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콘텐츠] ⑤ 유수빈 경향신문 기자 ‘편집 일기, 편집 읽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책 제목에서 그동안 전쟁이 남성 중심으로 기록됐다는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지난달 13일 <경향신문>은 노벨상 수상자 중 여성 수상자 비율이 매우 낮다는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지면 편집 담당 유수빈 기자는 해당 기사 제목을 “올해도 노벨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고 달았다. 그동안 노벨상 수상자가 남성에 편중됐고 올해도 그렇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편집 기자는 취재 기자가 쓴 기사 내용을 꿰뚫는 제목을 붙이고, 지면에 기사를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뉴스를 보는 요즘 시대에, 신문 편집 기자의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 시대의 콘텐츠 다섯 번째 특강은 유수빈 <경향신문> 편집 기자가 맡았다. 특강은 지난달 20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열렸다.

▲ 유수빈 편집 기자(오른쪽)가 소개한 2021년 10월 13일 <경향신문> 국제면에 실린 기사(왼쪽). 노벨상 수상자가 남성에 편중됐고 올해도 여전하다는 의미를 담았다. ⓒ <경향신문> 갈무리, 이예진

신문으로 뉴스 읽기

모바일 환경에서 뉴스는 개별적으로 소비된다. 기사는 클릭 수가 높은 순서, 댓글이 많은 순서, 언론사가 정한 순서 등으로 나열되고 이용자는 원하는 기사를 선택한다. 이때 이용자가 과거에 선택한 뉴스의 특성을 분석한 개인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이 작동하기도 한다. 특정 기준으로 뉴스를 선별해 추천하는 큐레이션도 이용자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게 구성된다. 디지털 환경에서 뉴스는 이용자의 관점을 기준으로 묶인다. 유수빈 편집 기자는 “특정한 신문을 구독한다는 것은 그 신문의 큐레이션을 소비하는 것과 같다”라며 신문을 보는 것은 해당 언론사의 관점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언론사마다 사안을 보는 시각과 풀어내는 방식이 다른데 그 차이를 만드는 요소가 신문 편집이라는 것이다. 신문으로 뉴스를 본다는 건 해당 언론사의 관점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다. 

신문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으로 지면이 나뉜다. 편집 기자는 보통 한 분야의 지면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유 편집 기자는 사회면, 경제면, 문화면을 거쳐 현재 국제면을 담당하고 있다. 유 기자는 각 지면을 구성한다는 것은 파편적 정보를 의미 단위로 묶어내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편집 기자는 지면에 담길 기사 가운데 중요하게 다룰 기사를 선정한다. 사안의 중요도를 따져 지면에 크게 실을 기사와 아닌 기사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안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유 기자는 오전에 다른 국내 언론사 기사와 외신 기사를 모니터링하면서 흐름을 체크한다. 이때 지면에 실을 기사 사진도 선별한다. 오후에 어떤 기사가 실릴지 지면 계획이 나오면, 기사와 사진을 배치해 보고한다. 이후 취재 기자가 기사를 완성하면 제목을 단다. 제목을 결정하려면 기사에서 어떤 내용이 핵심인지 판단해야 한다. 유 기자는 “바둑도 떨어져서 보면 수가 보이듯, 취재 기자가 가져온 현장의 내용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신문 편집은 사안의 고갱이를 뽑아내 진실에 가까운 현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유 기자는 “세상을 볼 때 도움이 되는 신뢰할 만한 편집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문사에서 편집 기자는 엄선한 제목과 내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진을 통해 독자에게 정보를 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핵심 존재인 셈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이 유수빈 <경향신문> 편집 기자의 특강을 듣고 있다. 유 기자는 지면 편집이 파편화된 정보를 의미 단위로 엮어내 세상을 볼 때 도움이 되는 콘텐츠로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이예진

편집은 이미지를 창조하고 기록하는 일

유 기자는 지면 배치 중요성을 여러 사례로 소개했다. 우선 사안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해 지면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경우다. 2019년 11월 21일 <경향신문> 1면에는 중대재해 사고 사망자 1200명의 이름이 실렸다. 2018년 12월 10일 화력 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고 김용균 씨의 1주기가 다가오는 시점이었다. 유 기자는 <경향신문>이 “신문 1면에 중대재해 사고 사망자의 이름을 새겨 수많은 ‘김용균’에 주목했고, 보이지도 않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사건의 실체를 시각화했다”고 설명했다. 

▲ 2019년 11월 21일 <경향신문> 1면. 중대재해 사고 사망자 1200명의 이름을 1면에 싣고,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팩트로 사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경향신문> 갈무리

사진 배치도 메시지를 전하는 중요한 요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한 2016년 12월 9일 <경향신문> 1면은,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라는 제목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약지 마디 하나가 없는 인장 사진을 크게 실었다. 인장 옆에는 “불의를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라”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배치했다. 유 기자는 해당 편집이 아침에 신문을 펼칠 국회의원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다음 날인 2017년 3월 11일 <경향신문> 1면도 인상적이다. 지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크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뒷모습 사진을 싣고, “불의는 퇴장 ‘이게 나라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유 기자는 “뒷모습이 퇴장이라는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내 주었고, 문구 크기를 평소보다 크게 달아 사안의 중요성을 반영했다”라고 설명했다. 안중근 의사의 인장이 실린 지면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으며 한국편집기자협회의 제183회 이달의 편집상 종합 부문에서 수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뒷모습이 실린 지면은 제186회 이달의 편집상 종합 부분에 선정됐다. 유 기자는 지면을 구성할 때 신문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면 구성을 통해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짚어내고 사회에 화두를 던진다는 것이다.

