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대한민국 노인보고서] 고령 일자리의 서글픈 현실 <상>

 
서울지하철 을지로3가역 승강장 한쪽 구석의 긴 의자. 지하철 택배원 조모(72)씨는 ‘콜(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시간째 대기 중이다. 오후 3시 30분, 조씨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들어왔다. ‘종로3가역에서 OO텍스타일 서류 받아서 일산 정발산역 지점으로 전달’. 환승이 쉬운 을지로3가역과 종로3가역에서 주로 대기하는 조씨에게 이번에는 비교적 쉬운 주문이 들어온 셈이다.

  

▲ 조씨가 지하철 역에서 전화로 주문을 접수하고 있다. ⓒ 최정윤

지하철 무임승차 덕에 택배 하는 노인들

조씨에게 일을 주는 택배회사는 서류 배달이 전문이다. 조씨는 하루 평균 서너 건의 배달 주문을 처리한다. 간혹 의뢰인의 가족인 척 하며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다 주거나 여권을 잊고 공항에 간 승객에게 여권을 가져다주는 일을 맡기도 한다. 65세 이상 노인은 지하철승차가 무료이기 때문에 일을 맡기는 회사나 노인택배원이나 교통비 부담이 없는 게 강점이다. 간혹 중간에 버스를 타야하는 경우는 회사에서 회당 1000원을 지급하는데, 번거롭고 배달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워 달갑지 않다.

 

▲ 조씨가 핸드폰에 문자로 들어온 배달주소를 옮겨적고 있다. ⓒ 최정윤

처음 가는 길을 물어물어 가야할 때도 많지만 젊은이들처럼 스마트폰의 지도 등을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부근 부동산업소를 찾아가 물어보면 된다는 등의 노하우가 있어 경험이 쌓일수록 길을 잘 찾는 편이다. 그래도 가끔은 의뢰인이 주소를 부정확하게 알려줘 길을 헤맬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다.

하루 평균 네 건의 배달을 처리하면 한 건당 평균 6440원, 하루 평균 2만4700원 정도를 번다. 점심으로 삼각 김밥 두 개와 우유 하나를 먹으면 3000원이 나가니 하루 2만원 남짓, 월 60만원 가량의 벌이인 셈이다. 하루 일을 다 마치고 나면 오후 5시에서 8시 사이가 된다. 점심을 대충 때웠기 때문에 집에서 저녁상을 받을 무렵이면 몹시 허기가 진다.

조씨는 젊은 시절 대구에서 공기업에 다녔고 부장까지 승진했지만 1998년 외환위기로 뒤숭숭하던 해에 퇴직을 한 후 시련의 세월을 보내게 됐다고 한다. 2억 2000만원 가량의  퇴직금으로 처음에 건축자재 사업을 시작했는데 준비 부족으로 1년 만에 망했다. 재기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와 스포츠용품 사업에 손을 댔는데 이조차 크게 실패한 뒤 과거의 기억을 상당부분 잃어버리는 증상을 겪게됐다. 의사는 우울증 탓이라고 진단했다.

처방받은 우울증 약을 열심히 복용한 뒤 조금씩 기억이 돌아왔지만 아직도 완벽하진 않다고 한다. 최근에 용기를 내 대구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보낸 30여 년의 기억이 여전히 흐릿했다. 예전의 조씨는 꽤나 예민한 성격이었는데 기억을 잃은 후에는 무던한 성격으로 변해 두 딸과 아들, 아내 등 가족들이 놀라워한다고 한다.

그는 요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이 그의 취미이자 낙이다. 지난 2010년 택배일과 동시에 시작한 블로그는 하루 평균 방문자가 80명 정도로 그리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에게는 소중한 일과다. 예전에 사업을 준비하면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딴 덕분에 엑셀과 워드 프로그램에 익숙한 편이었는데, 기억을 잃은 후 일부는 다시 공부했다. 엑셀프로그램으로 하루를 정산하고 그날 있었던 일들을 블로그에 기록한다. 입소문을 듣고 방문한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지하철택배를 이용하겠다’는 등의 격려글을 올려 그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몹시 힘들었어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하는 생각에 눈물도 났고요. 매일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니려 애쓰지만 어딘가 내가 머물 곳이 없다는 사실이 힘들기도 합니다. 밥 먹을 식비라도 줬으면 좋겠는데.”

