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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엄마'의 '엄마'는 피곤해

기사승인 2013.10.14  22: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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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대한민국 노인보고서] 황혼육아에 빼앗긴 자유 <하>

   
 
맞벌이가 필수가 되다시피 했지만 아이 맡길 곳은 마땅치 않은 사회. 그래서 ‘황혼의 낭만’을 즐겨야 할 나이에 많은 조부모들이 손주를 맡아 키우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심신의 노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힘겨운 돌봄노동을 감당하느라 건강은 나빠지고 아이에 매여 여가를 뺏기면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느끼기도 한다. 양육방식 등을 놓고 조부모와 부모세대가 갈등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젊은 세대와 ‘황혼육아’ 부담을 느끼는 노년 세대 모두에게 우리사회의 보육환경의 개선은 시급하고도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어린이집을 신축하거나 기존 시설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매년 150개소씩 믿을 수 있는 국공립보육시설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도 현재 9% 내외인 국공립 어린이집의 수용률을 각각 40%와 50%까지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민간어린이집에 비해 안전관리나 교육의 질적 측면에서 더 믿을 만하고 경제적 부담도 덜한 국공립어린이집을 대거 확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ㆍ공립 어린이집 대기자수 갈수록 늘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윤인순(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국공립어린이집 대기자 현황’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대기자수는 18만1017명을 기록했다. 이는 1년 전보다 2만여 명 증가한 수치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한 공립어린이집의 경우 정원이 45명에 불과하지만 현재 대기자수는 591명이다. 특히 0세 반은 대기자가 271명이나 된다.

   
▲ 서울시 동대문구 모 공립어린이집 대기자 현황. ⓒ 서울시 보육포털서비스 홈페이지

국공립어린이집에 이렇게 대기자가 몰리는 이유는 일부 민간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가 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탓도 크다. 지난해 인터넷을 들끓게 했던 광주 어린이집 16개월 영아 화상 사건, 지난 9월 문화방송(MBC) <시사매거진 2580>에 보도된 세종시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대다수의 민간어린이집은 안전위생이나 교육의 질적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부 시설에서 안전이나 위생상의 관리 소홀, 아동학대 등 불미스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민간어린이집 전체의 신뢰도가 크게 흔들린다.

2009년 보건복지부 보육실태조사에서 학부모들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는 이유로 저렴한 가격(52.2%)과 신뢰성(33.6%)을 꼽았다. 박근혜 정부는 내년예산안에서 당초의 약속과 달리 국공립어린이집 확충계획을 150개소에서 100개소로 축소함으로써 학부모들을 일단 실망시켰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초의 공약을 이행해야 하며, 민간어린이집에 대해서도 안전 및 위생관리와 보육의 질을 높이도록 광범위한 실태조사와 관리감독을 경제적 지원과 함께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과 육아 병행 가능한 직장문화 절실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개선하는 것과 함께 또 하나의 시급한 과제는 일과 가정을 양립시킬 수 있도록 직장문화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출산 전후 90일의 산전후휴가, 출산 이후 1년간의 육아 휴직이 보장되어 있지만 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은 흔치 않다. 일을 대신 맡아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노골적으로 눈치를 주거나,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자리를 뺏길까봐 당사자가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소모(61·서울 서초동)씨는 “며느리가 첫째를 출산했을 때는 1년의 출산·육아 휴직을 사용했지만, 둘째를 낳고는 출산 휴가가 끝난 후 바로 직장에 복귀했다”며 “법적으로 딱 지키게 못을 박아 놓던지 해야지, 이렇게 해서는 눈치 보여서 누가 애를 낳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맞벌이 주부의 경우 불규칙한 퇴근시간, 잦은 야근과 회식 등의 직장문화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보육시설도 드물고, 아이를 핑계로 회사 행사에 자꾸 빠지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가장 긴 수준인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평균노동시간을 줄이고 정시출퇴근을 정착시키는 등 근로환경의 선진화를 이루는 것이 육아고민을 해결하는 조건의 하나인 셈이다. 

