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청년 보고서] ④ 은둔의 확산

광주광역시에 사는 이정선(57·가명) 씨에게는 3년째 은둔 중인 아들이 있다. 둘째 권준성(20·가명) 씨다. 이 씨 부부와 세 형제까지 다섯 식구가 사는 51평짜리 아파트에서 권 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3평 남짓한 자신의 방에서 보낸다. 하루에 한두 번 화장실과 주방을 갈 때만 방에서 나온다. 배고플 때는 라면이나 냉동식품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한동안은 먹고 싶은 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어머니 이 씨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요즘에는 그마저도 끊겼다. 

▲ 가족은 은둔 청년이 상처를 받았을 때 치유할 장소다. 하지만 처음으로 은둔을 맞닥뜨린 가족들은 다가갈 방법을 알지 못해 힘들어한다. 오히려 은둔 청년의 우울과 고립감이 가까운 가족에게 번지기도 한다. ⓒ 김혜리

소통 단절로 오해만 쌓여

가족은 은둔 청년과 가장 가까운 타인이다. 안정과 지지를 바탕으로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도 있고, 잘못된 대응으로 은둔 청년을 더욱 고립시킬 수도 있다. 은둔 청년은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소통을 기피한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단비뉴스>가 만난 은둔 청년 25명 중 13명(52%)은 은둔하는 동안 ‘가족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 은둔 청년 25명 중 절반 이상은 가족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가족들과 두루 소통한다’고 답한 3명도 가족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정서적으로 의지하지는 못했다. ⓒ 현경아

소통이 단절되면 추측만 늘어난다. 은둔형 외톨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가족은 ‘일을 하면 은둔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라’고 압박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2020년 광주광역시가 은둔형 외톨이 가족 1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족이 은둔 당사자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부분은 ‘취업 및 직업훈련 권유’(44.1%)였다. 가족들은 불안감 탓에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단비뉴스>가 만난 25명의 은둔 청년 가운데 5명에게 정신병동 입원 경험이 있었는데, 그중 3명은 부모에 의해 강제로 입원했다. 

폭력에 노출된 가족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려는 가족의 마음은 은둔 청년에게 가닿지 못한다. 심리적·사회적으로 위축된 상태이므로 피해의식을 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가 마련한 자조모임에 참석한 김진화(50대·가명) 씨는 은둔 중인 아들 때문에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다고 했다. “숨소리만 내도 본인을 무시했다고 나를 몰아세워요.” 아들을 생각해 함께 상담을 받자고 하면 욕설이 날아왔다. 은둔 탈출에 도움이 된다고 추천받은 책을 아들에게 권하면 “나 정신병자 만들지 말라”는 말이 돌아왔다. 

은둔 청년은 대체로 대인관계에서 매우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현하거나 언어적·신체적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2020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서 은둔 당사자 237명 중 61.5%는 ‘가족에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른다’고 답했다. 가족이 느끼는 폭력은 더욱 컸다. 조사에 참여한 112명의 가족들 중 69.6%는 화와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큰소리로 격분하는 경우는 83.9%에 달했다. 은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충동성과 분노 폭발의 빈도도 높아졌다. 그 피해는 온전히 가족에게 돌아간다.

▲ <단비뉴스>가 재구성한 <2020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통계. 약 70%의 은둔 당사자들은 가족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응답했다. 대상자 237명에는 179명의 은둔 청년 외에 10대(10명)와 40대 이상(48명)도 포함됐다. ⓒ 임예진

은둔의 확산과 사회적 고립

직접적인 폭력과 폭언이 아니어도, 가족 구성원이 은둔한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가족은 위축된다. 은둔 청년이 느끼는 우울과 불안은 가족에게도 전염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강세주(33·가명) 씨의 오빠는 15년째 은둔 중이다. 오빠의 은둔을 곁에서 지켜본 마음을 강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새로 태어나거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답이 없는 것 같았어요. 구렁텅이에 빠진 기분이 들었죠.” 이러한 심리 상태는 은둔 청년의 다른 가족까지 은둔하게 만든다. 결국 강 씨도 1년 동안 은둔했다. 

