무리 멀리 살아도 그렇지, 연락 좀 주지 그랬어. 한 걸음에 갔을 텐데. 남극에서 한국으로 가는 공항 이름이 뭐더라. 세종기지랬나?

작년에 내가 알 낳았단 소식은 들었니? 말도 마. 낳고 나서 먹이 구하려고 120km를 왕복하는데 진짜 내 짧은 다리와 날개가 빠지는 줄 알았어. 그래도 우리 그이 덕분에 버텼지. 얼마나 자상한지, 햇볕도 없는 남극 겨울에 혼자 알을 품고 있었지. 내가 먹이 구하고 돌아올 때 쯤 우리 펭돌이가 부화했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지. 나랑 남편이랑 교대로 먹이 구하러 여섯 번씩 왔다갔다 했다니까.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삐육삐육.

너희도 애 키우는 데 엄청 힘들다고 들었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키워도 20년이라던데, 거의 나 사는만큼이네. 하긴 너희는 우리보다 4배나 오래 사니까. 그래도 20년에서 끝이 아니라는 얘기 듣고 많이 놀랐어. 대학 졸업까지 뒷바라지 하는 것도 모자라 결혼 때까지 키운다며? 그 비용이 2억이 넘는다던데… 2억이면 물고기가 도대체 몇 마리야?

우리 펭돌이는 작년 연말에 독립했어. 우리는 알 낳고 애 키우는 데 6개월이면 되거든. 그 조그만 게 알로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친구도 사귀고 먹이도 구하러 다니지. 아, 저번엔 좋아하는 펭순이 생겼다고 연락 왔어. 뭐라더라, ‘그녀를 본 순간 꼭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대나? 풉, 수컷들이란.

너가 결혼한다는 소식 듣고 기쁘면서 걱정도 됐어. 너희는 20년 넘게 키우니까 양육비가 얼마나 부담되겠어. 너네 나라는 기혼여성 피임 이유 1위가 ‘자녀양육비 부담’이라더라. 그게 다 혼자서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돼서 그런 거겠지. 대학등록금이 좀 비싸니. 그런 말 들으면 남극보다 더 추운 곳이 한국 같다니까. 그래서 너가 결혼해도 애는 안 낳을 거라 했구나. 너 주변 친구들도 다 같은 소리 하는 게 이해가 된다. 그래도 우리 펭돌이가 나에게 준 기쁨을 생각하면 난 120km를 백 번도 더 왔다갔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할게, 삐육삐육!

▲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살아남은 새끼들이 독립할 때가 되면 부모 펭귄은 더이상 새끼를 품어주지 않고 먹이를 구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화면 갈무리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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