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인문주간 체험기

지난 2006년 처음 시작된 ‘인문주간’은 매년 가을의 한 주 동안 시민들에게 인문학을 친숙하게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전국적인 행사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며, 제천에서는 2017년부터 세명대학교가 주관해왔다. <단비뉴스>는 지난 25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 간 열린 인문주간 행사들을 직접 체험해봤다.

음악과 책과 시로 어우러지는 힐링 콘서트

26일과 27일은 귀를 즐겁게 하는 행사가 주를 이뤘다. 26일 세명대학교 학술관 102호에서 열린 힐링 인문학 북 콘서트는 제천음악영화제 JIMFF(Jecheon International Music&Film Festival) 악단의 연주로 막을 올렸다. 곡 이름은 몰라도 귀로는 익숙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를 비롯해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디즈니 메들리 등 대중적인 선곡으로 흥미를 돋우었다. 2020년 지역예술인들이 참여해 만든 JIMFF 악단은 제천은 물론 전국 곳곳을 다니며 ‘찾아가는 동네극장’ ‘보이는 라디오’ ‘신나는 예술여행’ 등의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JIMFF 악단은 2020년 국내 유일의 음악영화제인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기점으로 지역 예술인들로 결성됐다. 이날 행사에서 악단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 5곡을 연주했다. ⓒ 임예진

연주가 끝나고 이어진 강연에서는 최종명 중국문화 작가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차이나는 중국 여행’을 주제로 중국 여행의 네 가지 관전 포인트를 짚어줬다. 최 작가는 <한겨레TV>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등 유수의 언론에 중국 기행기를 연재하고 있는 중국문화전문기자다. 2016년에는 EBS <세계테마기행> 중국음식방랑기 편에도 출연했다. 최 작가는 중국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친근하게 다가갈 것을 강조했다. 중국의 명주부터 건물 양식, 지역마다 탈바꿈하는 고유문화 등의 매력을 소개했다. 15년간 중국의 약 2200개 지역 중 400개 도시를 다닌 백전노장의 관록이 느껴지는 강의였다.

▲ 제천평생학습관 행복한 시낭송 동아리 회원인 권영림 씨는 한인석 시인의 ‘초가을 월악산’을 낭송했다. ⓒ 신현우

같은 날 저녁 제천시 장락동 의병도서관에서 열린 ‘시와 노래가 만나는 힐링 休 콘서트’는 제천평생학습관 시낭송 동아리와 제천노래연주단의 공연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였다. 낭송에 나선 어르신들은 중절모, 분홍색 드레스에 꽃모양 브로치, 그리고 한복까지 한껏 차려입고 멋을 냈다. 행사 초반 음향 실수 같은 잡음이 있었지만 어설픈 모습도 정겹게 느껴졌다. 지역민이 많이 참여해서 그런지 즐거운 마을 행사 같았다. 음절마다 감정을 실어 낭송하는 모습은 연극의 독백을 연상시켰다. 건반 1명과 기타 2명으로 구성된 제천노래연주단의 ‘시노래’는 정호승 시인의 ‘가을편지’,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 등 유명한 시에 멜로디를 더했다. 2년 전 시와 노래를 좋아하는 음악 강사와 싱어송라이터 세 명이 모여 결성했다는 제천노래연주단은 평소에도 제천 시문학 동아리와 함께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다.

27일 저녁에 진행된 문화 포럼에서는 공연과 강연이 어우러졌다. 세명대학교 교양대학의 김주목 교수가 포함된 관악 앙상블과 바이올린 듀오, 피아노, 첼로로 구성된 제천심포니앙상블이 ‘영화와 문학이 만나는 힐링 愛 콘서트’를 열었다. 관악 앙상블은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 ‘월량대표아적심’(The man represents my heart), 영화 <시스터액트>의 주제곡 ‘아이 윌 팔로우 힘’(I will follow him)을 연주했다. 이어 제천심포니앙상블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을 시작으로 카미유 생상의 ‘백조’(Le Cygne)까지 3곡을 연주했다.