▲ 2016년 12월 9일 <경향신문> 1면(왼쪽)과 2017년 3월 11일 <경향신문> 1면(오른쪽).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상징하는 사진 배치와 제목으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 <경향신문> 갈무리

제목과 사진으로 독자와 소통하기

신문 편집은 독자가 기사 내용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드는 역할도 한다. 유 기자는 기사의 핵심 내용을 잘 담으면서도 읽고 싶게 만드는 제목을 단 기사 사례를 소개했다. 유 기자는 “심기 불편한 날”이라는 제목만 보여주며, 어떤 기사일지 청중에게 물었다. 강의를 듣던 <단비뉴스> 김병준 PD가 “나무 심는 날인 식목일에 나온 기사 같다”고 답했다. 유 기자는 “이렇게 한 번에 맞힐지 몰랐다”며,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라는 아이디어와 재치가 돋보인 제목”이라고 말했다. 독자의 흥미를 끄는 제목이 독자를 속인다는 것은 아니며, 어떤 부분을 강조해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지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 기자는 태양계의 크기와 거리 비례를 설명한 책 <태양계가 200쪽의 책이라면>을 소개하는 기사를 예로 들었다. 기사 내용 중에 “태양계 행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족사진은 ‘가짜’다”라는 문장이 있다. 유 기자는 해당 문장이 내용의 핵심을 잘 담으면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고, “지금껏 봐온 태양계 모형은 가짜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기사는 흥미로운 제목으로 조회 수가 높게 나왔고, <경향신문> 내부에서도 제목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독자에게 말을 거는 문체나 유행어를 사용하는 등 독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도 있다.

유 기자는 제목을 달 때 유의할 점으로 “제목은 기사의 요약이지만, 역설적으로 요약이 아니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제목이 기사 내용의 전부를 압축하면 사람들이 기사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면 기사를 전부 흥미로운 제목으로만 달면 독자가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 지면 내에 사실 위주의 제목과 인상적인 제목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첨언했다.

사진 중심의 기사에서도 편집 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편집은 사진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해 독자의 이목을 끈다. 유 기자는 운동감과 율동감을 살려 사진을 ‘강약중강약’으로 배치하면 내용 전달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2020년 4월 17일 기사 “아프다…호모 플라스티쿠스의 지구”를 예로 들었다. 기사는 제목 옆에 VR 카메라로 찍은 지구 모양의 원형 사진을 배치하고, 중간 기사 하단에 쓰레기가 넘치는 현장사진으로 마무리했다. 유 기자는 사진 중에서 원형 사진 이미지가 가장 강렬해서 처음부터 방점을 두었다고 했다.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도록 배경을 검은색으로 처리해,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나는 지구의 아픈 모습을 잘 전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획형 사진 기사뿐만 아니라 국제면에서도 사진은 중요하다. 국제면의 사진은 사진 자체만으로도 뉴스가 되는 단독사진을 골라내야 한다. 유 기자는 외신 기사 사진을 일일이 하나씩 보면서 사진을 선정하는데, 중요한 사건의 순간을 포착했거나 사진 자체만으로 이목을 끄는 점이 있는지를 중시한다고 자신의 노하우를 설명했다.

▲ 2020년 4월 18일 <경향신문> 포토다큐 지면. 원형 사진은 강원도 양양군 정암해변에서 해양수산부 보호대상해양생물 아비 사체가 비닐 쓰레기와 해초에 뒤섞여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VR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검은색 배경에 배치해 우주에서 본 지구를 연상케 하면서 쓰레기로 넘쳐나는 지구의 고통을 전달했다. ⓒ <경향신문> 갈무리

디지털 시대, 편집 기자로 살기

유 기자는 지면을 구성할 때 단어 선택, 제목 정렬, 사진 위치 등 구성 요소 하나하나의 쓰임새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의미 없는 선택을 줄이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지면 편집이란 정제된 정보를 쓸모 있게 모아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조각으로 존재하는 정보들을 의미 덩어리로 엮어내는 것이 편집 기자의 일이다. 정보를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일도 포함된다.

디지털 시대의 특성인 ‘수용자 중심’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수용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관련 콘텐츠를 모으고 추천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수많은 정보 중 수용자에게 필요하고 쓸모 있는 정보를 선별해 전달하는 일이다. 두 의미는 신문 편집 기자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정보의 핵심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정보가 지니는 의미를 수용자가 쉽게 파악하도록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 디지털 시대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학도들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 넘쳐나는 가짜뉴스에 피로감을 느낀 수용자는 신뢰할 만한 정보 꾸러미를 찾고 있다. 종이신문 편집 기자가 매일 하는 고민은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가 매일 해야 하는 고민과 다르지 않다.


디지털모바일 시대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며 소비된다. 레거시미디어는 생존 기로에 서 있다. 이 시대에 콘텐츠는 무엇인가. 제작자는 무엇을 고민하며, 어떤 기술과 실험으로 세상을 그려내는가. 콘텐츠는 시대정신을 담는다. 제작자는 시대를 읽는다. 오늘을 대표하는 콘텐츠와 제작자를 초청해 진행하는 <방송제작세미나> 강의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1. 지금은 다큐시대 -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2. 나의 지역콘텐츠 이야기 - 안윤석 목포MBC PD

3. 히든싱어, 팬텀싱어, 슈퍼밴드로 보는 음악 예능 - 조승욱 JTBC PD

4. 펭수를 성공시킨 '퍼스트 펭귄' 정신 - 이슬예나 <EBS> PD

5. 편집 일기, 편집 읽기 - 유수빈 <경향신문> 기자

편집: 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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