   
▲ 많은 워킹맘(일하는 엄마)들이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신뢰도 높은 전문 베이비시터 육성'을 꼽았다. ⓒ 삼성 경제연구소 예지은 연구원

‘전문베이비시터의 육성’도 황혼육아 시대의 숙원사항 중 하나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맞벌이 부부와 손주양육을 맡은 노인들은 가장 희망하는 보육지원 정책으로 ‘방문돌보미 지원 확대’를 꼽았다. 할머니가 손주를 키워주거나 어린이집 등에 보내더라도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아이가 아플 때, 갑작스런 야근이나 회식 등으로 제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을 때 등 돌발적인 상황에서 믿고 아이를 맡길만한 인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0년 1300여명의 워킹맘(맞벌이주부)을 대상으로 ‘직장과 육아를 양립하기 위한 정책’을 설문조사했을 때도 응답자의 41.4%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문 베이비시터(아기돌보미)의 육성’을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 현재 보건복지부가 연 1092억원을 들여 ‘아이돌봄사업’을 시행하고 있고 서울시의 경우도 구청별로 60~70명의 방문돌보미가 활동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돌보미들이 정해진 가정을 고정적으로 방문하다보니 맞벌이 가정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갑작스런 수요’에는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손주 돌보는 할머니에 대한 지원도 필요

서울 서초구청이 시행하고 있는 ‘손주돌보미’ 사업은 자신의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들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전문보육 인력으로 육성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만 15개월 미만의 손주를 양육하는 70세 이하의 할머니가 25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시간당 6000원을 월 40시간 (최대 24만원)까지 지원해 준다. 할머니들은 교육기간 동안 ‘아기 씻기는 법’, ‘베이비 마사지’ 등 아기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습득한다. 지난 2011년 사업을 시작한 후 올해 8월까지 246명이 교육을 이수했는데, 평균 경쟁률이 3:1에 이를 만큼 인기가 높다. 해당 과정을 이수한 할머니들은 자신의 손주 양육을 마친 후 다른 가정의 ‘방문 돌보미’로도 활동할 수 있다.

   
▲ 서초구청에서 제공하는 '손주 돌보미 교육'에 참가 중인 할머니들. 동요와 율동을 배우고 있다. ⓒ 김윤정

그러나 이 ‘손주돌보미’사업을 여성가족부가 연 400억을 들여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하자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것은 다른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일 뿐인데, 정부가 아예 영유아 보육책임을 조부모에게 떠맡기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같은 정책이 전국적으로 시행된다면 조부모의 손주 양육을 당연히 여기는 풍토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손주돌보미’ 사업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러나 황혼육아를 맡고 있는 노년층에 대해 정보제공, 경제적 지원, 동료집단간 소통 등을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를 잘 살려나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황혼육아의 부담과 고통을 덜기 위해 보육복지를 강화하는 일은 ‘국가적 위기’로 까지 꼽히고 있는 우리사회의 저출산문제와 여성직장인의 경력 단절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해결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일과 직결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보육정책이면서 노년 세대를 위한 일자리 정책이 될 수도 있으므로 세심한 설계와 적극적인 추진이 필요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예지은 수석연구원은 ‘2010 워킹맘의 실태와 기업의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보육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한두 가지의 정부 정책이나 기업의 제도로 해결 할 수 없으며 기업, 정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유기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맞이한 우리나라 노인은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다. 가난은 질병과 외로움 등 노년의 고통을 증폭시킨다.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지하철택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노인 등 가난한 노년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사설 요양병원에서 학대 받는 치매노인, 골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고독사 등 비극적 현장도 소리 없이 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청년의 ‘가족’이자 ‘내일’인 노인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의 현실을 생생히 드러내면서 ‘노인복지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한 과제를 점검하고, 독자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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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기자 kim334@indian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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