<2020 청년재단 은둔형외톨이 실태조사>에서 면담에 참여한 34명의 부모들 역시 은둔 청년과 마찬가지로 우울, 무력감, 자책, 분노 등의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가족들의 사회적 고립으로도 연결된다. 수백 명의 은둔 청년과 그 가족들과 상담했던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은 “(은둔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남들과 어울려 가족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꺼리면서, 부모의 사회적 관계도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자조모임에 참여한 십여 명의 부모들 또한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자식의 은둔을 알리지 못한다고 했다. 박 소장은 그 배경에 은둔 청년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20여 년간 ‘히키코모리’를 연구한 사이토 다마키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사회정신보건학)는 은둔형 외톨이가 개인-가족-사회에서 삼중으로 고립되는 ‘은둔형 외톨이 시스템’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은둔형 외톨이 개인의 고립이 가족의 고립, 나아가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되어가는 시스템을 뜻한다. 은둔 청년 본인이 스스로를 가두고, 가족이 당사자를 압박함으로써 가두고, 당사자와 가족이 사회에서 고립되면서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가족도 도움이 필요

그런 점에서 은둔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족을 위한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가족은 은둔 청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은둔에서 탈출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적절한 대응 방법을 알릴 필요가 있다. 13년 전 약 1년간 집에서 은둔했던 강세주 씨는 본인이 은둔을 경험했음에도 10년 넘게 은둔 중인 오빠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이 어떤 식으로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도 알려주면 좋겠다”며 “더 노력해서 제가 조금 실수를 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을 위한 심리 상담은 은둔 청년의 탈출을 돕는 존재로서 가족의 역할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 <2020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를 보면, 은둔 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정책도 가족 심리 상담이었다. 형제, 자매, 아들, 딸 등의 은둔에서 비롯된 무기력감과 우울감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은둔이 다른 가족에게 확산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 

▲ <2020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서 112명의 은둔 가족들에게 가족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이 무엇이냐 묻자 41명(36.6%)이 심리 상담을 꼽았다. ⓒ 현경아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청년재단’은 2018년부터 고립 청년의 자립을 돕는 ‘청년 체인지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부모교류회’도 이 프로그램의 하나다.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이아당 심리상담센터도 은둔하는 자녀와의 소통과 대응 방식에 관한 교육과 자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 지난해 6월 19일과 26일 <단비뉴스>는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모임을 참관했다. 부모들은 은둔하는 자녀와의 소통 방법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 이강원

은둔 청년은 그대로 두어서는 회복되지 않는다.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 소장은 “가족의 지지가 있을수록, 친구가 있을수록, 좋은 상담사나 의사를 만날수록 회복력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은둔 청년이 주변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에는 최소 3년에서 최대 10년 이상 걸린다. 가족의 문제라고만 여겨서는 버티기 어렵다. 전문가와 지원기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은둔 청년의 엄마이기도 한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는 “엄마 입장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원 기관이나 단체가 은둔 당사자와 그 부모의 마음까지 잘 살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은둔하며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은둔형 외톨이는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청년 세대의 은둔은 중요한 사회 문제다. 지난해 12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0 청년 사회·경제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거나 '집에 있으면서 인근 편의점 등에만 외출한다'고 답한 비율은 3.4%였다. 이를 한국 청년(19~35세) 인구에 대입하면 37만여 명의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추정치일 뿐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전국에 은둔 청년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지내는지 한국 사회는 알지 못한다. 정부 차원의 전국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파고든 국내 언론의 보도도 부족했다. 그들의 실태를 밝히기 위해 5명의 <단비뉴스> 기자가 '은둔 청년 취재팀'을 결성했다.

취재팀은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지원 단체 관계자들을 도움을 받거나 직접 수소문하여 25명의 은둔 청년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심층 인터뷰한 25명의 은둔 청년의 연령은 10대 1명, 20대 16명, 30대 8명이다. 서울 등 수도권 거주자는 14명, 광주·강원 등 비수도권 거주자는 11명이다. 남성 12명, 여성 13명을 만났다.

심층 인터뷰와 별개로 취재팀은 이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도 분석했다. 은둔 청년들이 모인 어느 인터넷 카페의 회원 소개글에는 은둔 계기, 현재의 어려움 등을 진솔하게 적은 내용이 있었다. 취재팀은 2017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4년 6개월여 동안 이 카페에 올라온 소개글 471건의 내용을 분석했다. 또한 관련 전문가 11명을 인터뷰하고, 은둔 청년 문제를 다룬 단행본·보고서·연구논문·토론회자료집 등 2500여 쪽 분량의 문서도 검토했다.

자료조사, 전문가 자문, 지원단체 취재, 은둔 청년 인터뷰 등 4개월 여에 걸친 취재 내용을 5편으로 나눠 담았다. 기사에 등장하는 은둔 청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표기했다. 당사자들이 신상 노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진 촬영도 꺼렸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진 대부분은 당사자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들의 생활상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일러스트를 삽입했다. 일러스트는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편집자주)

1회 <게임과 잠으로 고립을 잊는 은둔 청년>

2회 <잇단 좌절을 피해 사라져 버린 청년들>

3회 <은둔과 우울의 무한 굴레>

'은둔 청년 25인 보고서'는 <한겨레21> 제1390호 표지 기사(링크)로도 게재됐습니다.

편집: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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