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⑲ 청년활동가에 손해배상 소송 낸 두산중공업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 등으로 한국이 ‘기후악당’ 비난을 받는데 책임이 큰 두산중공업(주)이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인 청년 기후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형사고발과 함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특히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개선을 중시하는 ‘ESG 경영’을 홍보하고 있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0일 환경단체인 청년기후긴급행동(대표 강은빈 오지혁) 등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지난 8월 9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강은빈(24)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와 이은호(32)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을 대상으로 184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강 대표와 이 위원장이 베트남에서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두산중공업을 규탄하기 위해 지난 2월 1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두산중공업 신사옥 앞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려 재산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다.

스프레이 뿌렸다고 ‘1840만 원 물어내라’  

강 대표와 이 위원장은 당일 ‘DOOSAN’(두산) 조형물(론사인)에 수성 스프레이를 뿌린 뒤 조형물 위에 올라가 “Shame on DOOSAN, 최후의 석탄발전소 내가 짓는닷!”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쳤다. 석탄발전소가 기후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히며 세계적으로 퇴출되는 추세인데도 두산중공업이 한국전력과 함께 베트남에서 대규모 발전소를 짓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 지난 2월 18일 경기도 성남시 두산중공업 본사 앞 조형물 위에서 강은빈, 이은호 활동가가 석탄화력발전소 수출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청년기후긴급행동

두 활동가는 20분 정도 시위를 한 후 스펀지로 페인트를 닦아내던 중 경비직원의 제지를 받았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 조사 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송치된 두 활동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재물손괴 혐의로 약식 기소됐고, 7월 2일 수원지법에서 약식명령으로 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지난달 15일 1차 공판이 열렸다. 이들을 변호한 이치선 변호사(법무법인 해우)는 재물손괴죄에 관해 무죄를, 집시법 위반에 관해 정당행위를 주장했다. 피고인들의 시위 목적이 석탄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로 침해당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공익적 행위였으며, 두산중공업에 실질적으로 끼친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변호사는 특히 “피고인들은 무해하고 친환경적이며 두산중공업에 재산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수성 스프레이 제품을 선택했다”며 “경찰에 바로 연행되지 않았다면 세척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들 ‘기후정의 무죄, 그린워싱 유죄’ 응원 

두산중공업이 석탄발전소 건설에 항의하는 청년 기후활동가를 경찰에 신고한 데 이어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낸 것을 두고 환경단체와 시민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15일 형사재판 방청을 위해 모인 시민들은 ‘돈만 아는 저질 두산 손배 철회하라’ ‘기후정의 무죄, 그린워싱 유죄’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과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를 포함한 50여 단체와 900여 명의 개인이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고 청년기후긴급행동 측은 밝혔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의 윤세종 변호사는 지난 6일 <단비뉴스>와 한 통화에서 “기업체가 시민 활동가에게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한 것은 일종의 괴롭힘이라고 본다”며 “에너지 전환에 대한 요구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청년 활동가의 요구를 무시한 점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송으로 두산 측이 표방하는 ESG 경영에 깊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기업이 변해야 한다는 시민의 경고에 보복하듯 대응하면 결국 공익을 무시하겠다는 메시지밖에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지난달 15일 청년 기후활동가들의 형사소송 1차 공판이 열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앞에서 다양한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두산중공업을 비판하는 시민들. ⓒ 청년기후긴급행동

두산중공업은 지난해부터 지구환경 등에 기여한 성과를 보고서로 만들어 발간하는 등 ESG 경영실적을 인터넷 홈페이지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박지원 회장은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두산중공업 창원 본사에 방문했을 때 “국내 친환경에너지 대표 기업으로서 그린뉴딜 정책에 부응하는 우수한 제품과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공급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탄소 흐름 속에서 중국의 중화전력공사와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 등 해외자본이 모두 철수하는 가운데서도 베트남 붕앙-2 발전소 건설에 뛰어드는 등 말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에서도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강은빈 대표 "기업에 기후위기 책임 물어야"

형사와 민사 두 건의 소송에 대처하고 있는 강은빈 대표는 지난 1일 서울시 중구 로컬스티치 5층 공유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만나 “기업이 대외적으로는 ESG 경영과 같은 친환경적인 행보를 내세우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부분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붕앙 2호기 건설이 전 지구적인 생태계를 위협하는 ‘생태학살(ecocide)’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 ⓒ 남윤희

진행 중인 재판과 관련해 강 대표는 시위가 비폭력 행동 원칙에서 진행됐고 청소노동자들의 복구노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독성 수성 스프레이를 사용했으며 세척도구까지 준비했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시위 직후 가벼운 물청소만으로 세척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두산중공업을 향해 “인류가 경험해보지 않은 위기 앞에서 (기업이) 너무 거만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며 “기후위기는 인류가 생태계를 착취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제는 성장 강박에서 벗어나 처절한 반성을 하고 실질적인 대응을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두산중공업 커뮤니케이션팀 이성민 과장은 지난달 30일 전화 및 문자로 이뤄진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훼손된 로고 조형물의 세척 작업을 최대한 진행했으나, 원래 상태로 복구되지 않아 교체가 불가피했다”며 실제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배 소송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여론에 관해 의견을 묻자 “아직 진행 중인 소송이라 더 해드릴 수 있는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두산중공업은 손해배상청구 소장에서 “DOOSAN 모양의 론사인 조형물에 칠해진 페인트를 제거하기 위해 세척 복구 작업을 진행하였으나 철제 부분이 긁히거나 찍혀 손상이 남았고 대리석 부분에 페인트가 스며들어 해당 시설물의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회사건물 관리업체인 두산큐벡스가 1840만 원을 들여 재설치 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기후긴급행동 측은 론사인 로고 표면의 긁힌 자국은 두산중공업 측의 부주의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편집 : 남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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