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신은정 기자

▲ 신은정 기자
"실질적으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삶의 조건은 인간관계, 일, 여가,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세 분야에서 만족하는 데 있어 절대적 혹은 상대적 부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옥스퍼드대 마이클 아가일 교수가 쓴 <행복의 심리학>의 한 구절이다. 그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수입과 큰 관계없이 행복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3행복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3단계 더 떨어진 27위를 차지했다. 순위를 낮춘 주요항목에 소득이 포함됐고 OECD는 한국 상위20% 소득이 하위20% 소득의 5배인 것에 주목했다. 지수가 한국사회 수입과 행복의 연관성을 입증해준 셈이다. 마이클 교수의 말대로 빈부를 배제한다 해도 한국에서는 일 있는 사람이 꼭 더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90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많은데 일과 생활의 균형지수는 끝에서 두 번째다. 일할수록 여가를 누릴 시간과 인간관계를 즐길 여유가 줄어드는 나라. 왜 나는 이렇게 행복해지기 힘든 나라에 태어난 걸까?

한국사회를 불행하게 만든 한 요인은 노동가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고용률 70% 로드맵’ 발표에 앞서 “시간제 일자리도 좋은 일자리”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며칠 전에는 그런 식의 고용 정책 추진 등이 미흡하다 하여 고용복지수석을 경질했다. 지난해 8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시간제로 일하는 노동자의 92.3%는 고용기간 1년 미만 임시 일용직이고 노동자 65.2%가 10인 미만 영세기업에서 일한다. 일시적이고 계절적인 단순직무 위주여서 임금수준도 낮다. 한 예로 한국정책금융공사 대졸 청년인턴의 월급은 세금 포함 120만원인데 사장은 한 달에 4170만원을 받아간다. 인턴의 노동은 사장이 하는 노동의 1/34 가치밖에 안 된다는 건가? 노동에 대한 폄훼와 노동가치를 평가하는 비합리적 기준은 그동안 나쁜 일자리를 늘린 주범이다.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노동을 교양을 쌓는 밭이자 인간이 발휘하는 기술이라 했다. 그는 “노동은 대상을 그냥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하는 어떤 것으로 바꾸어놓는 행위”라며 노동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했다.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세상의 모든 부는 원천적으로 금이나 은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구입된다”며 노동을 모든 상품에 내는 첫 번째 가격, 원천적 구매대금으로 보았다.

두 사람 견해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노동가치 평가기준을 고쳐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이 사적 경제를 영위하는 데 있어 사회의 기여도를 무시하는 일은 일종의 합법적 약탈을 승인하는 것이며,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창조하고 기여한 것에 대한 사적 ‘탈취’”라 했다. 노동가치 평가에는 개인의 능력뿐 아니라 ‘사회의 기여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는 얼핏 하찮고 간단해 보이는 노동이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노동에 견주어 그 가치가 너무 낮게 매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찮아 보이는 일에는 육체 노동이 많은데 노동자로서는 비슷한 노동시간을 투입해야 할 뿐 아니라 대개 힘겨운 일이기도 하다. 임금을 산정할 때는 노동이 임금으로 환금된 뒤 노동자가 영위할 수 있는 생활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상 ‘평가된 노동가치’는 임금수준과 같고 한국사회에서 수입은 행복수준으로 대치된다.

좋은 일자리가 많은 행복한 사회는 대통령 말처럼 단순한 생각의 전환으로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동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고 그에 걸맞은 임금과 복지가 제공되어야 한다. ‘정의’의 ‘옳을 의(義)’자는 부족한 것을 균등히 나누어 메우는 것과 나(我)의 마음 씀을 양(羊)처럼 착하고 의리 있게 갖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노동의 정의는 노동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고 임금이 타당하게 나눠질 때 실현된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체제에서 우리의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일 때만 대접을 받았다. ‘올해는 일하는 해’ ‘더욱 일하는 해’가 그 해의 국정지표가 된 때도 있었다. 노동의 가치를 운운하는 것은 불온한 사상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노동과 노동의 가치를 온당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을 ‘행복사회’로 들어가게 할 열쇠다. 시대도 한참 바뀌었으니 박 대통령의 노동인식이 아버지 수준을 넘어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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