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대산농촌문화재단 장학생 연수 참가기

자유무역협정(FTA)은 비교열위에 있는 우리 농업의 희생을 전제한다. 미국과 EU국들은 대개 공업국인 동시에 농업국이고, 중국은 농산물 가격이 대단히 싼 나라이다. FTA 시대를 맞아 우리 농촌은 어떻게 위기에 대응하고 있을까? 대산농촌문화재단이 방학을 맞아 대산장학생들에게 베푼 농촌 연수는 우리 농업의 문제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혁신의 가능성을 살펴볼 좋은 기회였다. 교보생명그룹 창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이 설립한 대산농촌문화재단은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드높여 모든 사람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돕는다’는 목적으로 1991년 이후 꾸준히 장학사업과 농촌문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20일부터 3박4일간 진행된 하계연수에는 농업CEO양성 학부장학생 6명과 농촌전문언론인양성 장학생 2명이 참가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인 언론인양성 장학생은 현재 3명이지만 재학중 <동아일보>에 입사한 서동일씨가 중국 출장으로 참가하지 못해 두 참가자가 연수 후기를 썼다. <편집자> 

FTA 위기 속 농식품산업 “아이 입맛부터 사로잡아라”

첫날 일정은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대산농촌문화재단에서 오교철 재단이사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이어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이 ‘FTA 시대, 우리 농업•농촌이 사는 길’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현재 우리 농촌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있습니다. 이윤만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해 농촌을 더욱 등한시하고 병들게 합니다. 그 와중에 현 정권은 외국에만 나가면 FTA를 추진하려 합니다.”

김 전 장관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한-중FTA다. 그는 “중국의 저품질, 저가격 농산물이 국내에 들어오면 농업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우리나라가 질적, 양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영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조나단 포리트 전 의장의 말을 빌려 2020년에는 식량 부족, 물 부족, 석유값 폭등이 겹쳐, ‘최악의 폭풍’이 닥칠 것을 걱정했다. 실제로 올해 최악의 가뭄으로 미국과 남미의 옥수수와 콩이 흉작이어서 식량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은 FTA 이후 우리 농업의 살 길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김 전 장관은 우리나라 농업의 나아갈 길과 관련해 지역사회가 농업을 지원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CSA(Community Support Agriculture) 운동, 쿠바의 도시농업 운동,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을 예로 들었다. 그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안전한 먹거리를 지역주민이 소비하고 수송거리를 줄인다면 친환경적 도농 상생이 가능하다”며 로컬푸드 운동의 전국화를 주장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발상의 세방화(glocalization)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 농업의 미래는 없다”며 “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믿음과 모두가 공존하는 생태농업을 결합해야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연수단은 경기도 여주로 이동해 은아목장을 방문했다. 은아목장은 쿼터생산에 따라 남게 되는 우유의 활용방안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우유 생산량 증가에 집중하지 않고 생산에서 유가공 체험까지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낙농업 분야에서 이른바 ‘6차산업화’를 실천하고 있었다.

은아목장 조옥향(58•여) 대표는 32년 전 귀농을 결심했다. 어렸을 때 관악산자락에 있는 목장을 방문해 뛰놀던 시절이 생각나서였다. 자신의 추억을 되새기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목장을 경영하게 됐다.

“사람 입맛은 유아기에 완성됩니다. 유아기에 올바른 먹거리 교육이 중요해요.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우리 먹거리를 먹여야 합니다.”

▲ 은아목장 조옥향 대표가 피자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현재 은아목장은 젖소 80두를 키우며 계약생산으로 연세우유에 원유를 공급한다. 계약생산 물량 외 잉여생산물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 체험활동을 생각해냈다. 고객인 주부와 잠재고객인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치즈와 아이스크림 만들기 체험교실을 열었다. 목장에 머물며 체험하는 ‘팜스테이’(Farm Stay)를 위해 60명이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도 지었다. 연수단도 치즈 피자 만들기와 아이스크림 만들기를 체험했다.

은아목장 체험을 마친 연수단은 경기도 이천의 농촌체험마을인 부래미마을로 이동해 하루를 마무리했다.

