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보도실습] 단양 대강양조장 제조 체험기

옛사람들은 계절별로 술을 잘 마시는 법을 꼽아보곤 했다. 봄 술은 따뜻한 봄 기운과 함께 마시고, 여름 술은 누대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신다. 가을 술은 조각배를 띄워 뱃놀이 하며 마시고 겨울 술은 눈 오는 날 따뜻한 집에서 설경을 보며 마신다. 문득 옛사람들의 풍류를 흉내 내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충북 단양이라면 지금도 그것이 가능하다. 봄에는 소백산의 고운 철쭉을 보며, 여름에는 상선암∙중선암 같은 천연누대 위에서 시원한 계곡 바람을 맞으며, 가을에는 옥순봉∙구담봉 같은 천연병풍을 두른 청풍호에서 뱃놀이를 하며, 겨울에는 소백산 부드러운 능선마다 핀 눈꽃을 보며 좋은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막 걸러서 탄생한 술 ‘막걸리’

단양군 대강면에는 100년 전통의 술도가, 대강양조장이 있다. 이 양조장은 올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전통주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기획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지난달 16일 대강양조장에서 SNS 기자단으로 뽑힌 파워블로거 30여명과 함께 막걸리 만들기 체험을 했다.

▲ 막걸리를 거르고 있는 체험단. ⓒ 안형준

“누룩을 쇠절구로 곱게 빻은 다음 잘 식은 고두밥에 섞어주세요. 비율은 밥이 10이면 누룩은 1이면 됩니다. 그리고 누룩량만큼 솔잎도 넣어 함께 버무려 주세요. 제가 어제 소백산에서 꺾어온 솔잎인데 이걸 넣으면 향이 좋아지고 천연방부제 역할도 합니다.”

대강양조장 조재구(48) 대표는 이날 직접 강연과 함께 막걸리 빚는 시범을 보였다. 참가자들도 모두 소매를 걷어붙이고 조 대표의 설명에 따라 먼저 밑술을 만들었다. 쌀과 누룩 범벅과 물을 1:1.2 비율로 섞어 항아리에 부었다. 이어서 조 대표가 이미 열흘의 숙성기간을 거쳐 잘 익은 막걸리 원주 세 동이를 내왔고 술 거르기가 시작됐다.

막걸리 원주를 체에 막 걸러내면 말 그대로 ‘막걸리’가 탄생한다. 큰 대야 위에 나무 지지대를 받친 뒤 그 위에 체를 올린다. 체에 막걸리 원액을 부은 다음 손으로 꾹꾹 눌러주니 뽀얀 막걸리가 뚝뚝 떨어진다. 갓 거른 막걸리에서는 바닐라향이 난다. 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에는 효모 영양분이 듬뿍 남아있어 팩으로 쓰기에 손색없다는 조 대표의 말에 이를 챙기는 여자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막걸리 시식회에서 손수 거른 막걸리를 단양 특산품인 육쪽마늘 튀김을 안주 삼아 마시는 맛은 최고였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김진혁(32)씨는 “막걸리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보니 특히 효모의 작용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주나 맥주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고,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은 사건 때문에 이미지가 별로여서 그동안 잘 마시지 않았는데, 만드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보니 신선하고 맛있는 술인 것 같다”며 얼굴에 취기가 오를 정도로 막걸리잔을 연거푸 기울였다.

막걸리 맛의 비결은 90년 된 ‘숨 쉬는 항아리’

막걸리 만들기 체험을 마친 일행은 발효실로 향했다. 평소 외부에 개방하지 않는 발효실을 직접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발효실에는 어른 한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항아리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항아리마다 술 익어가는 소리가 한창이다. 거품이 표면 위로 올라와서 터지는 소리들이 합주를 하는 것 같았다.