▲ 세명대학교 김주목 교수와 제천 시민 3인으로 구성된 관악 앙상블은 영화 <첨밀밀> 삽입곡 ‘월량대표아적심’ 등 3곡을 연주했다. ⓒ 임예진

이어진 ‘예술, 치유의 내러티브를 통해 다시 일상으로’ 강연에서는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해설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기견에 관한 동화 <다 함께 울랄라>를 쓴 정혜원 작가는 ‘동화로 내 마음 치유하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 관장도 맡고 있는 정 작가는 자신이 쓴 동화에서 박경리 작가를 형상화해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한상언 영화연구소 소장은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을 연민과 공포 그리고 치유적 관점으로 해석했다. 한 소장은 말초적 재미를 익숙함과 결합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표현한 것이 <오징어 게임> 인기의 중요한 축이라고 말했다.

장애인과 함께 걷는 길 위의 인문학

이틀 뒤인 29일 오전 10시 15분, 장애인 복지단체 큰나무 주간활동센터의 장애인들과 봉사자들이 의림지 수변광장에 모여들었다. 센터에서 출발한 차량이 차례로 도착할 때마다 먼저 온 이들은 손을 흔들어 동료를 반겼다. 지역 어울림 문화 체험 행사의 일환인 ‘장애인과 함께 걷는 길 위의 인문학’은 의림지에서 출발해 제천 대표 산책길인 ‘삼한의 초록길’까지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삼한의 초록길은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전해지는 의림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살려 시민들을 위한 사계절 산책길로 조성됐다. 원래는 약 2.4킬로미터(km)의 길이지만 오래 걷기 어려운 참가자들을 고려해 중간쯤에 있는 에코브릿지를 거쳐 의림지로 돌아오는 코스로 조정했다. 이날 행사에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지는 않았고, 큰나무 주간활동센터 장애인 30여 명과 센터 소속 봉사자, 세명대학교 학생 5명 등 50여 명이 동행했다.

▲ ‘장애인과 함께 걷는 길 위의 인문학’ 행사는 제천시 의림동에 위치한 큰나무 주간활동센터와 연계해 진행됐다. ⓒ 신현우

인문주간을 총괄한 세명대학교 민송도서관장 이연종 교수는 “2년 전에는 충남 예산 수덕사를 이 분들과 함께 갔었는데 배우는 게 정말 많은 시간이었다”며 “인문학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역의 역사를 알고 건강도 챙기는 것”이라고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단체 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지역의 장애인들은 오랜만의 나들이에 들떠 보였다.

의병의 길을 가로지르며

행사의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9시 50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의병광장’에 선글라스와 헬멧을 쓴 채로 자전거에 탄 45명이 모였다. 의병광장을 시작으로 봉양읍 공전리에 위치한 의병항쟁의 발상지 ‘자양영당’까지 20km 구간을 자전거로 이동하는 ‘제천 시민 의병 로드 탐험’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을 기리고 그 후예임을 되새긴다는 의미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두바퀴’ ‘청풍’ ‘박달재’ ‘노브레이키’ ‘JCB’ ‘레인보우’ 등 자전거동호회 회원들이 주로 참가했다.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경찰차 2대와 경찰오토바이 1대가 동행해 차량을 통제했다.

▲ 제천 의병광장을 시작으로 자양영당까지 가는 20km 길목 중 봉양읍 일대를 지나고 있는 참가자들. ⓒ 김정산

권영민(64) 제천시 자전거연합회회장이 선두에서 페달을 밟았다. 참가자들은 권 회장의 뒤를 따라갔다. 60~70대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1시간 30여 분 동안 20km 구간을 주파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은 계영혜(77) 씨였다. 계 씨는 “오늘 참가한 사람들 중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을 거다. 세명대와 제천시가 행사를 열어주어 즐겁고 내년에도 꼭 다시 참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든 참가자가 40km 구간을 완주했다.

내년을 위해 보완할 점도 있어

지역민과 대학이 함께하는 인문학 축제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27일 인문 체험 행사인 ‘어울림 영화 인문학’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 줌 링크를 받을 방법이 따로 안내되지 않았다.

26일 오후 ‘클래식 힐링 인문학 북 콘서트’는 본래 3시 30분 시작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10분 일찍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마지막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반면, 29일 ‘길 위의 인문학 행사’는 예정 시간보다 30분 뒤에 시작됐다. 팸플릿에 나온 것과 달리 모임 장소도 바뀌어 있었다. 정보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이 행사의 접근성을 낮췄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한다면 젊은 세대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문화생활을 즐길 인프라가 부족한 제천에서 콘서트를 비롯해 다채로운 체험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인문주간의 가치가 빛났다. 내년에는 아쉬운 부분들이 보완돼 여러 연령이 어우러져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축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편집: 박성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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