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뽀삐뽀]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기 ②

충청북도의 여러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들에는 없는 진료과가 많다. 단양, 괴산, 보은에는 이비인후과가 없고, 단양, 음성, 증평, 괴산, 보은, 옥천, 영동에는 피부과가 없다. 단양, 음성, 증평, 괴산, 보은, 옥천에는 분만시설이 없어서 지역민은 '원정출산'을 가야 한다. 지역에 병원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문제다. 민간이 적자를 보면서 병원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지역민의 건강권이다. 수요가 적어 병원이 문을 닫으면 지역민은 어쩔 수 없이 '원정진료'를 받는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지역 의료격차를 메우기 위해 이런저런 사업을 벌인다. 산부인과가 없는 곳에 이동검진차량을 보내는 '찾아가는 산부인과' 같은 사업이 대표적이다.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은 지역 의료격차를 해소하는 다양한 정부·지자체 사업과 전문가 대안을 알아봤다. 지역의 의료공백을 채우는 '선의의 봉사자'를 만난 건 그때였다.

안과가 없는 단양에 나타난 은인

충북 단양에는 안과가 없다. 지역민은 의료 봉사를 하는 '은인'을 만났다. 주인공은 안과 전문의인 김영훈(56)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김 교수는 2015년부터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단양군 보건소에서 진료를 봤다. 처음에는 그에게 진료를 받겠다는 지역 환자가 하루에 130명까지 몰렸다. 김 교수가 130명 환자를 하루에 진료하기에 버겁고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까지 시작되면서 안과 진료는 일주일에 하루에서 이틀로 늘어났다.

▲ 김영훈 교수에게 안과 진료를 받기 위해 하루에 75명 환자가 몰린다. 취재팀은 보건소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서 진료 받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환자들을 볼 수 있었다. 진료 예약을 잡은 뒤 한 달씩 기다린 환자도 있었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취재팀은 지난 8월 25일과 26일 김 교수와 동행했다. 25일 새벽, 서울 청량리역에서 단양으로 출발하는 김 교수를 만났다. 간편한 차림에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길을 나서는 김 교수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하루 75명씩 모두 150명.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5분 단위로 예약이 가득 차 있었다. 진료 봉사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은 딱 한 시간, 점심시간 뿐이었다.

"저도 지치죠. 진료가 끝나는 시간이 다가올 때는 탈진된 상태가 되죠. 아무래도 제가 혼자서 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래요. 연세가 많은 환자는 말을 들어주는 시간이 길어야 하고, 어린이 환자는 떼를 쓰니까 달래야 하고. 증상을 하나 알려면 최대 10분 이상 걸려요. 서울 대형 병원에서는 전공의나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많아 일을 분담하잖아요. 여기보다는 편하죠."

▲ 지난 8월 26일 김영훈 교수가 단양군 보건소에서 진료하는 모습.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의료 낙후 지역을 찾아다니는 의사가 된 김 교수 

김 교수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안과 전문의가 되기 위한 전공의 과정에 있을 때였다고 한다. 서울 청량리 성바오로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할 때, 병실에서는 보지 못한 환자들의 고된 삶을 병원 밖에서 목격했다. 그가 현장에서 마주한 환자들은 하루라도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거나 폐지를 주워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돈 천 원, 이천 원을 모아서 진료를 보러 오는 그분들의 민낯을 보게 된 거죠. 충격이었어요. 사실, 제가 있었던 환경과는 너무 달랐거든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했죠. 내가 아는 세상이 다가 아니구나. 그럼 나는 그런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 김영훈 교수가 안산에 있는 외국인 진료소에서 처음 봉사를 하던 당시 모습. ⓒ 김영훈

김 교수는 안산에 있는 외국인 진료소에서 첫 봉사를 시작했다. 일하느라 주중에 병원을 다니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일요일 오후에 잠깐 여는 진료소에서 봉사를 했다. 당시 해당 진료소에서는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1차 검진만 했다. 그는 대학 병원 생활과 봉사를 병행해야 했기에 일 년에 한 번 정도로만 참여했다. 매번 봉사하는 의사가 바뀌었던 진료소는 김 교수에게 '전담 의사'를 제안했다. 그는 그렇게 의료 낙후 지역을 찾아다니는 의사가 됐다. 서울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진료 봉사를 하고 필리핀 등 해외도 나가 환자를 돌봤다.

"거기에서 한 봉사가 버릇된 거 같아요. 집에서 진료소까지 지하철 타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걸려요. 또, 서울시나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의사가 없어서 호출이 왔을 때도 제가 가서 진료 봉사를 했어요. 거기에서 단양까지 이어진 거죠."

