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대한민국 노인보고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치매 <상>

 
“어르신들이 말씀도 없이 나가 길을 잃을까봐 늘 잠가 놓습니다.”

지난 6월 26일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 노인요양원에 자원봉사자로 간 첫날, 건물입구의 녹색 반투명 유리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밀어도 보고 두드려도 보다가 빨간 버튼을 발견하고 눌렀더니, 40대로 보이는 남자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배회증상을 보이는 치매노인들은 요양보호사가 한 눈을 판 사이에 밖으로 나가버리곤 하는데, 얼마 전에도 이곳 60대 남성 환자가 2킬로미터(km) 떨어진 공단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직원이 찾아낸 일이 있다고 한다. 모두가 가슴을 졸였던 그날 이후 직원들은 ‘문단속’에 더욱 신경을 쓴다고.

빨간 벽돌로 된 3층짜리 요양원 건물은 잔디밭을 'ㄱ자‘ 형태로 감싸고 있었다. 잔디밭 한 구석에 있는 오두막까지 건물과 조화를 이뤄 아늑해 보였다. 하지만 요양원 건물 안은 바깥 풍경과 사뭇 달랐다. 볕이 쨍쨍한 날이었지만 빛이 들어올 창문 하나 없이 침침한 복도를 형광등 몇 개가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노인 두 명은 벽을 보고 정물처럼 앉아 있고 치매인 듯한 70대 여성 노인은 바닥에 엎드린 채 연신 걸레질을 했다. 노인들끼리는 아무 대화가 없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휠체어에 앉은 여성 노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입을 굳게 다물고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한 사회복지법인이 지난 2002년 설립한 이 요양원은 2006년 정부가 지정하는 장기요양기관으로 선정됐다. 만 65세 이상의 노인이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해 등급판정을 받으면 월 시설이용비의 20%만 부담하고 이곳에서 지낼 수 있다. 현재 요양 중인 노인은 총 61명. 대부분 80세 이상 고령으로 치매나 중풍, 파킨슨 같은 노인성질환 환자다. 절반 가까이 기초생활수급자이며 이들 중 상당수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 노인이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본인부담금 48만원을 지자체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무료로 생활한다.

▲ 경기도 중소도시에 있는 어느 요양원의 로비. 빛이 들어 올 창문 하나 없이 침침한 복도에서 휠체어를 탄 노인 두 명이 벽을 보고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 손지은

이들을 네 개 팀으로 나누어 요양보호사 25명이 돌본다.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하자 30대로 보이는 사회복지사(여)가 신기한 듯 쳐다봤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실습하러 오거나, 중고등학생들이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는 있지만 자발적인 봉사자가 혼자 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는 기자를 3팀에 배치했다. 3팀은 중풍 등으로 침대에서 생활하는 와상환자 없이 치매환자만 있기 때문에 비교적 덜 힘든 곳이라는 설명이었다.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 심심하지 않게 말벗을 해드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2층으로 안내했다. 경증부터 중증치매까지 정도가 다 다른 할아버지 6명과 할머니 9명이 지내는 3팀에서 3일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함께 생활했다. 

쉴 틈 없는 요양보호사, 하루 종일 무료한 노인들

“정말 환영합니다.”

자원봉사자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중년의 요양보호사 김현숙(여·가명)씨가 크게 반겼다. 8년차 ‘베테랑’인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목욕케어’를 하던 중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건넨 김씨는 복도와 방을 청소해달라며 대형 진공청소기를 맡기고 바쁘게 욕실로 돌아갔다. 진공청소기를 밀며 첫 번째 방에 들어가자 목욕을 마친 한 남성 노인이 기저귀만 찬 채로 앉아있었다. 70대로 추정되는 이 노인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벽을 보고 있었다. 옆에는 그보다 10살 정도 젊어 보이는 또 다른 남성 노인이 순서를 기다리며 누워있었다. 키 160cm남짓에 왜소한 체격의 이 노인은 다운증후군 장애인인 동시에 치매환자였다. 흰색 환자복을 입은 그는 불편한 몸을 어색하게 움직이며 입으로는 ‘두두두두...’ 하고 소리를 냈다. 혈액순환이 좋지 않은지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 최고 고령자이면서 중증치매환자인 최옥희(98·가명)할머니는 거동이 힘들어 식사 시간을 빼고는 온종일 누워 지낸다. 그의 팔은 바람이 다 빠진 고무풍선 처럼 탄력을 잃었다. ⓒ 손지은

