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2021년 한국방송대상 시리즈 작품상 ②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불안 사회. 지난해를 한마디로 정의한다. 2021년은 혐오와 불안이 가득한 한해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악화하고, ‘세 모녀 살해’ 김태현 사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스토킹 살인사건 등 흉악범죄가 잦았다. N번방 사건, 불법 카메라, 딥페이크 등 기술의 발달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들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놓였다. 범죄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범죄자에 관한 인식도 변했다. 범죄사건이 벌어지면 언론은 단순히 가해자를 악마화해서 특이한 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했다. 혹은 가해자의 가정형편이 불우했다는 이유로 주목과 동정을 받기도 했다. 이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보도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N번방 보도 당시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에서 낸 보도 지침이다. “짐승, 늑대, 악마 같은 표현으로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해서 예외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도 지침은 언론이 그동안 범죄자에게 과도한 서사를 부여했고, 단순 악마화했다는 것의 반성이다. 과거에 범죄는 조폭들이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특이한 범죄자들이 저질렀다면, 지금은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이웃이나 친구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인식한다. 다행히 피해자를 보호하고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쪽으로 사회 인식이 바뀌고 있다.

사회 불안은 프로그램에 반영된다. 지난해 범죄와 괴담을 스토리텔링하는 교양예능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왔다. 범죄 프로그램은 우리가 처한 불안한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범죄분석 전문가가 범죄 사건을 재해석하는 KBS <표리부동>, 범죄 전반을 다룬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알쓸범잡)>, 괴담을 다룬 MBC <심야괴담회>, 음모론을 다룬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 등이다. 프로그램들은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소재와 포맷으로 범죄를 다루고 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범죄 스토리텔링형 프로그램의 유행을 이끈 대표 프로그램이다. 2021년 제48회 한국방송대상에서는 문화예술교양 부문을 수상했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3명의 ‘이야기꾼’(화자)이 각자의 ‘이야기 친구’(청자)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다. 2020년 9월에 시즌1 방영을 시작으로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10월부터 시즌3이 방영 중이다. ⓒ <SBS>

<꼬꼬무> 범죄 스토리텔링의 특성

이전에도 사건 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은 있었지만, 지금의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과는 확연한 형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92년부터 만들어진 사회, 미제사건 등을 파헤치는 시사 고발프로그램이다. <꼬꼬무>와 결정적 차이점은 스토리텔링의 방식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김상중 진행자가 VCR을 보여주며 현장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진행자는 카메라를 보며 시청자에게 말을 건네듯 이야기를 한다. 전지전능한 진행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시청자의 신뢰를 얻었다.

<꼬꼬무>는 전혀 다르다. 방송 화면에 화자와 청자가 모두 등장한다. 3명의 이야기꾼이 각자 역사 속 그 날, 그 사건의 순간을 가까운 지인에게 들려주는 방식이다. <꼬꼬무>가 지향하는 스토리텔링의 첫 번째 특징은 바로 1:1로 이야기를 전하는 포맷이다. <꼬꼬무>에서 1:1 대화방식은 역사적인 사건 사고를 해석하는 ‘내’가 ‘너’에게 얘기한다는 사적 이야기 방식이다. 때로 연극에서 하듯 조금 과장하기도 하지만, 이야기꾼은 본인이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고 리얼하게 현장을 설명한다. 청자의 놀라는 표정과 반응은 시청자를 이야기 속으로 더욱 몰입시킨다. 이야기는 리액션을 통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상승곡선을 탄다.

전통적으로 대중매체는 한 명의 화자가 다수의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다. 한 사람의 전문가가 출연해서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을 향하는 강연 형식도 인기였다. 최근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지식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전문가가 강연하고, 패널들이 질문하는 포맷이었다. KBS <이슈 pick 쌤과 함께>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MBC <선을 넘는 녀석들>이 대표적이다. 모두 대중을 향한 일방향적, 공급자 중심적 전달 방식이었다.

▲ 이야기꾼은 연극에서 하듯 조금 과장하기도 하지만, 이야기꾼은 본인이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고 리얼하게 현장을 전한다. 청자의 리액션은 시청자들이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 <SBS>

1:1 스토리텔링도 기술적으로는 일방향적 소통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르다. 내용상으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1:1 포맷이지만 실제는 인터랙티브다. 청자의 반응에 맞추어 설명의 내용과 강도가 달라진다. 청자가 질문하면, 보충 설명까지 해준다. 한 팀이 아니다. 세 팀이다. 같은 얘기지만, 느낌과 분위기가 다르다. 한 이야기는 다른 분위기에서 더욱 상승효과를 낸다. 온라인 콘텐츠 소통 방식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꼬꼬무>의 스토리텔링을 편하게 받아들인다. 유튜브의 1인 크리에이터들은 시청자에게 말을 건네듯 이야기한다. 팟캐스트 플랫폼인 팟빵 등 오디오 콘텐츠에서도 한 명의 청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느낌을 준다. 스토리텔링 방식은 누군가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가 소통하고 공유하는 형식으로 진화했다.

두 번째 특징은 어두운 세트 분위기와 웅장한 효과음이다. <꼬꼬무> 시즌2 ‘핑크빛 욕망의 몰락’편(14회)을 보면 그 특성이 잘 드러난다. 프로그램은 “쾅”하는 효과음과 암전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약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시청자가 느끼고 상황에 몰입하도록 결정적인 장면의 영상과 소품을 적절한 곳에 등장시킨다. 삼풍백화점 건물의 붕괴 장면은 3D로 실감 나게 재현된다. 붕괴한 백화점을 재현한 미니어처는 단순히 소품을 넘어선다. 이야기꾼 3인의 스토리텔링과 엮어서 자료 화면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사고의 장면을 보여주며 현장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전한다.

