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문제세미나] 윤석원 중앙대 교수
주제 ② 기후변화와 농업문명의 전환

“기후변화로 우리나라 농작물의 작부(作付:작물재배)체계가 바뀌고 있습니다. 예컨대 예전엔 대구에서 유명하던 사과가 요즘은 문경과 강원도 철원에서도 수확이 가능해졌죠. 기후변화가 종의 다양성을 감소시킨 것인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농업 문제의 심각성을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중앙대 윤석원 교수는 한마디씩 힘주어 말하며, 우리나라 농업경제의 불투명한 미래와 농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바뀌지 않는 인식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 윤석원 교수는 우리나라 농업경제의 불투명한 미래와 농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 이정희

인간은 기후 환경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식량을 얻어 삶을 영위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예컨대 인간은 기후적 요인으로 풍요롭지 못한 자연 상태에서 식량을 조달하기 힘들어 농경을 시작했다. 또 토양조건, 강우량, 숲과 초지의 여건 등에 따라 목축업, 유목, 밭농사, 논농사 등 재배작물의 종류도 결정지었다. 기후 환경이 농업 문명에 영향을 줘 인간의 생존양식과 문화, 제도, 정주형태 등 인류문명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화시켜온 셈이다. 환경과 농업 문제가 우리 삶의 질과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가치로 꼽혀 온 이유다.

농업 문명의 전환점이 된 산업혁명

그러나 어느 시점을 기해 농업문명에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윤 교수는 국가 전체, 나아가 세계 전반에 걸쳐 진행 중인 농업 환경 변화의 시작점을 ‘산업혁명’으로 보았다.

산업혁명은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빠르게 농업 영역에도 파고들며 농업기계화, 화학화를 이뤄냈다. 또 산업혁명의 바람은 농산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녹색혁명을 불러왔다. 하지만 농작물이 병충해에 약해 엄청난 양의 농약과 화학비료 투입을 동반해야 했는데, 이것이 농업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이전에 노동력에만 의존하던 소규모 농업이 기계, 농약, 비료 등을 많이 사용하는 고투입, 고에너지 농업, 즉 관행농업(conventional agriculture)으로 변화함에 따라 환경오염, 종 다양성과 농경지 감소, 식량 주권 상실 등 여러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천박한 자본의 논리가 농업, 농촌, 생태, 환경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지는 사회의 귀중한 가치를 하위 개념으로 밀어내며 자연의 본질을 훼손한 탓에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요. 농지나 토지는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환경 문제는 도외시됐습니다.”

농작물에 대한 비료 사용으로 토양에 축적된 질소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 조류(藻類)를 급증시키고 결국 연안의 산소 고갈로 이어져 물고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데드존’(dead zone)을 형성한다. 이러한 서식지 파괴 문제는 당장의 생태계 위기는 물론 장기적으로 천연자원의 감소와 자연재해의 증가를 불러와 식량과 에너지 부족 문제까지 야기한다. 결국 비료와 농약의 사용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다.

식량 위기의 도래

윤 교수는 농업이 자본 투입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환경으로 전환되며 작물의 다양성이 크게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 화학비료에 잘 반응하는 옥수수 같은 작물은 널리 보급된 반면 그렇지 못한 작물은 사라져버려 3천여 종의 식량자원을 활용하던 인류가 지금은 100여 종 식물의 생산지역만을 확대하고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현재 곡물의 2/3는 쌀, 밀, 옥수수 3가지 작물이다.

그는 식량 위기의 원인을 작물의 다양성 감소뿐 아니라 경작지 감소에서도 찾았다. 대규모 영농에 따른 기계화, 화학화는 토양침식을 초래했고 지구상에 경작 가능한 토지를 매년 0.3~0.5%씩 파괴하고 있다.

