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여자 친구들 모임에서 들은 얘기다. 예전에는 동창회 같은 데서 손주 자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돈 내고 하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돈 줄 테니 손주 사진 좀 보여 달라’로 바뀌었단다. 장성한 자녀가 있어도 손주는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다 보니, 남의 집 아기 사진이라도 감지덕지한다는 말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한 해 전 0.78명에서 더 떨어진 ‘초저출생’ 한국의 풍경이다.

요즘 나의 단골 소셜미디어는 ‘똥별이’라는 아기 영상을 자주 올려준다. 이 영상만 뜨면 적어도 몇 십 초는 넋을 놓고 본다는 것을 알고리즘이 간파한 탓이겠다. 오동통하고 귀여운 똥별이의 모습이 아기 적 아들을 연상시켜 흐뭇하게 보다가, 가끔은 심란해진다. 아기를 갖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젊은이들은 이런 영상을 볼 때 어떤 마음일까 해서다.

몇 년 전 ‘중식이 밴드’는 이렇게 노래했다. “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너 요즘 추세 모르니? 헤어지잔 말이 아니야, 나 지금 네가 무서워, 너 우리 상황 모르니? (…) 아기를 낳고, 결혼도 하잔 말이지? 학교도 보내잔 말이지? 나는 고졸이고 너는 지방대야, 계산을 좀 해봐. 너랑 나 지금도 먹고살기 힘들어. (…) 맞벌이 부부 되면 집에서 누가 애를 봐, 우리는 언제 얼굴 봐? 주말에 만나거나, 달 말에 만나거나, 뭐 다들 그리 살더라. 아기를 낳고 나면 그 애가 밥만 먹냐, 계산을 좀 해 봐. 너랑 나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

아기를 갖고 싶지만 ‘계산을 좀 해보니’ 도저히 아니어서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한국의 초저출생 통계 뒤에 있다.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세계에서 가장 빨리 소멸하고 있는 나라’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거대 양당은 총선 공약으로 아동수당 인상, 주택자금 지원 등 ‘돈 풀기’를 내놓았지만, 해법이 될지 회의적이다. 고졸 중식이와 지방대 출신 여자친구가 겪을 가능성이 높은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 ‘장시간 노동’ ‘미흡한 보육시설’ ‘결혼·임신·출산에 적대적인 직장 환경’ 등을 개선할 정책이 보이지 않아서다. 육아휴직 썼다고 인사고과에 불이익 주는 회사가 버젓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육아 페널티’(육아에 따르는 손해)나 경력 단절을 피하려 아예 안 낳겠다는 선택을 무엇으로 돌이킬 수 있을까.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분기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진 건 사상 처음이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분기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진 건 사상 처음이다. 출처 연합뉴스

이제상 박사 등이 지난해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발표한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출산율과 성평등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거대 양당이 놓친 부분을 조명한다. 146개 나라를 비교한 결과, 후기산업사회(선진국)에서는 가족, 직장 등 조직 내 성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진국 중 한국의 출산율이 가장 낮은 것은 가족 내 가부장제, 직장 내 성차별 등 조직의 성평등 수준이 매우 낮은 것과 관련 있다는 얘기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캐런 다이넌 교수 등도 2022년 ‘한국 노동시장에는 왜 성별 격차가 지속되는가’ 보고서에서 비슷하게 썼다. 직장 내 성차별과 여성에게 쏠린 육아·가사 부담이 ‘육아 페널티’를 높여, 한국의 출산율 하락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쓰면서도 저출생 악화를 막지 못한 것은 주거, 교육 등의 고비용 외에 장시간 노동과 성차별 구조 등 입체적으로 봐야 할 문제를 단선적으로 접근한 탓일 테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떨까. 불안정한 일자리를 떠돌다 ‘결혼 따위’ 포기해버린 비정규직 청년의 절망에 귀 기울였나. ‘주 52시간’의 사각지대에서 초과 노동에 시달리느라 애 하나 키우기가 전쟁이 돼버린 맞벌이 부부의 삶을 조명했나.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별별 차별에 시달리다 경력 단절로 내몰린 여성들의 분노와, 그런 선배를 본 미혼 후배들의 공포를 전달했나. ‘입시 지옥’과 ‘학원 뺑뺑이’를 물려줄 수 없어 아이를 안 낳겠다는 젊은이들의 결심을, 경쟁교육에 관한 성찰과 토론으로 연결했나. 한겨레에는 탁월한 보도도 있었지만, 위기의 엄중함에 견줘 충분하진 않다.

정치권의 저출생 정책이 번지수를 제대로 못 찾은 데는 언론 탓도 크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생 위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언론 보도가 필요하다. 이 땅의 수많은 중식이네가 똥별이 같은 귀염둥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 때까지.

*이 글은 <한겨레> 3월 26일 자 [시민편집인의 눈]을 신문사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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