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점심 무렵 도심의 대기업 빌딩. 텅 빈 사무실 천장엔 형광등이, 책상엔 컴퓨터들이 그대로 켜져 있다. 같은 건물 지하의 대형마트. 한겨울임을 잊을 만큼 난방이 후끈한 가운데 신선식품과 음료코너 등에서는 활짝 열어둔 냉장고 문으로 찬 공기가 연기처럼 피어나온다. 건물 밖 카페 골목. 대낮이라 눈에 띄지도 않는데 간판과 외벽의 장식용 조명이 환하다.

현실로 다가온 '원전대국'

어지간한 가정에서는 요즘 전기료 아끼느라 온 가족이 비상인데, 집밖에선 이런 낭비가 여전한 이유는 뭘까.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에 비해 일반용(상업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이 훨씬 싼 탓일 것이다. 특히 산업용전기료는 원가에 훨씬 못 미칠 뿐 아니라 많이 쓰는 대기업에게 오히려 할인해주는 '역누진제'가 적용돼 구조적으로 에너지낭비를 부추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1달러 제품을 만드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평균의 1.75배, 일본의 거의 3배에 이르는 전력을 쓸 정도로 에너지효율이 낮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에너지절감에 머리를 싸맨 가운데서도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우리나라 전력소비는 30.6%가 늘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은 1.7% 늘어나는 데 그쳤고 일본과 영국은 각각 1.9%와 5.1%가 줄었다.

전력소비가 이렇게 급증하니 공급이 따라가기 어려워 9월엔 정전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가장 많은 전기를 쓰는 기업들이 절약하지 않을 수 없도록 요금을 원가 이상으로 올리고 누진제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부 대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경부는 최근 전력요금을 조정하면서 요금체계는 손대지 않고, 산업용 가격을 다른 것보다 약간 더 올리는 데 그쳤다. 그리고는 일본 후쿠시마 사고 후 주춤했던 원전 건설을 계속하겠다며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을 새 후보지로 선정했다. 기업들의 전력낭비는 놔두고, 그 낭비를 지탱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그러면 현재 21기인 원전은 2030년까지 총 40기로 늘어나고 전체 발전에서 원전 비중은 31%에서 59%로 커져, 그야말로 '원전대국'이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고작 400km 남짓인 국토에 40기의 원전이 들어서, 이미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상황이 심해진다고 생각해보자. 원전사고는 반경 200킬로미터까지 영향을 미친다니, 이 땅에서 '만일의' 원전사고에 안전한 지대는 남지 않을 것이다. 지질전문가들은 원전이 집중된 강원과 경북 해안 일대에서 강도 7이상의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한다. 원전이 북한 도발의 목표물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는 우리 원전이 어떤 사고에도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평소에도 잦은 고장과 오작동으로 멈춰 서곤 하는 현실에서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났을 때 '그래도 우리는 안전하다'며 원전건설을 밀어 붙였던 일본은 결국 후쿠시마 사고를 당했다.

신재생에너지쪽으로 눈 돌려야 할 때

원전만큼 원가가 싸고 탄소배출이 적은 에너지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관리비용과 폐기물처리까지 고려하면 원전이 결코 싸지 않다는 것과 단 한 번의 사고로 가공할 재앙을 당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단계적 원전탈출'을 결행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그 중 독일은 올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전체 발전량의 20%까지 높였다. 신재생에너지가 아직 충분한 경제성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집중적인 지원과 에너지절약정책이 병행되면 점차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음을 스웨덴, 덴마크 등도 보여주고 있다. 후쿠시마를 목격하고 다른 대안이 있음을 보면서도 정부가 '원전대국'을 고집한다면, "오로지 건설대기업 등 '원전마피아'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이 칼럼은 한국일보 12월 27일자 <아침을 열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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