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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들여 타향 만드는 ‘고향의 강’사업

기사승인 2012.10.19  11: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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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에 든 한반도 물] ④ 남한강 지류 장평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휘돌아나가던 실개천도, 농부가 삽을 씻던 저문 강도 이제 옛 시구로만 남게 되는 건가? 청계천에서 시작된 삽질은 4대강을 온통 파헤쳐놓더니 ‘지천(支川)정비’라는 미명으로 전국의 개천들을 콘크리트로 싸바르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가며 온갖 생명을 키우는 게 하천의 역할이고 본모습이건만 ‘직강(直江)공사’라는 이름 아래 여울과 둔치를 없애는가 하면, 보를 건설해 물길을 막고 물과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친수시설’을 마구 건설해 하천을 괴롭힌다. 녹조 현상은 하천을 못살게 구는 무지막지한 개발주의에 대한 마지막 경고인지도 모른다. <단비뉴스>가 단군 이래 최대 시련에 처한 물길의 현장들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

‘청계천+20프로젝트’ ‘고향의 강’ ‘생태하천복원사업’ 등은 4대강에 이어 지류를 향하는 불도저식 개발의 다른 이름이다. 자전거도로를 내고 생태공원을 조성해 지역명소로 만든다는 구상은 ‘지방판 청계천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각종 사업에 앞다투어 지원한다. 2010년 2월 시작된 ‘고향의 강’ 사업도 지방자치단체 응모를 거쳐 60곳이 선정됐다. 15개 시범사업을 더해 현재 75개 지방하천에서 진행중인 사업은 하천별로 최대 300억원까지 정부가 지원한다.

국토해양부 예산안에는 하천정비 사업비 전체 액수만 적혀 ‘고향의 강’ 사업 비용만 따로 알기는 어렵다. 김진애 전 의원실에서 나온 작년 국정감사 보도자료를 보면 ‘생태하천복원사업’ ‘고향의 강’ 사업 등 친수사업에 2018년까지 3조7천억원이 책정돼 있다. 제방보강, 준설 등 홍수에 대비하는 치수사업은 뺀 비용이다.

‘고향의 강’ 사업 대상인 충북 제천시 장평천에는 설계비 4.9억원에 공사비 158억원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올 3월 마스터플랜이 나왔고 세부설계가 마무리되면 내년 첫 삽을 뜬다. 장평천은 어떤 상태이기에 158억짜리 공사가 필요한 걸까? 지난 3일 영천동 합천교에서 시작해 신백동까지 총 3.3km 사업 구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공사예정지를 살펴보았고, 18일에는 이미 공사가 완공된 제천시 용두산 일대 이름 없는 작은 지천 정비사업들도 둘러보았다.

전국 어디서나 보게 될 청계천의 유사 풍경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장평천의 원래 이름은 ‘모라내’. 모래가 많아 ‘모래내’의 사투리인 ‘모라내’로 불렸다. 하천 주변에 논과 밭이 빼곡한데다 과거 콘크리트 블록으로 둑을 쌓는 호안공사를 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강저택지지구 부근에 ‘사천교’(沙川橋)라는 다리 이름으로만 남았다. 

   

▲ '모래내'였던 사천교에서 바라본 강저택지지구. ⓒ 이성제

조선시대 흙다리였던 사천교가 철근ㆍ콘크리트 다리로 바뀐 것처럼 장평천 주변도 많이 달라졌다. 장평천을 두고 마주보는 영천동과 강저동에는 5년 전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제천에서 줄곧 살았다는 한기태(78)씨는 “이 근방은 전부 논이었다”며 “토질이 순 모래라 제천에서 농사도 가장 안 되고 사람이 못 살 곳이었다”고 말했다. 황금 들판이 펼쳐진 전원풍경을 깨는 것은 고층아파트단지인데 두 단지가 더 건설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평천 일대의 풍경 변화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올 3월 발표된 ’고향의 강 정비사업 실시설계 용역’에 따르면 사천교부터 제6철도교까지 구간을 주요 거점으로 삼아 역사문화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의림지 주변 경관을 형상화해 정자를 세우고 용추폭포 비슷한 구조물을 설치한다. ‘모라내’라 불리던 ‘고향의 강’이 이런 장식으로 옛 정취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낯선 타향, 아니면 서울 청계천에서 보던 유사 풍경일 것이다.

   

▲ (위) 빨간 동그라미 부분을 '의림지' 모습으로 장식할 예정이다. ⓒ 이성제 (아래) '장평천 고향의 강 실시설계 용역' 자료 ⓒ 제천시청

자전거도로ㆍ산책길 이용자 있을지 의문

휴일 오후 장평천을 따라 난 길을 한 시간 남짓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아파트단지 주민들뿐이었다. 장평천 근처에서 밭을 일구던 진성기(79)씨는 “아파트 사람 좀 다니고 농사짓는 사람이 하루에 한 번 정도 다니는 길”이라며 “평일이면 사람 구경은 할까 말까”라고 했다. 장평천 길 주변으로 추수가 끝나가는 논밭에는 농부들마저 보이지 않았다.

