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저널리즘의 진면목을 만끽한 정담회

시민이 기자에게 물었다. 시민 양유라 씨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국제통상학을 공부한다. 시민 이진우 씨는 경기도 포천에서 독서토론논술 교습소를 운영한다. 시민 김봉규 씨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세 시민은 독자다. 신상호 <오마이뉴스> 경제부 기자가 참여한 프로젝트 ‘고시촌에 갇힌 중년 보고서’를 읽었다. 기자에게 소감을 전하고 취재 뒷이야기를 물었다.

지난달 30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21 저널리즘 주간’ 행사에서 마지막 참여 프로그램으로 ‘시민·기자 정담회’를 마련했다. 강지영 <JTBC>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다. 기자 4명과 시민 12명의 대화를 이어줬다. 이날 정담회에는 신상호 기자를 포함해 이근아 <서울신문> 정치부 기자, 장수경 <한겨레> 편집부 기자, 이예슬 <단비뉴스> 청년부 기자가 참여했다. 

떠나간 자리에 밀려든 중년들

▲ 오마이뉴스 '고시촌에 갇힌 중년 보고서'에 관한 시민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신상호 기자(왼쪽)와 사회를 맡은 강지영 아나운서. ⓒ 한국언론진흥재단

오마이뉴스 ‘고시촌에 갇힌 중년 보고서’ 기획은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12회에 걸쳐 연재됐다. 기자들은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고시촌을 찾았다. 한때 청년들의 꿈이 흘러든 곳이다. 사법고시에 붙은 이들은 푯말에 이름이 걸렸다. 2017년 사법고시가 폐지됐다. 꿈은 떠나거나 고여서 고시촌 풍경을 바꿨다. 중장년이 몰려들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살았다. 월세는 10만 원. 혼자 사는 중년일수록 청년과 신혼부부에 밀려 정부의 주거 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몰린 것이다. 동네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주민은 그들을 ‘인간 말종’이라 불렀다.

대학생 양유라 씨는 ‘독거중년’에게 어떻게 닿았는지 기자에게 물었다. 신상호 기자는 취재원을 어떻게 만났는지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무료급식소에 찾아가 무작정 말을 거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경계했다. 자기 이야기를 잘 들려주지 않았다. 어렵게 섭외가 이루어져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신 기자는 고시촌 중년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짐작했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일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사를 통해 사회의 그늘을 알게 됐다고 이진우 씨는 말했다.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어두운 이면이 줄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기사 제목에 눈길이 갔던 일도 이야기했다. 다른 표현을 두고 왜 하필 ‘갇힌’ 중년인가. 그 의미와 의도를 물었다.

‘갇히다’는 말에 두 가지 뜻을 담았다고 신 기자는 답했다. 첫째는 강제성이었다. 누구도 원해서 고시촌에 살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산다. 형편이 어렵거나 밖으로 나갈 여건이 안 됐다. 의지대로 살지 못하니 감옥에 갇힌 꼴과 닮았다. 둘째는 고립이었다. 고시촌 중년은 밖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일자리를 잃고 사회와 관계가 끊어진 탓이다. 이들을 지원할 정책도 마땅찮았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 살고 있으니 갇힌 삶이었다.

김봉규 씨는 고시촌에 흘러든 중년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순간의 선택이 다른 길을 빚었을 뿐. 그렇다면 고시촌 중년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은 있는가. 정부의 태도와 입장을 물었다.

신 기자는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의 말을 빌렸다. 고시촌 중년은 열악한 곳에 살았다.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일과 이들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일은 다른 문제였다. 심리치료에서 직업교육까지 비용을 들여도 뚜렷한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 정치권과 여론의 관심도 적다. 중년을 위한 주거정책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신 기자는 “이제는 청년 주거 정책에 더해 중년의 주거 정책도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만들어진 죄, 소년범

이근아 <서울신문> 기자는 6개월에 걸쳐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 79명을 만났다. 심층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평범한 아이가 범죄의 늪에 빠지는 과정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소년범 - 죄의 기록’ 기획이 보도됐다. 소년범의 죄를 밝히는 동시에, 소년범을 만들어낸 사회의 죄를 물었다. 이 기자는 소년범을 두고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했다.

그간 언론은 소년범의 이야기를 소비할 뿐 그 내막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소년범 – 죄의 기록’은 소년범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 실태를 조사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 연구팀과 함께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 동안 나온 기사 1만 1864건의 제목을 분석했다. 2010년대 이후 조회수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는 경향이 짙어졌다. 온라인 기사는 소년범을 악마로 그리는 데 골몰했다.

