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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언론혐오’의 벽을 넘으려면

기사승인 2021.12.01  21: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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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태 교수 shimpro1@naver.com

- [심석태 칼럼] ‘생존재’로서의 언론윤리 항목들

   
▲ 심석태 교수

언론 보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국회 언론개혁특위가 진행되면서 ‘일단 멈춤’ 상태이다. 많은 언론인들과 언론학자 등이 반대했고 UN에서까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했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그렇게 문제가 많다고 여러 언론이 보도를 했는데도 개정안에 찬성하는 여론이 생각보다 높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여론조사가 그렇게 정확하지 않다는 건 같은 날 발표되는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가 완전히 널뛰기를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질문을 조금만 비틀어도 여론조사 결과는 판이하게 나온다. 유력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며 언론 불신을 강화해온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의 언론 소비자들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언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는 조사 결과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이나 진영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면 일단 보도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지금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개혁 저항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버젓이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익표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언론에 대한 강한 규제를 찬성하는 상황은 엄중하게 보아야 한다. 도대체 왜 우리 국민들은 언론에 대해 이렇듯 적대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을까? 언론인은 소비자들의 이런 시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 와중에 언론 사업자 단체들이 보여준 대처는 적잖게 실망스러웠다. 단순히 언론 자유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외에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원론적 대처만으로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실제로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 과정에서 언론에 대해 쏟아진 비판과 공격 가운데는 언론인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비록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았지만 언론인과 언론 단체들은 그 와중에 제기된 지적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가려내 취재와 보도 관행을 개선하는 데 반영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언론 혐오 수준의 적대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장착했으면 하는 윤리 수칙들을 망라해보았다. 그야말로 ‘사치재가 아닌 생존재’로서의 언론윤리에 대한 얘기다.

   
▲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등 많은 언론 단체는 언론 자유 위축 등을 이유로 언론 중재법 개정안에 관해 반대했다. © <KBS>

가장 큰 문제는 부정확한 보도… ‘교차 검증’ 필요

가장 많이 거론된 것 중의 하나는 정확하지 않은 보도였다. 사실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언론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 보도에는 부정확한 내용이 너무 많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더라도 독립적인 제3의 취재원에게 확인하거나 문서 등 다른 증거로 입증이 되는지 확인하라는 이른바 ‘교차 검증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한쪽 말만 듣고 쓴 기사를 보면 사람들은 언론에 대한 불신을 갖게 마련이다. 자신이나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언론’이라고 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기획 의도’에 끼워 맞춰 기사를 쓰는 습관 때문이다. 처음에 어떤 방향을 잡고 취재를 시작했더라도 취재 결과가 다르게 나오면 그에 맞춰 기사 방향을 바로잡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이 보고한 취지나 편집회의에서 결정된 기사 방향을 고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해서 억지로 기획 의도에 맞춰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런 태도는 자칫하면 억지 보도, 조작성 보도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취재에 기반하지 않은 보도는 그 자체로 위험한 상품이다. 조직 내에서 편집부서와 취재부서 사이, 현장과 데스크 사이에 원활한 소통으로 이런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 취재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보도는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언론의 기본 원칙이다. 또한 취재 과정에서 기자의 교차 검증 과정은 꼭 필요하다. © pixabay

기자에게 직접 한참을 설명했는데도 막상 취지와는 다르게 기사가 나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 기자가 어떤 선입견에 빠져 있을 때는 더 그렇다. 인터뷰 대상자가 갖고 있는 내심의 의사까지 반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적어도 인터뷰 대상자가 한 말 자체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기사를 써야 한다.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확인해야 하고, 인용할 때는 ‘당신 말을 이러이러하게 이해했는데 맞느냐?’고 물어보는 게 맞다. 기껏 시간을 내서 인터뷰를 했는데 자기가 말한 취지와 상당히 다르게 보도가 되면 그 사람은 계속 ‘기자들 수준이 낮다’거나 ‘인터뷰를 자기 마음대로 고쳐 쓴다’고 주변에 불평을 하고 다닐 것이다. 

