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풀꽃’의 시인 나태주 공주문화원장

 “다른 시 좋은 거 많은데 희한해......”

나태주(66·공주문화원장) 시인은 그의 시 ‘풀꽃’ 얘기가 나오자 천진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43년간 시골 초등학교에서 가르친 선생님다운 순박한 웃음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달랑 세 줄의 이 짧은 시는 2005년 발간된 그의 스물여덟번째 시집 <쬐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에 수록됐다가 2009년 푸른길출판사가 낸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됐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서울 종로의 교보문고 건물 외벽에 대형 현수막 글귀로 걸려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1월에는 한국방송(KBS)드라마 <학교2013>의 주인공 고남순(이종석 분)이 문제를 일으켜 강제전학 되려는 학우를 위해 이 시를 낭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 시인은 지난 8일과 5월 22일 두 차례 가진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를 쓸 때 종종 아이들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털어 놓았다.

▲ 나태주(66·공주문화원장) 시인은 시가 문어체(글말체)에서 구어체(입말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 박준용

‘풀꽃’은 그가 충남 공주시(현 세종시)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특기적성활동 시간에 그림을 가르치던 아이들 덕에 쓰게 됐다. 나 시인은 사물을 관찰해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보면 사랑스러워. 너희도 그래” 하고 다독거렸다. 무심코 말한 뒤 속으로 곱씹다 적어뒀다. 그게 시가 됐다.

그의 시는 슬픈 일상에서도 태어난다. 지난해 대구시에서 한 중학생이 학우들의 상습적 괴롭힘 탓에 자살한 사건을 보고 ‘골목길’을 썼다. ‘해가 많이 짧아졌소/ 문득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가 나를 놀라게 하오’로 시작되는 시다.

좋은 시는 ‘허술한 집’

나 시인은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 노래가 되고 젊은이에게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시’라는 괴테의 말로 자신의 시세계를 설명했다. 그는 젊은이와 노년층이 모두 음미할 수 있는 단순한 시를 추구한다. 길고 난해하면 대중에게 전달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상의 ‘꽃자리’(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괴테의 ‘들장미’(소년은 보았네/ 들에 핀 한 떨기 장미를…)같은 시를 좋은 시로 꼽는다. 

“좋은 시는 민요까지 도달해야 해요. 제일 좋은 시는 민요예요. 민중, 민초가 편하게 쓰는 것이죠. 아리랑처럼 막 불러도 되는 것이 민요예요. (시가) 민요로 가려면 중요한 것은 글말체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입말체로 해야 해요. 말하듯이 써야하죠. 본래 시는 입말체로 쓰는 거예요. (요즘) 문학창작교육이 시를 문어체로 쓰는 쪽으로 가 있어 문제예요.”

하지만 그의 시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진 않았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때만해도 그는 ‘꽉 짜인’ 시를 썼다. 나 시인의 등단작품 ‘대숲에 서서’는 심사위원으로부터 구조가 탄탄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나 시인은 그러다 90년대 들어 하이쿠(일본의 짧은 정형시), 시조 등을 자주 접하며 편한 시에 매력을 느꼈다. 갈수록 시가 난해하고 어려워지는 데 대한 반발심도 작용했다.

“요즘 시가 신경질적으로 날카로워졌어요. 시가 굵은 걸 이야기해야하는데 작은 것만 이야기 하는 거죠. 아주 작은 기교, 레토릭(수사)에만 집중해요. 그런 시는 대중이 접근 안하려고 해요. 담을 제대로 쌓고 제대로 만든 집은 들어갈 집이 아니라 생각하는 거죠. 나는 허술한 시를 쓰고 싶어요.” 

▲ 나 시인은 항상 수첩을 지니고 다니며 떠오른 시상을 기록해 두거나 풍경을 스케치 한다.ⓒ 박준용

잊히고 싶지 않다

시인으로서 인정받고 살아온 편이지만 그의 삶에도 위기가 있었다.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2007년 치사율 95%라는 ‘범발성 복막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1주일 내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막에 염증이 번져 배가 찢어질 듯했고 고통 때문에 물도 못 마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가 닳을 정도로 악물면서 어려운 치료과정을 견뎌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회복해 퇴원했다. 사선을 넘나들면서 그를 붙잡았던 생각은 “(시인으로서) 잊히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여성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은 ‘잊혀진  여자’라는 시에서 “죽은 여자보다 더 가엾은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고 읊조렸다. 잊히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이다. 나 시인도 독자에게 잊히지 않는 시인이고 싶다고 한다.

“나는 학파, 학연, 이념, 아무 것도 없고 시만 썼어요. 그래서 시집을 많이 냈는지도 모르죠. 잊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허기 들린 사람처럼 말이죠.”

삶은 산책이다

‘허기 들린 것처럼’ 시를 쓰는 그의 왕성한 창작활동은 33권의 시집이라는 결실을 냈고 ‘너도 그렇다’, ‘풀꽃향기’, ‘멀리서 빈다’ 등 독자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을 낳았다. ‘풀꽃’ 외에 ‘바다에서 오는 버스’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하지만 그는 악착같이 알리기 위해 시를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산책처럼, 목적 없이 걷는 발걸음처럼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되도록 천천히 걸으며 많은 것을 보고 시에 담으려고 한다. 고은 시인이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이라고 한 것처럼.

나 시인은 시 ‘산책’에서 ‘마음 가는 대로 걷는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백합꽃 향기 너무 진하여 저녁때/대문이 절로 열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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