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태 칼럼] 취재는 기본적으로 공개적으로 해야

정답이 없는 윤리 쟁점에도 결론은 필요하다

▲ 심석태 교수

언론윤리 문제를 다루다 보면 답이 명확한 것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얼핏 명확해 보이는 것도 원칙은 쉽지만 구체적인 사례로 가면 답을 내리는 게 간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언론윤리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들 중에는 윤리 교육에서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윤리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어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치들이 충돌하는 상황을 헤쳐 나가는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윤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백번 지당한 말인데, 실무에서 당장 고민스러운 상황을 마주한 언론인에게는 답답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가끔은 걱정이 되더라도 눈앞의 쟁점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어떤 방식’으로 취재할 것인가, 또 그런 취재 내용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 모두가 인정하는 정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가장 타당한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분을 밝히지 않은 취재, 즉 ‘기만 취재’나 ‘함정 취재’라고 불리는 방식이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느냐는 문제도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 보려고 한다. 딱 떨어지는 답이 없는 상황이 언론윤리 분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타당한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은 사회 문제를 다룰 때의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진지한 고민 끝에 찾은 현실적인 답이 실제로 그 사안에 대한 타당한 답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취재는 기본적으로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어떤 매체든 보도를 위해서는 취재를 해야 한다. 언론 자유는 취재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취재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보도의 자유는 껍데기만 남는다. 그래서 취재의 자유는 언론 자유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 행위는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조직으로서는 불편할 수도 있고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언론 자유가 있다고 해서 취재를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취재에도 일정한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취재는 최대한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고, 상대방을 부당하게 압박하면 곤란하다. 

달리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취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대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취재에 응할 것이고, 보도의 품질도 올라갈 수 있다.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취재를 하는 것은 불필요한 언론 관련 분쟁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나중에 ‘취재한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식의 반발이 나오지 않는다. 

▲ 취재할 때는 상대에게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또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내가 취재하고 있는 것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unsplash

상대방 몰래 취재를 하게 되면 무방비 상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커지게 된다. 길거리 등에서 촬영을 할 때에도 촬영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사 로고가 붙어 있는 카메라를 드러내 놓고 촬영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자·PD라고 팻말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취재를 할 때는 항상 기자나 PD라는 신분을 공개하고 다녀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다. 언론윤리 관련 강의에서 만난 기자들은 그런 질문을 많이 한다. 하지만 신분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과 다른 신분을 사칭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한겨레>는 <취재보도준칙>의 ‘정직한 취재’라는 부분에서 취재를 할 때는 ‘<한겨레> 기자’라고 소속과 신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자연발생적 상황을 목격하는 경우 등 굳이 신분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경우’를 예외로 두고 있다. 

예민한 윤리적 감수성을 가진 기자들은 일단 ‘취재의 의도’를 갖고 접근할 때는 기자라고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칙적으로 좋은 자세다. 하지만 솔직하게 신분을 밝힌 기자에게 취재 대상도 솔직하게 나올 거라는 보장은 없다. 더구나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는 것이 취재 대상에게 엉뚱한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

<뉴욕타임스>도 <Ethical Journalism Handbook>에서 취재를 할 때는 항상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일반인에게 통상적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를 구하는 과정에서 굳이 기자라고 밝힐 필요는 없다고 규정했다. 공연 비평이나 상품 등의 리뷰 기사를 쓰는 사람은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식당 리뷰를 쓰기 위해서는 가명으로 예약을 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조선일보>도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에서 거의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럼 이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가 비교적 명쾌하게 정리된다. 일반인과 같은 방식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영업장 등을 취재할 때는 굳이 기자라고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상대는 자신의 영업장을 찾은 손님이라고 오해하겠지만, 적어도 일반 손님들과 같은 방식으로 그 영업장을 방문해 이용한다면 그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특별히 그들의 영업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취재 중이라고 팻말을 들고 다닌다면 그를 통상적인 방법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취재할 때 항상 기자·PD라고 팻말을 들고 다니면서 알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 unsplash

촬영·녹음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기자가 식당들의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한 음식점에 갔다고 가정해 보자. 위에서 정리한 것에 따르면 ‘○○○ 방송에서 나온 △△△ 기자입니다’라고 얘기할 필요는 없다. 다른 손님들처럼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식당 내부를 관찰하고, 필요하면 메모를 해도 된다.

그런데 식당 내부를 몰래 촬영하거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부터는 좀 다른 규범이 적용된다. 바로 ‘동의 받지 않은 촬영이나 녹음’이다. 우리는 앞에서 ‘일반인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영업장 등을 이용할 때는 굳이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통상 그런 식당에 가서 주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몰래 촬영이나 녹음을 할까? 자기가 주문한 음식이나 테이블을 찍거나 일행의 사진을 촬영하는 건 특이한 일이 아니지만 식당의 내부 상황을 촬영하는 건 일반적인 이용의 범위를 벗어난다.

몰래 식당 등에서 촬영이나 녹음을 하면 어떤 문제가 될지 따져보자. 촬영이나 녹음되는 사람의 초상권이나 음성권 침해, 또 사생활 침해도 될 수 있다. 여러 민사상 불법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형사적으로 무단 침입이나 업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몰카 취재’, 없으면 기사 못 쓸까요?