   
▲ 강저교-제6철도교 구간. 길 앞에도 뒤돌아봐도 다니는 사람이 없다. ⓒ 이성제

합천교부터 대형 할인매장 이마트가 들어선 신백동까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만든다고 한다. 대부분 농경지인 이곳에는 제천시내에서 시민들을 끌어들일만한 요인도 거의 없는데다 중앙선과 제천역이 가로막아 접근성도 떨어진다. 아파트단지에서 할인매장까지는 1.6km 정도로 장 보려면 20분은 걸어야 한다.

정비사업에 포함된 생태공원과 휴게쉼터도 문제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며 조성된 한방공원과 벤치, 전망대 등 휴게공간에는 이용하는 주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휴일 오후 주부들과 아이들은 아파트 놀이터에 있었고 한방공원 벤치에는 노인 한 사람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뿐 아니라 생태공원과 휴게쉼터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아파트 단지 주변 한방공원과 생태공원도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텅텅 비어있다. ⓒ 이성제

‘직강화’한 콘크리트 하천에 생태계 쓸려가

‘장평천 고향의 강’ 사업구간 주변은 예전부터 침수피해를 자주 겪었다. 비용 문제로 치수공사가 이뤄지지 못했는데 정부 보조를 받아 이번에 추진된다. 공사가 필요하다고 하나 조경석이나 자연석으로 인공 수로를 만드는 ‘직강화’ 방식이 옳은지 의문이다. 특히 이번 정비사업은 콘크리트 블록으로 조성한 기존 호안을 뜯어내 식생 블록이나 옹벽형 블록 등으로 구조물을 바꾸는 데 그친다.

직강화 방식은 홍수 예방과 거리가 멀다고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는 말한다. 강 주변부를 사용하기 위해 공사를 하는 것이지 홍수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직강화해서 물을 빨리 빼면 하류지역에 홍수를 일으킵니다. 강이 구불구불 흐르는 과정에서 홍수 에너지가 약해지고, 물을 천천히 흐르도록 해야 강물을 많이 저장할 수 있어 하류의 홍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런 공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오히려 옛모습으로 복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구불구불한 하천을 곧게 펴는 공사는 생태적으로도 문제다. 제천환경운동연합 김진우 사무국장은 “하천을 직강화하는 ‘고향의 강’ 공사 방식은 유속을 단일하게 만든다”며 “많은 물들이 일시에 빠져 여울이나 습지 같은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고향의 강’ 사업이 생태복원을 외면한 시설 위주 공사라는 점도 지적했다.

“과거 다양한 생물이 살았던 생태적 모습을 살려내는 것이 고향의 강을 되찾는 길입니다. 하천 주변에 살았던, 예전 모습을 잘 기억하는 주민들이 공사에 참여해야지 지금처럼 시공업체 위주로 사업이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 발 담그던 용두산 계곡이 시멘트로 뒤범벅

   
▲ 용두산 계곡에 시멘트를 처발라 수조를 만들어놨다. ⓒ 이성제

‘직강화‘한 장평천은 어떤 모습일까? 18일, ‘장평천의 미래’를 보기 위해 최근 정비가 끝난 제천 용두산 일대 이름 없는 계곡들을 둘러보았다. 계곡을 일직선으로 파헤치고 콘크리트를 처바른 개울가에는 사람 몸통만한 암석들이 줄지어 섰고 모난 돌덩이 사이로 시멘트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폭우 때마다 쓸려나가는지 모래나 자갈 무더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콘크리트 수로를 따라 빗물이 한꺼번에 내려가 버리니 개울가에 있을 법한 갈대나 버들강아지 같은 식물들은커녕 잡초조차 자라지 못한다. 제천시민들이 발 담그고 놀던 용두산 계곡은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장평천도 주민참여 없이 토건업자에 맡겨졌다가 이런 인공적인 몰골로 변신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 계곡 바닥면까지 시멘트를 발라놔 잡초 한 포기 자라기 힘들다. ⓒ 이성제

울산 태화강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이 오랜 기간 협력해 오염원을 제거하고 결국 자연하천으로 되살려낸 좋은 사례다. 전북 전주천도 민관공동협의회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함으로써 1급수 어종 쉬리가 사는 건강한 하천으로 살아났다. 공사를 앞둔 장평천이 ‘고향의 강’으로 살아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답은 나와있지만 토건을 경제 살리기와 강 살리기의 일석이조 수단으로 여기는 정부와 부화뇌동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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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제 기자 eudorca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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