▲ 항아리 속에서 끓고 있는 막걸리 원주는 '절대'라는 나무 막대기로 가끔 저어주어야 한다. ⓒ 안형준

“항아리가 30개 정도 있는데 대부분 90살이 넘었어요. 술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스테인리스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항아리만 사용하는 것이 대강양조장의 원칙입니다. 스테인리스는 온도변화가 심한 반면 항아리는 숨을 쉬니 온도 변화가 적어요. 추울 때는 따뜻하게 보온해주고 더울 때는 서늘하게 식혀줘서 효모가 좋아하는 온도를 유지해줘요. 온도가 일정하다 보니 스테인리스를 쓰는 것보다 폐기율도 낮죠. 또 황토가 자연 친화적이잖아요.”

조 대표가 체험단에게 막걸리 항아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항아리 속 공기에서 효모의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효모가 당분을 먹고 내뱉는 것이 알코올이다. 이때 이산화탄소와 열이 발생한다. 어쩌면 술은 ‘익는다’는 표현보다 ‘끓는다’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 효모가 번식하기 좋은 최적의 온도는 27도이고 세균이 번식하기 시작하는 온도는 37도이다. 이 때문에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막걸리 발효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 조 대표는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나무로 만든 ‘절대’로 끓고 있는 술을 저어 열을 식혀준다. ‘절대’는 선대 때부터 사용해온 건데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위생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식약처에서는 막걸리를 발효시킬 때 항아리를 못 쓰게 하고 나무 ‘절대’도 못 쓰게 해요. 위생상 이유라고 공무원들은 말하는데 그러면 프랑스의 와인이나 일본의 사케도 다 스테인리스 통에서 숙성해야 하는 건가요? 와인이 오크통에서 숙성돼 특유의 향을 지니듯 막걸리도 숨 쉬는 항아리에서 발효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 전통 방식을 고집합니다.”

대통령이 앉은 자리에서 막걸리 여섯 잔 마신 사연

대강양조장 막걸리는 맛이 좋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양에 왔을 때 앉은 자리에서 ‘오곡 막걸리’ 여섯 잔을 연거푸 마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이후 대강양조장 막걸리는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돼 공식 만찬에 200여회나 사용됐다고 한다. 실제로 이 양조장의 대표상품 ‘소백산 막걸리’를 마셔보니 달착지근하면서 친근한 맛이 혀를 유혹했다.

▲ 대강양조장의 대표상품 '소백산 막걸리'. ⓒ 안형준

‘오곡 막걸리’와 ‘검은콩 막걸리’는 고소한 풍미가 더해져 여자들이 마시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막걸리에는 원래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떫은맛의 다섯 가지 맛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 막걸리 맛도 세월이 흐르며 변해왔다. 해방 후 쌀이 부족하자 정부에서는 막걸리를 쌀 대신 밀가루로 만들게 했다.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 맛은 시금털털했다. 90년대 들어 쌀이 막걸리의 주원료로 복귀하면서 막걸리 맛이 산뜻해졌다. 여기에 올리고당이나 아스파탐(aspartame)같은 감미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막걸리는 좀 더 달고 부드러워졌다.   

“노 전 대통령께서 우리 양조장 막걸리를 참 좋아하셨어요. 거의 매일 청와대에 막걸리가 들어갔죠. 그쪽에서 내일부터 넣지 마세요 하면 외국 가시는구나 했고 내일부터 다시 넣어주세요 하면 한국 돌아오셨구나 했죠. 퇴임하신 뒤에는 봉하 마을로 꾸준히 들어갔어요.”

4대째 내려오는 대강양조장의 역사

▲ 4대째 내려온 가업을 이어받은 조재구 대표. ⓒ 안형준
대강양조장의 역사는 지난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가 주세령을 공포해 가정에서 술 만드는 것이 금지되자 선대가 충주에서 양조장을 창업했다. 1979년 충주 소태양조장이 지금의 단양 대강양조장으로 이전했고, 1988년 소백산 동동주가 개발되어 상표로 정착했다.

“단양은 충청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험한 죽령을 넘기 전에 하룻밤 쉬어가는 지역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주막거리가 형성되고 맛 좋은 동동주로 발전하게 됐죠. 또 산세가 험하다 보니 도적도 많았어요. 옛사람들은 소백산 산신의 도움을 받아 도적을 잡는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매년 단양, 풍기, 영춘 군수가 모여 소백산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를 지내고 나면 술과 음식을 사람들에게 나눠줘 배불리 먹게 했죠. 단양에 자연스럽게 술 문화가 꽃피게 되었죠.”