3팀의 요양보호사는 총 5명. 야간 근무자와 휴무자를 빼면 보통 3명이 근무한다. 한 사람이 노인 5명을 돌본다.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주간팀은 퇴근시간인 오후5시까지 쉴 틈이 없다. 본인이 담당하는 노인의 하루 세끼를 챙기는 것부터 간식, 빨래, 옷 정리, 세면, 기저귀케어까지 거의 모든 수발을 든다. 야간에는 두 명이 남아 이불을 깔아주는 등 노인들이 편히 잠들 수 있게 돕는다. 할 일이 많다보니 가장 중시되는 것은 ‘효율’이다. 노인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돌볼 여력이 없다. 가끔씩 병실에서 요양보호사를 찾는 초인종이 울리면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바쁜 요양보호사에게 잔심부름을 시키기 미안한 노인들은 조용히 자원봉사자를 부른다. 손톱깎이를 들고 온 한 여성 노인은 “자주 깎지 못하니 바짝 잘라 달라”고 요구했다. 아플까봐 조심스럽게 깎는 게 답답했는지 손톱깎이가 손톱 밑으로 깊숙이 들어가도록 잡아당기기도 했다. 노인들은 요양원에서 유일한 군것질거리인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 심부름, 개인 물병에 물을 채우는 것 등을 자원봉사자에게 부탁했다.

요양보호사가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동안 노인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하루의 대부분을 복도에 있는 3인용 나무소파에 앉아 있는데 이따금씩 요양보호사가 농담을 건넬 뿐, 노인들은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보내기 일쑤다. 중증치매환자인 최옥희(98·가명)할머니는 워낙 고령이고 거동이 힘들어 식사 시간을 빼고는 온종일 누워 지낸다. 식사시중을 들다 음식물을 닦아주려고 그의 팔을 잡았을 때 바람이 다 빠진 고무풍선 같은 피부 촉감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최 할머니는 가끔 “사탕주세요”하고 조를 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1938년생인 김치숙(가명)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백내장을 앓고 있는 눈은 초점이 없고, 치아는 아랫니 하나만 남고 모두 빠진 상태다. 흰죽에 잘게 갈려나온 반찬을 섞어서 한 숟갈씩 떠드리면 아무 반응 없이 받아 넘긴다. “맛있으세요?” 말을 걸어도 대답은 없다. 밥 한 공기 분량의 식사를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십 여분. 그리고는 다시 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배변 실수 꾸지람에 토라지고, 바깥 공기 그리워 해   

이곳에서 노인을 부르는 공식 호칭은 ‘어르신’이다. 더욱 친근한 ‘엄마’ ‘아부지’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엄마, 이거 드셔보셔” “아부지, 옷 갈아입자” 모두 여성인 이곳 요양보호사들은 담당하고 있는 노인을 딸처럼 챙긴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모습을 볼 때마다 단정하게 매만져주고, 머리도 직접 빗겨준다.

하지만 바쁜 상황에서 노인이 ‘사고’를 치면 친근함이 무례함으로 바뀌기도 한다. “어디서 냄새나는데?” “또 똥 쌌어?” “엄마 때문에 내가 못살아” 등 짜증 섞인 반말로 아이 다루듯 노인을 혼낸다. 기분이 상한 노인은 자원봉사자 옆으로 와서 조용히 입술을 삐죽인다.

반대로 치매노인들은 요양보호사를 의심한다. 요양보호사들이 모여 빨래를 개고 있을 때 김복녀(76·가명)할머니가 다가와 “며느리가 사 준 옷 내놓으라”고 채근했다. 푸근한 인상의 담당 요양보호사는 “익숙한 일”이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치매환자의 특징인 의심과 돈에 대한 집착은 요양보호사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 중 하나다. 본인 소지품을 요양보호사가 훔쳐갔다며 고함을 치기도 하고, 모아둔 돈이 없어졌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속옷, 개인수건, 간식으로 지급된 빵 등을 베개 밑에 숨겨 두는 경우도 많다. 세탁을 위해 옷 따위를 걷어 가는 것을 훔쳐간다고 생각한다. “깨끗하게 세탁해서 다시 드리겠다”고 여러 차례 말해도 소용없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들은 커피 한잔을 마실 때도 별도의 방이나 칸막이 뒤로 가는 경우가 많다. “간식을 자기들끼리만 먹는다”고 의심하는 노인들의 눈 때문이다.