조씨는 지하철택배원 일을 하며 알게 된 동년배 두 사람에게 이 일을 소개시켜줬지만 모두 도중에 그만뒀다고 한다. 1년 이상 견딘 사람이 드물 정도로 지하철 택배일은 육체적으로 고되다. 그래도 그는 “일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며 “나이 먹은 사람이 이거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냐”고 말했다. 같은 회사에서 지하철택배원으로 일하는 동료는 모두 18명인데 그 중에는 ‘영어로 신문을 읽는 게 더 편하다는 서울대 출신 형님’도 있다고 조씨는 말했다.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는 조씨도 만원 지하철에서 앉지도 못한 채 장시간을 가면서 무표정한 사람들과 마주할 때는 몹시 힘들다고 한다. 간혹 같은 택배일을 하는 낯선 노인들과 마주쳤을 때 말을 건네 보기도 하지만 조씨 스스로도 지쳐 있을 때는 그냥 외면하게 된다고.

소음과 먼지, 물줄기 속 세차장 아르바이트 
 
서울 동교동의 한 주유소 세차장에서 일하는 안모(69·서울 망원동)씨는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중구청 토목과와 가로정비과에서 일했다. 퇴직 후 경비원 생활을 하다 24시간 교대근무가 힘에 부쳐 그만두고 마포구청 소개로 세차장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 안씨와 그의 동료가 세차가 완료된 차량이 나오자 재빠르게 물기를 제거하고 있다. ⓒ 이승현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무렵까지, 자동세차기에서 빠져나온 차의 물기를 재빠르게 닦아내는 일을 한다. 동료 유모(70·서울 부암동)씨는 왼쪽 차면을, 그는 오른쪽 차면을 닦는다. 밥 먹는 시간 빼고 꼬박 6시간을 일하면 하루에 300대에서 350대의 차를 닦는다. 주유소에서 5만원 이상 기름을 넣은 차량에 무료로 제공하는 세차 서비스가 있어 차들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의자에 잠시 앉을 틈도 없이, 세차기계의 소음과 먼지, 물방울 속에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이렇게 일주일에 7일을 꼬박 일하고 버는 돈은 한 달에 60만~70만원 정도다. 비가 오면 세차업무가 중단돼 수입이 줄어든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어깨, 허리, 다리 등 안 쑤시는 데가 없었지만 지금은 숙달이 돼서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버는 돈으로 아파트관리비와 공과금 등을 월 20~30만원씩 내고, 팔 부상 등으로 장애인 판정을 받은 아내의 병원비 등을 감당하자면 한달 생활이 빠듯하다. 

퇴직금은 4남매의 학자금융자와 주택대출금 등을 갚는데 다 썼고, 출가한 자녀들도 어린 손주들 키우느라 여유가 없어 생활비 보태달라고 손을 내밀지 못한다. 노령연금을 신청했지만 보유한 아파트가 재산기준에 걸려 못 받는다고 한다. 그는 건강이 받쳐주는 한 계속 이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초소에서 쪽잠, 지하실에서 식사 해결하는 경비원

서울 면목동에 사는 이모(65)씨는 근무지인 서울 자양동의 한 아파트로 오전 5시30분 무렵까지 출근하기 위해 4시 50분쯤 집을 나선다. 교대시간인 6시보다 여유 있게 출근해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뒤 아파트 주변 쓰레기를 치우는 등의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 6시 반쯤 되면 반장이 있는 관리사무소로 아파트 경비원 예닐곱 명이 모여 장부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커피 한 잔씩 마시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담당 동의 장부를 가지고 자신의 일자리로 돌아간다. 초소에서는 폐쇄회로티비(CCTV)를 통해 담당 구역을 점검한 후 꼭대기층인 13층으로 올라간다. 맨 윗층부터 하나씩 내려오면서 각 집마다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여름이라 현관문을 열어 놓는 집들이 많아 수상한 사람이 돌아다니면 주민들이 놀라기 때문에 미리미리 순찰을 도는 것”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 일을 아침과 점심식사 후, 저녁 식사 후 이렇게 총 세 번 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차량들이 순조롭게 오갈 수 있도록 돕는 차량관리가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 매주 일요일마다 실시되는 재활용품 정리를 하고 있다. ⓒ 이승현

매주 일요일은 이 아파트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다. 하루 종일 각 가정에서 분리수거물품을 내 오기 때문에 포대자루를 꽉꽉 눌러 정리해 놓고 새 포대자루로 바꿔 끼우는 일을 반복적으로 한다. 낮 12시에서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고, 저녁 6시부터 7시까지는 저녁식사 시간인데 일요일은 바빠서 한 시간씩을 온전히 쓸 수 없다고 한다. 식사를 짧게 마친 후 바로 재활용품 정리를 해야 한다. 박스는 펼쳐서 따로 구분해 놓고 유리, 스티로폼, 잡종이, 비닐봉투, 페트병 등을 꼼꼼히 분류해 놓는다.

