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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지평 연 ‘한국형 정치 블랙코미디’

기사승인 2021.12.03  21: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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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인 PD 432nj@naver.com

- [미디어비평]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정치 드라마를 좋아한다. 뉴스가 전하는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 뒤에 숨겨진 술수와 모략,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처절한 전략까지. 매일 접하지만, 속내는 알 수 없었던 정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매번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드라마 속 ‘그들’의 권력 다툼과 전략은 정치와 나와의 연관성이 아니라 그들만의 세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지?’ 자문하곤 했다. 이 지점을 정공법으로 공략한 드라마가 나왔다. 제목부터 앞으로 내달리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다.

   
▲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다. 과감한 정치 풍자와 탄탄한 스토리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 웨이브

지금껏 보지 못한 한국형 ‘정치 블랙코미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이하 <이이청>)는 지난 11월 12일 OTT 플랫폼 웨이브(wavve)를 통해 공개된 12부작 드라마이다. 국가대표 사격 선수 출신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이정은(배우 김성령)이 정권 말기 진보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 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을 다룬 정치 블랙코미디다. <이이청>은 공개 직후 웨이브 신규 시청자 유입 및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몰고 있다.

<이이청>의 핵심 소재는 ‘정치권’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정치 드라마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다뤄져 온 소재다.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 JTBC <보좌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이청>은 이들과 차별점이 있다. 우선 철저히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에 집중한다. 2021년 진보 정권 말기가 배경이고, 유력 대선 후보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이 드라마 속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 올라와 있다.  ‘근혜언니’, ‘손학규 아저씨’ 등 전직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이름을 서슴없이 드러내 현실과 드라마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이청>은 단순히 배경 설정만 현재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른바 ‘모두 까기 인형’이 돼 현재의 정치·사회를 풍자한다. 드라마 첫 화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 과정을 둘러싼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의 회의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인사를 결정하는 방법은 ‘손병호 게임’. 다섯 가지 기준에 해당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접는 놀이를 인사에 활용하는 것이다. 나름의 인사 기준을 제시하며 장관 후보자를 골라내지만, 결국 선정된 인물은 정권 말기 정부의 핵심 정책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모범생형 인물 이정은이다. 주요 공직자를 임명하는 데 있어 게임과 정무적인 판단이 핵심이 되는 모습은 기존의 인사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정치계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극우 성향의 종교 지도자, 스포츠계 성폭력 가해자 등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는 뉴스 속 인물들이 나온다. 이들은 실제 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짜뉴스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자신의 죄를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를 협박한다. 드라마는 이들을 현실 모습 그대로 데려와 다시 한 번 분노하게 만든다. <이이청>이 다른 정치 드라마와 다른 지점이다. 

   
▲ <이이청>은 현재의 정치에 주목함으로써 정치 이야기가 ‘내 이야기’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정은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납치된 사건 등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 웨이브

클리셰 깨부수기

<이이청>이 현재의 이야기와 인물들만을 가져왔다면 오히려 뻔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인물들과 상황 설정은 처음엔 신선하지만, 극에서 지속될 때 오히려 그 신선함은 반감이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이청>이 택한 방식이 있다. 익숙한 것들을 끊임없이 깨부수는 것, 클리셰들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우선 풍자에 거침이 없다. 지금까지 정치 드라마가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극에 담을 때 대부분 은유적인 대상을 선정했다. 직접적으로 정치계 인물을 떠오르지 않게 하는 식이다. 실존하는 인물이 떠오르면 드라마가 아닌 드라마화된 시사프로그램으로 느껴져 극에 대한 집중도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이이청>은 이를 역이용한다. 잘 나가는 진보 논객이 되고 싶은 이정은 장관의 남편 김성남(백현진)은,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지만 말 뿐이다. 진보를 입에만 놀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이른바 ‘입진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김성남을 통해 진보적 정관계 인물들이 자녀 문제, 성폭행 등을 저지르며 국민들의 분노를 샀던 한국 정치의 실제 상황을 풍자한다.

<이이청>은 화면 사용 기법 등 기능적인 요소에서도 기존의 드라마와 차별화한다. 극 중에 이정은이 한 VR 업체의 신제품을 착용하고, 특정 인물을 VR을 통해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화면은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진다. 실사 속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은 결이 다른 영상이라는 점에서 이질감을 드러내고, 극의 흐름을 방해하기 쉽다. <이이청>은 이 점을 역이용한다. 애니메이션은 이정은의 과거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극 전개에서 반전의 요소를 보여주는 서사의 핵심 역할을 한다. 애니메이션의 이질감을 서사의 차별화를 통해 극복한 것이다. 새로운 시도들은 드라마에도 다양한 영상적 시도가 가능함을 보여주며, 다른 드라마와 차별화 요소가 된다.

   
▲ 이정은 장관이 VR을 통해 과거의 지인을 만나고 있는 모습. 드라마에서 실사와 애니메이션 교차 편집은 이질감을 주고, 극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이이청>은 애니메이션을 서사에서 핵심적인 중심으로 끌고 와 차별화를 실현한다. ⓒ 웨이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세 가지 힘

12부작으로 구성된 <이이청>의 각 에피소드는 35분에서 40분 내외이다. 콘텐츠를 한꺼번에 몰아보는 ‘빈지뷰잉’(binge viewing)이 콘텐츠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부담스러운 시간과 분량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몰아보기 소비 시대에 콘텐츠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더 중요해졌다는 사실이다. 한 시리즈를 중간에 끊을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의 힘을 갖고 있어야, 소비자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소비하게 되고 결국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다. <이이청>에는 이야기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세 가지 이야기 키워드가 있다. 여성 서사, 스토리, 캐릭터다.