오후 1시 반. 체조시간에는 같은 층을 쓰고 있는 3팀과 4팀 노인들이 로비에 모여 텔레비전  속 비디오영상을 따라한다. 2층에서 생활하는 26명 중 거동이 힘든 노인을 빼고 15명이 참여했다. 무릎이 안 좋은 노인들을 고려해 앉아서 할 수 있는 동작으로만 체조가 구성됐다. 손깍지를 낀 상태에서 팔을 머리 위로 쭉 뻗거나, 목을 돌리는 등 쉬운 동작들이다. 하지만 성실하게 참여하는 노인은 세 명 뿐이었다. 조금씩 따라하다 그만두거나, 아예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 요양보호사가 쉴 틈 없이 일하는 동안 노인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일과 대부분을 복도에 있는 나무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보낸다. ⓒ 손지은

약 20분 동안 체조를 한 후에는 ‘네박자’, ‘짠짠짠’ 같은 대중가요에 맞춰 건강박수를 친다. 손가락을 쫙 펴고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치고, 주먹을 쥐었다 펴는 등 손을 자극해 인지재활을 돕는 시간이다. 대중가요가 나오자 분위기가 조금 상기됐다. 체조보다 더 쉬운 동작이라 따라하는 노인이 늘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약 30분 동안 진행된 체조시간 내내 끝까지 성실히 따라한 노인은 단 한명 뿐이었다.

노인들은 실내에서 하는 체조보다 밖으로 나가기를 원했다. 체조하러 가자고 하면 “운동하면 오히려 팔이 아프다”며 인상을 썼다. 꼭 참여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하는 요양보호사를 피해 자원봉사자의 팔을 붙잡고 밖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모든 출입문과 엘리베이터에는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어서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들의 산책로는 건물 앞 잔디밭이다.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협소한 공간이다. 정사각형 잔디밭 가장자리를 따라 트랙이 있는데, 한 폭의 길이는 보통 걸음걸이로 스무 걸음 정도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한 바퀴를 도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실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잔디밭 밖으로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용케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대중교통수단도 없는 공단지역에서 눈에 띄는 것이라곤 한가득 짐을 실은 화물차뿐이다. 잔디밭 한 구석의 오두막 아래에 휠체어를 세워두고 이십분 정도 햇볕을 쬐는 것이 산책의 전부다. 

2006년 보건복지부가 제정한 ‘노인복지시설 인권보호 및 안전관리지침’에는 ‘잔존능력 유지를 위한 전문적 수발과 서비스’, 그리고 ‘노인의 개별적 욕구와 선호, 기능상태를 고려한 개별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도록 되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또 ‘자유로운 외출, 외박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인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외출과 외박을 ‘최소화’ 하는 게 대부분이다.   

낙상사고 모른 체하는 월 180만 원짜리 사설병원

겉만 그럴듯할 뿐 성의 없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에서 사고나 학대를 당하는 노인도 있다. 2년 전 중증치매 판정을 받은 박연심(86·여)씨는 장기요양과 재활치료를 위해 전남 나주의 월 180만 원짜리 사설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박씨가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한달 10만원 정도이고 나머지는 국가가 지원해준다. 그런데 그곳에서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을 찾은 2012년 12월 당시 한 층에 입원한 환자는 총 64명. 그러나 이들을 돌보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수는 각각 2~3명이고 심야에는 간호사 1명만 남아있기도 했다. 돌보는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신체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박씨는 침대에서 떨어지고도 6시간 이상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낙상사고 다음날, 면회를 간 가족은 퍼렇게 멍든 박씨의 몸을 보고 사고를 짐작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아무런 설명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다. 박 씨의 막내딸(55․ 전남 나주)은 “의사나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쉬쉬하는 태도에 화가 났지만, 혹여나 내가 없을 때 어머니께 나쁜 짓을 하지 않을까 겁나서 따져 묻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늘 불안한 막내딸은 매일 점심과 저녁 두 차례, 두 시간씩 병원을 찾아가 어머니를 살핀다. 가끔씩 음료수나 주전부리를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돌리기도 한다. 그녀는 치매 어머니를 돌보느라 남편과 자녀에게 소홀해져 가족 사이도 나빠졌다고 고백했다. 이제는 자신이 병원의 요양보호사가 된 느낌이라고. 

 "국립이나 공립병원은 너무 멀고 들어가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내가 힘들더라도 가까운 곳에 모시려고 했죠. 그런데 해도 너무한 거예요. 치매전문병원이래서 왔더니 딱히 전문적인 재활, 물리치료도 없고 시설도 안 갖춰져 있어요. 간호사나 요양보호사 수도 국공립 요양병원에 비해 너무 부족한 듯싶고요."

