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에 든 한반도 물] ① 방수재 바른 ‘가짜 하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휘돌아나가던 실개천도, 농부가 삽을 씻던 저문 강도 이제 옛 시구로만 남게 되는 건가? 청계천에서 시작된 삽질은 4대강을 온통 파헤쳐놓더니 ‘지천(支川)정비’라는 미명으로 전국의 개천들을 콘크리트로 싸바르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가며 온갖 생명을 키우는 게 하천의 역할이고 본모습이건만 ‘직강(直江)공사’라는 이름 아래 여울과 둔치를 없애는가 하면, 보를 건설해 물길을 막고 물과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친수시설’을 마구 건설해 하천을 괴롭힌다. 녹조 현상은 하천을 못살게 구는 무지막지한 개발주의에 대한 마지막 경고인지도 모른다. <단비뉴스>가 단군 이래 최대 시련에 처한 물길의 현장들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 

생태역사 외면하고 공사 강행하더니 결국

청계천 복원사업이 재검토되고 있다. 지금 청계천은 생태적‧역사적 측면이 무시돼 전면적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 당시에도 ‘생태 무시’ ‘문화재 파괴’ 등 숱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은 퇴임을 10개월 정도 남겨둔 2005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청계천 공사를 강행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자신의 임기 내에 결과물만 나오면 된다는 관료의 성과주의가 지금 와서 청계천 복원사업 재검토라는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 2007년 복원된 청계천. 시민들이 청계천에 발을 담그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정혜아 

청계천은 우선 인공하천인데도 중‧하류에 대장균이 너무 많이 서식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미생물학회 안태석 책임연구원이 서울시설공단의 용역을 받아 최근 내놓은 청계천수질관리방안에 따르면 청계천 하류지역인 성북천과 정릉천 등은 100㎖당 2만5천 마리에 육박하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이는 4•5급수에 해당하는 수치다. 빗물이나 구정물, 조•어류 배설물 등이 인접 지천에서 유입됐기 때문이다.

대장균수는 하천의 오염도를 가리키는 지표로, 사람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병원균이 하천에 있다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하천 수질관리 기준에 따르면 1급수는 50마리 이하, 2급수는 1000마리 이하, 3급수는 5000마리 이하의 대장균이 검출된다. 

반면, 청계천 상류는 깨끗하다. 청계천으로 유입된 한강수는 자외선살균을 통해 충분한 정화과정을 거친다. 위 자료에 따르면 상류지역인 모전교의 대장균 발생은 100㎖당 33마리로 1급수 기준치에 해당된다. 서울시 수질부가 제공한 ‘2012년 청계천 수질자료’에서도 모전교에서 수질을 검사한 결과 지난 5월 100㎖당 80마리, 6월 40마리가 발견됐다.

▲ 서울시 수질부가 제공한 청계천 수질자료를 도식화한 이미지. (※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단비뉴스  
상류가 깨끗한데도 청계천 중‧하류의 수질이 나쁘다는 것은 청계천 수질 개선을 위해 인접 지천에서 유입되는 물질을 관리해야 함을 뜻한다. 하수시스템과 빗물시스템 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배경석 팀장은 “청계천이 보통 도시하천과 달리, 하수정비시스템과 별도로 관리되기 때문에 중‧하류의 경우 수질이 좋지 않은 것”이라며 “특히 빗물 등 외부에서 유입되는 물이 많은 장마철과 같은 시기엔 수질이 더 오염된다”고 설명했다.

전기로 물 퍼올려 다시 흘려 보내는 ‘물장난’ 
   
청계천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현재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인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청계천의 문제는 엄청난 전기에너지를 통해 물을 펌핑(끌어올려)해 흘려 보낸다는 점”이라며 “시스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전기가 아니라, 석유나 원자력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 이를 작동시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복원된 청계천은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끌어올려 다시 흘려 보내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할 물을 거슬러 올려 반복해 흐르게 하는 인공하천이다. ⓒ 플리커 

오 교수는 “일반 시민은 생태 문제와 관련해 고민을 하게 되면 ‘맑은 물’, ‘푸른 숲’ 등을 떠올리는데, 도시생태학에서는 생태계, 즉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에너지의 순환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바닥에 방수처리를 하고 전기를 통해서 물을 펌핑하는 지금 청계천은 눈으로 보기에는 복원이 된 것 같지만, 생태적 시각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을 유지하기 위해 청계천에는 하루 12만톤의 물이 공급된다. 자양취수장에서 한강물을 퍼올려 청계천유지용수관리소에서 부유물 침전, 자외선 살균 등의 정수처리를 거쳐 청계천 둔치 지하관로를 타고 상류로 이동해 청계천에 유입된다.

진짜 환경친화적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유지가 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오 교수는 “빗물을 모아두는 빗물이용시스템과 현재 종말하수시스템(생활하수를 하천으로 흘러가기 직전에 모아 한 번에 배출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등 큰 변화가 필요하다”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청계천 복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 많은 양의 대장균이 검출된 청계천 중ㆍ하류는시민들이 발을 담그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 정혜아 

“아무 데나 세우는 건 복원 아니다”

역사적 시각의 결여는 청계천 복원에 쏟아지는 또 다른 비난거리다. 청계천 시점부에 자리 잡은 모전교는 원형을 완전히 무시한 ‘이명박식 다리’가 되었으며, 광통교는 제자리에 자리잡지 못했다. 광통교는 원위치에서 상류 방향으로 155m 지점인 중구 다동 한국관광공사 앞에 복원됐다. 원위치에 광통교를 복원하면 현재 차선을 돌려야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청계천 복원 당시 시민위원이었지만,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시민위원을 관둘 수 밖에 없었다는 한 전문가는 “광통교를 복원하면서 지금 형태를 취한 것은 문화재의 올바른 복원과 차선을 돌리는 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 중 경제적 이익을 더 중요시한 것”이라며 “이는 역사의식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평했다.

▲  철교가 얹어진 광교 아래에는 옛 청계천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 정혜아
수표교도 마찬가지다. ‘복원을 원칙으로 한다’는 기본방침을 정했지만 복원 대상인 청계천 수표교 자리에는 임시로 지어진 철교(관수교)가 버젓이 서있다. 수표교는 현재 장충공원에 보관된 채 이전 여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한양 내성에서 바깥으로 문을 빼내던 오간수문 역시 후세 사람들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표식이라도 했어야 하지만 오간수문 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실로 반세기만에 시멘트 구조물 아래 갇혀있던 청계천이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지난 시대 한국사회의 유물이었던 개발과 성장위주의 도시정책에서 역사와 문화, 환경을 먼저 고려하는 인간중심적 정책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청계천 복원은 현재 진행형

지난 2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를 만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 시절 마무리했던 청계천 복원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당시 박 시장은 “고가도로를 헐고 청계천 복원을 한 것은 탁월하고 좋은 결정이었다”면서도 “문제는 그 과정에서 생태적‧역사적 시각이 결여돼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문승국 서울시 행정2부시장과 시민위원 중 1명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가 환경‧생태 전문가 10명, 문화‧도시 전문가 10명, 관계공무원‧시의원 5명과 함께 지난 3월 출범했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황평우 소장은 “박원순의 청계천시민위원회도 이명박의 청계천시민위원회와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며 “퇴적층까지 발굴조사를 해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역사 이전의 유물 발굴조사도 이뤄져야 하며 근대 이후 청계천 주변의 변화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만, 박원순의 청계천시민위원회도 이런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생태적‧역사적 인식 없이 관료적 성과주의로 강행된 청계천 복원사업에 재검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 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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