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2021년 한국방송대상 시리즈 작품상 ① EBS ‘당신의 문해력'

명약관화(明若觀火). 밝기가 불을 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분명함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다. 현재 기준(지난 6일)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총 5887명이다. 49명이 하루 새 또 사망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죽음은 실시간으로 집계된다. 매일 몇 명이 죽었는지 텔레비전에, 인터넷에 뜬다. 죽음이 분명하게 집계되는 세상이 된 지 3년째, 2022년 새해에도 여전히 죽음은 숫자화돼 떠돈다. 49명의 죽음 위에서 사람들은 또다시 아침 해를 맞이해야 한다. 아침 해를 바라보며 죽음을 밟고 선 삶을 생각한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확산하고 있지만, 더 나은 한 해가 되길 모두가 기도한다.

1월은 지나간 한 해를 되짚어보고, 다가올 한 해를 기운차게 보내기 위해 계획하기 좋은 달이다. 새해를 맞아 한 달 동안 매주 1회 한국방송대상을 받은 작품을 선정해 톺아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진행된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우리 방송이 코로나에 맞서 보이지 않는 헌신과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픔을 조명하는 동시에 공감과 이해, 연대와 협력의 물결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발언은 우리가 방송대상 수상작을 되새겨보는 의미와 일치한다. 4회에 걸쳐 코로나19 악조건 속에서 지금 프로그램에 요구되는 사회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제작자는 왜 어떻게 프로그램을 제작해 세상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문해력: 개인이 사회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필수 능력

문해력 프로젝트 6부작 EBS <당신의 문해력>은 사회 공익 부문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지난해 3월 8일부터 23일까지 방영된 <당신의 문해력>은 김구라, 이현이, 별, 황광희, 알베르토 몬디 등이 패널로 출연해 유아,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1년 동안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과정을 담았다. 8월 출간된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다.

▲ <EBS>는 한국의 문해력 실태를 점검하고 미래 시대 핵심역량으로 떠오르는 문해력을 키우고자 특별 기획으로 <당신의 문해력>을 제작했다. ⓒ <EBS>

문해력은 무엇이고 왜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일까.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영단어 ‘literacy’의 번역어이다. 넓은 의미로는 글을 이용해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뜻한다. <당신의 문해력> 1부에서 조병영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세상의 많은 일들이 글을 통해 표현·설명된다”며 “글을 정확하고 비판·분석·창의적으로 읽기 위해 문해력을 갖춰야 한다”고 문해력 향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즉, 문해력이 저하되면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과제를 이해하고 또 해결할 수 없다. 개인에게는 학창시절 학업 성적과 취업 후 연봉으로 직결돼, 삶의 질을 좌우한다.

실제로 2014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실시한 성인문해능력조사를 보면 문해력과 소득 수준의 상관성이 확인된다. 가구 소득과 문해력 테스트 결과를 비교한 결과 가구 소득 100만 원 미만은 평균 40.8, 100~299 원은 72.8, 300~499 원은 85.8, 500 이상은 90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3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16~65 대상)에서도 드러난다. 결과에 따르면 가장 높은 문해력 수준을 갖춘 사람들이 최하위 수준에 비해 평균 시급은 60% 이상, 취업 가능성은 2 이상 높았다. 좋은 일자리를 얻는  문해력이 깊은 관련이 있음을 있다.

한국인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2020 정부에서 8 17일을 임시공휴일로 확정하면서 토요일인 광복절부터 사흘 연휴가 이어진다는 기사가 나온 있다. 3일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사흘 몰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3일인데 사흘이라고 쓰냐 댓글 항의가 올랐고, 해당 단어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 2019 7월에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영화 <기생충> 남긴 평에명징직조 논란이 일었다. 명징과 직조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어려운 한자어를 굳이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며 인터넷 공간을 달궜다.

문해력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캘리포니아대(UCLA) 난독연구센터장 매리언 울프 교수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문해력 저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있다 경고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가장 걸림돌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이라며 수준 높은 읽기를 없는 이들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했다. 문해력은 글과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나아가 비판적으로 사회를 바라볼 있는 시각을 만드는 토대이다. 그러므로 문해력 저하는 민주주의 존립에 위험을 끼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 문해력 테스트에서 나온 문제. <당신의 문해력> 1부에서 김구라, 이현이, 알베르토 몬디, 황광희가 해당 문제를 풀었으나 답을 맞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만 아무도 답을 맞히지 못했다. 문해력 저하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진은 성인 남녀 880 대상으로 복약 지도서, 주택 임대차 계약서, 직장 휴가 일수 계산 명시문, KTX 열차 요금 계산 안내문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문장을 이해하는지 문해력을 테스트했다. 결과는 평균 54. 낮은 점수다. 난해한 질문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자주 보는 글을 이해하는지 물었지만 100 만점에 절반만 맞힌 것이다. 실생활에서 읽어야 하는 글을 정도만 이해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문맹률은 낮은 수준이다. 1966 1% 집계된 이후 공식적인 조사가 이상 의미가 없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성인 문해력 시험 결과에서 있듯 문맹이 아니라고 해서 문해력이 높다는 말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다양한 형태의 문서를 읽고 활용하는 능력을 비롯해, 문학 작품이나 신문기사 등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등이 낮음을 있다.

