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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낭떠러지가 너무 많다

기사승인 2021.11.27  21: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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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인 기자 jinyoo524@naver.com

- [마음을 흔든 책]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앤더슨 쿠퍼 지음/고려원북스/1만 3000원

   
▲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표지. ⓒ 고려원북스

앤더슨 쿠퍼의 삶은 평범치 않다. 그는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을 위험으로 내몰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종군 기자를 꿈꿨다. 아버지와 형이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삶은 낭떠러지였다. 그는 살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책의 저자인 앤더슨 쿠퍼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전쟁과 재난 현장을 보도해왔다. 훤칠한 외모에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그는 미국 언론계의 아이돌이라 불린다. 그는 현재 CNN의 <앤더스 쿠퍼 360°>의 앵커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는 앤더스 쿠퍼의 개인적 생애와 그가 기자로서 걸어온 길을 회고하는 글이다. 

나는 가끔 내가 정말 이 일을 위해 태어났는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내가 원했던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또 내 인생이 불완전한 것인지, 상실감에 의해 조종되고 생존 의지에 의해 포장된 돌연변이인지 돌이켜본다.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29쪽) 

형과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전쟁터 

앤더슨 쿠퍼는 열 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그의 아버지 와이어트 쿠퍼는 혈관이식 수술을 받던 중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당시의 앤더슨 쿠퍼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였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독립적인 인간이 되려고 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어린이 모델 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아버지가 죽은 지 10년 뒤, 형도 그의 곁을 떠났다. 형은 어머니가 사는 14층 높이의 집 발코니에서 뛰어내렸다. 형과 연락이 뜸해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서 또다시 영문 모를 이별을 맞은 것이다. 앤더슨 쿠퍼는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는 아픔을 극복하기보단 잊는 쪽을 택했다. 아버지와 형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이 필요했다.

앤더슨 쿠퍼는 대학 졸업 후 지역 방송 <채널 원>(Channel One)에서 기사의 사실 여부를 체크하는 일을 몇 달 정도 하다 그만두고, 프리랜서 기자 신분으로 태국에 갔다. 그는 태국에서 조국의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하던 미얀마 출신 난민들을 만났다.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을 넘나들며 그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채널 원>은 그가 찍은 동영상을 구매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기자의 삶이 시작됐다. 

내가 방콕으로 돌아왔을 때,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일이란 생각이 새삼 나를 사로잡았다. 이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이제 진정한 기쁨을 찾았어요.”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75쪽) 

오직 진실만을 담을 것 

재난을 보도하는 기사의 제목에는 ‘참혹’, ‘폭발’ 등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단어들이 흔히 붙는다. 앤더슨 쿠퍼는 이러한 단어들이 진실을 왜곡한다고 봤다. 특히 그는 실체 없는 소문들이 기사를 통해 발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쿠퍼는 재난 현장을 보도하며 진실을 왜곡하거나 간편하게 전달하려는 관습과 맞섰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소문을 믿지 않았고, 간편한 단어로 현장을 설명하지 않으려 했다. 

그가 <CNN> 특파원으로 자리를 옮긴 2004년,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밀려와 2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구조 상황을 틈탄 어린이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문이 번졌다. 언론사들은 진위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서 보도했다. 

한 지역 일간지가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두 아이가 납치됐다’는 기사를 실었다. 앤더슨 쿠퍼는 직접 사실을 추적했다. 사실을 확인한 결과, 납치범으로 의심받던 남성은 두 아이를 구조한 의인이었다. 아이들은 구조된 병원에 쓰나미가 덮쳐 희생된 것이었다. 아이들의 시신은 쓰나미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돼 있었다. 사람들을 자극하는 소문은 두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의 험악한 얼굴을 가릴 뻔했다. 

   
▲ 2010년 아이티 지진을 취재하던 앤더슨 쿠퍼가 현장에서 벽돌에 맞고 쓰러진 아이를 구하고 있다. 당시 쿠퍼는 뉴스의 앵커였다. ⓒ <CNN>

재난 보도, 죽음을 대하는 일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죽음이 스치는 재난 현장에서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기자는 의사처럼 죽은 이를 살릴 수 없고, 구호 단체처럼 생필품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앤더슨 쿠퍼는 재난 현장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들의 피해 규모가 클수록 자신의 성과가 커지는 현실에 양심의 가책도 느꼈다. 다만, 그는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재난 현장에서 자신의 삶과 비로소 화해했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그가 마음 구석에 숨겨뒀던 개인적 이별의 실체를 비로소 대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파편처럼 흩어진 인간 개개인을 인류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해주는 힘이 재난 보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난 보도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을 사랑하는 건 편안할 수 없다. 진실이라는 험악한 얼굴과 마주하도록 하는 일이 재난 보도가 지닌 가치다. 

많이 보면 볼수록, 진정으로 보려고 할수록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영향을 주려면 더욱더 그렇다. 그곳까지 간 이유는 어쨌든 영향을 받기 위해서다, 변하기 위해서다. (중략) 미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직장 상사에게 말했다. “내 가슴이 꽉 차 버렸어요.” (중략) 뭔가를 느끼기 위해 온 세상을 찾아다니는 일을 멈추고 싶었다. 이왕이면 그런 느낌을 집 가까이에서 찾고 싶었다.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168-169쪽) 

100자평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 중 한 사람인 앤더슨 쿠퍼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다. 재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과 재난 보도 방식이 궁금한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편집: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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