신고만 하면 설립가능…우후죽순 늘어나는 ‘엉터리 요양병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의 요양병원은 1,103개나 되지만 대부분 전문적으로 치매를 치료하기 위한 체계적 관리가 부족한 상태다. 게다가 영리/비영리, 서비스 질, 경영 투명성에 상관없이 노인을 몇 명 유치하느냐 따라 운영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병원은 노인확보 경쟁에만 전념한다. 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노인성질환 환자로 인정받으면 환자는 시설 이용비의 20%만 지불하면 된다. 나머지 80%는 국가가 부담한다. 환자본인금을 대신 내주면서 환자를 입원시킨 뒤 지원금을 챙기는 병원도 있다.

원인은 현행 장기요양보험법상의 노인의료복지시설이 신고만 하면 쉽게 설립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요양시설의 환경이나 서비스, 접근성과 전문 인력 여부를 꼼꼼히 따지는 과정은 생략되기 일쑤다. 상가 건물을 개조해 운영하거나, ‘치료’가 아닌 ‘수발’을 목적으로 하는 요양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엔 경영난을 겪던 개인병원들이 우후죽순 치매요양병원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2006년 361개에 불과했던 요양병원이 제도가 제정된 2007년부터 빠르게 증가해 현재 약 4배가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 전국요양병원 설립 증가표. 노인장기요양보호법이 제정된 2007년부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신고'만 하면 누구나 설립이 가능한탓에 시설과 의료서비스가 엉망인 엉터리 요양병원도 많다. ⓒ 손지은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의 조경애 고문은 “우리나라는 요양서비스를 거의 다 민간에서 제공하고 있고, 정부나 지차제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며 “정부는 서비스 공급체계를 전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정책을 시행한 건데, 이 사람들은 투자한 만큼 수익을 내야 하다 보니 과당경쟁을 하게 돼 서비스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 고문은 “현재 신고제로 운영되는 요양시설 신청을 기준이 좀 더 엄격한 허가제로 바꿀 필요가 있고 정부와 지자체가 직업 지어 운영하는 요양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포천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침대에 한 손이 묶여 있던 환자가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지난해 서울 도봉구의 한 요양병원 간호사는 척추염과 치매로 입원 중인 환자가 화장실에 자주 간다는 이유로 기저귀를 채우고 침대에 손과 발을 묶어 두었다가 적발돼 처벌을 받았다. 복지부의 ‘노인복지시설 인권보호 및 안전관리 지침’을 보면 “긴급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인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적 제한을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되어있다. 또 “긴급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로 인해 일시적으로 신체를 제한할 경우에도 노인의 심신 상황, 신체 제한을 가한 시간, 신체적 제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유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노인 본인이나 가족에게 그 사실을 통지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심신의 건강을 잃은 후 ‘존엄’마저 뺏기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거꾸로 된 정부 치매 대책… “시체 돼야 지원해주나요”

자영업을 하는 이정순(58‧가명·경기도 군포)씨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안효선(81·가명)씨를 모시고 산다. 3년째 치매 증세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주요 증상은 주로 ‘돈에 대한 집착’이었다. 음식과 돈을 자꾸 방에 감추고, 눈앞에 있는데도 누군가 훔쳐갔다며 의심하는 증세가 잦아졌다. 더불어 가족들을 ‘낯선 사람’이라며 집에서 나가라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냉장고에서 생선과 아이스크림 같은 냉동식품을 다 꺼내 놓는 등의 이상 행동을 보였다. 남편과 함께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가게에서 일하는 이씨는 시어머니가 집에 혼자 있는 낮시간이 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한약과 양약 등 한 달에 50만원 가까이 나가는 약값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어머니에게 치매 판정이 내려진 것은 2011년 3월. 검사를 한 대학병원에서는 시어머니를 사설병원 등 요양시설에 보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치매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자 다른 결과가 나왔다.

“병원 의사는 어머니가 치매 말기라면서 함께 살기 위험할 정도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요양등급을 신청해보니까 아직 멀쩡하다고 반려가 된 거예요. 설명도 전혀 안 해주고… 왜 그런 판정이 나왔는지 저희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죠.”

노인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 노인 중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신체활동이나 가사지원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다. 65세 미만이라도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으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치매 진료비나 약값 등 혜택을 받으려면 먼저 건강보험관리공단의 ‘등급판정위원회’를 통해 1~3등급 사이에 속한다고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 씨의 어머니는 여기서 탈락했다. 이씨는 “보험제도가 거꾸로 된 정책”이라고 성토했다.