부정확하거나 틀린 보도는 즉시 바로잡아야

여기서 더 중요한 부분으로 연결된다. 틀린 부분이 있거나 부정확한 것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취재원이나 시청자, 독자가 틀린 부분을 지적해도 잘 고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부의 지적이 언론사 안에서 책임자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담당자가 자기가 틀렸다는 걸 보고하지 않고 미루기도 한다.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거나 소송이나 고소로 연결되면서 일이 커지기도 한다. 이렇게 언론과 싸움을 해본 사람이 앞으로 언론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지 뻔하다.

필자도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뒤 원래 취지와 다르게 인용된 것을 발견하고 정정을 요구했다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를 인터뷰했던 기자의 답은 ‘부장한테 보고를 하고 고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장에게 보고하고 고쳐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 기자는 ‘부장에게 보고해서 최대한 빨리 고치겠다’고 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잘못 인용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내용이 계속 게재되어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인터뷰이나 시청자, 독자가 틀린 부분을 발견해서 알려주는 것을 오히려 귀찮게 생각하는 기자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불완전한 기사를 더 완전하게 만들어주려는 고마운 일인데 거꾸로 자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그런 기자가 있다면 소속된 언론사 차원에서도 곤란한 일이다.

신문 지면을 보면 <바로잡습니다> 같은 정정이나 반론 기사가 실리는 곳이 있다. 고치기는 고쳤는데 뭘 고쳤는지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잘 보이지 않는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리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 전 기사에서 사람 이름의 철자가 틀렸다고 큼직하게 정정 기사를 내는 뉴욕타임스처럼은 아니라도, 정정보도는 자신들이 정확한 보도를 지향한다는 철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콘텐츠다. 자기 기사에 대한 취재원의 반론, 틀린 부분을 바로잡는 기사를 싣는다는 것은 성찰적 언론의 징표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른바 체면이라는 허위의식이 문제가 되는 걸까? 웬만해서는 정정이나 반론에 인색하고, 그나마 잘 안 보이게 해놓는다. 

정말 자신감 있는 언론일수록 이런 것을 잘한다. 바로 앞에서 예로 든 뉴욕타임스가 대표적이다. 잘못을 고치기보다는 감추려 하는 것은 부실한 언론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몇 언론사들이 선도적으로 정정과 반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나는 그들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언론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 2014년 3월, <뉴욕타임스>는 ‘고침’란을 통해 161년 전인 1853년 잘못 나간 사람 이름의 철자를 바로 잡았다. 신뢰 받는 언론은 잘못된 보도를 고치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인다. © <KBS>

취재원·인터뷰이와 적극적인 소통 필요

기자는 항상 바쁘다. 그러다 보니 취재원이나 뉴스 소비자들과의 소통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기자와 자주 접촉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기자가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불쑥 전화하면 잘못한 게 없어도 긴장을 하게 된다. 기자 출신인 나도 기자의 전화를 받으면 혹시 실언을 하지 않을까 더 신경을 쓴다.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문자를 보내 통화를 하려는 취지와 통화하기 좋은 시간을 물어보는 것이 기본이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취재를 잘 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금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온갖 홍보 전화, 여론 조사는 물론이고 보이스피싱까지 있으니 누구라도 모르는 번호로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면 경계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그런 경계심부터 일으켜서는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기 쉽지 않다. 미리 용건을 간단히 밝히고 통화가 가능한 시간을 물어본다면 훨씬 우호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또 통화를 하게 되면 인터뷰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견을 물어보려는 것인지,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것인지, 반론 취재인지, 단순히 배경 사실을 알아보기 위한 것인지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미리 얘기하면 절대로 통화에 응하지 않을 것 같은 문제적 인물을 취재하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일단 인터뷰를 하고 나면 어떤 부분을 기사에 사용할 것인지 설명하고, 말한 내용을 이러이러하게 정리해서 기사에 쓰면 되겠는지 재확인하는 게 좋다. 길게 얘기하다 보면 여러 논점을 언급하게 되는데, 가볍게 지나치며 언급한 내용을 뚝 떼어내 인용해 놓으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뚱맞은 말이 될 수도 있다. 표현은 그렇게 됐더라도 취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인터뷰 대상을 함정에 빠뜨릴 게 아니라면 오해를 초래하는 기사를 쓸 가능성을 사전에 확실히 제거하는 것이 좋다. 

