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첨삭후기: 생활에서 글감을 잡으라

▲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나라와 직장을 옮겨 다니면 깨닫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이 마흔일곱에 <한겨레>에 사표를 내고 영국으로 유학 가서 떠오른 것은 타고난 내 직업이 기자가 아니라 목수나 농부였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글은 마감 날짜나 시각이 임박하면 마지못해 쓴 게 대부분인데,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들고 텃밭과 정원을 가꾸는 일은 새벽에 시작하면 깜깜해질 때까지 계속해도 전혀 지겹지 않았다.

처자식 넷과 함께 장학금도 없이 떠난 유학이었으니 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 첫해 집세로 2천여 만원을 날리고 나니 비상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유학기간을 5~6년으로 잡고 보니 집세로 집을 사서 버티는 게 낫겠다는 계산이 섰다. 유학비자로는 취업이 안 되니 할 수 있는 일은 하숙을 치는 것밖에 없었다. 케임브리지 달동네의 작고 허술한 집을 사서 방을 늘리고 하숙을 치기로 했다. 증개축 설계도는 직접 그렸다. 쓸쓸한 북유럽의 겨울이 싫어 새로 낸 거실 마루에는 온돌용 파이프를 깔았는데 영국에는 온돌 개념이 없으니 시청에서 건축허가를 따내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어려운 공사에는 기술자나 인부를 쓸 수밖에 없었지만 워낙 인건비가 비싸 거의 모든 일을 우리 부부가 해냈다. 영국은 직접 집을 수리하거나 가구를 만드는 주거문화가 발달해 ‘건축업자’(Builder) 등록을 하니 자재를 아주 싸게 살 수 있었다. 싱크대를 거실에 맞게 자르고 조립하는 일도 직접 했다. 가구 만드는 일은 실내에서도 가능해 밤을 꼬박 샌 적이 많았다. 스스로 놀라고 감탄한 것은 내 손이 목수, 미장이, 도배사가 하는 일에 익숙해지는 속도였다. 백면서생인 줄 알았는데 내 손에 이런 재능이 숨어있었다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 힘은 한국사회로 복귀하는 것조차 불투명한 처지에서 우리 부부의 노동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었다. 내가 지은 집과 내가 만든 가구를 우리 가족이 사용한다는 만족감이 '일 집착'과 지극정성을 이끌어냈다. 대량생산체제에서 하나의 조립기계가 되어 남이 쓸 물건이나 만드는 이른바 ‘노동의 소외’ 문제가 일어날 틈이 없었다.

케임브리지의 ‘텃밭 가꾸기 모임’(Garden Allotment Society)에 가입했는데, 자기가 먹을 채소를 가꾸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케임브리지대 교수들도 늦은 오후가 되면 대개 부부가 함께 텃밭에 나타나 그날 먹을 오이나 완두콩 따위를 따가곤 했다.

잠깐 유학시절을 회고하며 ‘노동의 소외’ 문제까지 건드려보았지만, ‘일’과 ‘밥’은 확장 가능성이 무한한 제시어다.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하면서 왜 인간이 소외되는지, 영국 낭만파 시인 셸리가 꿰뚫어보았다. 

그대가 찾아낸 부를 남이 간직한다
그대가 짜낸 옷을 남이 입는다
그대가 벼른 무기를 남이 지닌다

노동자와 노동의 결과물이 분리되면서 인간의 소외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실은 우리 천재시인 허난설헌의 생각이 한참 앞섰다.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허난설헌은 가난한 노처녀를 위한 노래(貧女吟)를 읊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당대의 기자가 아닐 수 없다.

용모인들 남에게 떨어지리오
바느질 길쌈 솜씨 모두 좋은데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탓에
중매 할미 모두 나를 몰라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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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에는 한 필 베가 짜였는데
뉘 집 아씨 시집갈 때 옷감 되려나
손으로 가위 잡고 가위질하면
추운 밤 열 손가락 곱아오는데
남 위해 시집갈 옷 짜고 있건만
자기는 해마다 홀로 산다네

여류시인이 쓰잘데없는 음풍농월이나, 페미니즘을 넘어, 노동의 소외 문제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사회현실을 맞닥뜨린 실천적 지식인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옥스퍼드 출신 셸리의 무미건조한 시를 가정교육만 받은 우리 규수의 감수성이 압도한다.

‘일’과 ‘밥’을 각각 또는 하나로 엮어서 써도 좋다고 했는데 제시어의 결합을 시도한 것은 한 편도 없었다. 그래도 하나의 제시어를 오늘의 현실 속으로 끌고 들어가 자기 목소리로 증폭해내는 솜씨를 보인 글들이 꽤 있었다. 수상작으로 뽑히지 않은 글 중에도 아까운 글이 여럿 있었는데, 뽑는 이의 취향 정도로 돌려버리고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원으로 뽑은 <분노로부터 시작하라>는 남의 글을 한 줄도 인용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주고받은 말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솜씨가 탁월했다. 일상에 매몰돼 제 밥그릇도 찾아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래 맞아’ 하면서 공감과 분노를 표출할 것만 같다.