▲ 소년범을 심층적으로 다룬 기획 ‘소년범 – 죄의 기록’을 소개하는 이근아 <서울신문> 기자. ⓒ 한국언론진흥재단

시민 세 명이 기사를 읽고 소감을 나눴다. 안산에서 열린정책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태호 상록청소년수련관 교사, 경기도 화성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권형준 학생, 20대 고다연 씨가 참여했다. 

하태호 교사는 청소년지도사로 일하는 만큼 기사에 더 몰입했다. 지금까지 본 이야기와 달랐다. 사건을 좇기 바쁜 기사와 달리 소년범의 삶을 따라갔다. 주제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이 기자는 과거 취재가 심층 기획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열여섯 살에 엄마가 된 청소년을 동행한 적 있다. 버스를 타는데 어른 요금을 냈다. 아이 엄마가 청소년 요금을 낸다는 눈총을 받기 싫어서라고 했다. 이 기자는 사회가 10대를 보는 시선에서 모순을 느꼈다. 철없음을 손가락질하면서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 한번은 10대가 연루된 집단폭행 사건을 보도했다. 짧은 호흡에 담았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사연을 깊이 알 수 없었다. 그 아쉬움이 심층을 향하게 했다.

권형준 학생은 고정관념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소년범에 관한 인식이 바뀌었다. 엄벌보다 재사회화가 필요함을 새삼 깨달았다고도 말했다. 이 기사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권형준 학생은 기자에게 물었다.

이 기자는 소년범에게 악마라고 낙인을 찍는 대신 그들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년범을 악마라고 부르는 건 쉽다. 논의는 진전되지 않는다. 그들을 영원히 격리할 길이 없는 한 재사회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자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며 엄벌과 피해 회복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다연 씨는 기사가 배경과 맥락을 두루 훑어준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생에만 집중하지 않은 기사 덕분에 고씨는 소년범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누가 재사회화 교육을 맡을 것이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기자에게 물었다.

이 기자는 부모와 학교뿐만 아니라 대중의 인식까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사회화 교육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를 ‘정상 사회’ 범주에서 밀어내면 재사회화가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소년범을 사회에 편입시키려면 학교에 돌아올 수 있도록 정규 교육에서 멀어지지 않게 가르쳐야 한다고 이 기자는 말했다.

사건 너머를 기록하는 일

지난달 14일 텔레그램 대화방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징역 42년형이 확정됐다. 2019년 5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다. 장수경 <한겨레> 편집부 기자는 지난해 <한겨레21>에서 두 명의 기자(고한솔, 방준호 기자)와 함께 디지털성범죄 사건을 기록했다.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사건 이후 흐름과 피해 여성들의 연대를 촘촘히 따라갔다. 조주빈에게 징역형이 확정되는 날까지 423편의 기록이 쌓였다.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 너머n’ (이하 너머n)은 범죄의 뿌리를 끈기 있게 추적했다. 전국을 돌며 재판이 열리는 곳을 찾았다. 공소장을 분석하고 수사기관을 취재했다. 거대한 범죄 조직도가 완성됐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죄의 굴레 속에서 법원과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판결문을 입수해 그들의 ‘방조’를 기록했다.

▲ '너머n' 프로젝트을 소개하는 장수경 <한겨레> 편집부 기자. ⓒ 한국언론진흥재단

마찬가지 세 명의 시민이 기자에게 물음을 던졌다. 20대 허은정 씨,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정혜심 교사, 60대 시민기자 양인석 씨가 이야기를 나눴다.

허은정 씨는 방대한 기록에 놀랐다. 범죄에 가담한 가해자의 수는 충격이었다. 기자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기록을 정리했을까, 궁금했다.

장 기자는 벅차고, 분노하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디지털성범죄 사건을 수면으로 드러낸 여성들의 싸움과 연대를 이야기할 때는 가슴이 벅찼다. 2년 4개월의 투쟁이었다. 사건과 오판을 기록할 때는 분노했다. 기사에 쓰지 않은 이야기가 많았다. 공소장을 입수했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잔혹했다. 2차 가해를 우려해 보도하지 않았다. 장 기자는 욕을 뱉었다. 피해자들이 연대를 외치는 편지를 썼을 때는 뜨거웠다. 한동안 일을 못했다.