유기농이 기르기 힘들고 비싸다는 건 선입견

둘째 날은 유기농 상추 등 쌈 채소로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충북 충주 장안농장을 방문했다. 류근모(52) 대표는 FTA를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 말했다. 막 일본에서 돌아왔다는 그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한국 농산물이 많이 수입될 줄 알았는데 실상은 달랐다”며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적 영농으로 수확량이 많을 뿐 아니라 소비패턴에 신속히 대응하는 체계적 유통망이 농가 중심으로 짜여 있어 일부 지역의 재해나 무역개방에 따른 경쟁력 싸움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도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깨끗하고 안전한 최고 품질의 유기농산물을 길러내는 것은 기본이고요. 소비자와 만나고 대화하는 통로를 확대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장안농장 농산물이라면 안심하고 사먹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려 노력합니다.”

그가 내세운 ‘3농부운동’도 신뢰 구축의 수단이다.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 모두 농산물을 중심으로 관계망을 형성하는 ‘농부’라는 취지로 펼치는 운동이다. 직접 흙을 만지지 않더라도 먹거리나 국내농업에 대한 믿음과 책임을 공유하는 것도 결국 ‘농사’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는 농업CEO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 장안목장 류근모 대표는 "농업에 문화를 접목하고 감동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CEO가 되려면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소비자를 설득시키고 믿음을 전할 수 있는 스토리로 다가서야 감동경영이 가능합니다. 공부하는 경영자가 돼야죠. 글로벌 경쟁 시대에 외국어는 필수입니다.”

유기농은 화학농업에 견주어 사먹거나 생산하는 데 돈과 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연수단이 다음으로 방문한 충북 제천 한가지골농장 이해극(61) 대표는 그것이 선입견임을 실천을 통해 입증했다.

그는 30여 년 전에 친환경 유기농업을 시작해 국내1호 유기농장을 일군 것을 비롯해 비닐하우스 자동개폐기, 자동파종기 등을 발명한 장본인이다. 그는 안전하고도 돈이 많이 안 드는 게 유기농업이라고 상식을 뒤집어 말했다. 더욱이 소비자의 건강과 땅에도 좋은 농사가 유기농이라고 강조했다.

호주산 쇠고기만 청정육? 

사흘 째 되는 날 경북 영주에서 친환경으로 한우 300여 마리를 키우는 덕풍농장을 찾아갔다. 오삼규(43) 대표는 호주산 쇠고기가 초원에서 생산되는 청정육이고 한우는 죄다 비위생적으로 키운다는 생각이야말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 덕풍농장 오삼규 대표는 미래 농업인들에게 처음부터 너무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작은 것부터 성취하라고 충고했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덕풍농장은 위생적인 사육환경 유지는 물론이고 한우의 수정•분만• 질병관리 등을 모두 전산화하고 항생제 사용을 감축하는 등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는 미래의 농업인들에게 처음부터 너무 큰 그림을 그리지 말고 천천히 작은 것부터 채워나가라 충고했다. 특히 요즘 축산농가가 식육식당이나 사료생산공장 설비 등 생산•가공•판매까지 모두 맡아 하려는 것은 과욕이라고 지적했다.

연수 마지막 날인 23일, 경북 문경에 있는 신미네유통사업단을 방문했다. 이름만 듣고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컨테이너를 지게차가 운반하고 있었다. 2001년 영농조합법인으로 신미네 유통사업단이 설립됐다. 이 사업단은 양파를 주력으로 감자와 콩을 농가와 계약재배한 뒤 저장과 유통을 담당하는 곳이다.

창고는 2300평이나 되는 거대 규모인데도 칸막이가 없는 원룸 형태였는데, 온도를 0°C~0.5°C로 유지한다. 컨테이너가 85개나 들어가 양파의 경우 17,000t 가량을 저장할 수 있는 크기이다.

▲ 신미네유통사업단은 대용량 포장과 저온 큐어링 시스템을 개발해 저장과 유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있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이곳 컨테이너는 일반 컨테이너와 모습이 약간 다르다. 컨테이너 바닥에 여유 공간을 두고 통풍시스템을 갖췄다. 이 사업단이 특허를 낸 ‘큐어링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양파의 저장성을 높여 파손율을 낮추는 장치다. 그 결과 기존 20% 파손율을 7~10%까지 낮췄다고 한다.

다음으로 방문한 문경시 농업기술센터는 농업기술과 정보를 농민들에게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센터는 지역특화작목인 사과와 오미자 재배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 미래의 농업인들은 연수를 통해 농업이야말로 첨단•미래산업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 대산농촌문화재단

3박4일의 빡빡한 연수 일정을 마치면서 떠오른 것은, 가장 오래된 산업인 농업이야말로 미래산업이라는 확신이었다. 또 하나, 농업에 밀려드는 FTA 파고가 만만치는 않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농촌이 청년들의 열정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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