첫 번째 이야기의 힘은 여성 서사다. <이이청>을 이끄는 중심 캐릭터는 이정은 장관뿐만이 아니다. 이정은을 정치에 입문시킨 인물이자 야당의 대표 의원 차정원(배해선), 문화체육관광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대변인 신원희(이채은), 극 중 벌어지는 사건의 중심 역할을 하는 맹소담(김예지)까지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수만 많을 뿐 아니라,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극을 이끌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성 캐릭터들은 누군가의 보조 역할이 아니다. 모두 당당하게 주체적으로 자리한다. 오히려 남성 캐릭터들이 보좌관 등의 자리에서 여성 캐릭터를 보조하고 있다. 드라마는 다양한 환경 속에 놓인 여성들이 이끌고 가는 서사로 남성이 주요한 역할을 맡던 기존 정치 드라마와 다른 차별 지점을 갖게 된다. 

두 번째 힘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이다. <이이청>은 정치 블랙코미디이지만, 동시에 스릴러물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끊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드라마는 이정은의 남편 김성남이 납치됐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후 드라마는 그가 납치된 계기와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납치되기 전의 상황과 납치 당시의 상황 등을 시간 순서가 아닌 인물들 각각의 시점으로 풀어감으로써 사안을 입체적으로 보게 만든다. 남편 김성남은 물론이고, 이정은의 보좌관 김수진(이학주), 문체부 소속 직원들까지 여러 시점을 오고 간다. 이정은이 납치된 남편을 보고 생긴 궁금증은 김성남의 시점에서 풀어주고, 다시 김성남이 해결 과정에서 생긴 궁금증은 김수진이 풀어주는 식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생긴 일명 ‘떡밥’들을 12회에 걸쳐 회수하는 지점들이 흥미롭다. 

세 번째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다. <이이청>의 캐릭터들은 특별하다. 드라마를 모두 보고 나면, 극에 나온 모든 캐릭터가 생생하게 떠올려질 정도다. 짧은 분량이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이 주도적으로 역할 했기 때문이다. 문체부 직원 캐릭터는 장관이 주인공이고 역할의 중요도가 낮아 눈에 띄지 않기 쉽다. 대변인과 기획조정실장(정승길)이 대표적이다. 드라마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때로는 문제를 일으키는 역할을 부여해 캐릭터를 살려낸다. 김성남의 납치를 둘러싼 인물들 역시 개인의 서사가 많지 않지만, 사건의 중심인물로 그려내 집중도를 높이게 만든다. 다양한 캐릭터를 모두 살려낸 연출은 <이이청>의 서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 <이이청> 속 인물들의 역할은 누군가를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모두 주체성이 분명하고 문제의 중심에 들어와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이정은 장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경호원, 대변인, 기획조정실장, 보좌관. ⓒ 웨이브

한국 OTT, ‘오리지널 콘텐츠’로 살아남아야 

<이이청>은 웨이브가 내놓은 오리지널 콘텐츠 중 가장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최근 한국 OTT는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며 소비자의 인기를 끌고 있다. CJ 계열의 OTT인 티빙(TVING)은 지난달 초 <술꾼 도시 여자들>이라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방영했다. 티빙에 따르면 <술꾼 도시 여자들> 공개 4주째인 11월 24일 기준 유료 가입 기여 수치는 1주 차 대비 44배나 증가했다. 해당 콘텐츠를 보기 위해 OTT로 유입된 인원이 <술꾼 도시 여자들> 공개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2, 30대 여성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청춘물은, 지상파에서 볼 수 없었던 ‘술방’과 여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전하며 인기를 끌었다. 

   
▲ 티빙 오리지널 <술꾼 도시 여자들>은 티빙 주간 가입자 수를 4배까지 끌어올리며 흥행 몰이 중이다. 오리지널 드라마의 성공은 OTT의 경쟁력이 결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있음을 보여준다. ⓒ 티빙(TVING)

<이이청>도 국내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붐의 연장선에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 OTT가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지상파 드라마와 협업 제작하는 데 그쳤다. 당연히 <오징어 게임>과 같은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한계를 보였다. <이이청>은 새로운 정치 블랙코미디를 보여주었다. <이이청>을 비롯한 한국 OTT 드라마가 보여준 신선한 시도들은 시청자를 한국 OTT로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 현재 OTT 시장은 전쟁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넷플릭스에 이어 애플TV(애플티비 플러스), 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유력 OTT가 가세해 웨이브, 티빙, 쿠팡 플레이와 같은 국내 OTT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막대한 콘텐츠와 자본 앞에서 국내 OTT가 살아남으려면 지금과 다른 오리지널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이이청>의 작은 성공이 국내 OTT에서만 볼 수 있는 더 다양하고 새로운 오리지널 콘텐츠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편집: 김대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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