정혜심 교사는 학생들이 떠올랐다. ‘우리 애들’만 겪은 문제가 아니었다. 사건이 사건으로만 이야기되고 소비되는 일에 슬펐다.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느꼈다. 교사로서 불법촬영물에 노출된 아이들을 돕는 방법이 있을지 물었다.

장 기자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빌렸다. 한국성폭력대응센터와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의 도움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의견과 욕구를 충분히 듣는 일이라고 했다. 피해 사실에 관해 사법적 도움을 청할지 결정하는 사람은 피해 당사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혼자 고민하지 않도록 여성단체를 연결해주는 방법도 권했다.

양인석 씨는 디지털 성범죄의 유형이 다양화하는 가운데 처벌 수위와 형량이 낮은 현실을 우려했다. 사건 발생 뒤 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을 취재한 경우는 드물었다. 관심은 사건에만 집중된다. 

‘너머n’은 데이터베이스다. 장 기자는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꾸준히 기록을 쌓을 수 있는 페이지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대중의 관심은 금방 뜨거워지고 금세 식는다. 그는 비취재 부서에 있는 탓에 자신도 관심이 소홀해진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보이지 않는 죽음, 질식 재해 산업 현장

▲ 밀폐공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은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소개하는 이예슬 <단비뉴스> 기자. ⓒ 한국언론진흥재단

<단비뉴스> 기획탐사팀은 지난해 여름 내내 밀폐공간을 찾아다녔다. 기획은 가까운 공간에서 출발했다. 주변에서 자주 보는 맨홀, 하수처리장에서 소리 없이 죽어간 이들의 소식을 단신으로 접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질식하여 스러지는 이들이 일하는 현장을 찾았다.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세 명의 기자(김성진, 이예슬, 이정헌 기자)가 직접 들어갔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밀폐공간에서 발생한 질식 재해 193건을 분석해 기록했다. 양돈장, 상하수도 맨홀, 공공하수처리시설을 다녀와 현장을 기사로 옮겼다. 텍스트로 전하기 어려운 생생함은 VR과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구현했다.

이날 정담회에 참석한 열두 명의 시민 가운데 마지막 세 명이 기사를 읽은 소감을 전했다. 한국철도공사에서 일하는 김필종 씨, 대학원생 조수연 씨,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하는 박정찬 씨가 참여했다.

김필종 씨는 소상한 취재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다양한 현장을 섭외하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었다. 

이예슬 <단비뉴스> 기자는 현장 섭외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사업주들은 현장을 보여주기 꺼렸다. 양돈장에선 전염병 확산을 우려해 외부인을 들이는 일을 주저했다. 상하수도 맨홀이나 하수처리시설에 들어가려면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숙련된 노동자도 아닌 기자들이 위험한 현장에 출입하는 일을 지자체는 우려했다. 끈질긴 설득이 취재로 이어졌다. 밀폐공간의 실태를 알리는 기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전국에 있는 하수처리장에 전화를 걸어 설득을 이어갔다.

조수연 씨는 매년 반복되는 질식 재해에 관심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밀폐공간에서 사람 대신 기계가 일할 수는 없는지 물었다. 박정찬 씨는 물류센터에서 일한 경험을 밝혔다. 기사를 통해 당시 현장에서 산소포화농도를 표시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밀폐공간에서 동료가 죽는 모습을 목격한 이들을 정신적으로 도울 길이 없는지 물었다.

이 기자는 현장에 기계가 있지만 내부 설비나 청소 등 세밀한 작업에는 사람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돈장의 저장 탱크나 상하수도 맨홀이 대표적이다. 자주 청소를 해야 하는데, 기계가 닿지 않는 곳에는 사람이 들어간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기자는 실제 사고를 목격한 이들도 만나서 취재했다. 10년이 지난 사고를 잊지 못해 매년 추모제를 여는 노동자도 있었다. 이 기자는 ‘직업트라우마센터’를 소개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운영하며 사고를 목격한 사람과 유족에게 상담 서비스를 지원한다.

시민과 기자, 기자와 시민

언론과 담론. 둘러앉아 말(言)을 나눌 때 이야기(談)가 된다. 중심에는 불꽃이 있다. 나흘간 진행된 시민참여프로그램에서 시민과 기자는 꼭 같았다. 시민은 기자에게 물었고, 기자는 시민에게 답했다. 그것은 저널리즘이다. 세상의 이면을 헤아리고, 다른 세상이 있음을 전하는 일이다.


편집: 김정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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