“현재의 상품 가치를 가격으로만 따지는 시대에는 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지도자들이 그렇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에인스워드 교수는 지구환경 변화로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을 먹여 살리는 쌀 경작지가 줄어들어 세계적 식량위기가 가시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세계 인구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쌀 생산량은 지금보다 1/3 정도 더 늘어나야 하지만 앞으로 쌀 생산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윤 교수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 변화가 쌀을 비롯한 곡물의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쳐 지구 전체의 식량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 말한다. 또 인류 전체의 식량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21세기 인류문명 또는 농업문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행복권인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금의 농업문명은 인류가 지향하는 농업문명이 분명코 아니며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농지를 살리는 농업

“농지를 살리지 않고는 환경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는 농지가 정말 많거든요. 비료와 농약을 많이 치면 농토에서 화학성분이 나오는데 이걸 어떻게 할 것이냐, 모두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해요.”

▲ 지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 ⓒ e-나라지표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작물보호협회, 한국공업비료협회 등이 작성한 2002년~2012년까지의 우리나라 단위면적(ha)당 비료, 농약 사용량을 보면, 농약 사용량은 2001년 이후 약 13kg 안팎을 보이고 있으며 2012년은 9.9kg으로 전년보다 6.6%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 또 비료 사용량은 2004~2005년에는 일시적으로 증가하였으나 2007년~2011년에 감소하였고 2012년에 다시 267kg으로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는 단위면적당 비료 사용량이 최근 약간 증가한 경향이 있지만 최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감에 따라 친환경농산물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어 농약과 비료 모두 사용량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농업문명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젊은 남성들의 정자수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불임률 역시 증가하고 있다고 하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먹거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농약과 비료 때문에 먹거리가 안전하지 않아요. 한참 문제가 됐던 광우병도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갈아 먹여서 생긴 문제 아닙니까? 인간은 농업기술이 발달됐다고 말하지만 사실 비료와 이상한 사료가 우리 인간의 먹거리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겁니다.”

인류의 역사는 환경변화에 적응하면서 문명을 개척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인류는 그 문명의 개척을 진보와 발전으로 여기며 현재에 이르렀다. 그런데 인간이 진보와 발전이라고 믿었던 인류문명이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환경문제의 직접 원인으로 드러나면서 문명과 환경의 부조화는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 농약과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는 관행농업은 농업생태계와 주변환경을 오염시키고 나아가 우리의 삶에도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 ⓒ KCG 인삼공사 블로그

한국 역시 1970년대 후반부터 통일계 벼 개발과 녹색혁명으로 쌀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굶주리던 배를 부르게 만들어준 새로운 농법은 ‘관행농업’으로 자리잡았지만 그 실상은 과다한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는 반환경적 농법이었다.

“오늘날 농업생태계는 점차 자연생태계와 동질성을 잃어버리고, 생태적 과정이 심하게 변형되거나 단절돼 농업생태계 자체는 물론이고 주변 생태계까지 파괴시켜 더 많은 에너지와 물질의 투입 없이는 생산성이 증가되지 않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진보라 믿고 유지해오던 관행농업이 농업생태계와 주변환경을 오염시켰고 결국 식품의 안전성, 나아가 지구온난화와 생물다양성의 축소라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인류는 그 동안 환경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무한한 것으로 인식했다. 실제로 환경은 인간의 지식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물질적으로 보다 풍족한 삶을 제공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산업문명과 농업문명이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윤 교수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생태계의 원리와 순환관계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문명이 전환돼야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농업문명 전환의 핵심은 친환경 유기생태농업

산업혁명은 수 천년 동안 지속돼오던 농업문명을 관행농업으로 변화시켰다. 관행농업으로 농지의 산성화, 황폐화는 심각해졌고, 그에 대한 반성으로 출현한 것이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이다.

“농업의 생태적 과정을 이해하고 응용함으로써 과도한 물질과 에너지 투입을 방지하며, 주변 자연생태계와 조화할 수 있게 농업생태계 자체와 주변 환경을 보호하면서 생산성의 지속적인 유지와 식품의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의 취지입니다. 따라서 21세기 농업문명 전환의 핵심은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의 확산입니다. 농업문명전환을 위한 모든 운동이 기본적으로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죠.”

