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무슬림 유학생, 미안 무아즈 라작

10평 남짓한 거실에 성인 남성 다섯이 섰다. 한 명이 앞줄에 서고, 두 걸음 뒤에 선 네 명은 줄을 맞췄다. 앞장선 한 명이 “알라 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조용히 읊조린 뒤 엎드려 기도했다. 뒤이어 네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고 똑같이 절했다. 모두 같은 방향을 향했다. 대략 10분간 같은 방식으로 기도를 몇 차례 반복했다. ‘이맘’의 작은 목소리, 그리고 두꺼운 패딩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맘은 이슬람교에서 예배를 이끄는 지도자다. 이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절하는 무슬림이다.

▲ 지난 10월 18일 오후 4시 15분, 기도 시간에 맞춰 경북대의 무슬림 유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임시 모스크의 실내는 여느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은 사람이 무아즈 라작 씨다. ⓒ 유제니

이들이 기도하는 공간은 일반적인 이슬람 사원(모스크)과 달랐다. 오래된 가정집처럼 보였다. 벽지는 바랬다. 짙은 갈색을 띠는 옛날식 나무 방문이 세월의 흔적을 드러냈다. 벽에 걸린 시계와 바닥에 깔린 카펫만이 이곳이 무슬림이 기도하는 공간임을 알려줬다. 7개의 시계가 목재 틀에 짜여 벽에 걸려 있었다. 각기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가장 위쪽의 큰 시계는 초침이 움직이면서 현재 시각을 표시했다. 나머지 6개는 시각이 고정돼 있었다. 하루 다섯 번, 기도하는 때를 나타냈다. 마지막 하나는 ‘주마’(금요예배) 때 기도하는 시간을 가리켰다.

이곳은 임시 모스크다. 원래 모스크로 쓰던 가정집은 증·개축하기 위해 허물었다. 공사 기간에 기도할 공간이 필요했다. 무슬림 유학생들은 바로 옆에 있던 한옥을 사들였다. 실내 가구를 빼고, 바닥에 카펫을 깔았다. 더 나은 환경의 모스크에서 기도할 날을 기다리며 주변의 무슬림들은 이곳을 찾았다. 이슬람교에서 모스크는 신앙심을 나타내는 표상이다. 더 좋은 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면, 깊은 신앙심을 표현한다고 믿는다. 임시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무슬림들은 새 모스크로 갈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지금은 잠시 접고 있다. 꿈을 이룰 날이 언제일지 기약이 없다.

▲ 기도하는 무슬림 유학생 옆으로 오래된 벽지와 나무 문, 여기저기 걸린 전선이 보인다. 사진 가운데 벽시계의 아래 6개는 시각이 고정돼 기도 시간을 알려준다. ⓒ 유제니

이날 무슬림들이 기도한 임시 모스크는 대구 북구 대현동의 이슬람 사원 건축 현장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슬람 사원 건축 현장을 들어가는 길목은 좁았다. 차 한 대가 주차돼 있어 길을 막았다. 양쪽 벽에는 일부 주민이 내놓은 펼침막과 팻말이 7개쯤 걸려 있었다. ‘이슬람 사원 건축을 결사반대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공사 현장에 들어가는 입구는 패널 벽을 세워 막았다. 출입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공사 현장 바로 앞은 사원 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자재 반입을 막기 위해 지키는 곳이다. 의자와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주민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 사진 가운데 파라솔 뒤쪽으로 철제 구조물이 세워진 곳이 이슬람 사원 건축 현장이다. 파라솔은 ‘이슬람 사원 건축 반대 대책위원회’ 주민들이 세워놓았다. 앞에 주차된 흰색 차 바로 오른쪽에 임시 모스크의 대문이 있다. ⓒ 신현우

사태의 기원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9월, 경북대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무슬림 7명은 공동명의로 된 단독주택을 ‘제2종 근린생활시설 종교집회장’으로 용도를 변경해, 대구 북구청에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 전체면적 245제곱미터(㎡, 74평) 규모였다. 지난해 9월 28일 북구청은 건축 허가를 내줬다. 이 지역에 종교집회장을 건축하는 데 아무 법적 제약이 없었다. 사원 건축 현장에서 불과 50미터(m) 떨어진 거리에 4층 규모의 교회도 있다.