문해력 격차가 만드는 계급

문해력 저하는 성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문해력>은 학교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문해력 저하 현실을 보여준다. 사회 수업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가제(假題)를 ‘로브스터(가재)’로 착각한다. 고등학생들은 다른 동물체의 양분을 빨아먹는다는 문장에 나온 ‘양분’,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간의 위화감이란 문장에 나온 ‘위화감’의 뜻도 몰랐다. 영어 수업에서는 교사가 ‘변호’ ‘피의자’ ‘출납원’ 이란 영어 단어를 한국어로 해석해줘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제작진은 중학교 3학년 학생 2405명을 대상으로 어휘력, 추론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사실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해력 평가를 진행했다. 그 결과 중학교 3학년 적정 수준에 미달한 학생이 27%에 달했으며, 11%는 초등학생 문해력 수준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 수준의 문해력을 갖춘 학생이 중학교 3학년 교과서를 읽기란 무리다. 수업에 따라가기 위해서 선생님이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 고등학교 사회 수업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모르는 단어를 점검하고 있다. 단어는 학습의 기본 도구다. 기본 도구가 마련돼 있지 않은 아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면 공교육은 어떻게 이를 해결해나가야 할까. ⓒ <EBS>

코로나19는 문해력의 저하를 부채질했다. 대면 교육이 어려워지면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문해력 수준을 파악하기조차 힘들어졌다. 공교육에서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돌볼 수 없다면, 부담은 가정으로 이어진다. 개인이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는 개인이 헌법에서 보장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국민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교육상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는다는 법은 무용지물이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부모는 아이의 문해력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그냥 방치된다.

한글은 알아서 깨우친다는 옛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한글을 읽어도 뜻을 모르면 이해하지 못한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학습에 차질을 준다. 학습 차질은 성적 저하로 연결되며, 명문대에 갈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곧 사회 계층과 계급과 직결된다. 교육이 계급 상승의 도구가 된 건 이미 오래전이다. 문해력 상승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 자녀는 대를 이어 저소득층에 계속 머물 확률이 높다. 불평등한 교육 기회가 가난을 대물리고, 계급을 대물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공공교육에서 문해력 향상 감당해야

<EBS>는 소득 격차와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받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당신의 문해력> 프로그램은 문해력 상승을 통해 균질한 학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공적 영역이, 공영방송인 <EBS>가 문해력 상승을 도모하고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문해력을 올릴 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문제해결을 가정, 사교육 등 사적 영역으로 그 책임을 돌렸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의 한계는 명확하다.

<당신의 문해력> 공식 홈페이지에는 연중 캠페인 코너가 있다. 캠페인 포스터 앞머리에는 “매일 소리 내어 읽어주세요. 아이의 미래가 바뀝니다”라고 적혀 있다. 본문에 “아이들이 가진 문해력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방법은 바로 부모님의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것입니다”라고 적음으로써 아이들 문해력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부모에게 돌린다. <당신의 문해력> 4부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아이와 책을 읽고 말놀이를 한다. 공공에서 문해력 격차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가정에서 문해력 격차를 좁히길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당신의 문해력>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캠페인 포스터다. 문해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가정이 아니라 공공 영역에서 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 <EBS>

공교육이 문해력 향상 과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면 문해력 격차는 나날이 심해질 것이다. 문해력 문제가 심각해지면 조만간 문해력 학원이 등장할지 모른다. <당신의 문해력>은 '문해력'의 중요성과 실태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했지만, 해결책 모색 과정에서는 아쉬운 점을 남긴다. 

문 대통령은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방송이 소외된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당신의 문해력>이 수상작으로 뽑힌 건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문해력 저하라는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어려움을 다 같이 해결하기 위한 공론장을 조성했다. <당신의 문해력>이 제시한 문제 해결책이 미흡하지만, 코로나 시대에 점차 심화하는 교육 격차의 현장을 잘 드러냈다. 문제를 발견해야 해결책이 나온다. 정확한 병명을 알아야 진정한 치료법을 모색할 수 있다. 우리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마주한 뒤에야 더 나은 내일을 담을 수 있다. 집에서 부모가 책을 읽어 없는 아이들도 공평하게 문해력을 올릴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 그것이 공공이 해야 할 일이며, <당신의 문해력> 나아가야 방향이다.


편집: 이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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