“여기서 분류하는 1등급 환자는 아예 시체처럼 거의 누워있는 수준의 환자들이에요. 그런데 정부에서 치매환자를 진짜로 예방하고 치료하려면, 초기 치매 환자까지 지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거꾸로 완전히 뻗어있어야 지원을 해준다고 하니까, 앞뒤가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기요양보험의 판정기준은 주로 신체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치매 환자의 주요 특성인 ‘인지기능 저하’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매 초기나 경증 환자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망상, 배회증상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치매 환자라도 신체 기능이 정상이면 혜택에서 소외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직장인 김리하(27·여·가명·강원도 고성군)씨의 어머니도 판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다. 2010년 김씨의 어머니 임모(59)씨는 이른 나이에 치매 판정을 받았다. 그 후 건망증이 심해지고 배회 증상을 보였다. 외출 후 집을 못 찾는 등 인지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신체가 건강하다는 이유로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험등급은 나오지 않았다.

“치매 환자는 낯선 사람을 보면 증상이 나아지는 특성이 있어요.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긴장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증상 판정을 담당하는 건강보험공단 직원은 딱 한번 와서, 10여분 동안 질문 몇 개 던지고는 가버리더라고요. 숫자 계산이나 본인 이름이 뭔지, 주위 사람은 누군지 하는 것들이요.”

김씨는 “등급 판정 기준이 너무 자의적인데다 판정 시간이 짧고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치매 환자들은 대개 밤에, 또 익숙한 상황에서 증상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최소 하루 이틀은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장기요양보험의 등급판정 기준표. 등급신청을 하면 기관 직원이 방문해 표에 나와있는 내용을 질문한다. 하지만 단 한번 방문에 질의응답 형식으로 평가하다 보니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환자임에도 등급판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등급을 못 받으면 혜택도 없다. 등급은 공단 직원이 다녀간 뒤 약 1~2주 뒤 통보되는데, 1~3등급을 받지 못하면 요양보호사 고용은 물론 약값과 치료비까지 온전히 가족의 몫이다. 반면 등급을 받으면 본인 부담금이 전체의 10~20% 정도로 낮아진다. 예를 들어 주간보호센터 같은 시설이용비도 등급이 없으면 금액을 100% 자가 부담해야하지만, 3등급만 받아도 이용비의 약 80%를 국가가 대신 내주는 식이다. 김씨는 “등급만 있어도 낮에 어머니를 돌보는 ‘주간센터’에 맡길 수 있고, 그러면 내가 직장에 나가도 훨씬 덜 불안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등급판정이 이렇게 되다 보니, 평소에 증상이 심각한 환자 모습을 폐쇄회로티비(CCTV)로 24시간 찍어 제출하거나,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의신청을 하는 가족도 있다. 그래도 안 되면 치매 지원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책정돼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오로지 등급 판정을 받기 위해 온 가족이 고향을 떠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계속되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등급판정 기준을 다소 완화했지만 신체기능 중심 질문이 그대로여서 실제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자 뿐 아니라 주보호자의 우울증도 심각

김리하씨는 요즘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한 건 어머니 임씨의 증상이 심해진 때부터다. 김씨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24시간 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너무 힘에 부친다고 했다. 또 유전적 요인 때문에 자신도 일찍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크다고 한다.

한국치매가족협회 홈페이지(http://www.alzza.or.kr) 게시판에는 김씨처럼 괴로움을 호소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만삭의 몸으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다는 김모씨는 “처음 증상이 나타나났을 때는 매일 울며 엄마 옆을 지켰지만, 증상이 악화되면서 같이 있는 모든 시간이 짜증으로 바뀌어 간다”고 탄식했다. 또 “태교는커녕 우리 아기는 짜증 섞인 내 목소리만 들었을 것”이라고 괴로워했다. 같은 게시판에서 유모씨는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아버지를 어떻게 보살펴야할지 모르겠다. 어디 이야기할 곳도 없고 너무 무섭다”며 다른 치매가족과의 정보교류를 절실히 원했다. 

치매환자는 보호자의 정서 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인지능력은 떨어져도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치매환자를 돌보는 데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주보호자의 심리적 안정’을 꼽는다.

2012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치매에 걸린 노인은 약 53만여명이며 이 중 60%는 가족이 간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배우자나 며느리 혼자 환자보호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은 미미하다. 치매정보365(http://www.edementia.or.kr)와 중앙치매센터가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전국 140개 치매상담센터에서 가족모임을 실시하는 정도다. 보건복지부도 2012년 7월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치매가족의 의견을 반영한 실질적인 지원정책이 부족하다”며 개선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맞이한 우리나라 노인은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다. 가난은 질병과 외로움 등 노년의 고통을 증폭시킨다.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지하철택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노인 등 가난한 노년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사설 요양병원에서 학대 받는 치매노인, 골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고독사 등 비극적 현장도 소리 없이 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청년의 ‘가족’이자 ‘내일’인 노인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의 현실을 생생히 드러내면서 ‘노인복지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한 과제를 점검하고, 독자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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