공사는 지난해 12월 3일부터 시작됐다. 3개월간 순조롭게 진행됐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시멘트로 터를 다졌다. ‘H빔’으로 불리는 철제 골조가 올라갔다. 그 무렵인 올해 2월 들어, 인근 주민들은 ‘이슬람 사원 건축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동네 곳곳에 내걸었다. 뒤이어 올해 2월 16일, 주민 351명이 서명한 ‘이슬람 사원 건축 취소’ 탄원서가 북구청에 제출됐다. 탄원서가 접수된 바로 그날, 북구청은 건축주에게 공문을 보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후 9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지난달 18일 오후 1시, 건설이 중단된 이슬람 사원 옆 임시 모스크에서 파키스탄인 무아즈 라작(25) 씨를 만났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무슬림 압둘리에킨 씨도 인터뷰에 참여했다.

▲ 임시 모스크 옥상에 올라가 찍은 이슬람 사원 건축 현장이다. 철제 뼈대를 세운 직후인 2월부터 공사는 중단됐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건축자재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철제 구조물이 녹슨 흔적도 보인다. ⓒ 신현우

- 지난 2월 대구 북구청이 공사 중지 명령을 건축주에게 전달하기 전에, 구청이 이와 관련한 내용을 따로 알린 적 있나?

“북구청은 현장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미리 연락도 하지 않은 채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경북대의 무슬림 커뮤니티는 북구청의 일방적 결정에 대단히 실망했다. 공사가 중단된 이후 일부 주민의 주장이 이슬람 혐오와 차별 문제로 번졌다.”

무아즈 라작은 ‘다룰이만 경북 엔드 이슬라믹센터’ 대변인을 맡고 있다. ‘다룰이만 경북 엔드 이슬라믹센터’(Dar-ul-Eemaan Kyungpook and Islamic Center)는 현재 공사가 중단된 모스크의 이름이다. 또한, 2015년 결성된 비영리법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룰’과 ‘이만’은 아랍어로 각각 집과 믿음이라는 의미다. 둘을 합해, ‘이 문으로 들어오면 깨달을 수 있다’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이슬라믹센터는 모스크를 영어로 옮긴 것이다.

▲ 임시 모스크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무아즈 라작 씨. 그는 전통복장 위에 ‘경북대학교’ 로고가 그려진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 신현우

- 지난 7월 5일, 이슬람 사원 건축주는 북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공사 중지 처분 취소와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한 건데, 어떤 과정을 거쳐 소송에 이르렀나?

"지난 2월에 공사가 중단되고, 3월 24일과 6월 16일에 두 차례 북구청이 주재해 사원 건축주인 무슬림들과 주민들이 대화했다. 주민들은 사원 건축 자체를 취소하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소음과 냄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우리가 제시했지만, 그들은 그냥 계속 반대했다.
두 번째 만남 때, 북구청이 중재안을 제안했다. 구청이 현재 터를 매입할 테니, 대로변의 상가 건물이나 빈 건물에 새로 모스크를 지어달라고 건축주에게 제안했다. 우리는 경북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자기들 생활권 안이라며 반대했다.
공사가 중단되면 우리는 계속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경북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님 몇 분과 시민사회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구지부에서 법률 지원을 받아 공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이들이 법원의 판단에 기대게 된 것은 구청이 내놓은 중재안조차 주민들이 거부한 게 결정적 계기였던 셈이다. 라작 씨가 말한 ‘손해’에는 경제 사정도 포함된다. 이슬람 사원의 건축주는 모두 7명이다. 경북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구미에서 사업하는 무슬림도 있다. 경북대 유학생도 포함돼 있다. 이슬람 사원 건축 비용은 지난 7년간 경북대를 거쳐 간 무슬림 유학생들이 장학금을 조금씩 떼어 마련했다. 전국의 무슬림 커뮤니티에도 기부를 부탁했다. 대구에서 무역업을 하는 무슬림 기업가는 조금 더 큰돈을 보탰다. 2억 원가량을 모았다. 공사 중단 기간이 길어질수록 건축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북대에 유학 온 무슬림 학생은 대략 15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는 공과대학이나 농업생명과학대학에 속한 석박사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대구 달서구에 있는 모스크를 찾아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갈 시간적 여유가 이들에겐 없었다. 무슬림 유학생들은 캠퍼스 운동장이나 빈 건물을 전전하며, 기도를 올렸다. 그러다, 무슬림 유학생이 늘어난 7년 전부터 이들은 기도 공간을 마련하려고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그 무렵 경북대 서문 근처에서 낡은 집을 구했다.