대강양조장의 일반 막걸리는 정부미를 공급받아 국산 쌀로 만들고 프리미엄 막걸리인 햅쌀누보는 제천에서 재배한 햅쌀로만 빚는다. 누룩은 국산으로 쓰며 물은 산삼이 썩어 나오는 물이란 별명을 가진 소백산 탄산수를 사용한다. 여기에 대강양조장의 4대째 이어 내려오는 전통이 더해진다. 조대표의 부친 조국환씨는 사범학교 졸업 후 6년간 교직에 있다가 양조장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었다.

조재구 대표 또한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인 한진중공업에서 9년간 근무해 과장까지 올라갔지만 '언젠가는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아버지 일을 이어받았다. 좋은 물, 국산 누룩과 쌀, 천혜의 자연환경, 유서 깊은 항아리에 4대째 이어지는 장인의 마음이 더해져 빚어내는 막걸리의 맛은 인간의 덕일까, 아니면 자연의 덕일까? 조대표의 아들 또한 가업을 이을 예정이라니 5대째 이어질 막걸리의 맛이 더욱 기대된다.

다섯 가지 덕을 가진 막걸리의 효능

막걸리는 술이면서 밥이다. 고된 농사일에 주린 배를 채워주던 농주이자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던 친구였다. 1962년 경제개발과 함께 노동량이 증가하면서 막걸리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1970대 들어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카바이드 막걸리'라 불리는 불량 막걸리가 유통되면서 비위생적이고 숙취가 심한 저가 술로 인식됐다. 때마침 화이트칼라와 여성의 마음을 얻은 맥주와 소주가 국민주 자리를 차지하며 막걸리 소비량은 지난 1990년대까지 꾸준히 줄었다. 2000년대 들어 웰빙 바람과 함께 낮은 도수, 풍부한 유산균, 살아있는 효모 등 여러 장점을 가진 막걸리가 다시 주목 받았지만 옛 영화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막걸리를 빚는 데 필수재료인 누룩은 사실 ‘신국(神麴)’이라는 한약재이기도 하다. 신국은 성질이 따뜻해 비장과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곡식을 잘 소화하도록 도와준다. 주로 체했거나 설사를 할 때 사용되며 다른 약의 흡수를 돕는 기능도 한다. 누룩으로 빚은 신국주(神麴酒)도 동의보감에 등장한다. 신국주는 주로 관절을 다치거나 접질려 생긴 통증을 치료한다. 막걸리는 쌀의 영양분을 그대로 담고 있어 암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효모가 살아있는 생 막걸리는 농축액을 암세포에 투여한 결과 암세포 증식억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밖에도 혈중 지질농도 감소와 고혈압∙당뇨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성과가 발표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유달리 술을 즐겼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국선생전(麴先生傳)’에서 “우울하던 임금도 성(聖·청주)이 들어와 뵈면 비로소 크게 웃었다”며 술을 찬양했다.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고온다습한 농경문화가 발달했던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곡물을 이용해서 술을 만들었는데 쌀과 누룩, 물을 열흘쯤 발효시켜 마셨던 막걸리는 농민의 오랜 벗이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정여창은 “술은 노인의 젖이다, 곡식으로 만들었으니 마땅히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했다. 조상들은 배고플 때 허기를 면하게 하고, 심하게 취하지 않게 하고, 기운을 돋워주며, 추위를 덜어주고, 마음을 너그럽게 해준다는 막걸리의 오덕(五德)을 칭송하기도 했다. 을씨년스런 초겨울, 창밖에 눈이 내리면 더욱 정취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정다운 사람과 만나 막걸리의 오덕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지역∙농업보도실습]은 1학기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함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지역 이슈와 농업•농촌 문제에 대한 기자•PD 지망생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신설한 강좌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프로그램은 지역∙농촌 현장실습과 여행에 동참하는 교수가 현장에서 취재와 기사 틀짜기를 지도하고 나중에 첨삭까지 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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