식당의 방역수칙 준수를 확인하려고 내부를 좀 촬영했다고 이런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 굳이 그런 방식의 취재를 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아마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방송 보도에서 식당 등에서 몰래 촬영한 영상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유가 뭘까? 어디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화면과 음성을 변조했기 때문이다. 보도의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면 문제제기도 있을 수 없다. 당사자는 화면에 등장한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알 수 있더라도 모자이크에 음성변조까지 되어 있으면 법적으로 문제 삼기가 쉽지 않다.

화면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를 통해 법적 책임은 피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윤리적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부동산 시세를 취재하기 위해 사전 섭외 없이 중개업소를 방문해 처음부터 녹화나 녹음을 하면서 느꼈던 윤리적 갈등을 토로한 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고민은 그런 화면과 현장 녹취가 없이는 안 그래도 밋밋한 부동산 시세 리포트를 제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리포트를 계속 만들다 보면 전에 몰래 녹음을 했던 부동산 업자를 다시 만나는 일도 생긴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취재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볼 수는 없을까? 현장 녹취가 있으면 밋밋한 리포트가 생동감을 얻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정말 그 영상이 없다고 뉴스 리포트를 만들 수 없는 걸까? 방송 리포트에서 전화 인터뷰가 일상화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비록 대면 인터뷰에 비해 품질은 떨어져도 교통난을 뚫고 장거리를 오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충분히 그런 아쉬움을 덮을 수 있다. 몰래 촬영한 영상이나 음성 대신 그래픽으로 내용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관행을 벗어나서 생각하면 된다.

시청자들이 몰래 녹음한 생생한 현장음을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몰래 촬영한 영상을 불편해하고, 언론이 취재 대상을 함부로 대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방송 리포트 품질에 대한 관습적인 생각이 일상적인 취재 윤리 위반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동료 기자들은 그런 현장음을 보면서 ‘발품을 팔아서 열심히 제작했다’고 칭찬할지 모르지만 시청자들도 그런 생각에 공감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몰래 촬영이 자주 사용되는 것은 취재진의 편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섭외를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고, 손쉽게 취재와 제작을 마칠 수 있다. 심지어 취재에 공을 들인 느낌이 난다며 섭외를 하면 얼마든지 촬영할 수 있는 장면조차 몰래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 뉴스 리포트를 만들 때는 몰래 촬영한 영상이나 음성을 사용하는 대신 그래픽으로 내용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 unsplash

동의 없는 촬영·녹음이 허용되는 상황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비동의 촬영이나 녹음이 나쁜 것은 아니다. 언론자유는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이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권력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공익적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상대의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본다. 동의받지 않은 촬영이나 녹취를 위한 별도 규정이 <BBC>에도 있는 이유다.

여기서 취재 상대의 동의 없이 촬영이나 녹음을 하는 것은 어떤 경우 정당화될 수 있을지 정리해보자. 먼저 취재하려는 사안이 정당한 공적 관심사여야 한다.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공적 관심사라도 그런 방식의 취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취재가 가능하다면 몰래 촬영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촬영을 하겠다고 밝혔다면 숨기거나 피해버릴 가능성이 있거나, 달리 어떤 특별한 긴급성이 있다면 몰래 촬영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있다.

<KBS>는 <방송제작가이드라인>에서 비밀 촬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도 ‘범죄나 비리 현장을 고발한다든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등 중대한 공익적 가치가 있는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비밀 촬영을 포함해 취재 과정을 숨긴 이른바 ‘비밀 취재’를 해야 할 때에는 데스크나 책임자와 미리 협의할 것을 요구한다.

잠입 취재 등은 반드시 사전 승인을 받자

몰래 어떤 단체나 행사 등에 기자 신분을 속이고 들어가거나 아예 취업을 해서 내부 상황을 취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택배 분류센터에 며칠 동안 아르바이트로 취업하거나 요양보호사 같은 전문 자격증을 취득해 해당 업계의 비리를 심층 보도한 경우도 있다. 공통점은 모두 신분을 속인 비밀 취재라는 점이다. 이렇게 잠입이나 위장 취업 등을 통한 취재를 하려면 언론사 내부 책임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공식 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개인적인 성과에 눈이 멀어 무리한 비밀 취재가 남발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부를 촬영하는 등의 추가적인 행위가 있다면 더욱 높은 수준의 공익성, 필요성, 긴급성 등을 따져보아야 한다. 잠입이나 위장 취업은 자칫 업무방해 등 법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취재 방식을 써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정도로 중대한 공적 필요가 있고, 달리 대안이 없거나 긴급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런 잠입, 위장 취업 등을 통한 취재물이 큰 칭찬을 받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취재 내용의 파급력 때문에 취재 방식의 정당성이 논의될 틈이 없는 경우다. 자칫 언론인들에게 ‘저런 취재 방식도 문제가 없구나’ 하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사안이 그냥 넘어갔다고 그런 취재방법의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책임 있는 언론인이라면 내가 동원하는 취재 방식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런데도 굳이 그 방법을 택할 것인지 확실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의 ‘저널리즘 하우투’ 코너에 실렸던 것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언론진흥재단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편집: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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