▲ <꼬꼬무>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사고 당시를 모형으로 구현하고 3D로 재현해서 시청자를 당시 사고 현장으로 이끌고 간다. ⓒ <SBS>

세 번째 특징은 사건에 있었던 인물에 집중해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는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사고 당시에 있었던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날의 일을 묘사한다. 사건에 가려져 있던 ‘개개인의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며 시청자들이 사건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건의 당사자가 실제로 겪었던 생생한 증언은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든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든다.

▲ 삼풍백화점의 피해자는 “지금 사람들은 삼풍 사건을 모른다”라는 말을 듣고 <꼬꼬무>에 출연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너무 쉽게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는 한 역사는 되풀이된다. ⓒ <SBS>

범죄 스토리텔링의 힘

바야흐로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꼬꼬무> 외에도 방송국마다 범죄, 괴담 등 사건을 다룬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KBS <표리부동>,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MBC <심야괴담회> 등이다. 비슷한 듯하지만, 조금씩 다른 소재와 포맷을 보여주고 있다. ‘범죄’라는 특성은 스토리텔링하기 좋은 소재다. 범죄는 인물, 사건, 갈등 즉, 서사가 존재한다. 과거에 있었던 범죄나 사건 이야기들은 시청자들에게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프로그램에서 과거 사건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시청자의 흐릿한 기억에 구체적인 정보와 장면으로 색을 입힌다.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건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KBS <표리부동>,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MBC <심야괴담회> 포스터.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소재와 포맷으로 범죄를 다루고 있다. ⓒ <SBS>, <KBS>, <tvN>, <MBC>

tvN <알쓸범잡>은 각 분야 5명의 전문가가 모여서 지역과 관련된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다. <알쓸신잡>의 스핀오프 격인 프로그램이다. <알쓸신잡> 시리즈는 여행을 가서 그곳의 건물과 유적지 등을 통해 그 지역의 음식과 인문학 등을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알쓸범잡>에서는 여기에 범죄를 더해서 보여준다. <알쓸범잡>은 <꼬꼬무>에서 다룬 삼풍백화점 사건을 11화 서울 강남 편에서 다뤘다. <꼬꼬무>가 범죄자의 안전 불감증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뤘다면, <알쓸범잡>은 사건을 현대에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당시 서울시는 삼풍백화점 있던 자리에 위령탑을 세운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곧 약속을 엎고 삼풍백화점이 원래 있던 곳과 떨어진 양재 시민의 숲에 위령탑을 세웠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희생자 위령비는 사람들이 오가기 힘든 성수대교 북단에 있다. 도로에 둘러싸여져 도보로는 갈 수 없다. <알쓸범잡> 출연진들은 삼풍희생자위령탑과 성수대교사고희생자위령비를 찾아가 조의를 표한다. 우리의 어두운 면을 감추고 피해자들을 잊는다면, 이런 사건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KBS <표리부동>은 본격 범인 분석 프로그램이다. 범죄분석 전문가인 표창원과 이수정이 각각 화자가 되어 2명씩 청자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방식이다. 사건에 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과거 뉴스 자료와 영상을 비교적 많이 쓴다. <꼬꼬무>의 청자가 리액션이 중심이었다면, <표리부동>의 청자는 표정의 리액션보다는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MBC <심야괴담회>에서는 괴담이 주요 소재다. 괴담의 특성상 어두운 스튜디오에 연예인 패널들이 둘러앉아 괴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시청자들의 괴담 이야기를 공모하고 세 가지 괴담을 이야기하면, ‘어둑시니’(온라인으로 참여한 시청자)들이 가장 괜찮은 이야기를 선정한다. 귀신 이야기에 활용하기 위해 애니메이션과 재연을 주로 활용한다. 아쉬운 점은 괴담 속에 있는 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분석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괴담을 단지 흥미 거리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 속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잊지 말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보며, 같은 사건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다양한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들은 때로 소재가 비슷하게 겹치기도 한다. 차이는 사건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느냐에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이 단지 흥미로운 사건을 전달하는 데 그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그 사건을 왜 다시 기억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할 때 오늘,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다.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은 벌어진 범죄를 통해 왜 그런 범죄가 벌어졌고, 범죄를 용납한 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종합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역사, 괴담, 범죄, 스릴러 등을 다루는 유튜브들도 많다. 방송 프로그램은 이들 유튜브와 달라야 한다. 방송이 제작하는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은 재미뿐만 아니라 검증된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가 세상에 관한 총체적 시각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방송의 시대정신이자 사회적 책임이다. 이를 위해 지켜야 할 점은 많다. 먼저 역사 고증이다. 유튜브에서는 역사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방송에는 팩트체크를 거쳐,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의 경위와 진실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종합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사건의 현재 의미와 나아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어떤 식으로 사회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자면, 시청자의 “왜 지금?”이라는 질문에 충실히 대답할 방송의 사회적 책무가 있다. 1:1 대화 형식의 스토리텔링은 그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 드라마 <시그널>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이형호 군 유괴사건 등 영구미제 사건들을 다루며, 미제 사건 해결이 미래의 희망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드라마 속 형사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 ⓒ <tvN>

어떤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시청자에게 제시할지를 고민한다는 것은 오늘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진짜 잘못을 바로잡아야 과거를 바꾸는 거고, 미래도 바꿀 수 있다.” 드라마 <시그널>에 나온 대사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좀 더 안전하게 사람이 사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과거를 들여다보고 기억하기. 이 시대 범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의 미덕이자 사명이다.


편집: 김병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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