윤 교수는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의 모범적인 사례로 쿠바를 든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는 국민의 식량과 직접 연관이 없는 수출 위주 대규모 단작체계 농업이 이뤄지던 나라였다. 그러다 미국의 경제봉쇄정책과 소련의 붕괴로 국가 경제가 파탄 나면서 심각한 식량수급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은 이런 식량난의 타개책으로 나온 것이다.

▲ 쿠바의 도시농업은 생태계를 살리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대표적 사례다. ⓒ '#農談' 다음 블로그

종전의 화학농약 대신 생물농약과 천적을 이용했고, 돌려짓기•섞어짓기•가축분뇨 등을 사용해 지력을 키워 나갔다. 시민들은 온갖 농축산물을 안마당과 옥상 등 도시 안에서 길렀다. 수도 아바나에는 8천 곳이 넘는 도시농장과 텃밭이 만들어졌고, 그 면적은 아바나 시 면적의 40%에 이르렀다.

“쿠바는 친환경 유기농과 도시농업으로 지역순환농업을 복원시켰습니다. 또한 도시에서 배출되던 배설물과 음식쓰레기를 농업자원으로 이용해 물질순환 체계의 회복에 기여했죠. 지역순환농업의 정착은 자연스럽게 파괴된 환경을 복원하면서 도시를 생태도시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생태지향적 사고를 갖게 됐고, 농산물의 장거리 이동에 따른 사회적 낭비와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보다 신선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른바 ‘로컬푸드’(토박이먹거리, 현지식품) 시스템이 정착된 겁니다.”

지속가능한 농업문명의 또 하나 비전 ‘토박이먹거리’

쿠바에서 가능성을 엿본 토박이먹거리는 한마디로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농산물을 말한다. 흔히 반경 50km 이내에서 생산된 것을 가리키는데,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동거리를 줄여 영양과 신선도를 극대화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 윤 교수는 로컬푸드가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 환경에도 도움이 되어 지속가능한 미래 농업문명의 한 비전이라고 설명했다. ⓒ 완주군 공식 블로그 '완주스토리'

“로컬푸드는 지역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기 때문에 소비자 기호에 대한 파악이 쉽습니다. 그래서 과잉생산, 보관비용, 판매부진 등을 피할 수 있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영농을 할 수 있는 거죠. 또한 다른 생산자와 지나친 경쟁을 피할 수 있어 농약이나 비료 사용을 줄이게 돼 친환경 영농을 할 수도 있습니다.”

토박이먹거리 체계에서는 다양한 소규모 농장이 장려되기에 생산자들 사이 경쟁이 줄어든다. 비료와 농약, 에너지와 물 사용을 줄임으로써 토양을 보전하고 생물 다양성의 감소를 예방한다. 토박이먹거리 체계에서는 소비자들이 친환경 농법을 통해 생산된 안전한 농산물을 원한다는 것을 생산자들이 알아 유기농업 확산에 기여한다. 토박이먹거리는 이렇게 지속가능한 미래 농업문명의 한 비전으로 각인되고 있다.

농업문명 전환운동, 시민이 이끈다

윤 교수는 농업문명의 전환은 지도계층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농업문명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힘은 모두 시민들로부터 비롯됐고 여전히 그들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이나 토박이먹거리 운동 말고도 슬로푸드•시티운동, 공정무역, 도시농업 등의 새로운 움직임들이 시민들을 중심으로 계속되는 한 미래는 여전히 기대할만하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시대의 농업문명과 인류문명이 반지구환경적이고 반인간적이라면 그것은 영원할 수 없고 또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인류문명과 농업문명이 지속된다면 지구환경이 피폐해지고 인류는 점차 비인간화할 것이기 때문이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현재의 인류문명과 농업문명에 대한 성찰에 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인류문명을 결정짓는 농업문명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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