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파묘'

직업 활동을 표현하는 말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먹고산다’라는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흔하게 쓰는 표현이다. 글 쓰며 먹고산다는 사람, 운전해서 먹고산다는 사람, 노래로 먹고산다는 사람. 자신의 직업을 설명할 때 이만큼 상대에게 쉽게 전달되는 표현은 드물다. 올해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모은 메가 히트작, 영화 '파묘'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화 '파묘' 캐릭터포스터. 시계방향으로 주인공들이 각각 사방신에 해당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출처 쇼박스
영화 '파묘' 캐릭터포스터. 시계방향으로 주인공들이 각각 사방신에 해당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출처 쇼박스

주인공 김상덕(최민식)은 풍수사다. 때로는 지관(地官)이라 자신을 칭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풍수지리설은 미신, 혹은 유사 과학 정도로 치부되며 위세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과거에는 동아시아 전반에 영향을 미쳤던 중요한 사상이었다. 상덕은 영화 초반 내레이션에서 풍수는 미신이라는 표현을 두고 ‘X까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신을 30년 넘게 땅 파먹고 살아온 사람이라 소개한다. 그가 관객에게 건넨 첫인사에는 풍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의뢰받은 현장에서 상덕은 흙을 손에 쥐고 고르더니 입에 넣는다. 흙이 향긋하니 좋은 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퉤’하고 뱉어 흉한 땅임을 표현한다. 그야말로 30년 넘게 땅을 파먹고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상덕의 사업 동료이자 나이 차 꽤 나는 벗 고영근(유해진)은 염을 하며 먹고사는 사람이다. 고장로라고 불리고 종종 말끝에 ‘아멘’을 붙이지만, 그의 가게 ‘의열장의사’ 간판 아래에는 ‘종교 무관 환영’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가끔 상덕과 함께 현장에 나가서 고인의 귀중품을 슬쩍 주머니에 챙기는 적당히 속물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은 무려 대통령도 모셨던 사람이라며 장의사로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장면도 그의 속물근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상덕과 영근이 먹고사는 방식이 현대사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이라면, 무당 이화림(김고은)과 법사 윤봉길(이도현)이 먹고사는 방식은 그 반대다. 실제로 10대부터 70대 이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현재 무속인의 삶을 살고 있다. 화림과 봉길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면서 마치 가족처럼 유대와 신뢰가 두터운 관계다. 두 사람은 일본 출장을 마치고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등장한다.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는 승무원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자신은 한국인이라 답하는 화림, 최신형 헤드셋을 착용하고 팔짱을 낀 채 화림과 승무원의 대화를 지켜보는 봉길. 화림의 인상은 어쩐지 서늘하고 소매를 걷어 올린 봉길의 팔뚝에는 축경 문신이 빼곡하다.

화림은 파묘와 대살굿을 동시에 진행하자며 상덕과 영근을 설득한다. 출처 쇼박스
화림은 파묘와 대살굿을 동시에 진행하자며 상덕과 영근을 설득한다. 출처 쇼박스

화림과 봉길을 미국까지 불러들인 의뢰인 박지용(김재철)은 할아버지 때부터 ‘밑도 끝도 없는 부자’ 집안사람이다. 지용은 거액을 제시하며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버지와 형이 예전부터 환청, 환각에 시달렸고 견디다 못한 형이 자살한 뒤로는 같은 증상이 자신과 갓 태어난 아들에게까지 나타난다며, 아들만은 살리고 싶다고 말한다. 박씨 가문에 드리운 액운이 바로 할아버지의 묘 때문이라고 진단한 화림은 곧장 상덕과 영근에게 협업을 제안한다. 그렇게 네 사람은 지용과 함께 묘지를 방문한다. 이장을 하는데 관을 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지용의 당부, 무언가 숨기는 듯한 지용의 고모를 지켜보며 관객은 이 지점에서 지용의 할아버지가 친일파였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친일파 후손의 호화로운 생활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가 아픈데, 친일을 했던 매국노와 그 후손들을 도우려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관객들은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박지용 할아버지의 묘는 사실 그 밑에 더 깊숙이 박아놓은 쇠말뚝을 숨기기 위해 이용된 것이었다. 일제가 당시 조선 땅의 정기를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졌지만, 현재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상덕의 대사를 빌려 감독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묻는다. 1%의 작은 확률로 쇠말뚝의 존재가 사실이었을 수 있다고, 만약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제거해야 옳은 일 아니냐고 말이다.

무덤 밑을 더 파헤치니 나온 것은 쇠말뚝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괴물이었다. 일본의 오래전 전쟁 영웅이었던 어느 다이묘의 몸에 칼을 꽂아 넣고, 잘린 목을 이어 붙인 뒤 시신을 관에 담아 만든 ‘험한 것’이었다. 험한 것은 그 자체로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명당에 박혀 쇠말뚝으로 기능해 온 셈이다. 영화 속 주요 인물 모두가 힘을 합쳐 살아 움직이는 쇠말뚝을 처리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이대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려나 조마조마하던 때, 상덕은 직업적 지식, 음양오행을 활용해 괴물을 처치할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쇠와 상극인 젖은 나무로 내리쳐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 나무에는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출처 쇼박스
상덕은 자신의 직업적 지식을 활용해 영화 속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출처 쇼박스

장재현 감독은 영화의 메시지를 묻는 말에, ‘한국 사회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상처들을 파묘해버리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상처는 흐릿하지만 다양한 모습을 띤다. 젊은 세대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일본 선망일 수도 있고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쇠말뚝들은 영화 속에서나마 주인공들의 고군분투 끝에 제거된다. 파묘 이후 네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먹고살면서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화림은 실수 한 번 한 적 없는 유능한 무당이지만, 굿을 하던 도중 다이묘의 얼굴이 떠올라 주저앉는다. 영근은 자신이 염을 한 시신을 바라보다가 환시를 겪고, 상덕은 공사판에서 건설회사 직원에게 ‘남향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라고 말하다가 괴물과의 싸움에서 얻은 상처가 벌어져 피를 흘린다. 영화는 결말에 다다라서 영웅의 평범성,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관객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파묘'는 친절한 영화다.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장면 곳곳에 이스터에그를 숨겨 놓고 관객에게 이를 찾고 해석하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덕분에 관객은 극장 밖으로 나서는 순간 2차, 3차 관람이 시작되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파묘'는 영화 '건국전쟁' 감독이 말한 ‘좌파영화’가 아니라 시대의 요구를 잘 반영한 대중예술 작품에 가깝다. 이 지점이 바로 ‘천만영화’로 등극한 비결일지 모른다.

영화는 국가나 사회가 더 이상 구성원의 안위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대, 각자도생이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에 시민들 서로가 서로에게 영웅이 되어 줄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평범한 개개인의 영웅 말이다. 속물적이고 사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 일지라도 그 과정에서의 각성과 바른 선택이 공동체 상생에 기여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거액의 돈에 끌려 제안을 수락했지만 결국 괴물을 물리치고 땅을 지켜낸 상덕처럼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런 영웅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듯하다. 상덕의 딸 결혼식에 참석한 나머지 세 사람은 단체 사진 촬영을 위해 하객들 사이사이에 서는데, 여기서 사진사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한다.

“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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