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에 든 한반도 물] ⑤ 경인 아라뱃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휘돌아나가던 실개천도, 농부가 삽을 씻던 저문 강도 이제 옛 시구로만 남게 되는 건가? 청계천에서 시작된 삽질은 4대강을 온통 파헤쳐놓더니 ‘지천(支川)정비’라는 미명으로 전국의 개천들을 콘크리트로 싸바르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가며 온갖 생명을 키우는 게 하천의 역할이고 본모습이건만 ‘직강(直江)공사’라는 이름 아래 여울과 둔치를 없애는가 하면, 보를 건설해 물길을 막고 물과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친수시설’을 마구 건설해 하천을 괴롭힌다. 녹조 현상은 하천을 못살게 구는 무지막지한 개발주의에 대한 마지막 경고인지도 모른다. <단비뉴스>가 단군 이래 최대 시련에 처한 물길의 현장들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

높이가 50m인 귤현타워 전망대에 오르자 살짝 언 듯한 ‘아라뱃길’과 그 좌우로 눈 덮인 자전거길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물길을 따라 항해하는 화물선이나 유람선이 나오면 ‘그림’이 나오겠다 싶어 한동안 기다렸지만, 움직이는 것은 계양대교를 건너는 차량행렬뿐이다. 커피라도 마시며 몸을 녹일 요량으로 귤현나루 선착장에 있다는 편의시설을 찾아 나섰다. 1층 자전거대여소와 2층 편의점이 모두 문을 닫았다.

계절을 달리해 아라뱃길의 이용실태를 취재하려고 지난 10월 인천 여객터미널 주변뱃길을 둘러본 데 이어, 지난 7일 김포 계양대교 근처에 나가보았는데 인적이 드물었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계양대교를 건너 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남학생이 있어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가 이 곳에서 2시간 동안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유람선이 지나가는 건 몇 번 봤지만, 화물선은 한 번도 못 봤어요. 주말이면 자전거 타거나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젠 추워지고 눈도 와서 그런지 한 명도 없네요.”

그는 다남교, 목석교, 시천교 등 거대한 다리가 나란히 서 있는 아라뱃길 하구 쪽을 가리키며 “처음에는 멋있었는데, 굳이 저렇게 만들 필요가 있나 싶다”는 말을 남기고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 계양대교 위에서 바라본 아라뱃길. 배가 뱃길을 오가는 모습을 실제로 보기는 쉽지 않다. ⓒ 임종헌

‘토건족’ 개입으로 방수로 사업이 운하로 ‘뻥튀기’

지난 5월 “오랜 숙원을 풀고 바다로 나가는 물길을 열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축사와 함께 아라뱃길이 개통됐다. ‘경제•생산 유발효과 3조원’, ‘2만5천 명 일자리 창출’, ‘관광•레저 관련 부가가치 창출’같은 이야기를 TV로 볼 때는 이 대통령 뒤에 서 있는 붉은 크레인 두 기가 금방이라도 거대한 컨테이너를 옮길 것만 같았다. 각종 긍정적인 전망이 과대포장되었다는 시민단체와 학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흘렀다. 아라뱃길의 미래는 정부가 예측한 반대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운송비 절감,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했다. 문제 없으리라는 수자원공사의 예측과 달리 한겨울에도 녹조현상이 발생할 만큼 수질 상황도 좋지 않다. 물길을 대신해 그나마 약간 이용되는 곳은 자전거길뿐이다.

아라뱃길은 정부 발표처럼 오래 전부터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 사업이 아니다. 모태는 1992년 수립된 ‘굴포천 방수로 사업’이다. 굴포천은 인천광역시 부평구에서 출발해 부천시, 서울 강서구를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지방2급하천이었다. 1987년 여름, 이 하천이 범람해 16명이 죽고 농경지 약 천만평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노태우 정부는 하류에서 서해로 곧장 빠지는 길이 14.2km, 폭 40m짜리 방수로를 만들어 홍수 피해를 예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 아라뱃길의 전신인 굴포천 방수로 사업 개요도. ⓒ 수자원공사

이 때 거대 건설업체들이 개입했다. 이들은 ‘한강 하구 쪽으로 4km 정도만 추가로 연결해서 운하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대규모 토목사업이 필요한 건설업체와 지역 주민들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폭(80m), 깊이(6.3m)도 운하에 맞게 확장하면서 총사업비는 네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애초부터 방수로 대신 유수지나 습지를 조성하자고 주장했던 시민단체는 수질오염과 자연 훼손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학계 또한 경제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마침내 2003년 감사원이 “경인운하 사업 경제성이 과장됐다”고 발표하면서 노무현 정부는 사업 재검토 후 굴포천 방수로 사업만 추진하기로 회귀했다.