차상으로 뽑은 <우리 모두는 밥풀떼기다>는 김소진의 소설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 나오는 ‘밥풀떼기’의 운명을 소설 밖으로 끌어낸 발상이 참신했다. ‘밥’이 되지 못하는 ‘밥풀떼기’는 지난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젊은이들의 지탄을 받은 노인들 처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칼럼들과 마찬가지로 두 칼럼에도 흠이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논객들조차 대부분 헤어나지 못하는 한자말∙일어∙영어 중독 증세가 역시 심했다.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어려운 한자말을 쓰고 일본어나 영어 표현법을 거리낌없이 썼다. 예를 들어 ‘유의미한 개선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야’는 ‘의미 있는 개선 방향을 고민해야’라고 쓰면 충분할 터이다. 일본어 번역투인 ‘~의’ 조사를 남발하거나 영어 번역투인 과거완료 시제를 습관적으로 쓰는 것도 거슬렸다.

‘들’이라는 복수접미사를 남발하는 것도 영어 번역투이다. 우리말은 맥락으로 보아 복수임을 알 수 있을 때는 굳이 ‘들’을 붙이지 않는 효율적 언어다. 형용사와 부사를 남발하는 것도 어느 글에서나 발견되는 결함이다.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이는 적어도 완벽을 추구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리라.

일제 때 <문장강화>를 쓴 이태준은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고 했다. 생텍쥐페리는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우리말의 한자말 중독에 대해서는 내가 <경향신문>에 쓴 시민편집인 칼럼, <한글신문의 ‘한자 중독’∙∙∙독립신문을 배워라>를 참고하기 바란다. 앞으로 일어와 영어 중독, 그리고 우리 말에 스며든 비민주적 요소 등 언어의 공공성 문제를 차례로 짚어보려고 한다.

** 아래 붙인 글은 ‘밥’을 제시어로 내가 한번 써본 것이다. 기고용이 아니라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글감을 제공하려고 내 개인DB를 뒤져 쓴 것이니 캠프 참가자와 독자들도 공유하기 바란다.

 

'밥'의 불균형에 대하여

“내가 니 시다바리가?” 영화 <친구>에 나오는 이 대사는 우리말로도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 있다. “내가 니 밥이가?” 이때 ‘밥’은 하찮은 존재다. 남에게 눌려 지내거나 이용만 당하는 사람이다. 밥뿐 아니라 밥을 담는 그릇도 싸잡아 비하된다. ‘밥통’이란 말은 제 구실 못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인다. 싫어하는 사람을 말할 때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 사람 밥맛이야.”

그러나 세상에 밥처럼 소중한 것이 있을까?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게 ‘밥맛’이다. 사실 우리는 ‘밥통’을 챙기기 위해 일생 동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다.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욕하면서도 부러워하는 게 요즘 세태다. 공기나 물처럼 밥도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하찮게 생각하는 오류에 빠진 것이다.

밥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충족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러나 ‘풍요의 시대’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게 ‘밥’ 문제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오히려 굶어 죽는 사례가 드물었다. “굶어 죽기는 정승 하기보다 어렵다.” “산 사람 목구멍에 거미줄 치랴.” “다 제 먹을 것 타고난다.” 이런 속담 속에는 적어도 먹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여지가 컸음을 말해준다. 또 공동체적 정신이 굶는 이웃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옛말이 되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도 실은 ‘밥’ 문제에서 비롯된다. 2010년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고, 자살률은 1위다. 반면 출산율은 최하위다. ‘밥통’을 지키기 위해 뼈빠지게 일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현실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다. 저출산은 바로 밥벌이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밥’ 문제의 근원은 불균형에 있다. 한쪽에서는 못 먹어 굶어 죽고, 한쪽에서는 많이 먹어 탈이 난다. 기아와 영양실조는 물론이고, 비만과 당뇨 등 거의 모든 현대병이 영양 불균형에서 빚어진다.

<과식의 종말>에서 케슬러는 사람들이 탐욕스러운 식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이면에 식품업계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식품회사들은 식품에 설탕, 지방, 소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거나 소비자가 알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 고당분, 고지방, 고염분 음식은 우리 뇌를 자극하고, 그런 음식을 더욱 더 찾게 만든다. 비만은 개인 습관보다 식품산업이 부추긴 측면이 강하다.

<육식의 종말>에서 리프킨은 후진국의 기아가 선진국의 과다한 육식 탓이라고 지적한다. 소에게 먹이기 위한 곡물사료 재배 탓에 10억 명 이상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1/3을 가축이 먹어 치움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인다.

몇 안 되는 다국적 곡물회사들이 세계 곡물시장을 쥐고 흔드는 것도 기아와 남북간 격차의 요인이다. 그들은 덤핑이나 매점매석 전략을 수시로 구사해 이윤극대화를 노린다. 반면 에티오피아나 아이티 같은 가난한 나라의 농민들은 기아에 시달리게 된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들은 세계 식량의 상당량을 공급하는 농업국이면서도 곡물회사들 농간에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밥’의 불균형이 온갖 사회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소득 양극화, 곧 ‘밥벌이의 양극화’는 소비 양극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양극화는 경제성장에도 장애가 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를 계층간 대립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세계에서 명품을 가장 선호하는 국민인 동시에, 애들 무상급식 문제로 갑론을박을 벌이는 수준이다. ‘밥’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밥’을 둘러싼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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