병원이 없어서 겪는 고통은 모두 환자의 몫

7년째 단양 군민을 만나는 김 교수가 기억하는 환자들이 있다.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실명한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독거노인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눈이 불편해도 '언젠가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에 병을 놔둔다. 병원 접근성이 낮아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다. 취재팀이 보건소를 방문한 이틀 동안에도 적절한 진료 시기를 놓쳐 병을 키운 환자와 그러한 사연을 이야기해주는 지역민을 만날 수 있었다. 김 교수도 취재팀에게 한 환자 이야기를 해줬다.

"그 환자는 두 눈을 완전히 실명하셨고, 눈 한쪽에 안구 위축이 와서 항상 통증이 있어 치료용 렌즈를 끼고 있어야 해요. 바깥 어르신이 장애가 있으셔서 렌즈를 교체하지 못하셔서 항상 저희한테 오시거든요. 한번은 관리하던 중에 렌즈가 빠져서 제가 오는 일주일 동안 눈에서 진물이 나고 아프셨던 적도 있었어요. 안과가 없어서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은 사연을 들으니 더 안타깝죠."

병원이 없어서 겪는 고통은 노인에게만 해당하지 않았다. 환절기마다 눈에 다래끼가 생기는 유지연(9) 양에게 안과 진료를 받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단양군 보건소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특정 요일에 예약해야 한다. 김 교수가 보건소에서 진료하지 않는 날에는 제천에 있는 안과에 가야 한다. 지연 양의 집에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지역에 병원이 없어서 겪는 어려움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취재팀은 현장에서 확인했다.

▲ 지난 8월 25일 안과 진료를 받으러 단양군 보건소에 방문한 유지연(9·오른쪽) 양과 어머니 이은경(45) 씨.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포기가 익숙해진 지역 주민

안과 진료를 받으러 온 지역민에게 단양에 어떤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지 물어봤다. 의외로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김 교수 같은 의사가 한두 번 더 왔으면 좋겠다', '안과 등 현재 없는 진료과가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단양에는 안과 말고도 피부과, 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없는 진료과가 많다. 종합병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것을 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단양에 있던 유일한 종합병원인 서울병원 폐업을 지켜보고 공공 의료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역의 현주소를 깨달은 것이다.

"종합병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김 교수님의 진료를 두 번이나 세 번 횟수를 늘렸으면 좋겠다." (이은경, 45세)

"단양군 보건소 안과실에 기계를 더 들여왔으면 좋겠다. 더 좋은 것은 안과, 피부과 등 포함된 종합병원이 생기면 좋겠다." (김채원, 79세)

선의에 기대서 의료 공백을 해소할 수 없다

취재팀은 다른 지역에서도 단양처럼 봉사자로 의료 공백을 메우는 사례가 있는지 확인했다. 비슷한 사례가 없었다. 단양처럼 지역 보건소에서 부족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한다. 문제는 대부분 공중보건의가 정해진 기간에만 진료를 본다는 점이다. 보건소가 필요한 진료과를 담당할 공중보건의를 선택할 수도 없다. 지역에서 필요한 진료과를 개설하거나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다.

▲ 현재 단양을 포함해 의료공백이 있는 다른 지역에서 진료과가 없는 자리를 공중보건의가 대신하고 있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여기서도 이비인후과를 못 구했거든요. 제가 처음 왔을 때, 안과를 하면서 이비인후과도 같이 봐주실 수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이건 또 다른 분야니까 못 본다, 그럼 근처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지만, 결국 못 구했거든요. 단양군과 같은 특별한 케이스가 없고, 저와 같은 사람이 별로 없고요. 벤치마킹의 실패로 작용할 거예요."

김 교수가 하는 봉사는 지역 의료공백을 해소하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모든 지역에 적용할 수도 없고, 지속 가능한 방법도 아니다. 개인에게 의료 봉사를 강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몇 사람의 선의가 모든 의료격차를 해결할 수도 없다.

공공의료는 답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이가 공공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 의료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공의료 강화를 말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취재팀이 만난 지역민 가운데 지역 의료격차를 공공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적었다는 점이다. 충북에 있는 청주의료원, 충주의료원을 이용해본 지역민도 많지 않았다.

'공공이 지역 의료격차를 책임진다'는 단순해 보이는 해결책 안에 많은 과제가 있다.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의료진은 어떻게 충원할 것인지, 지역민으로부터 신뢰를 어떻게 얻을 것인지. 그래서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 9월 2일 보건복지부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총파업 철회를 합의하며 합의문에 '제천 등 지역민의 요청이 있는 지역에 공공병원 설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14일 제천·단양 공공의료강화 대책위원회는 지역 의료주체와 시민단체, 지자체가 참여하는 '공공의료 확충 및 강화 추진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공공의료 강화는 의료 취약지 충북에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과 공공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취재할 예정이다. 지역민과 의료주체, 지자체와 정부, 시민단체를 만나 그들이 제시하는 해법을 영상에 담으려 한다.

● <단비뉴스> 충북지역 의료격차 취재팀 : 유지인 이정민 정진명 조한주 기자 김대호 신현우 이성현 PD


편집 :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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