끝난 줄 알았던 경인운하는 2009년 부활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내외 조사기관을 통해 경제성을 재조사한 결과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사업 재추진을 선언했다. 이 후 이름을 ‘아라뱃길’로 바꾸고 국가하천으로 지정하는 한편 주요 건설업체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했다. 20여 년을 끌어온 뱃길은 3년 만에 완공됐다.

컨테이너 수송 실적, 기대치의 7.9% 불과

지난 6일 수자원공사가 발표한 아라뱃길 실적은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7개월간 화물선 29척이 217차례 운행했을 뿐이다. 추산 물동량은 컨테이너 1만4천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 일반 화물 약 8만8천톤 정도다.

2008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인운하사업 수요 예측 재조사, 타당성 재조사 및 적격성 조사’에서 같은 기간 동안 컨테이너 29만4천 TEU를 수송하리라 예상했다. 실제 수송량이 예상치의 7.9%에 불과하다. 더구나 예측과 달리 철강이나 자동차를 운송한 화물선은 한 척도 없었다. 서울시가 ‘서해주운사업’을 백지화하면서 화물선이 여의도까지 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도 턱없이 낮은 수치다.

▲ 경인항 인천여객터미널 옆 '아라타워' 2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물류단지 북단(위)과 남단(아래). 분양률은 아직 50%에 미치지 못했다. ⓒ 임종헌

여객선 이용 승객도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발해 아라뱃길을 거쳐 여의도를 오가는 여객선 이용객은 약 12만5000명이었다. 하루 평균 600명 수준으로 한국개발연구원이 예상한 30만명의 절반도 안 된다. 10월만 해도 현대유람선 김영배 부장은 “주말에는 1천 명, 주중에는 7, 800명이 탑승한다”며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고 말했으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이용객은 급감했다.
 
수자원공사는 “새로 만든 항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까지 3~6년 정도 걸린다”며 개통 첫 해 실적으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는 견해를 보인다. 관광 분야 실적 또한 기대를 밑도는 부분에 대해서는 “중국, 일본을 오가는 항로 개설과 선박 추가 투입 계획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 10월 21일 촬영한 아라뱃길 인천여객터미널 내부. 자전거를 타거나 홍보관을 찾는 인파로 비교적 복잡한 외부와 달리 한산하다. ⓒ 임종헌

앞서 지적한 대로 이러한 결과는 이미 예견됐다. 심지어 수자원공사 자체조사에서도 이득을 보기 쉽지 않다고 결론 났다. 지난 해 10월, 박수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수자원공사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용역보고서에서 평가가치가 1조5천억원으로 사업비보다 7천억 이상 손해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수자원공사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기업들이 아라뱃길 사용을 꺼리는 이유는, 아라뱃길에 들어설 수 있는 화물선이 최대 5천톤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천톤급 화물선으로 김포항까지 화물을 싣기보다 5만톤급 화물선으로 물건을 인천항에 내린 뒤, 트럭을 이용해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편이 비용이나 시간에서도 훨씬 이득이 크다. 아라뱃길을 이용해야 더 이득인 품목도 있다. 열병합발전설비나 교량용 블록같이 도로 운송이 힘들었던 초중량물(무게 43톤, 폭 3m, 높이 4.3m 이상인 화물)인데, 이들은 수요 자체가 많지 않다.

인근 도시 오폐수가 아라뱃길로…홍수 피해 방지도 미지수

시민단체가 우려했던 환경오염 문제는 개통하기 전부터 발생했다. 아직 날씨가 추운 작년 2월에 이미 계양대교와 김포터미널 인근에서 녹조현상이 발생했을 정도다.

6월 인천녹색연합, 가톨릭환경연대, 인천환경운동연합 등 3개 단체가 경인아라뱃길 15곳에서 취수해 인천대학교 김진한 환경공학과 교수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이 9~14.4mg/ℓ로 나왔으며 클로로필a 농도는 30mg/m3 안팎으로 나왔다. COD수치는 정부 하천 수질등급 ‘매우 나쁨~나쁨’에 해당한다. 부영양화(질소나 인 같은 유기물질이 과도하게 유입되어 발생하는 수질 악화 현상)의 척도인 클로로필a 수치는 유독성 녹조류 발생이 우려되는 정도다.