이런 정리 과정을 거치면 인터뷰 대상의 말도 훨씬 잘 정리되어서 기사의 품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상대의 말을 거두절미해서 쓰는 바람에 왜곡이 됐다는 둥, 악마의 편집이라는 둥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사라진다. 그동안 언론에 대해 이런 식의 비판이 얼마나 많이 제기됐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중요성을 이해할 것이다.

   
▲ 기자가 인터뷰할 때는 취재원과 충분하고 적극적인 소통 과정이 꼭 필요하다. © pixabay

인터뷰한 내용이 언제쯤 보도될지 알려주면 더 좋다. 혹은 사정이 있어서 보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그런 사실도 빨리 알려주어야 한다. 공연히 어떻게 보도됐는지 보려고 시간을 쓰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터뷰 대상자를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을 존중해야 자신도 존중받는다. 또 인터뷰한 내용을 원래 알려준 것과 다른 기사나 프로그램에 사용하려면 미리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한번 해놓은 인터뷰라고 해서 언제든 꺼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뉴스 프로그램을 위해 취재한 것을 다큐멘터리에 쓰거나,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경우를 대비해 포괄적으로 양해를 받아놓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녹음이나 문서로 기록을 남겨놓아야 한다. 인터뷰 시작이나 끝부분에서 설명을 하고 동의를 받아두는 게 제일 편리하다. 

실제로 뉴스를 위해 인터뷰한 것을 별도 동의 없이 시사 프로그램에서 사용했다가 배상을 한 사례도 있다. 인터뷰에 응한다는 것은 초상과 음성의 사용을 허락하는 것인데, 원래 예정되지 않은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것은 당사자가 허락한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법적인 책임 문제 이전에, 당연히 인터뷰를 할 때 그 내용을 어디에 쓸지, 어떤 내용을 쓸지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이 불필요한 논란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윤리 원칙의 구체적 실천 없이 관계 회복 힘들어

위에서 언급한 사안들은 너무 원칙적이거나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언론과 좋지 않았던 경험을 얘기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줄이는 게 필요하다. 기자 한 명, 언론사 한 곳이라도 먼저 실천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언급한 이런 생존재로서의 언론 윤리 기준들은 모두 각종 윤리 강령에 들어있는 것들이다. 

취재원을 접촉할 때 조금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꼭 보도해야 할 사안을 못 하게 되지 않는다. 가끔 고발 기사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는 좀 거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많은 탐사나 고발을 전문으로 하는 기자들은 오히려 더 예의 바르고 공손했다. 그들의 무기는 예의 바름 속에 숨겨진 집요함, 끈질김, 성실성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오보를 할 수 있다. 물론 너무나 기본적인 확인조차 하지 않는 바람에 오보를 하면 안 되겠지만, 사람인 이상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대신 빨리 사과하고 바로잡으면 된다. 왜 틀렸는지도 잘 설명해야 한다. 그런 투명성이 언론 내부는 물론 언론과 소비자 관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뉴스 소비자 상당수가 언론을 개혁 대상으로 지목하는 데 동의하는 상황에서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처법을 빨리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인 개개인의 자긍심이 계속 상처를 받는다.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에도 차질이 생긴다. 다시 강조하지만, 언론 윤리가 사치재가 아니라 생존재라는 점을 모든 언론인이 절실하게 인식하면 좋겠다.


이 글은 언론중재위원회가 발행하는 <언론중재> 가을호 ‘Journalism & Ethics’ 코너에 실렸던 것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언론중재위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편집: 이현이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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