밤에는 다른 동 경비원들과 한 시간씩 교대로 순찰에 나선다. 구역을 나눠 아파트 주변을 돌며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사고는 없는지 살핀다. 밤 12시부터 순찰을 돌면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잠을 잘 수 있지만 그 이후 시간에 순찰을 돌면 쪽잠을 자야해서 피곤하다고 그는 말했다. 24시간 교대 근무하는 아파트경비원의 침대는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초소의 바닥.

“그래도 나는 키가 작아서 여기 다 들어가지, 여기서 자기 힘든 사람도 있어요.”

 

▲ 이씨가 점심, 저녁을 해결하는 어둡고 냄새나는 지하실 공간. ⓒ 이승현

잠자는 곳뿐 아니라 식사하는 곳도 궁색했다. 초소에서는 식사를 할 수 없게 돼 있어 아파트 지하 1층의 좁은 공간을 식당으로 이용하는데, 어둡고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형광등을 밝혀도 썩 밝지 않은 지하실에 낡은 냉장고와 식탁, 밥솥 등이 놓여있었다. 이씨 등 경비원들은 여기서 밥을 지어 각자 집에서 가져 온 반찬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이씨가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2월이다. 그 전에는 어린이대공원에서 경비원으로 1년이 채 못 되게 근무했고, 그 전에는 건설업계에서 형틀목수로 20~30년가량 일했다. 두 아들은 결혼해 분가했다. 이씨는 경비원 월급 111만원과 국민연금 25만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데 부부의 생활비로 부족한 수입은 아니지만 몸이 아파 집에서 요양 중인 아내의 치료비 등으로 늘 빠듯하다. 일주일에 3일 근무하는 그는 쉬는 날 집근처 망우산에 오르는 것이 취미다. 이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60~70대 이후에도 생계를 위해 노동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노인들이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매우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고용률은 28.9%로 OECD국가 중 2위를 차지하며 평균 12.3%보다 16.6%P 높다. 이렇게 고용률 통계에 잡히는 숫자 외에 폐지수집이나 노점, 시간제아르바이트 등 비공식부분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아 실제로 생계를 위해 노동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노인인구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적연금 혜택 받는 노인인구 32% 불과

통계청의 ‘2012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자 중에 취업을 희망하는 노인이 5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취업 희망 고령층이 일하기 원하는 주된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에 되어서‘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나이 들어서까지 일하는 인구가 이처럼 많은 이유는 한 마디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금 등 복지제도가 잘 갖춰지지 못해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우리나라에 노인 근로빈곤층이 많은 이유는 노동시장의 고용불안정성이 높고 노후소득보장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등 일자리의 질이 전반적으로 나빠지면서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 급증했는데 이들은 노후준비를 위한 사회보험에서 제외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노동을 통해 생계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규직 근로자라고 해도 소득의 상당부분을 자녀교육, 주택부금 등으로 쏟아 붓고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소비구조 역시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노후소득 보장제도가 낙후돼, 65세 이상 노인의 공적 연금수급율이 32%에 불과하다. 전체 노인의 67%에게 지급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은 1인당 8만~9만원 정도로 최저한의 생활보장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노인빈곤에 대한 가장 적극적 조치라고 볼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보호대상 노인층은 65세 전체 인구 중 7.1%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중위가구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가구비율)은 2011년 기준 약 45%로 OECD국가 중 부끄러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평균과 비교하면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열악한 근로조건, 건강악화, 부족한 보상, 정서적인 소외 등에도 불구하고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은 우리나라 현실은 연금혜택을 받으며 여행, 봉사활동 등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는 선진복지국가들과 대조적이다. 늘어난 건강수명에 맞춰 더 능력을 펼치기를 원하는 노인들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력이 강화되어야 하는 한편으로, 힘에 부치는 노동 없이도 안락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맞이한 우리나라 노인은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다. 가난은 질병과 외로움 등 노년의 고통을 증폭시킨다.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지하철택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노인 등 가난한 노년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사설 요양병원에서 학대 받는 치매노인, 골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고독사 등 비극적 현장도 소리 없이 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청년의 ‘가족’이자 ‘내일’인 노인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의 현실을 생생히 드러내면서 ‘노인복지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한 과제를 점검하고, 독자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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