이는 수질이 좋지 않은 굴포천 물이나 지류에서 발생한 쓰레기 침출수가 제대로 정화되지 않아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굴포천 인근 주민들은 악취와 해충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다. 꽃농원을 하고 있는 송기오(47)씨는 “부천, 인천에서 내려오는 오폐물 때문에 여름만 되면 모기떼가 들끓고 냄새가 난다”고 밝혔다. 인근에 거주하는 박경민씨 역시 “굴포천이 부천 시내를 관통하다 보니 냄새가 안 날 수가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 당미교 인근에서 찍은 굴포천. 지역주민들은 물난리보다 여름마다 찾아오는 악취와 해충이 더 큰 문제라고 밝혔다. ⓒ 임종헌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인천 서구 쓰레기매립장 침출수를 아라뱃길에 방류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박병상 소장은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아라뱃길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천시가 지난해 9월 제1매립장 위에 생긴 수도권매립지 골프장에서 발생한 침출수가 아라뱃길에 유입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운하를 만든다고 물을 채우는 바람에, 정작 제1과제로 내세운 홍수피해를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대목이다. 박 소장은 “비용도 줄이고 생태계 파괴도 없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폭우가 내려도 굴포천 물이 아라뱃길로 원활히 빠져나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서해가 만수위일 경우 굴포천 물을 어디로 뺄 수 있을까요? 폭을 좁혀 방수로를 만들고 곳곳에 유수지를 조성해서 평소에는 생태공원이나 농지로 사용하다가 비가 많이 오면 홍수를 조절하게끔 하는 방향이 더 좋았을 겁니다.”

권창식 전 가톨릭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아라뱃길 덕분에 홍수피해가 줄어든다 건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기존 굴포천 방수로 사업을 포함한 하천정비계획은 5천억원 가량으로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그 5배 가까운 예산이 필요하다는 말은 본질을 호도한 것이라고 봅니다. 국지성 호우가 와야 검증할 수 있지만, 아라뱃길 없어도 홍수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거대 토목공사

오히려 부수적 목적인 ‘친환경 수변문화 창조’만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아직 따뜻했던 지난 10월 중순 정서진(아라인천여객터미널)에서 만난 방문객들은 대체로 주변 환경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전거 라이더들의 반응이 좋았다. 물길을 따라 평탄하게 나 있는 자전거길은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들다.

“일단 새로 만들었으니까 포장 상태도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자전거만 다닌다는 점이 좋습니다. 자동차 교차로가 없어서 위험부담을 크게 줄였어요.”(이형주•.39•자영업)

“한강 둔치와 수도권 외곽에도 자전거 도로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마라토너나 아이들이 많아서 마음껏 달리기 힘듭니다. 이 곳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비를 피하는 지붕과 자판기 정도가 마련된 쉼터만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유상모•35•자영업)

이 곳에서 일하는 민세홍(26•자전거관리팀)씨는 “주말에만 3, 4백명이 자전거를 대여해 간다”고 밝혔다. 작은 연못에서 보트를 타거나 아라타워 23층 전망대에 올라가 주변 경치를 관람하는 가족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들과 같은 반 친구들을 데리고 방문했다는 한 주부는 “인근에 나들이할 만한 장소가 없는데, 이렇게 깔끔하게 꾸민 곳이 생겼으니 자주 방문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주차장 한켠에 자리잡은 임시 놀이터. 전기자동차, 놀이기구 등이 마련되어 있다. 10월에 촬영했으며, 날이 추워지면서 자전거대여소와 함께 철거되었다. ⓒ 임종헌

문제는 이 물길에 막대한 국비가 투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개통식 주제를 ‘녹색 미래를 향한 위대한 항해’라고 붙일 정도로 물류기능 활성화를 우선시했으나, 아직까지는 약 2조5000억원을 들여 조성한 레저•관광 코스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유지비로 매년 2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반면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했던 배후 물류단지 분양률은 지난 해 10월 기준으로 48%에 그쳤다.

수자원공사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문병호 민주통합당 의원은 “임대료와 시설사용료를 모두 회수하는 것은 2030년까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수자원공사가 물류 부문 활성화 대신 관광•레저산업에 집중한 나머지 난개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박수현 의원은 우려했다.

권 사무처장은 “시작한 사업이 잘못 됐으면, 그 사업을 시작한 주체가 대안도 만들어야 하는데 모른 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경제성이 없고, 예상 가능한 환경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났는데 토목공사가 필요하니까 경인운하가 이름을 바꿔 부활했습니다. 즉 정치적인 목적이 강하게 개입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치인, 거대 건설업체, 다들 모른 척하고 있어요. 결국 피해를 보는 건 국민들이죠. 꼭 책임지게 해야 하는데,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오히려 묻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서 너무나 아쉽습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