- 인근 주민들은 ‘이슬람 사원’ 건축에 동의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공사가 중단된 자리에서] 똑같은 집을 사원으로 활용했다. 근처 주민들이 그게 이슬람 사원임을 모를 수가 없다. 우리는 공사가 진행되기 전 건축 현장과 맞닿은 집을 돌아다니며 구두로(verbal)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재건축(reconstruction)한다고 말씀드렸다. 어떤 주민과는 선물도 주고받았다. 이렇게 한 과정은 법적 요건(legal requirement)이 아니었다. 단지 이슬람교에서 가르치는 도의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주민들과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어찌 됐건, 공사가 시작되면 주변 건물에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경북대의 무슬림 유학생들은 지난 7년간 같은 공간에서 기도했다. 무슬림들은 기도하기 위해 매일 드나들었다. 금요일에는 ‘주마’(금요예배)에 참석하려고 60~70명이 모였다. 라마단 축제 기간에도 70명 안팎의 무슬림이 이곳을 들렀다. “이 사건 이전에는 지금처럼 주민들이 거부하는 반응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라작 씨는 말했다. 7년 동안 기도했던 집을 조금 더 번듯하게 지으려 하자, 주민들의 반발이 시작된 셈이다.

라작 씨가 기대했던 한국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라작 씨의 고국인 파키스탄에서 한국은 삼성과 LG의 나라였다. 한국 기업이 만든 가전제품과 스마트폰의 인기가 뜨거웠다. 기술과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라작 씨는 대학에서 소프트웨어 공학을 전공했다. 2019년 대학을 졸업한 뒤, 그해 9월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으려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한국을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종종 가혹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유럽에 간 친구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언어폭력은 물론 물리적 폭력까지 당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유럽처럼 무슬림을 공격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라작 씨는 알고 있었다. 한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 왜 모스크를 개축하려고 했나.

“이전 모스크는 너무 비좁고 낡았다. 실내 공간이 가득 찰 때는 마당에 카펫을 깔고 행사를 치렀다. 공간이 좁아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려야 한 적도 있었다. 밖에서 학생끼리 이야기하면서 시끄러울 때도 있었다. 사원이 작으니 간혹 소음과 냄새가 밖으로 새 나가기도 했다. 더 넓고 방음이 잘되는 모스크를 지으면, 많은 무슬림이 찾아와도 실내에서 기도할 수 있으니,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계할 때부터 주변 주민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 했다.”

▲ 이슬람 사원 건축현장에 관해 취재진에게 설명하는 라작 씨. 뒤편에 보이는 철제 구조물은 전체면적 245㎡(74평)에 2층 규모로 지어질 모스크의 뼈대다. ⓒ 신현우

지난 7월 이슬람 사원 공동 건축주가 북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뒤, 9월 29일과 11월 3일에 걸쳐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북구청의 행정절차가 적법했는지를 중심에 두고 양측의 변론을 들었다. 특히 공사 중지 명령이 적법한지를 따져봤다. 행정절차는 처분을 내리는 과정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는 행정 처분을 내리기 전 당사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이에 관한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부여한다. 북구청이 그 절차를 생략하고,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된 날에 바로 공사 중지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 건축주 쪽의 의견이다.

이슬람 사원 공동 건축주의 소송대리인인 박정민 변호사는 지난 23일 전화 인터뷰에서 “행정명령을 내린 과정뿐만 아니라 공사 중지 처분의 근거가 되는 사유도 문제”라고 말했다. 민원인이 제시한 주민 정서 불안, 재산권 침해, 슬럼화 우려 등이 공사 중지의 사유라고 북구청은 밝혔는데, 건축주들은 이 내용이 합리적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정민 변호사는 “공사를 중지하는 기간도 ‘민원을 해결할 때까지’로 매우 막연하다”라며 지나치게 광범위한 행정 처분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법원의 판결 말고도 라작 씨가 요즘 신경 쓰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라작 씨가 사는 경북대 서문 인근의 집주인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가 무슬림인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집주인은 그전에도 무슬림 유학생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집주인은 학생이 ‘얼마나 오래 지낼 것인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라작 씨는 지금까지 집주인과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 집주인은 새로운 집을 구할 것을 권유했다. 자신의 빌라를 다른 사람에게 팔았는데 새로운 집주인이 무슬림인 라작 씨를 계속 받아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학기에 박사 과정에 진학한 라작 씨는 2년간 지내온 현재의 집에 계속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게 됐다. 요즘 라작 씨는 한국에서 지낼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다. 기도할 곳마저 사라진다면, 그의 한국 유학 생활은 더 고달파질 것이다.

오는 12월 1일, 대구지방법원은 이슬람 사원 공동 건축주가 북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편집: 신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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